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여러 명의 사병이 대결광들의 대포밥으로 황천객…보수 떨거지들 모여 관람”
  • 영화 '연평해전'과 관련 실제 연평해전에 대해 국민들에게 묻는 이벤트 장면. ⓒ뉴데일리 DB
    ▲ 영화 '연평해전'과 관련 실제 연평해전에 대해 국민들에게 묻는 이벤트 장면. ⓒ뉴데일리 DB


    지난 24일 개봉한 영화 ‘연평해전’을 두고 북한이 갖은 막말을 해대며 대남비방 소재로 삼고 있다.

    북한의 대남공작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이하 조평통)’는 대남선전사이트 ‘우리민족끼리’에 영화 ‘연평해전’과 실제 주인공인 해군 장병들을 비하하는 글을 올렸다.

    조평통은 영화 ‘연평해전’을 가리켜 “괴뢰 극우 보수 분자들이 저들의 군사적 도발로 초래된 서해 무장충돌 사건을 왜곡, 날조한 불순반동 영화, 반공화국 모략 영화”라고 주장했다.

    조평통은 제2연평해전(서해교전)을 가리켜 “역사적인 북남수뇌상봉과 6.15공동선언 채택으로 온 겨레의 통일 염원이 높아가는 데 당황망조한 미국과 괴뢰 군부 호전광들이 계획적으로 감행한 군사도발”이라는 주장을 해댔다.

    조평통은 이어 “당시 여러 명의 사병이 대포밥으로 황천객이 되었다”면서 “애꿎게 목숨을 잃은 사병들을 그 무슨 ‘산화한, 잊혀진 영웅들’이니 뭐니 하고 둔갑시켜 내세운 영화 ‘연평해전’의 제작, 시사회 놀음이야말로 오직 불신과 반목, 대결과 전쟁만을 추구하는 보수 패당의 흉심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제2연평해전으로 전사한 장병들을 비하하기도 했다.

    조평통은 지난 19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연평해전’ 시사회를 가리켜서는 “상영장에 모여든 자들이라는 것이 하나같이 오로지 동족 대결과 사대매국에 찌들어버린 역겨운 보수 떨거지들이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조평통은 영화 ‘연평해전’을 개봉한 데 대해 “우리에 대한 또 하나의 도발로 간주하고 추호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괴뢰들은 우리의 경고와 내외 각계의 규탄 여론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를 모해하며 헐뜯는 모략 영화 상영놀음을 당장 걷어치워야 한다”고 떠들기도 했다.

    조평통이 영화 ‘연평해전’ 상영에 이처럼 ‘도발’ ‘용납치 않을 것’이라며 발악하는 것은 실제 제2연평해전을 둘러싼 ‘사실’ 때문이다.

    2002년 6월 29일 서북도서 연평도 인근에서 일어난 제2연평해전은 ‘서해교전’으로 오랜 기간 불리어 왔다.

    1999년 6월 15일 제1연평해전 당시 김정일은 서북도서와 NLL을 지키는 참수리 고속정 편대를 도발했다가 참패를 당하고 물러난 바 있었다.

    “남조선 괴뢰를 박살내겠다”며 큰 소리를 치던 김정일은 크게 화를 내며 복수를 지시했고, 북한군은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도발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한편 한국 정부 수뇌부는 해군에 교전수칙을 바꾸도록 했다. 북한군이 NLL을 침범해도 대응사격을 하지 말고 선체로 ‘밀어내기’를 하도록 지시한 것이다.

    한국군의 감청부대인 5679부대는 2002년 4월부터 NLL 주변 북한군이 도발계획을 세우고 있는 점을 파악한 뒤 군 수뇌부에 보고했다. 하지만 군 수뇌부는 당시 청와대와 상의해 북한군의 도발 가능성은 삭제하고 관련 정보를 해군에 전달했다.

    이후 2002년 6월 29일, 월드컵 4강전 한국:터키 경기가 벌어지던 때 북한군은 참수리 고속정 편대를 향해 기습 공격을 감행했고, 한국군 참수리 357 고속정은 한국 정부 수뇌부의 지시에 따라 바뀐 교전수칙을 지키다 6명이 전사하고 20여 명이 부상을 입게 됐다.

    참수리 357은 ‘손발을 묶어놓은 교전수칙’에 따라 대응하면서도 북한군 고속정을 격파하고 40여 명 이상의 적을 사살하거나 부상을 입혔다.

    한국 정부는 참수리 357이 침몰한 뒤에도 “문제를 크게 만들지 말라”는 식의 명령을 내려 또 한 번 국민들을 분노케 했다. 국민들의 분노가 커지자 한국 정부는 군 장병들로부터 모금하는 식으로 위로금을 전달하는 ‘조삼모사’식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대통령은 물론 국무총리, 국방장관, 여당 고위층 등 주요 인사들은 참수리 357 전사자들의 장례식에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아 그들의 ‘본심’을 드러냈다.  

    이후 북괴로부터 NLL을 지켜낸 참수리 357과 이들이 벌인 영웅적인 전투는 '연평해전'이 아니라 남북한 간의 우발적 충돌이라는 의미의 '서해교전'이라는 이름으로 6년 넘게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