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 "애국용사 홀대 있을 수 없는 일, 관련법 처리하겠다"
  •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 당시 교전 중인 남북한 해군 함정ⓒ연합뉴스
    ▲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 당시 교전 중인 남북한 해군 함정ⓒ연합뉴스


    이른바 '연평해전 보상법'의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제2연평해전' 13주년을 맞이해 이 법안을 조속히 처리하겠다고 강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29일 오전 평택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
    국가를 위해 생명을 바친 호국영웅, 애국 용사들이 소외되고 홀대받는 일이 절대 없도록 입법적, 제도적 지원이 정착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원유철 정책위의장도 "현재 국회에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이 대표발의한 특별법이 계류 중에 있다"며 "이 법안 등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참전용사와 가족들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종훈 원내대변인도 이날 서면브리핑을 통해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여섯 용사들의 유족들이 합당한 예우를 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특별법 처리에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제라도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의 명예를 높이고 그들에게 합당한 예우를 해주기 위해
    국회에 계류 중인 관련 특별법을 처리하겠다는 뜻을 여당이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다. 

    앞서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은 이달 초 제2연평해전 전사자의 명예를
     선양(宣揚)하고 유가족에게 합당한 보상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제2연평해전 전투수행자에 대한 명예선양 및 보상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제2연평해전이 발생한 2002년, 당시 김대중 정부가 법적 근거 미비를 이유로 전사(戰死)와 순직(戰死)을 구분하지 않고 단순히 '공무 중 사망'으로 처리, 전사자와 유가족에 대한 보·배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무성 대표는 이날 평택 현장 최고위원회 이후
해군 2함대 사령부로 이동해 전사자의 넋을 기리고 유족들을 위로한 자리에서도 이런 문제점을 거듭 제기했다. 

김 대표는 기념식을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제2연평해전 희생자들이) 전사
(戰死) 처리되지 않고 순직(殉職)처리된 것은 우리가 바로 잡아야 할 숙제"라면서 "모두 해결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 고(故) 한상국 중사의 부인 김한나 씨(오른쪽 세번째)가 제2연평해전 13주년인 29일 오전 경기 평택시 해군제2함대사령부 동항 부두에서 전사자들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 명명된 '한상국함'PKG(유도탄 고속함)에서 해군장병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뉴데일리 김현중 기자
    ▲ 고(故) 한상국 중사의 부인 김한나 씨(오른쪽 세번째)가 제2연평해전 13주년인 29일 오전 경기 평택시 해군제2함대사령부 동항 부두에서 전사자들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 명명된 '한상국함'PKG(유도탄 고속함)에서 해군장병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뉴데일리 김현중 기자

    최근 영화 '연평해전' 덕분으로 늦게나마 국민적 여론과 정치권의 관심이 높아지자 꽁꽁 얼어붙었던 유가족의 마음도 다소 녹은 듯 했다. 

    당시 김대중 정부의 홀대에 분노하며 한국을 떠났던 고(故) 한상국 중사의 부인 김한나 씨는 이날 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며 국민적 관심에 감사를 표했다.

    한상국 중사는 연평해전 당시 심장이 멈추는 마지막 순간까지 북한 경비정과 전투를 벌이다 참수리호와 함께 바다에 가라앉은뒤 사건 41일만에 시신으로 발견됐다. 공교롭게도 정식 진급을 불과 이틀 앞두고 전투가 발생하면서 한 중사는 '실종자'로 처리돼 진급이 취소됐다. 

    2002년 9월 국가에 대한 분노와 원망을 안고 캐나다로 떠났던 김한나 씨는 이날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해군 용사들의 이름으로 명명된 PKG(고속정) 한상국함에 올라 "당시 정부는 목숨을 바쳐 국가를 지킨 분들에 대한 예우가 너무나 소홀했다"며 "당시 이 나라를 떠나고 싶어 언니가 살던 캐나다로 출국했고, 3년 만에 완전히 돌아왔다"고 토로했다.

