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뉴욕타임즈·니혼TV·아사히, 오보사태 후 경영진 사과, 대대적 인사 개편
  • 사장이란, 보도에 대해 최종적인 책임을 지는 자리에 있습니다. 저는 가장 명예로운 선택을 하기로 했습니다. 오늘부로 사의를 표합니다.


    유명 프로듀서 출신인 영국 공영방송 BBC의 조지 엔트위슬(George Entwistle) 사장이 취임 54일 만에 자진 사퇴했다.

    현지시각으로 2012년 11월 10일, 공식 성명을 통해 사퇴 의사를 밝힌 엔트위슬은 "BBC 뉴스나이트(Newsnight)에서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방송을 했다"며 "이같은 보도에 대해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게 명예로운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날 엔트위슬 사장의 사퇴 소식을 보도한 BBC는 "우리는 역사상 가장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저널리즘과 조직 운영에서 중차대한 문제점들이 발견됐다"고 논평했다.

    전날까지만해도 엔트위슬 사장의 퇴진을 예상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엔트위슬이 한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사전에 알리스터 매칼파인(Lord Alistair McAlpine)의 성범죄 의혹을 다룬 보도가 나갈 줄은 몰랐었다"고 밝히면서 비난 여론이 들끓자 엔트위슬는 망설임없이 옷을 벗었다.

    보수당 상원의원인 알리스터 매칼파인은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측근으로도 잘 알려진 인물. 그는 같은해 11월 2일 BBC 뉴스나이트가 스티브 메샴(Steve Messham)이라는 한 남성의 성추행 피해 주장을 여과 없이 방송하면서 도마 위에 올랐다.

    10대 시절을 웨일즈 비른 이스틴(Wales Bryn Estyn)의 한 어린이집에서 보냈어요. 이때 보수당 중진 정치인으로부터 여러 차례 성적 유린을 당했죠.


    방송에선 이름이 나오지 않았지만 누가봐도 당시 보수당 재정책임자였던 매칼파인을 연상케 하는 방송이었다.

    결국 매칼파인이 가해자라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타 언론은 매칼파인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의혹을 부추겼다.

    방송 직후 매칼파인은 "자신은 성폭행을 한 사실이 없다"며 "BBC를 형사 고소하겠다"고 펄쩍 뛰었다.

    매칼파인의 말은 사실이었다. 며칠 뒤 스티브 메샴은 매칼파인의 실제 사진을 본 후 "이 사람은 내가 알고 있는 범인이 아니다. 죄송하다"고 밝혔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얼굴을 혼동하면서 빚어진 대형 오보였다.

    BBC는 방송 직전, 매칼파인에게 사실 여부조차 확인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 남성의 말만 믿고 멀쩡한 정치인의 얼굴에 먹칠을 한 BBC는 곧바로 "해당 뉴스는 오보였다"고 실토한 뒤 정정 보도를 냈다.

    이 사건으로 BBC는 현직 사장이 물러나고, 매칼파인에게 18만 5,000파운드(약 3억 2,000만 원)의 보상금을 건네는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됐다.

    지금껏 공정하고 신뢰있는 보도로 명성을 쌓아왔던 BBC에게는 치명적인 상처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발빠르게 잘못을 인정하고 최고 책임자가 옷을 벗는 강도 높은 후속 조치를 취하면서 사건은 조기 진화됐다.

    국민들은 사장이 직접 나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다시금 BBC로 채널을 돌리기 시작했다. 경영진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결단이, 무너진 신뢰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디딤돌로 작용한 것.

