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채널만 돌리면 나오는 남자, 이번엔 '소신파 형사'로 변신단짝 유해진과 '환상 케미' "33일 동안 도사와 공조수사..이거 실화입니다"
  • "너의 애가 유괴되고도 이따위로 할 거냐?" "니들은 아이 엄마 얼굴도 안봤냐?" 이렇게 공길용 형사가 외치는 대목이요. 그거 순전히 부모된 심정에서 내뱉는 말이거든요.


    영화 '극비수사'에서 공길용 형사 역을 맡은 배우 김윤석은 "저도 집에서 애를 키우는 아빠고, 극중 형사도 유괴된 아이 또래의 아들을 둔 아버지"라며 "이 영화는 형사가 범인을 잡는 그저 그런 수사극이 아니라, 사라진 아이를 구하기 위해 발벗고 나선 우리네 부모들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우리 은주, 집에 데려다 주이소!" 아이 엄마가 아주 단순한 말로 형사를 미치게 하는 거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당신 밖에 없다'는 눈빛을 보내는데, 같은 부모의 심정으로 오죽했겠습니까?

  • ◆ "우리 은주, 집에 데려다 주이소!" 한 마디에 수사 결심

    1978년 7월 18일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은주'라는 여자 아이가 유괴된다. 아이의 아버지는 현금 부자로 유명한 해산물 유통업자. 십중팔구 돈을 노린 범죄인데, 도무지 단서가 잡히지 않는다. 주변 인물들을 조사해도 털어서 나오는 건 먼지 뿐, 도대체 누가 왜 아이를 납치했는지 알 길이 없다.

    이때 경찰에선 '범인 찾기'의 달인 공길용 형사에게 사건을 맡기려 한다. 하지만 공 형사는 "자기 관할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고 거절 의사를 밝힌다.

    애간장이 탄 은주의 어머니와 고모는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하는 마음에, 근처에 용하다는 점집은 다 돌아다니며 아이의 행방과 생사여부를 캐묻는다.

    그러나 은주의 사주를 본 '도사'들은 하나같이 아이의 사주가 세다며 살아있을 가능성이 낮다는 절망적인 점괘만 되풀이했다. 그러던 차, 신출내기 도사 김중산은 유일하게 "아이가 아직 살아있다"는 사주풀이를 건네며 "오직 공길용 형사만이 아이를 찾을 수 있다"는 믿기 힘든 예언을 했다.

    이에 은주 엄마는 공길용 형사를 만나, 전심으로 아이를 찾아줄 것을 애원한다. 원리원칙에 충실한 공 형사는 한사코 이 사건을 맡지 않으려 버텼지만, 아내의 간곡한 부탁과 은주 엄마의 애절한 눈빛을 보면서 점점 마음이 흔들린다.



  • 공 형사가 이 사건을 맡기까지 몇 차례 우여곡절을 겪습니다. 처음엔 자기 관할이 아니라고 우기다가 가족들의 애원에 집을 찾아가고 사건 당일 있었던 얘기를 듣게 되죠.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수사를 하게 되는데, 나중엔 서울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수사팀이 꾸려졌다는 얘기를 듣고, 또 한 번 수사에서 발을 빼려고 합니다. 그때 아이 엄마의 눈빛을 보게 돼요. 제발 우리 은주를 찾아달라는….


    김윤석은 "실제 공길용 형사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정말로 힘들었던 건,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는 피해자 가족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었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아이 엄마의 눈빛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공 형사는 이때부터 사생결단으로 범인 찾기에 나서게 된다"고 설명했다.

    33일 만에 아이가 돌아오잖아요? 점점 피골이 상접해가는 거죠. 아이 엄마 역을 맡은 배우도 실제 다이어트를 했어요. 편집된 영상 중에 은주 엄마가 죽을 놓고 안먹는 장면이 있는데요. 제가 "지금부터 체력전입니다. 드세요"라고 말하는 신이 있어요. 나중에 속도감 때문에 편집됐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공 형사는 이 사건을 남의 일이 아니라고 여기게 돼요. 자기도 아들을 둔 아비인지라 동일하게 안타까운 마음을 품게 된 거죠.


    김윤석은 "곽경택 감독이 우연한 기회에 공길용 형사를 만나, 37년 전 있었던 아동 유괴 사건의 비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고 이런 독특한 영화를 만들게 된 것"이라고 밝힌 뒤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유해진씨가 연기한 무속인이 유괴 사건의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게 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번 영화는 전형적인 수사 활극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에요. '액션'보다는 진솔한 내러티브에 포커스를 맞춘 작품이죠. 무엇보다 아주 담백하고 사실적으로 풀어내는 스토라라인이 마음에 들었어요. 점을 치는 도사가 유괴범 수사에 도움을 주는 등, 한국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구미가 당겼고요.


