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7·8월 대한민국의 슬픈 코미디
    굴종과 자해(自害), 사기와 신파(新派)를 거두라!

    이 덕 기 / 자유기고가

     7.23. 중동부전선 ‘삼원’고지에서 격전 치열, 국군은 포병대 엄호 아래
             오전 10시에 고지 탈환했으나, 2시간 후 다시 철수.
     7.24. 한국군 공격부대, 중동부전선 금성지구에서 미명에 반격 개시, 1개 고지 탈환.
     7.25. 미 제1 해병사단, 동부전선 ‘베를린’고지에 대한 중공군 공격 격퇴.
     7.26. 전(全) 전선 소강상태.
      역사의 기록은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되기 직전의 전황을 이렇게 전한다. 
  •   6·25남침전쟁이 1129일만에 그 거친 포화를 멎었지만,
    이후 이 땅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념·정치·역사·경제 등 각 분야의 남북간 다툼은 멎은 적이 없다.
    그리고 북(北)의 숱한 무력 도발과 함께, 남북간에는 ‘닭싸움’(chicken game:겁쟁이 게임)이
    계속된다. 이 과정에서 남북간의 합의·약속은 번번이 휴지조각이 됐다.
    주된 원인이야 북(北)의 아전인수(我田引水)식 강짜와
    남(南)에 대해 굴종을 강요하는 협박들 때문이었다.

    남(南)은 거의 항상 양보해 왔다. 한마디로 져 준 것이다.
    다시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이 재현되길 원하지 않았고, 더러는 두렵고 무섭기도 했다.
    그래서 북녘 세습독재정권이 정전협정 체결 이후 60여 년 간 경험으로 체득한 것이 있다면,
    결코 ‘대한민국 국군’이 먼저 북(北)을 때리지 않는(못한)다는 것,
    그리고 버티기만 하면 결국 남(南)이 무릎 꿇고 나온다는 것이다.
    남북간 화해·상생, 인도적 차원 등 아주 고상한 말을 앞세우며... 
  이것이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 우리는 수십년이 걸렸다.
그것도 북(北)이 핵 실험을 3차례나 하고 “핵 보유국” 운운하고서야 말이다.
전쟁을 결심할 수 없으면, 굴종(屈從)은 지속된다.
하지만 이른바 “남북관계 경색”을 비난·추궁하는 세력과 찌라시 언론의 나발에
괜스레 쪼그라드는, 그래서 현재의 정부도 다시 무릎을 꿇고자 궁색한 명분을 찾으려는 게
작금의 상황이다. 과거 ‘닭싸움’ 과정의 슬픈 어릿광대를 닮고 싶어 한다.

감히 주장컨대, 예전과 같은 소위 ‘그럴듯한’ 남북접촉·대화나 통일을 내세운 이벤트가 없는 것이 결코 현 정부의 책임이 될 수는 없다. 원칙을 고수하는 것은 ‘훈장(勳章)’ 받을 일이고, 훗날 평가가 따를 것이다. 

  세월이 흘러 전쟁의 양상도 변모했다. 시대가 바뀌어 더욱 치열해 지기도 한다.
남북간 뿐아니라, 다국간의 전쟁이 벌어진다.
 ‘사이버 전쟁’은 날이 갈수록 진화(進化)하고 있다.
어느 전쟁이나 마찬가지지만, 특히 그 ‘사이버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은밀, 즉 보안이다. 그런데 아군(我軍)의 전력(戰力)을 그대로 노출시키려는 작태가 진행되고 있다.
그것도 ‘사이버 전문가’라는 분께서 주도하고 있다.
  •   정치판에서 아직도 철수 안하고 계속 버티는 ‘깡통’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기막힌 쇼를 하고 있다. 그가 대한민국 궁민(窮民)이라면, 자해공갈(自害恐喝)이 된다.
    자해공갈(自害恐喝)이 아니라면, 그는 자신의 스마트 폰이 도청될까 지레 겁을 먹은
    지구인(地球人), 즉 무국적자(無國籍者)에 불과하다.
    이런 분이 한 때는 ‘대한민국의 대통령’ 꿈을 궁민(窮民)들에게 내보이며 ‘새(鳥)정치’를 외쳤다. 우리는 “국가 또는 공공의 이익으로 포장된 개인의 욕심과 허황된 꿈이 국민을 피곤하게 하고,
     나라와 본인에게 모두 장기간 해악(害惡)이 된 대표적인 사례”를 재확인하면서,
    다시 한 번 쓴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남북간의 역사전쟁은 아주 끈질기다.
    이와 관련한 배꼽잡는, 그리고 약이 오르는 코미디가 있다.
    “대한민국의 역정(歷程)은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라고 주장했던 주군(主君)을 측근에서 모신 분이 있다.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과 중흥(中興) 대통령을 ‘친일파 독재자’ 정도로 여겨왔었다. 그러던 중 ‘너의도’ 새(鳥)연합의 왕초가 되고 나서, 그 두분 대통령의 묘소(墓所)를 참배했다. 아주 폼나게 “국민 통합” 운운하며...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평가·기대했다.
  • 허나 그건 인기와 표(票)를 의식한 야삽한 ‘사기극(詐欺劇)’이었다는 것이
    채 반년(半年)도 지나지 않아 밝혀지고 말았다.
    하긴 그가 거기에 갔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들 조차 몇 안 될 것이다. 