    2003~2004년에도 BBC는 이라크 대량살상무기(WMD) 문제로 크나큰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당시 BBC는 한 익명의 제보자를 통해 "블레어 정부가 이라크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라크가)45분 내에 WMD를 배치할 수 있다'는 내용을 보고서에 포함시키는 정보 조작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블레어 정부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고 양측은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청문회가 열리는 동안, 신분이 노출된 제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정부와 공영방송이 사생결단 '혈투'를 벌인 이 전대미문의 사건에서 마지막으로 미소를 지은 건 블레어 총리였다. 전방위로 진상 조사를 벌인 허튼조사위원회가 BBC의 보도에 대해 "근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

    허튼조사위원회는 "오보가 나가는 것을 막지 못했고, 충분한 반론도 싣지 않았다"며 "BBC의 보도 제작 시스템에 중대한 결함이 있었다"고 밝혔다.

    진상보고서 결과가 나오자 BBC의 개빈 데이비스(Gavin Davis) 이사장은 즉각 사임 의사를 밝혔다. 며칠 뒤 그레그 다이크(Greg Dyke) 사장마저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사장과 사장이 공동 사퇴한 모양새만 보면 블레어 정부의 영락없는 완승이었다.

    그런데 BBC 경영진의 사퇴 이후 여론이 반등하기 시작했다.

    "허튼의 진상보고서가 지나치게 정부를 감싸고 있고, 무엇보다 (이라크 내에서)WMD가 발견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BBC의 기사를 '오보'라고 단정짓는 것은 독자의 알 권리를 억압하는 탄압"이라는 여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

    근거가 미약한 기사를 내보내 신뢰도가 바닥에 떨어질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에서 "나의 목표는 국민의 이익과 방송의 독립성을 지키는 것"이라며 과감히 사표를 내던진 다이크의 결단은 신의 한수였다.

    사실 "BBC의 보도 제작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다"는 허튼조사위원회의 평가는 맞는 지적이었다.

    당시 BBC 편집국은 국방 전문 기자인 앤드루 길리건(Andrew Gilligan)의 취재 내용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방송 제작진에 넘긴 것으로 드러났다. 길리건이 제보자와 인터뷰한 내용에 대해서도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았다.

    보고서의 지적대로 당시 BBC 내부에선 제대로된 게이트 키핑이 이뤄지지 않았다. 일개 기자가 얼마든지 '오보'를 낼 수 있는 상황이 이미 조성돼 있었던 것.

    그럼에도 불구, BBC는 수뇌부의 발빠른 대처로 공영방송의 신뢰도를 회복할 수 있었다. BBC의 잘못을 지적한 허튼보고서가 여러 면에서 석연찮은 점을 안고 있었으나, 깨끗이 결과에 승복하고 물러나는 경영진의 모습에 국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일련의 사태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영국 국민의 67%는 "여전히 BBC를 신뢰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BBC는 초유의 오보 사태로 사장과 이사장이 함께 옷을 벗는 수모를 겪었지만, 진정성 있는 사과 한 번으로 모든 '오명'을 씻어버리는 기사회생의 전기를 마련한 셈이었다.

  • ▲ 2003년에 실린 뉴욕타임즈의 관련 기사.
    ▲ 2003년에 실린 뉴욕타임즈의 관련 기사.



    실수를 발전의 자양분으로 삼는 언론


    '오보(誤報)'는 BBC처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방송사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인터넷의 발달로 언론 매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신문-방송사간 보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경쟁이 과열될수록 실수도 늘어나는 법. 지금도 세계 도처에선 오보를 내고 이를 정정하는 일들이 수없이 반복되고 있다.

    '사실 전달'을 베이스로 하는 언론사가 허위 사실을 전달했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BBC 같은 방송사가 여전히 '공정 언론'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는 이유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마다 경영진이 철저한 자기 반성을 하고 국민 앞에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물론 사고를 치고 머리를 조아리는 일이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BBC는 오보 사태가 빚어질 때마다 편집국장과 사장이 보직 해임되는 인사 조치 외에도 편집국 시스템을 대폭 개혁하는 강도 높은 구조 조정을 단행해 왔다.