  • ◆ 발바닥 각질 뜯어내는 장면, 알고보니 애드리브?

    김윤석은 "'극비수사'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수사하는 공길용 형사와, 진심으로 기도하면 뜻이 하늘에 닿는다고 믿는 김중산 도사가 만나 33일 안에 유괴된 아이를 구해내는 일종의 영웅담"이라면서 "하지만 이를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고 구수한 된장처럼 엮어낸 휴먼 드라마"라고 밝혔다.

    일단 수사물이라는 장르는 몇년 동안 스릴러 형식과 결합되면서 정형화 된 측면이 있어요. 만약 극비수사의 시나리오가 비슷한 형식이었다면, 전 안했을 겁니다. 읽어보니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더라고요.


    김윤석은 "애당초 기교 같은 건 전혀 없고, 오로지 이야기와 캐릭터만으로 승부하는 영화"라면서 "시나리오에서 만난 공길용 형사도 본 시리즈처럼 액션이 화려한 인물이 아니고, 원칙을 준수하는 공무원 같은 느낌이 강했다"고 밝혔다.

    영화를 찍으면서 제가 소품팀에게 부탁을 한 게 있어요. 형사수첩과 볼펜을 반드시 챙겨달라고 한 거죠. 그 당시엔 핸드폰도 없었고, 그냥 손에 쥔 수첩에, '메모'하고 '추리'하는 게 형사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을 겁니다.


    지극히 '인간적인' 그 시대의 형사 역할을 연기했다고 밝힌 김윤석은 "집에서 평범하게 과자를 먹는 신에서도 공 형사의 소탈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즉석에서 상대 배우와 애드리브를 했다"는 일화를 공개했다.

    원래는 '오랜만에 집에 왔다. 과자를 먹고 있다…' 이 정도만 대본에 써 있었어요. 재미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현장에서 감독님께 건의를 한 거죠. 방안에 누워 손으로 발바닥 각질을 뜯는 장면을 넣자고…. 형사들은 발에 굳은 살이 안박일 수가 없잖아요? 그쵸? 수돗가에서 발을 씻으면 불잖아요? 왜들 이렇게 모른 척을 하시나…. (웃음)


    김윤석은 "극중 공길용 형사의 아들이 자기 아빠를 그린 그림은 사실 제가 그린 것"이라며 "현장에서 재미삼아 그린 그림인데, 감독님이 대번에 허락을 해주셔서 스크린에 담긴 것"이라고 밝혔다.

    극중 공길용 형사의 아이가 아빠를 그린 그림이 나오잖아요? 그거 제가 그런 거예요. 어릴 때 제가 만화를 곧잘 그렸거든요. 대본에 그림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길래 제가 그려서 감독님께 보여드렸죠. 그랬더니 따로 그리지말고 제 그림으로 가자고 하시더라고요. 하하.


  • ◆ "공길용 형사 아들이 그린 그림, 사실 제가 그렸어요"

    김윤석은 '실존 인물을 대상으로 한 연기가 어렵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일반 대중은 공길용 형사가 누구인지 어떤 분인지 잘 모른다"며 "따라서 내 맘대로 연기를 하든, 사실에 충실하든 상관이 없었다"고 너털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마 소재가 '전기'였다면 엄청 신경썼겠죠. 그런데 대중은 공길용 형사가 누구인지 어떤 분인지 잘 몰라요. 내 맘대로 연기를 하든, 사실에 충실하든 아무도 모르죠. 게다가 영화의 초점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새로운 드라마를 만드는 거잖아요? 단 하나, 그 분이 굉장히 원칙적인 사람이라는 점은 저도 강조하려고 애썼어요.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는 평범한 시민의 '소신(所信)'이다. 극중 아이가 유괴된지 33일째 되는 날, 김중산 도사가 공길용 형사를 찾아가 '소신'이라는 글자를 써 보이는 장면이 나온다. "자기가 이 일에 뛰어든 건, 다른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 바로 소신 때문이었다"며 공길용 형사의 도움을 요청한다.

    과거 공 형사님의 인터뷰 기사를 보니, 유괴 사건은 범인 체포가 우선이 아니라, 아이를 구하는 게 먼저라는 말씀을 하셨더라고요. 그게 그분의 진짜 소신이었죠. 이처럼 두 사람의 소신이 만나 한 생명을 구해내는 기적을 만들어 낸 겁니다.


