옅은 계파색으로 인한 초조함, 불안한 존재감 등 반영된 듯
  • 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왼쪽)이 2일,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오른쪽)에 3번째 사퇴를 촉구했다. 그의 무리수를 놓고 정치권의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왼쪽)이 2일,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오른쪽)에 3번째 사퇴를 촉구했다. 그의 무리수를 놓고 정치권의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김태호 최고위원의 앞뒤 재지 않은 강경 발언으로 유승민 사퇴를 둘러싼 새누리당 내홍이 더욱 깊어졌다.

    2일 새누리당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보인 김태호 최고위원이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무리수'는 당청 갈등을 해결할 접점을 더욱 찾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유승민 원내대표의 자진 사퇴 예상이 나오면서 잠시 잦아들던 당내 계파 갈등도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2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는 친박계도 비박계도 당청 갈등이 더이상 확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기류가 흘렀다. 유승민 사퇴 압박 수위를 높이던 친박계 이장우 의원도 전날 라디오 방송 출연에서 "6일까지는 기다려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태호 최고위원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마음이 급했다. 김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유승민 원 내대표에게 마지막 고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씀드린다"며 포문을 열었다. 회의장 주변에서는 "진상"이라는 조소와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김 최고위원은 국회법 표결이 예정된 3일 후 국회 본회의까지 참을 수 없다는 듯 "유 원내대표 스스로 결단을 내리고 행동으로 보여줄 때는 바로 지금"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자 원유철 정책위의장이 김태호 최고위원을 제지하고 나섰다. 원유철 정책위의장은 그동안 유 원내대표 거취에 대해 공식적인 자리에서 발언을 한 적이 없었다.

    원 정책위의장은 "유승민 원내대표 거취를 갖고 긴급최고위를 한지 사흘밖에 지나지 않았다"며 "일주일을 못 기다리냐"고 했다. 그는 또 "계속해서 그만두라고 하는 것이 당을 위해서 무슨 도움이 되고 유승민 대표가 합리적 결정을 하는데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도 했다.

    이 말에 발끈한 김태호 최고위원은 "이거 잘못 전달되면 안되겠다. 다시 말씀드리겠다"며 마이크를 다시 잡았고, 결국 참고 있던 김무성 대표가 "그만 하자"며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일주일간 쌓였던 서로간의 감정이 폭발한 것이다. 김태호 최고위원과 각별한 친분이 있는 김학용 대표 비서실장의 욕설 섞인 언행까지 터지면서 회의장 분위기를 극도로 어수선해졌다.

    유승민 사퇴론을 펼치는 친박계 의원들마저 "너무 했다"는 우려를 쏟아냈지만, 김태호 최고위원은 오히려 언성을 높이며 상황을 악화시켰다.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왼쪽)가 회의장을 박차고 일어섰다. 오른쪽으로 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의 모습이 보인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왼쪽)가 회의장을 박차고 일어섰다. 오른쪽으로 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의 모습이 보인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부족한 정무감각 과거에도 '할말 안할말' 때문에

    이날 김태호 최고위원의 '기행'을 놓고, 당내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친박계의 좌장으로 불리는 서청원 의원도 가만히 있는데, 최근에도 굳이 따지자면 비박계로 분류되던 김태호 최고위원이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

    오히려 이날 사태로 유승민 사퇴론이 더 힘을 잃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또 다른 새누리당 관계자는 "김태호 최고위원의 말은 분명 사퇴를 종용했는데, 결과는 오히려 유승민 의원이 사퇴를 안해도 되는 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김태호 최고위원은 과거에도 앞뒤 가리지 않는 언사로 '정무적 감각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자주 받아왔다. 전반적으로 말이 앞서 멀리보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이명박 대통령 재임 시절 총리후보자로 지명될 때만 하더라도 김태호 최고위원은 '정무적 감각이 뛰어난 젊은 총리'라는 슬로건을 가진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정작 김태호 총리 후보는 가벼운 언사로 첫 중앙정치무대 진출에 실패한 아픔이 있다.

    김태호 최고위원은 총리 후보 당시 제기된 박연차 게이트 연루설에 대해 "(박연차 회장을)2007년에 처음 알았다"는 말로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그 발언 직후 2006년 가을에 함께 골프를 쳤던 사진이 공개됐고, 여론은 급속히 악화됐다. 당시 김태호 최고위원을 총리 후보로 밀었던 MB정부 청와대에서는 "입단속 가능한 후임 총리 후보를 찾아라"는 말까지 나왔다.

     

  • 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왼쪽)이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자신의 이익만을 좇아 발언하는 기회주의적 행태라는 비판이 나온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왼쪽)이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자신의 이익만을 좇아 발언하는 기회주의적 행태라는 비판이 나온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닥치고 비판, 기회주의적 갈 지(之)자 행보에 주변도 '절레절레'

    김태호 최고위원이 유승민 사퇴를 압박하는 청와대를 향해 '과잉충성'을 한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계파색이 분명치 않은 김태호 최고위원이 여기에서 오는 절박함과 초조함이 '무리수'로 표출됐다는 분석이다. 

    김태호 최고위원은 최근까지도 굳이 따지자면 비박계로, 계파 색이 옅은 의원으로 자주 분류됐다. MB정부 시절에는 친이계로 분류됐지만, 박근혜 정권 들어서면서 사안에 따라 급격히 스탠스를 옮기는 갈 지(之)자 행보를 보여왔다.

    정치적 진영은 고려치 않은 채 비판적 목소리로 자신의 입지를 다지겠다는 의도도 내포돼 있어 보인다. 김태호 최고위원의 지역구는 새누리당이 유리한 영남인 동시에 노무현 대통령의 '성지'인 경남 김해을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기회주의적"이라는 수위 높은 비판도 나온다. 여당 고위 관계자는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고 판단하면 무조건 먼저 말을 쏟아낸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치권 관계자는 "누군가 이슈가 되면 그 사람을 저격하고 비판하는 말로써 정치를 하려고 하면 결국 자기 자신을 공격하게 된다"며 "확고한 잣대와 철학이 있다면 이렇게 스탠스를 바꿀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결국 이렇게 되면 자기 주위에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며 "이렇게 당청관계를 극단으로 벌려놓았는데 이제 누가 나서서 두둔해주겠느냐"며 씁쓸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