    역설적으로 실수가 반복될수록 BBC의 보도 시스템은 발전해 나갔다. 잘못을 반면교사로 삼는 경영진의 지혜가 BBC를 영국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신뢰받는 언론으로 거듭나게 한 밑거름이 된 것.

    BBC 외에도 오랜 기간 독자로부터 신뢰를 얻고 있는 언론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잘못을 과감히 인정하고, 실수를 '발전의 자양분'으로 삼으려는 공통된 자세를 찾아볼 수 있다.

    창립된지 150년이 넘는 전통의 뉴욕타임즈도 이른바 '표절 기사 사건'으로 도마 위에 오른 적이 있다. 제이슨 블레어(Jayson Blair)라는 27살 난 젊은 기자가 수년간 타 신문의 기사를 베끼거나 가상의 인터뷰를 진행해 기사를 써 온 사실이 뒤늦게 발각된 것.

    2003년 5월 11일 뉴욕타임즈는 창사 이래 최초로 회장이자 발행인인 아서 설즈버거(Arthur Sulzberger) 2세가 신문 1면의 장문의 사과문을 게재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일요일판 1면에 장문의 기고문을 올려 "블레어가 지난 4년간 관여한 600여건의 기사 중 36건의 기사에서 중대한 문제점이 발견됐다"며 "독자들과 자신도 모르게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고 밝혔다.

    아서 설즈버거 회장은 사과에만 그치지 않았다. 편집인과 편집국장을 경질한 뒤 새롭게 두 명의 편집국장을 영입하는 인사 개편을 단행했다. 기자들의 직업 윤리를 모니터링하는 별도의 에디터도 만들었다. 독자들의 불만을 수렴해 전담하는 옴부즈맨 제도도 도입했다.

    그리고 편집부국장 앤런 시걸(Allan M. Siegal)과 전 AP통신 회장인 루이스 보카디(Louise D. Boccardi)를 필두로 구성된 20여명의 '시걸위원회'를 조직해 즉각 진상 조사에 나서도록 했다.

    시걸위원회는 수개월간 제이슨 블레어의 과거 행적을 추적해 그가 저지른 모든 잘못을 공개하고, '오보'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전과정을 담은 한편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시걸위원회는 "조사 결과 기자들의 취재 내역을 필터링하는 내부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한 뒤 "게다가 기사의 벨류를 선정하는 기준과, 윤리 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쓴소리를 덧붙였다.

    시걸위원회의 질타는 고스란히 뉴욕타임즈의 정책에 반영됐다. 윤리 교육은 강화됐고, 기사가 출고되는 과정은 한층 더 엄격해졌다. 편집국 시스템이 이전보다 훨씬 투명해졌음은 물론이다.

  • ▲ 기무라 다다카즈(木村伊量) 아사히신문 사장(오른쪽)이 지난해 9월11일 기자회견에서 자사의 오보와 관련해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연합뉴스
    ▲ 기무라 다다카즈(木村伊量) 아사히신문 사장(오른쪽)이 지난해 9월11일 기자회견에서 자사의 오보와 관련해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연합뉴스



    방송사 사장이 TV에 나와 머리 숙여 사과


    오보를 낸 뒤 신문사 수뇌부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예는 일본 언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11월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의 기무라 다다카즈(木村伊量) 사장은 "지난 9월, 2건의 오보 사태를 일으킨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사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건의 오보는 앞서 보도된 '제주도에서 여성들이 위안부로 강제 연행됐다'는 내용의 기사와, 2011년 당시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사고의 책임자에 대한 조사 결과를 기록한 기사를 가리킨다.

