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로서 여성으로서, '거듭남'을 거듭하고 있는 전지현
  • 전지현씨가요. 몸이 좀 안좋아서…. 어제 VIP시사회 일정도 겨우 마쳤어요.


    지난 21일 오후 12시 30분경, 삼청동 소재 모 카페에서 만난 영화 '암살' 홍보사 관계자는 굳은 표정으로 "전지현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비보(?)를 전했다.

    '몸살기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런 것 같다"고 에둘러 답한 이 관계자는 "죄송하지만 사정이 이러니, 인터뷰 시간을 좀 단축시켜 줄 수는 없겠느냐"고 양해를 구했다.

    예정된 시간은 오후 1시부터 2시.

    영화 '암살'을 홍보하기 위해 사전에 예약된 스케줄이었다.

    사실 1시간을 다 채운다 해도, 라운드로 진행되는 인터뷰 시간은 항상 아쉬울 수밖에 없다.

    영화 출연을 하게 된 배경과 소감을 묻고, 촬영 현장에서의 에피소드를 묻는 공식 문답이 이어지면 얼추 20~30분 가량이 흐르기 마련.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 익으면 이때부터 본격적인 질문이 시작된다. 연기 포인트부터 개인 대소사까지….

    앞에서 던진 질문들은 배우와 취재진 간에 형성된 긴장감을 허무는 윤활유 역할을 할 뿐, 기사의 헤드라인은 대개 인터뷰 말미에 주고 받은 '찰나의 대화'에서 나온다.

    따라서 인터뷰에 임하는 기자들은 단 1분이라도 인터뷰이(interviewee)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주어진 최소한의 시간마저 단축되는 암울한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그럼, 인터뷰 일정을 뒤로 미루는 게 낫지 않을까요?

    배우의 몸 상태가 그렇게 좋지 않다면, 컨디션이 회복된 이후에 인터뷰를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던진 질문이었다.

    개봉이 내일이잖아요. 더욱이 기자님들과 사전에 약속한 일인데, 미룰 수는 없죠. 예정된 대로 인터뷰는 소화하겠습니다. 다만 시간만 좀 양해를 부탁드릴게요. 죄송합니다.


    듣고보니 내일이 영화 '암살'의 개봉일이다. 영화 홍보를 위해 기획된 인터뷰를 개봉 이후에 가질 수는 없는 노릇. 너무도 당연한 얘기였다.

    결국 홍보사 관계자의 부탁을 수용하기로 하고 인터뷰가 진행됐다. 테이블에서 마주한 전지현의 모습은 생각했던 것보다 건강해보였다.

    몸 상태를 묻는 질문에 '괜찮다'고 답하며 인터뷰를 시작한 전지현은 평소처럼 당차고 명량(明亮)한 태도로 답변을 이어갔다. '별그대' 이후 생긴 자신감이 원천인 듯, 연기관을 얘기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당당한 포스가 느껴졌다.

    인터뷰 말미, 자리에 동석한 한 기자가 돌발 질문을 던졌다.

    혹시 자녀 계획은…?


    그러자, 전지현은 "여자에게 실례되는 질문 아니냐"며 기자에게 면박을 줬다. 그렇다고해서 당시 분위기가 서먹해진 것은 아니었다. 특유의 미소를 띠며 "아직 결혼 안하셨죠?"라고 묻는 전지현의 질문에 괜시리 미안해진 기자가 머리를 긁적였다.



  • 짧지만 유쾌한 시간이었다. 전지현의 대답은 마치 레코딩 된 클래식 음반에서 음악이 흐르듯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연기할 때 오히려 힘을 빼려는 시도를 했어요. 제가 연기한 캐릭터가 할 말이 정말 많은 인물이잖아요? 영화 내내 제가 출연을 하는데요. 제가 너무 세게 나와버리면 밸런스가 깨질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여전사로서의 이미지도 좋은 것 같아요. 우리나라 영화를 보면 아직까지 여주인공 위주의 영화들이 드물잖아요? 다행히 좋은 기회가 저에게 주어진 것 같고요.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계속 도전해보고 싶어요. 웨딩드레스를 입고 총격전을 벌이는 신, 멋있잖아요?