    김윤석은 "그동안 몇 차례 형사 역할을 하긴 했지만, 제대로 된 형사는 이번 작품이 처음"이라며 "하지만 전형적인 치고 받고식 수사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아주 마음에 들었고, 보시는 분들도 무거운 마음으로 극장 밖을 나서지 않아도 되는 가족 영화"라는 점을 강조했다.

    결과는 다들 아시겠지만, 아이를 찾아내기까지 절대로 긴장을 놓칠 수 없는 '치열함'이 잘 녹아 있는 작품이에요. 무속인이 등장하는 독특한 소재도 이채롭고…. 만족스러운 해피엔딩과 짠한 감동도 느낄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모처럼 가족끼리 함께 영화를 보시면 참 좋은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영화 '극비수사'는 1978년 부산에서 실제로 있었던 유괴 사건을 바탕으로 그려진 영화. '타짜', '전우치', '타짜-신의 손'에 이어 네번째로 호흡을 맞추는 유해진과의 '환상 케미'가 기대되는 작품이다. 18일 개봉.

    다음은 김윤석과의 일문일답.


  • - 실화를 바탕으로 그려진 영화잖아요? 결말도 다들 알고 있고…. 그래서 지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갖고 영화를 봤는데, 몰입도가 높아서 그런지 굉장히 집중해서 봤어요. 뭔가를 계속 궁금해하면서 보게 되더라고요.

    ▲제가 아주 어릴때 가까운 곳에서 일어났던 일이에요. 그런데 저도 그냥 아이가 돌아왔다는 것만 알았지, 이런 세세한 일까지는 알지 못했죠. 그 당시에도 극비수사였거든요. 수사에 도사가 참여했다는 애기도 몰랐고, 공적(功績)이 내부적으로 분배됐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 당시 뉴스에서도 아이를 찾은 공로가 다른 경찰들에게로 돌아갔었나요? 영화를 보면서 공길용 형사 외에는 아무도 아이를 찾겠다는 생각을 안해 굉장히 분노가 치밀었어요.

    ▲실제로도 그랬어요. 그리고 이게 정말 웃긴 게, 한쪽에서는 아이를 찾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선 범인을 잡는 데에만 혈안이 돼 있는 거예요. 범인만 잡으면 일계급 특진 같은 혜택이 돌아오잖아요. 이 영화는 이런 본질적인 문제를 보여주는 영화라 할 수 있죠.

    -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보통 많은 시나리오가 소속사를 통해서 집으로 들어오는데요. 일단 수사물이라는 장르는 몇년 동안 스릴러 형식과 결합되면서 정형화 된 측면이 있어요. 만약 극비수사의 시나리오가 비슷한 형식이었다면, 전 안했을 겁니다. 읽어보니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더라고요. 기교 같은 게 가미된 게 아니라, 어찌보면 정면돌파식이에요. 이야기와 캐릭터만으로 영화를 풀어가는 식이죠.

    이런 점이 참 마음에 들었어요. 아주 담백하고 사실적으로 내러티브를 잘 풀어냈죠. 캐릭터가 과장되거나 극적이지도 않았고요. 게다가 도사가 수사에 도움을 줬다는 얘기잖아요? 외국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얘기죠. 예를 들면 타로 점치는 사람이 참여했다는 식인데…. 한국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구미가 당겼어요.

    - 평소 무속 신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믿고 안믿고를 떠나, 그냥 아예 관심이 없었어요. 친해질 수 있는 기회도 없었고요. 지금도 그 심정에는 변화가 없어요. 지금부터라도 사주를 봐야겠다는 생각도 한 적이 없습니다. 이번 영화를 촬영하면서 알아보니 그쪽 사람들도, 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뭔가를 추구하고 있더라고요. 저도 그런 점은 인정을 하게 됐어요.

    - 영화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을 만난 적은 있으신가요?

    ▲공길용 형사는 아직까지 만난 적이 없고, 김중산 도사는 영화 촬영이 끝난 후에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되게 점잖으신 분이에요. 칠십이 넘으신 분인데, 피부도 되게 좋으시고 아주 밝은 얼굴을 하고 계셨어요. 

    - 딱 봐도 도사 느낌이 나던가요?

    ▲전혀. 그냥 잘생기셨어요.

    - 유해진씨와는 아주 다르네요.

    ▲흐흐. 글쎄요.



  • - 공길용 형사 역을 맡으면서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고 연기를 하셨나요?