    당시 아사히는 "해당 기사들은 검증이 제대로 안 된 기사들이고, 도쿄전력 직원들에 대한 명예를 훼손하는 등 적잖은 물의를 일으켰다"며 "바로 취소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아사히는 이전에도 몇 건의 오보 사태에 대해 사장이 '자진 사퇴'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1989년 4월, 오키나와 이리오모테지마(沖縄・西表島) 해상에서 촬영한 산호초 사진이 조작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당시 히토쓰야나기 토이치로(一柳東一郎)사장이 사표를 냈고, 2005년엔 나가노(長野)총국 기자가 다나카 야스오(田中康夫) 나가노현(長野県)지사에 관한 허위 기사를 쓴 사실이 공개되자 역시 담당 기자와 하코시마 신이치(箱島信一) 사장이 물러나는 인사 조치가 이뤄졌다.

    일본 니혼TV는 일련의 오보 사건에 대해 간부와 제작진이 방송에 출연해 사과 방송을 하는 이례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2009년 8월 23일 오후 6시에 방송된 니혼TV의 '진상보도, 현장기자!'에는 현직 간부들이 줄줄이 나와 "시청자 여러분께 깊이 사죄드린다"며 90도로 절을 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또 같은날 자정 무렵엔 '오보 검증 특별 방송'을 편성, "다시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경영진의 다짐을 재차 내보냈다.

    문제가 된 프로그램은 2008년 11월 방송된 '진상보도, 현장기자!'의 건설사 비리 의혹 편이었다. 당시 '진상보도, 현장기자!' 제작진은 모 건설사의 전 임원의 주장을 인용해 기후(岐阜) 현이 공사비를 과대하게 부풀려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주장은 사실과 달랐다. 제보자의 주장에 신빙성이 거의 없었던 것.

    논란이 커지자 구보 신타로(久保伸太郞) 사장은 2009년 3월 사직서를 냈다. 이와 함께 보도국장과 담당 프로듀서도 경질되거나 징계를 당하는 인사 조치가 이뤄졌다.

    구보 신타로 전 사장은 수개월뒤 자체 방송에 나와 "취재 과정에서 제대로 된 필터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시청자와 기후 현에 깊은 사과를 드린다"고 밝혔다.

    담당 데스크는 "취재 과정에서 사실 여부를 확인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하지 않았고 간부들 역시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며 "이번 오보가 게이트 키핑 부실 때문"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 ▲ 기무라 다다카즈(木村伊量) 아사히신문 사장(오른쪽)이 지난해 9월11일 기자회견에서 자사의 오보와 관련해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연합뉴스



    실수한 뒤에도 고개 숙일 줄 모르는 국내 언론


    살펴본 바와 같이 해외 언론의 경우, 대형 오보 사건이 발생하면 담당자는 물론, 최고 윗선까지 동반 책임을 지는 일이 허다하다. 잘못된 보도 하나가 사회적으로 크나큰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공정성과 신뢰도가 추락한 언론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현지 언론 종사자들은 이같은 인책(引責) 사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그러나 국내 언론인들의 인식은 좀 다른 듯 하다. 구보 신타로 전 니혼TV 사장의 말을 빌어 "취재 과정에서 사실 여부를 확인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하지 않았고, 간부들 역시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했음"에도 불구, 그 누구 하나 책임지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2008년 광우병 사태를 촉발시킨 MBC PD수첩은 아직까지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실질적으로 사실과 다른 선정적인 방송을 내보내 국가 전역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장본인임에도 불구, 자신들의 방송은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차원이었다며 구태의연한 변명만 늘어 놓고 있다.

    공영방송 KBS는 어떤가? KBS 뉴스는 전쟁 발발 65주년을 하루 앞둔 6월 24일, "이승만 정부가 일본에 망명을 요청한 것은 사실이었다"는 황당무계한 기사를 내보내놓고도 아직까지 '사과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이 기사는 거론할 가치도 없는 허위 기사다.

    KBS는 "당시 다나카 타쓰오 야마구치현 지사가 한국전쟁 발생 이틀 뒤인 6월 27일, 외무성을 통해 '한국 정부가 6만명의 망명정권을 야마구치현에 세우고 싶어한다'는 전보를 받았다"고 주장했으나, 정작 일본 야마구치 현청 원문 기록에는 "6월 27일에 외무성 전보를 받았다"는 대목이 빠져 있었다.

