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평로] KBS가 이런 報道 하라고 시청료 내야 하나

    이한우 /조선일보 문화부장 

  • ▲ 이한우 문화부장
    ▲ 이한우 문화부장
    6·25전쟁 65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6월 24일 KBS 9시 뉴스는
    일본 특파원이 최초로 확인했다며
    '이승만 정부, 한국전쟁 발발 직후 일본 망명 타진'이라는
    생뚱맞은 뉴스를 내보냈다.
    그 근거로 삼은 것은 일본 야마구치현 도서관에서 찾았다는 문서다.
    일본 외무성이 한국 정부가 6만명 규모의 망명 정권을 야마구치현에
    세우고 싶다고 알려왔다며 현(縣)지사에게 가능한지를 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물쩍 미 군정에도 이와 비슷한 문서가 있다는 식으로 덧붙였다. 이게 전부다.

    그러나 이런 내용은 일본의 극우 성향 산케이신문이 1996년 4월 14일자에 이미 똑같이 보도한 바 있고 국내 언론들도 다음 날 짤막하게 인용 보도했다.
    그 문서란 것도 당시 현지사를 지낸 다나카의 회고담뿐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지난 20년 사이에 한국이나 일본·미국의 공식문서에서 확인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국내외에 이승만에 대해 비판적인 학자가 얼마나 많은가? 적어도 이 점을 점검했어야 한다.

    그런데 '듣보잡' 매체도 아닌 KBS가 20년이 지나 아무런 추가 취재나 검증도 없이 이렇게 보도했다. "이승만 정부가 실제로 당시 일본 정부에 6만명 망명 의사를 타진했고 일본이 한국인 피란 캠프 계획을 세웠다는 내용의 일본 측 문서를 KBS 취재진이 처음으로 확인했습니다."

    최악의 경우 이승만 정부와 별개로 미국 측에서 전시(戰時) 대비책의 하나로 그런 요청을 했을지 모른다. 또 그런 문서가 있었다 한들 그것은 이승만 정부와는 무관한 것이다.

    '미 군정'은 또 뭔가? 당시 이미 대한민국에는 미 군정이 없어졌고,
    일본에는 맥아더가 이끄는 극동사령부가 있었을 뿐이다.
    이승만과 맥아더의 친밀했던 관계를 볼 때 애당초 그런 일 자체가 일어날 수 없다.

    KBS가 '아니면 말고' 식으로 내던진 이 '기사'는 몇몇 매체가 그대로 인용 보도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자신의 트위터에 '친일 정권이니 일본 도망쯤은 당연지사'라는 글을 남겼다.
    이런 뜬금없는 보도 때문에 지금 인터넷에선 '이승만'을 치면 '이승만 일본 망명'이 가장 먼저
    뜬다. 또 하나의 허구가 새로운 소문으로 보태지고 있는 것이다.

    왜 지금 사람들이 '연평해전'에 미안해하고 감사하는지 KBS 관계자들은 돌이켜봐야 할 것이다. 2002년 6월 29일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몰랐기에 미안해하고 그분들의 희생에 뒤늦게라도 감사하는 것이다.
    KBS가 '일본 망명을 타진했다'고 보도한 바로 그 대통령이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월 18일 우리 연안 수역 보호를 목적으로 선언한 '평화선'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는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KBS는 알기나 하는가?
    그것을 넘으면 평화를 깨는 것이라는 전략적 사고에 따라 지은 '평화선'이라는 이름이 싫어
    일본인들은 한사코 그것을 '이승만 라인'이라고 불렀다.
    이승만 개인에게 국한지으려는 발버둥이었다.
    우리로선 이승만에게 미안해하고 감사해야 할 일이다.

    KBS의 황당한 보도가 있기 이틀 전인 6월 22일자 일본 아사히신문은
    '한국인 하면 떠오르는 인물'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승만 대통령은 배우 최지우에 이어 6위를 차지했다. 동방신기도 제쳤고, 박정희 대통령도 제쳤다.
    60여년 전 이승만의 반일(反日) 정책이 그만큼 일본인들 뇌리에 강하게 새겨진 때문이다.
    [조선일보 칼럼 <태평로>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