    ▲시나리오에서 만난 공길용 형사는 가장 일반적인 형사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육체적으로 크게 우월한 존재도 아니고, 원칙을 준수하는 공무원 같은 느낌이 강했죠. 영화를 찍으면서 제가 소품팀에게 부탁을 한 게 있어요. 형사수첩과 볼펜을 반드시 챙겨달라고 한 거죠. 그 당시엔 핸드폰도 없었고, 그냥 손에 쥔 수첩에, '메모'하고 '추리'하는 게 형사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을 겁니다.

    초반에 이런 대목이 나오죠. 처음 피해 가족들과 대면한 자리에서 아주 차분하게 자기 생각을 말해요. "범인이 서울말을 썼고, 길을 잘 몰라서 아이들에게 그곳 지리를 물어봤다는 점, 그리고 은주에게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말한 점 등을 비쳐볼 때, 범인은 이곳 사람이 아니고, 은주가 자가용을 타고 등하교를 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외지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리죠.

    누구 앞에서 잘난 척 하는 게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 수사 논리가 있는 겁니다. 예를 들면 경찰이 관할 구역을 지키는 것은 원칙이잖아요. 거기를 넘어가면서까지 영웅적인 치기가 많은 사람도 아니고…. 한 마디로 원칙에 충실한 그런 분이에요.

    - 언론시사회 때 발바닥 각질 제거하는 장면에서 뻥 터졌어요.

    ▲집에서 다들 그러지 않나요? 자, 오랜만에 집에 들어갔어요. 형사들은 발에 굳은 살이 안박일 수가 없잖아요? 그쵸? 수돗가에서 발을 씻으면 불잖아요? 왜들 이렇게 모른 척을 하시나…. (웃음) 이걸 손으로 뜯어내면 우수수 떨어지잖아요. 어릴 때 삼촌이 이런 짓을 많이 했는데, 이불 위에다 각질을 떨어뜨리면 엄마들이 역정을 내시면서 손으로 걷어내곤 했죠. 

    - 원래 대본에도 이렇게 쓰여 있었나요?

    ▲그냥 오랜만에 집에 왔다. 과자를 먹고 있다…. 이 정도만 써 있었어요. 재미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현장에서 감독님께 건의를 한 거죠. 이렇게 찍으면 재미있을 거라고.

    - 방바닥에 떨어진 각질은 진짜인가요?

    ▲아녜요. 제거 아닙니다. 저는 그런 거 없어요. 다 소품이에요. 그냥 긁어내는 흉내만 냈을 뿐입니다. 하하.

    - 그 신 외에도 애드리브로 촬영한 장면은 없었나요?

    ▲극중 공길용 형사의 아이가 아빠를 그린 그림이 나오잖아요? 그거 제가 그런 거예요. 어릴 때 제가 만화를 곧잘 그렸거든요. 대본에 그림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길래 제가 그려서 감독님께 보여드렸죠. 그랬더니 따로 그리지말고 제 그림으로 가자고 하시더라고요.



  • - 유해진씨와는 호흡이 잘 맞았죠?

    ▲허심탄회하게 술 마실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죠. 친하게 지내는 배우로는 김상호, 주진모 형 등이 계신데 다들 우리 소속사 배우들이에요. 10주년 때에도 함께 놀러갈 정도로 아주 막역한 사이죠.

    - 유해진씨를 너무 잘 아니까, 관객들에게 그 분의 숨은 매력을 좀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은 안해보셨나요? 이번 영화에선 정적이고 재미없게 나오시더라요.

    ▲해진씨 진지한 모습은 평소에도 많이 봤어요. 웃기기도 하지만 원래 차분하고 진지한 사람이에요. 낯가림도 있고. 되게 섬세한 분이죠. 사람들은 이런 모습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저는 아주 익숙하죠. 영화에 등장하는 김중산 도사의 진중한 모습과 아주 흡사해요.

    - 이번 영화가 실존 인물을 대상으로 하다보니 해당 인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해야할지, 아니면 적당히 양념을 치고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해야할지 고민은 안되셨나요?

    ▲아마 소재가 '전기'였다면 엄청 신경썼겠죠. 그런데 대중은 공길용 형사가 누구인지 어떤 분인지 잘 몰라요. 내 맘대로 연기를 하든, 사실에 충실하든 아무도 모르죠. 게다가 영화의 초점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새로운 드라마를 만드는 거잖아요? 단 하나, 그 분이 굉장히 원칙적인 사람이라는 점은 저도 강조하려고 애썼어요. 과거 인터뷰 기사를 보니, 유괴 사건은 범인 체포가 우선이 아니라, 아이를 구하는 게 먼저라는 말씀을 하셨더라고요. 

    - 그게 그분의 진짜 소신이었군요.

