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이분법 논리, 계급론 연상케 하는 교묘한 논법
  • 최근 조선일보에 실린 <오만한 少數, 한 맺힌 多數>라는 칼럼을 유심히 지켜봤다. 이 글을 쓴 송희영 주필은 이분법적 시각에서 우리 사회를 [잘나가는 소수(少數)]와 [한 맺힌 다수(多數)]로 양분한 뒤, 한 쪽만을 향해 연거푸 쓴소리를 쏟아냈다.

    "문제를 제기하는 쪽은 힘없고 돈 없는 다수고, 방어하는 쪽은 권력, 돈, 명예 중 하나나 둘을 가졌거나 셋 다 가진 소수인 경우가 많다.
    누군가가 쓰려뜨려야 할 적(敵)으로 지목하면 사태는 금방 튄다.
    그러면 싸움에는 별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까지 뛰어들어 큰 소동이 벌어지는 순서다."

    송희영 주필의 칼럼을 곰곰히 살펴보면, 우리가 학창시절 국어 시간에 배웠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사실 [잘나가는 소수]와 [한 맺힌 다수]를 규정할 근거가 명확치 않다. 하지만 송희영 주필은 숫자 1과 10 사이에는 8개의 숫자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흑백논리에 입각해 1(一)이 아니면 10(十)이라는 식의 주장을 펴고 있었다. 

    사회적 집단 내에는 수많은 종속변수와 독립변수가 상존하고 있다. 세상을 해석하는 관점(perspective)은 다양하다. 관점에는 가치판단(evaluation)과 인생전략(life-strategy)이 응축돼 있다. 누가 오만한 소수인지, 한 맺힌 다수인지 구분할 길이 없다.

    가장 작은 사회라는 가정에서조차 주도권을 둘러싼 쟁탈전이 벌어진다.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학생이 탈선(脫線)한 뒤, 다른 학생을 왕따시키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한 맺힌 계층'이라는 을(乙) 사이에서도 다양한 갑질이 벌어지곤 한다. 대기업을 다니며 목에 잔뜩 힘이 들어간 직장인이 퇴직 후 가게를 차려 다른 누군가에게 굽신거리는 삶은 어떠한가?

    경계가 모호하다. 누군가는 [오만한 소수]이자 [한 맺힌 다수]가 될 수 있다는 점 또한 간과했다. 송희영 주필의 칼럼을 읽을수록 이건 아니다 싶다.

    또한 송 주필은 [잘나가는 소수(少數)]의 예로 표절 논란을 일으킨 신경숙 작가와 관련 출판사, 변호사 시장에서 6~7할을 챙겨가는 대형 법률회사(로펌·law firm),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을 꼽았다.

    [삼성 때리기]에 여념없는 회사의 논조를 리드하고 있는 탓인지, 삼성서울병원을 또 다시 도마에 올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메르스 의료진 불신(不信) 풍조를 조장한 박원순 서울시장을 치켜세웠다.

    "박원순 시장이 시민운동가 출신답게 공격 대상을 콕 집어 삼성을 지목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대한민국 정치·사회·경제 분야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스스로 [1등신문]임을 자부하고 있는 조선일보의 주필(主筆)이 다른 분야의 1등을 맹목적으로 비난하고,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막강한 권력을 누리고 있는 박원순 시장을 옹호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이쯤되면 [오만한 소수(少數)]가 삼성서울병원인지, 아니면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삼성그룹을 연일 두들겨 패고 있는 조선일보인지 판단하기가 난해하다.

    조선일보가 언론사에게 있어 최대 광고주라는 삼성을 겨냥한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송희영 주필의 칼럼이 대기업을 매도하면서 계급투쟁론(階級鬪爭論)에 불을 지핀 케이스라는 점이다. 송 주필이 1968년 파리(Paris) 시위를 계기로 폭출한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에 아직까지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앞선다. 사회의 주류 가치와 제도를 비틀고 부수는 것을 해체(deconstruction)라 부르며 찬양하던 아득한 과거의 덫이다. 

     

  • 2008년 리먼 인수를 주장하던 송희영 주필의 칼럼. ⓒ조선일보 인터넷판 캡처
    ▲ 2008년 리먼 인수를 주장하던 송희영 주필의 칼럼. ⓒ조선일보 인터넷판 캡처

      


    지난 2008년 8월 8일. 송희영 주필이 내놓은 칼럼을 잊을 수가 없다.
    당시 송희영 주필은 조선일보에서 논설실장을 맡고 있었다.

