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지역 독립운동에 앞장선 헌신적 삶""1개 중대로 1개 연대 방어한 희생정신"
  • 7월의 독립운동가와 6.25전쟁 영웅으로 선정된 송헌주 선생(왼쪽)과 김교수 육군 대위(오른쪽) 모습. ⓒ보훈처
    ▲ 7월의 독립운동가와 6.25전쟁 영웅으로 선정된 송헌주 선생(왼쪽)과 김교수 육군 대위(오른쪽) 모습. ⓒ보훈처

     

    국가보훈처는 2015년 '7월의 독립운동가'와 '7월의 6.25전쟁 영웅'으로 송헌주 선생과 김교수 육군 대위를 각각 선정했다.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송헌주 선생은, 하와이에 거주하며 하와이 한인들로부터 독립금 3만5,000달러를 모금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활동 등에 사용하도록 직·간접적으로 도운 공로다.

    송헌주 선생은 1937년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돼, 대한인국민회 총회관의 건축위원장직을 맡아 LA에서 낙성식을 치렀으며, 1939년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장에 선임돼 미주 한인사회를 대한인국민회 중심으로 통합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후 미주 한인 독립운동단체의 지도자로 활약한 송 선생은, 1965년 85세 나이로 미주지역 독립운동과 단체 통합에 헌신한 삶을 마감했고, 우리 정부는 송 선생의 공로를 기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또한 김교수 육군 대위는 1953년 7월 강원도 김화의 교암산지구 전투에서 1개 중대병력을 이끌고 중공군 연대병력과 맞서 싸우다 전사한 공로를 인정받아, 7월 6.25전쟁 영웅으로 선정됐다.

    김 대위가 전사한 강원도 김화의 교암산지구 전투는 1953년 7월 휴전조인을 앞둔 상황에서 중공군이 최후 공세를 벌인 이른바 '7·13 대규모 공세' 중 하나다.

    김 대위와 제6중대는 교암산의 전투 전초진지인 '가'고지전투에서 약 3시간 동안에 8만 7,000발의 포격을 받으면서도, 적 1개 연대를 상대로 8시간이나 진지를 사수했고, 더불어 적 1,200명을 사살했다.

    이에 정부는 1개 중대의 병력으로 일진일퇴의 혈전을 벌이다 전사한 김 대위의 희생정신을 높이 평가해, 태극무공훈장을 추서하고 전 군의 귀감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