    KBS 제작진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있지도 않은 '외무성(1950.6.27)'이라는 날짜를 방송 화면에 삽입하는 조작을 저지른 것.

    원문을 살펴보면 외무성 전보를 받은 시점은 북한군이 부산을 위협할 당시인 1950년 8~9월을 가리키고 있었다.

    … 釜山の北のね,洛東江の川の所まで北朝鮮軍 ママが来てね。それで,このまま行ったならば,釜山は第二のダンケルクになると。そういった時にどうするかという問題ですが,外務省の方から電報が入って ね,韓国政府は六万人の亡命政権を山口県に作るということを希望しとると。


    하지만 KBS는 해당 원문에서 "북한군이 부산의 북쪽, 낙동강까지 진격해 들어왔다"는 대목을 삭제한 뒤 "한국 정부가 6만 명의 망명정권을 야마구치 현에 만들기를 바라고 있다고 한다"는 번역 문구만 방송에 내보냈다.

    다나카 타쓰오 지사가 말했다는 전보도 실제로 존재했던 것인지, 한국 정부가 당시 망명 의사를 공식적으로 타진했는지조차 확실치 않은 상황.

    다나카 타쓰오 지사의 구술 기록은 일본 외무성은 물론, 한국 외교부와 미국 국무부 문서에도 존재하지 않는 미확인 문건에 불과하다. 한미일 최고급 정부 문서에도 없는 내용을 KBS는 마치 사실처럼 '단독'이라는 타이틀까지 붙여 내보냈다.

    이처럼 전대미문의 조작 방송이 전파를 타자, 온라인에선 KBS를 성토하는 글들이 빗발쳤다. 다수의 시민단체들은 KBS에 대해 '책임있는 사과'와 '정확한 해명'을 요구하는 피켓 시위로 강력한 항의 의사를 전달했다.

    이들은 "보도 시점과 내용으로 볼 때 해당 기사는 대한민국의 건국과 산업화과정을 왜곡·폄훼하는 특정세력의 입장이 반영된 엉터리 기사"라며 "이번 오보 사태를 단순한 실수로 보기 힘들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침묵을 지키던 KBS는 지난 3일 '정정 보도'를 통해 한발짝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KBS는 "전쟁 발발 이틀만이라고 할 근거인 6월 27일이라는 날짜는 문서 내용에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뉴스내용에 오류가 있음을 인정했다.

    또 "지난달 24일 보도한 이승만 정부의 일본 망명 정부 요청설과 관련해 이승만 대통령 기념사업회 측은 '정부 공식기록이 아니'라며 '보도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고 전했다.

    겉으로는 유감 표시와 정정, 반론 보도의 형식을 띄고 있었으나 진정한 의미의 사과 방송은 아니었다. 또한 '날짜 표기 문제'만 잘못으로 인정, 여전히 기사의 전반적인 내용은 사실에 부합하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이같은 모습에 비쳐볼 때 책임자급의 사과나, 인책(引責) 인사 조치는 요원한 것으로 보인다. 오보의 수위만 놓고 보면, 앞서 살펴 본 해외 언론의 케이스보다 더욱 위중한 수준이었지만, 사후 대처 모습은 빈약하기 그지 없다.

    '진정성'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형식 뿐인 정정 보도 한 꼭지가 고작이었다. 지난 8일 열린 임시이사회에서도 조대현 KBS 사장은 오보 사태를 빚은 것에 대해 일언반구의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오로지 이인호 이사장만 해당 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했을 뿐, 여타 이사들은 "방송·보도의 독립성을 침해하면 안된다"며 논의 자체를 거부하는 비상식적인 모습을 보였다.

  • ▲ 황근 선문대 언론광고학부 교수(우측)   ⓒ 뉴데일리
    ▲ 황근 선문대 언론광고학부 교수(우측) ⓒ 뉴데일리



    사회주의가 지향하는 목적에 부합되면 진리?