  •   지난 7월 19일은 이 나라 국부(國父)이신 건국 대통령의 50주기(週忌)였다.
    추모식 참석은 고사하고, 그와 그 무리의 이름이 붙은 그 흔한 국화꽃 한 송이도
    국립현충원 묘역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 댁(宅)에서 초촐하게 추모의 묵념이라도 했나?

      더군다나 그 날의 참배(參拜)에 대해 “이승만-박정희 묘소에 참배하는 것보다 우선해야 될 게 있다. 백범 김구의 묘소, 그리고 박정희 정권에 사법살인 당한 대구 평화공원에 누워계신 인혁당 애국열사 이런 분에 대한 묘소 참배가 우선이다.”라면서, “히틀러와 일왕(日王) 참배”에 비유했던 중간 뽀쓰(boss)를 아직도 곁에 두고 있다. 이 중간 뽀쓰는 요즘 더욱 기가 살아서 나 보라라는 듯이 활개를 치고 다닌다. 엊그제는 지난 가을 ‘대리운전 기사’에게 폭행을 가했던 슈퍼 갑 ‘여자 구개이언(口開異言)님’이 대형(大型) 교통사고 희생자를 교묘히 이용(?)하여 기득권 강화를 꾀하려는 사무실 개소식에도 당당히 참석했다. 그 여인네는 내년 총선(總選)을 앞두고 ‘전국구’에서
    ‘지역구’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를 도모한단다. 물론 거기 모인 이들은 그 왕초와 전부 한통속에 끼리끼리다. 
  •   장마와 태풍이 지나갈 즈음이면, 아주 멋진 남북간의 신파극(新派劇)이 기다리고 있다.
    슨상님의 여사님께서 그렇게도 고대하던 북녘 피서를,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가운데 다녀 오신다. “오고가는 조문(弔問)과 조화(弔花) 속에 대(代)를 이어 다져지는 경로효친(敬老孝親)과 우애(友愛)”라서 그런지 부럽기도 하다.

    북녘에 가시는 진짜 이유를 우리 같은 궁민(窮民)들이야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언론에 보도된 대로라면 그저 더운 여름날 몸 보신과 더불어, 좃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자랑하는 무상(無償) 의료·보육시설을 둘러 보신다고 한다. ‘낙타 고뿔’과 ‘어린이집 교사의 어퍼컷’으로 가슴에 멍이 든 남녘의 인민들에게 ‘공화국’의 찬란한(?) 복지(福祉)를 마음껏 뽐내고 싶은 어린 ‘최고 돈엄(豚嚴)’의 치기(稚氣)에 눈물이 날 지경이다. 또한 그 장단 맞춤에도... 
      그리고 이어서 거 무슨 ‘광복 70주년 8·15남북공동행사’라는 것도 잘하면(?) 성사될 모양이란다. 말이 좋아 ‘남북공동행사’지 결국은 이것 역시 ‘1948년 8월 15일 건국된 대한민국 지우기’의 깊은 속내가 있는 코미디라는 걸 알만한 궁민(窮民)들은 다 안다.
    알면서도 ‘성(城)안의 적(敵)’들로부터 ‘반통일(反統一)’이라는 소리 듣는게 무서워 단호히 “NO!”하지 못하고, “정치성 행사만은 안 된다.”며 얼버무리는 통일부의 처지가 피식 우습다. 

      8월의 한가운데에는 너무도 서글픈 특대형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다.
    광복 또는 해방 70주년 기념행사가 여기저기에서 성대하게 막을 올린다. 우리에게 ‘광복’·‘해방’은 결코 기쁨이 아니다. 그것은 민족의 수난(受難)과 치욕(恥辱)을 상징하는 또 다른 단어들이다.

    왜놈 나라의 재벌기업이 “조선은 법적 상황이 다르다.”며, 지난날 제국주의 시절의 징용과
    강제노역을 두고 양키·뛔놈과 조선인을 이중적으로 취급하는 오늘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 손으로 찾지 못하고 남의 나라들에 의해 건네진, 그래서 ‘광복’은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계기여야 한다. 그리고 나서야 그 후 ‘70년’을 축하하고 제대로 이어 나아갈 길, 자유통일의 길을 다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