     

    [누가 월 스트리트를 두려워하랴] (주요 내용 中)

    100년래 최악의 금융 지옥이라는 월 스트리트부터 한번 둘러보자. 베어 스턴스라는 대형 증권회사가 맥없이 무너진 후 메릴린치증권, 리만 브러더스를 비롯, 중소형 은행과 증권회사, 보험회사의 몸값이 뚝 떨어졌다.

    이 중에는 전 세계 영업망을 갖추고 고급 인재를 거느린 브랜드이지만 떨이 상품으로 전락한 곳도 있다. 외환은행 사는 값으로 월 스트리트의 대형 증권사를 살 수 있을 지경이다. 잘 고르면 몇 년 후 엄청난 수익을 거둘 만한 물건들이다.


    (중략)


    "가다 보면 국제 사기꾼에게 속아 수천억원을 날리는 바보도 나올 것이고, 잘 투자했다가도 시장이 나빠져 깡통 차는 사례도 발생할 것이다. 이런 희생은 피할 수 없을 것이고, 수업료를 치르는 셈 쳐야 한다."

    "한국인들 머릿속에는 '빼앗기고, 당하고, 먹혔다'는 피해자 의식이 깊게 자리잡고 있다. 이런 피해자 의식이 반미(反美)감정을 부추기고, 반(反)세계화 물결을 조장하고 있다."

    "몇몇 은행과 부동산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수천억, 수조원의 매각 차익을 '먹튀'한 사례만 유독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한국투자공사가 메릴린치에 20억 달러를 투자했다 손해 본 후 슬슬 발을 빼고 있는 현실도 "역시 당할 수밖에…"라는 패배의식을 더 깊게 하고 있다. 메릴린치에 함께 투자했던 싱가포르는 한 번 더 베팅해 1대 주주로 지분을 늘렸건만."

    "'만날 당한다'는 열등감을 극복하려면 우리도 해외 투자에서 성공 샘플을 하나 둘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정부가 외국 금융회사 M&A(인수합병)에 일일이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자동차 수출해 달러를 벌어오는 회사에는 온갖 혜택을 주면서도, 돈을 투자해 달러를 벌어오는 금융회사에는 시시콜콜 간섭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산업은행의 리먼브러더스(Lehman Brothers) 인수를 강력 주장했던 송희영 주필이다. 곱씹어보면 무시무시한 얘기들이다.
     
    "배(이득)보다 배꼽(손실)이 더 클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빗발치던 상황이다. 리먼을 섣불리 인수했다가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실 덩어리를 받아들이는 것과 다름없다는 의견이 당시 금융권에서는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송희영 주필은 당당히 외쳤다.

    "누가 월 스트리트를 두려워하랴."

    이 칼럼이 지상에 등장한지 한 달여 만에 리먼브러더스는 파산(破産)했다. 그리고 금융위기의 먹구름이 전세계를 뒤덮었다.

    <오만한 少數, 한 맺힌 多數> 칼럼에서 송희영 주필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칼럼의 가장 마지막 대목이다.

    "우리 사회에서 진영 간 대충돌이 일어나면 피해의식에 찌든 사람들은 더 잃을 게 없다.
    태풍에 뿌리가 뽑히는 것은 거목(巨木)이지 잡초가 아니다.
    '1등들'은 이걸 알아야 한다."

    양극화라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대해선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칼럼의 행간을 살펴보면 특정 기업을 비난하기 위해 우리 사회의 진영 간 갈등을 이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조선일보가 최근 메르스 사태를 놓고 선동식 여론몰이를 하고 있는 점으로 미뤄볼 때, [1등들]의 하나인 조선일보가 무슨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지 먼저 의심해 볼 수밖에 없다.

    송희영 주필은 리먼 사태를 둘러싼 논란을 벌써 잊은 것일까?

    자신이 쓴 칼럼에 달려 있는 베스트 댓글을 읽어보지 않은 것인지 갸우뚱하게 된다.

    "조선일보도 그런 신문(오만한 少數) 중에 하나지요... 요즘, 진정 나라를 걱정하는지 걱정입니다."

          - 아이디: (innovat****)

     

    "조선일보 또한 1등군에 속함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거늘, 과연 칼럼 내용처럼 겸허히 자신을 돌아보며 자성의 기회를 갖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 아이디: (jm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