    김한나 씨는 "당시 
    정부가 우리 군이 잘못했다는 식으로,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친 분들을 폄하했고, 우발적인 사고에 우리가 패했다는 식으로 말을 했는데, 그게 바로 그 당시 정부의 가장 큰 잘못"이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 당시 국민들이 연평해전에 대해 정확히 알아주지도, 기억하지도 않아 저의 마음이 매우 슬펐고 억울했었다"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이어 "그러나 지금은 많은 국민들이 영화 '연평해전'에 후원해주셔서 영화로 만들어질 만큼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며 "이런 국민들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대한민국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고 미소를 지었다. 

    고(故) 윤영하 소령의 부친 윤두호 씨는 "최근 영화 개봉 등으로 제2연평해전이 재조명돼고 있다"며 
    "늦었지만 고맙게 생각한다.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그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기억해야 한다"고 밝혔다.

  • 이날 제2연평해전 13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등 전사자 유가족을은 당시 참수리 357정에 탑승했던 영웅들의 흉상을 어루만지며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기도 했다.  

    김무성 대표는 이날 기념식에서 남경필 경기지사, 유승민 원내대표, 국회 국방위원장인 새누리당 황진하 의원 등 당 소속 의원들과 함께 헌화를 한 후 북방한계선(NLL) 수호 결의문을 제창하며 국토 수호의 의지를 다졌다.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 등이 29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평택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뉴데일리 김현중 기자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 등이 29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평택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뉴데일리 김현중 기자

    김 대표는 앞서 열린 회의에서 "많은 국민이 2002년 6월을 대한민국 최초로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감동적인 달로 기억하고 있겠지만, 그러나 당시 국가안보의 최전선인 NLL을 지키다가 쓰러져간 또 다른 태극전사들이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가 안보와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우선적 가치이자 안보정당인 우리 새누리당의 최우선의 가치"라고 밝혔다. '안보정당' 이미지를 강조하는 한편, 최근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로 뒤숭숭해진 당내 분위기를 다잡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인제 최고위원 역시 "자유가 공짜가 아니라는 것처럼 평화도 공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조국의 평화를 지키다 전사한 제2연평해전 6인 용사를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최고위원은 특히 "그 어떤 도발에도 10배, 20배 응징할 능력과 의지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북한 정권에게 보여줘서 그 도발위기를 사전에 꺾어야 한다"며 "연평해전 13주년, 우리 당과 국민들은 이런 북한의 도발의지를 원천적으로 꺾어버린다는 결의를 다지는 시간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호 최고위원은 제2연평해전 당시 정부의 잘못된 교전수칙을 언급하면서 "(당시) 참 국가도 아니었다. 이상한 전투수칙 때문에 방아쇠에 손은 걸어놓고 무방비로 북한의 기습공격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며 "참으로 기가 찬 일"이라고 개탄했다.

    "이어 과감하게 대응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다시는 우리의 아들, 딸들이 이런 개죽음을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말로는 평화를 위해서 조국을 위해서 라는 이야기 하고 있지만 나라가 제대로 뒷받침 못하는 것은 나라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발언을 두고 일각에서는 '개죽음'이라는 단어 사용이 부적절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아무런 보람이나 가치가 없는 죽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개죽음'의 뜻이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논평을 통해 "연평해전 전사 장병들에 대해 '개죽음'이라 표현한 것은 국가관이 의심스럽고 유가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이라면서 김 최고위원의 대국민사과를 요구했다.

  • 이에 대해 김태호 최고위원은 야당을 향해 "앞 뒤 문맥을 보면 충분히 뜻을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의를 왜곡하지 말기 바란다"며 "고귀한 그분들의 희생을 정치적 도구로 악용하려는 시도는 아닐 것이라 믿는다"고 반박했다. 

    김 최고위원은 또 "우리 군인들이 안타깝게 죽어간 것이라 생각하며 이를 표현한 것"이라며 "저는 결코 전사자들을 모독하고 유가족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 위한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제2연평해전 당시 제대로 된 교전수칙이 수립돼 있었다면 우리의 젊은 용사들이 그렇게 큰 희생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란 뜻으로 풀이된다. 

    제2연평해전 당시 김대중 정부는 5단계의 교전수칙을 고집하고 있었다. 경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 순의 교전수칙에 북한의 선제공격이 있을 경우에만 반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북한의 눈치만 살피는 당시 정부 때문에 우리 군의 피해가 커졌다는 비판이 거세게 제기됐고, 이후 교전수칙은 '경고방송→경고사격→격파사격' 3단계로 변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