    이와 관련, 황근 선문대 언론광고학부 교수는 "KBS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논리가 항상 진리라는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좌편향 보도나 프로그램들은 항상 진리일까요? 좌파들은 그렇다고 합니다. 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언론관'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죠.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란 좌파 문학이나 평론 등에서 시작된 겁니다.

    사회주의가 지향하는 목적에 부합되면 그것은 곧 인민들이 알아야 될 진리라는 것이죠. 이에 입각한 언론관은 사회주의가 지향하는 목적, 즉 '궁극적으로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붕괴'에 부합한다면 사람들에게 알릴 의무가 있다는 논리입니다.


    황근 교수는 "그런 의미에서 이런 류의 언론 기자들은 '문창극 후보의 친일강연'이나 '한국전쟁의 미국-남한 책임설' '이승만 망명설' 등은 사실도 아니고 사실임을 알 수 있는 명백한 근거도 없지만 보도해도 된다는 논리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 보도에서 나타난 것처럼 좌편향 된 기자들은 내용을 왜곡하고 구미에 맞는 것만 취사선택해서 보도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이른바 '악마의 편집'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반론이나 상반된 시각에 대한 공정한 보도 역시 필요하지 않다고 보는 겁니다.


    황근 교수는 "이들은 좌파 이념에 충실한 보도는 '치외법권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이는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목적이 수단을 전유'하는 반인륜적 범죄행위나 진배없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가급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보도해야 하고 동일한 사건이나 대상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균형 있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자유주의적 객관보도 원칙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겁니다.


    황근 교수는 "현재 KBS는 이번 오보 사태를 개인의 실수 차원으로 덮어버리려는 모습을 취하고 있는데 이건 시스템 차원에서 만들어진 조작"이라면서 "만약 그들의 논리대로 개인적 차원의 실수라면 지금까지 이렇게 무수히 많은 오보가 나올 수가 없다"고 말했다.

    권위 있는 신문사들은 최종 보도가 나올 때까지 필터링을 거치고 점검을 수차례 하는 과정을 거치는 데요. 이번 오보 사건을 살펴보면 기본적인 게이트 키핑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노조와 공생 관계에 있는 데스크급 인사들이 일선 기자들의 행태를 수수방관하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담스러운 일에는 가급적 관여하지 않겠다는 방관자적 자세를 취하고 있는 거죠.


    황근 교수는 "이번 사태에 대해 노조는 절대로 사과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사과란 모르고 저질렀을 때 하는 것이지, 지금처럼 의도적으로 계속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이 제대로 된 사과를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지금 제2노조는 해당 기사에 반론을 실은 것 같고 난리를 치잖아요? 이는 여전히 KBS 경영진이 무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방증입니다. 이같은 공생 관계를 깨지 못한다면 우리나라의 '공영 방송'은 말 뿐인 공영일 겁니다.


    황근 교수는 "BBC나 해외의 유수한 언론들은 오보가 나면 사장부터 다 책임을 진다"면서 "오보에 대해 사과를 안하면 더 이상 언론사가 아니"라고 일침을 가했다.

    황근 교수는 "BBC는 이번에 1,000명 이상을 감원하겠다는 구조 조정 계획을 밝혔는데 KBS처럼 노사가 공생 관계에 있는 구조라면 절대로 이뤄질 수 없는 인사 조치"라며 "나간 사람도 다시 복직하는 마당에 우리나라에선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구조 속에선 한쪽으로 편향된 기사가 자꾸 나올 수밖에 없어요. 공영방송의 방만한 경영 문제도 계속 도마 위에 오르내리겠죠. 더욱 심각한 것은 주객이 바뀌었다는 점인데요. 노조가 주인이 아니라, 시청료를 내는 저희들이 KBS의 주인이죠. 공영방송은 특정 계층이 아닌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방송이 돼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