    정재 오빠와는, 둘 다 풋풋한 시절에 찍은 '시월애'와 최근 '도둑들'에서도 호흡을 맞춰온 사이라 정말 친해요. 영화 말미에 노역 분장을 하고 마주하는 신이 있는데, 오빠가 "이렇게 분장을 하니, 진짜 오래 만난 것 같다"고 말해 뻥 터졌죠. 항상 편안하게 해주시고, 연기할 때 힘이 많이 되는 존재죠.

    부상이요? 별로 없었는데. 아..발톱이 빠진 적은 있어요. 신발 바닥이 아주 얇아, 울퉁불퉁한 지면을 밟고 다니는 것도 좀 힘들었고요. 무거운 총을 들고 뛰어다니는 신도 아주 어렵게 찍었죠. 그래도 제가 몸으로 하는 건 자신 있거든요. 연기를 하다보면 발의 위치나 각도, 동선들이 자연스럽게 그려져요.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시간이 아까운 건 우리가 아니라 전지현처럼 보였다.

    "'숨도 쉬지 말고 연기하라'는 최동훈 감독의 조언이 지금의 전지현을 만들었다"며 최동훈의 '뮤즈'가 되고픈 욕심을 드러내는가하면, "레지던트이블의 밀라 요보비치처럼 강인한 여전사 역할도 맡아 보고 싶다"는 등, 이제 막 연기의 세계에 입문한 신인처럼 연기에 대한 목마름과 열정을 숨기지 않았다.

    정신없이 그녀의 얘기를 듣다보니 시간은 어느새 1시 40분을 향하고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전지현과는 석별의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스케줄 장소로 이동하려는 순간,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됐다.

    '그 유명한' 디스패치에서 전지현의 임신 소식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

    그제서야 홍보사 직원들의 석연찮은 태도가 이해가 갔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얘기는 전지현이 임신 초기라는 것을 방증했다. 인터뷰 시간을 단축해달라는 요청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전날 VIP시사회에서 영화의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무대 인사에 참석하지 않은 것도 수긍이 갔다. 경호원을 대동한 채 인터뷰 자리에 나온 특수한 상황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 턱이 없었던 몇몇 매체들은 전지현의 불성실한 태도를 지적하는 쓴소리를 각자의 지면에 적어냈다.

    이 모든 게 '예비 엄마'가 된 전지현과, 개봉 직전의 '암살', 모두를 챙기기 위한 홍보사의 고육책(苦肉策)에서 비롯된 해프닝이었다.



  • 전지현 입장에선 자신의 임신 소식이 되레 영화 홍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지는 않을까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전지현의 임신 소식을 언론시사회 무렵 알게된 홍보사 측도 당혹스러운 건 마찬가지.

    임신 10주는 아직 임산부가 안정을 취해야하는 불가침(不可侵)의 시기다. 태아가 자궁에 안전하게 착상하는 과정에 있는 만큼, 아기 엄마와 가족들 모두 가장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시기다.

    어찌보면 영화 홍보보다 '임산부의 건강'이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 '타협점'은 인터뷰 시간을 줄이고, 임신 사실은 당분간 주위에 알리지 않는 것이었다.

    어렵게 결단을 하고 강행군에 나섰 건만, 결국 예고됐던 기사는 터졌고, 전지현의 임신 소식은 22일 불거진 '각종 열애설'을 덮고도 남을 정도로 확산됐다.

    그러나 전지현의 임신 소식이 영화 홍보에 피해를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네티즌들은 '만인의 연인' 전지현이 아기 엄마가 된다는 소식에 대단히 놀라면서도 엄마가 되기 전, 마지막 작품이 될 '암살'에 대해서도 높은 관심을 보이는 분위기다.

    세상에 '엄마'보다 더 강한 사람은 없다고 하질 않는가. 한 생명을 잉태한 경이로운 에너지가 전지현의 액션 연기 속에 녹아 있었다고 하면 과언일까?

    '별그대' 이후 제 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전지현이 영화 개봉일에 맞춰 2세를 잉태했다는 것은 분명 길조(吉兆)다. 전지현을 감싼 '상서로운 조짐'이 영화 '암살'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그러고보니 영화 '암살'을 다시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배우로서 여성으로서, 거듭남을 거듭하고 있는 전지현이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려나갈지, 그 예상 답안을 '암살'에서 찾아보는 건 어떨까?

  • 취재 = 조광형 기자
    사진 = 정재훈 기자
    장소 제공 = 카페 코나퀸즈 삼청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