외견 상의 발언에 현혹되지 말고, 수혜자 중심으로 사안 바라봐야
  •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지난 4월 6일 정책엑스포의 청년유권자연맹 부스에서 의원 정수에 관한 스티커 설문조사에 351명 이상이라고 답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지난 4월 6일 정책엑스포의 청년유권자연맹 부스에서 의원 정수에 관한 스티커 설문조사에 351명 이상이라고 답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엔드하우스의 비극〉을 보면, 살해 위협에 몰려 있는 듯한 피해자가 정작 범인이다. 명탐정 에르퀼 푸아로는 외견 상의 흐름에 현혹되지 않고 "누가 이 살인 사건으로 인해 가장 이득을 얻는가"라는 가장 기초적인 질문으로 되돌아가 사건을 해결한다.

    이를 바탕으로 최근 정치권에서 불거진 의원 정수 확대 논란을 바라보면 시사하는 지점이 없지 않다.

    국회의원 정수가 늘어나면 누가 가장 유리한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혁신위에 의해 촉발된 의원 정수 확대 논란과 거리를 두고 있다.

    26일 의원 정수 369명 확대 제안을 담은 혁신안 발표와 뒤이은 이종걸 원내대표의 '390석' 맞장구로 파장이 커질 조짐을 보이자, 당일 저녁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해 "의원 정수 확대는 당론이 아니라 개인 의견"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튿날 아침에 열린 최고위가 끝난 뒤에도 취재진과 만나 "지금은 국회의원 정수를 논의할 때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야권 관계자들도 혁신위나 이종걸 원내대표는 의원 정수 확대와 이해 관계가 있을 수 있지만, 문재인 대표는 일찌감치 20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 채 차기 대권을 겨냥하고 있어 국민 반감이 큰 의원 정수 확대를 추진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혁신위에는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가 도입되면 바로 본인이나 배우자가 당선권에 들게 되는 위원도 있다"며 "의원 정수 확대를 통한 권역별 비례대표제 관철에 앞장설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반면 총선이 아니라 대선이 목표인 문재인 대표는 의원 정수 확대를 주장할 이유가 없다"며 "의원 정수 확대가 문재인 대표의 의중이 아니냐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 정말 새정치연합발(發) 의원 정수 확대 주장은 문재인 대표와는 무관한가. 새정치연합 혁신위가 제안한 의원 정수 확대 주장이 거센 여론의 역풍을 맞고 있는 상황에서 문재인 대표는 희생자인데도 억울하게 지목된 용의자일 뿐일까.

    막상 의원 정수가 확대되면 누가 가장 큰 이득을 보게 되는지 생각해보면, 반드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문재인 대표는 지난 4월 6일 새정치연합 민주정책연구원이 주최한 정책엑스포에 참석해 '청년유권자연맹'이 진행한 스티커 설문조사에서 '국회의원 351명 이상'이 적당하다는 쪽에 스티커를 붙였다. 이어 "우리 의원 수가 다른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국가와 비교하면 적다"며 "(의원 수를 400명으로 하면) 비례대표를 절반으로 늘리면서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물론 야권 관계자는 "당시 (문재인 대표가 의원 정수에 관한) 스티커를 붙이는 때는 진지한 분위기가 아니었다"며 "'어디에 붙일까, 여기? 저기?' 하다가 붙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심중과 전혀 무관한 곳에 굳이 붙였어야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의원 정수가 늘어나고 비례대표가 함께 늘어나면 당권을 쥐고 있는 문재인 대표와 친노(親盧) 계파에 유리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비례대표는 당권을 쥔 세력에서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대 총선에서도 당시 당권을 장악한 친노 한명숙 지도부가 친노 성향의 비례대표를 대거 공천해 국회에 입성시켰다. 이 결과로 의원단 구성에서 친노 강경파가 대폭 늘어나면서 당내 계파 간의 세력 균형이 깨지고 친노패권주의가 횡행하게 됐다는 게 중론이다.

    문재인 대표는 29일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지금은 국정원 불법 해킹 의혹을 규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라며 "국회의원 정수 논란으로 그 일이 가려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의원 정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국민의 공감을 얻을 때 다양한 구상 속에서 논의될 수 있고, 선거구 재획정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논의될 수도 있는 문제"라며 "의원 정수 문제가 너무 앞질러 논란이 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나 여야 지도부 회동 등에서 정치 협상을 통해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관철하면서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의원 정수를 늘릴 수도 있는데, 혁신위가 먼저 '치고 나가면서' 일의 순서가 어그러진 것을 꾸짖는 투로도 들린다.

    뜬금없이 터져나온 의원 정수 확대 주장을 제기한 숨은 '진범'은 과연 누구일까. 의원 정수가 확대되면 누가 가장 큰 수혜자가 되는지를 염두에 두고, 향후 논의의 전개 과정을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