    ▲소신도 분명한 분이고, 수사에서만큼은 굉장히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라는 걸 느꼈어요.

    - 공길용이라는 분은 그 시대에 매우 드문 캐릭터라고 보여져요.

    ▲입지전적인 인물이죠. 말단에서 총경까지 올라갔으니…. 부산에선 진짜 유명한 분이에요. 특히 깡패나 범죄자들에겐 저승사자와도 같은 분이었죠. 처음에 업어치기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실제로 그분이 유도 유단자거든요.

    - 화제를 좀 바꿔볼게요. 김윤석씨는 영화 때문인지는 몰라도, 신경질적인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센 이미지가 좀 강하신 것 같아요. 배우라는 입장에서 볼 때 좀 더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저는 정말 재미있게 '완득이'라는 작품에도 출연했고, '즐거운 인생'에선 베이스 기타치는 사람으로 나왔어요. '쎄시봉'이란 영화도 했고, 드라마에서 바람둥이 역할을 한 적도 있어요. 단지 '타짜'와 '황해'가 너무 인상깊었다는 거. OCN과 채널CGV에서 한 1,000번은 틀어준 것 같네요. 매스컴에서 제 이미지를 이렇게 몰아가는 게 아닌가 싶어요. 하하. IPTV의 보급이 저의 캐릭터를 고착화시킨 면이 없지 않다고 봐요. (웃음) 3,4년이 지나도 계속 같은 영화를 틀어주니….

    - 류승룡씨처럼 심각한 변신을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요?

    ▲결국은 시나리오에요. 얼마나 좋은 대본이 나오느냐. 저는 캐릭터보다는 시나리오를 더 중요시해요. 이게 할만한 이야기인지 아닌지를 보죠. 사실 변신은 없어요. 다 자기 안에 있는 걸 연기로 끄집어내는 것이거든요. 연기에 접근하는 방법은 다 달라요. 남들은 연기를 잘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냥 우리는 정확하게 이 신에 맞는 연기를 해야합니다. 무턱대고 잘해야한다고 하면 너무 막연해지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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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인적으로 공길용 형사가 범인을 잡겠다고 결심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요. 딸 아이를 유괴당한 어머니가 절박하게 호소를 할때 그 눈빛을 보고 흔들리는 형사의 눈빛을 봤습니다. 서로 눈빛을 교감하는 신이 굉장히 찌릿찌릿했어요. 이런 장면을 찍을 때 신경을 많이 쓰신 것 같더라고요.

    ▲실제 공길용 형사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정말 힘들었던 건,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는 피해자 가족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33일 만에 아이가 돌아오잖아요? 점점 피골이 상접해가는 거죠. 아이 엄마 역을 맡은 배우도 실제 다이어트를 했어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당신 밖에 없다'는 눈빛을 보내는데, 같은 부모의 심정으로 오죽했겠습니까?

    이렇게 신호를 보내는 장면이 몇 장면 있죠. 대한민국 최고의 수사팀이 꾸려졌다는 말을 들었을때, "이제는 그만하자. 내가 빠지겠다"고 하니, 아이 엄마가 아주 단순한 말로 형사를 미치게 하는 거죠. "우리 은주, 집에 데려다 주이소!" 거기에 형사가 마음을 완전히 고쳐 먹게 되는 거죠. "너의 애가 유괴되고도 이따위로 할 거냐? 니들은 아이 엄마 얼굴도 안봤냐?" 이렇게 공길용 형사가 외치는 대목도 마찬가지에요. 순전히 부모된 심정에서 내뱉는 말이거든요.

    - 사건이 종결되고 공길용 형사 덕분에 특진을 하신 분들이 아이들을 껴안는 장면에선 허탈하고 씁쓸한 마음이 들더군요.

    ▲세상은 요지경이란 말이 있잖아요? 지독한 우화 같은 거죠. 영화 초반,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라는 동요가 나오는 것도 아이러니하고요.

    - 김중산 도사님과 실제로 만나셨다고 했죠? 혹시 사주 같은 건 봐주지 안으셨나요?

    ▲함부로 넘겨짚거나 하시는 분이 아니에요. 이제 70이 넘으셨는데, 고수 중의 고수 아닙니까? 그저 좋은 얘기만 해주셨어요. 저보고 눈이 참 맑다고 하셨고요.

    - 88년부터 연기 생활을 해오셨는데 아직도 연기가 어렵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완성은 없죠. 늘 목말라요. 만나는 캐릭터들은 언제나 새롭고 전 굉장히 운이 좋은 겁니다. 시대를 잘 태어났다고 해야할까요? 신성일 선배님과 같은 시대에 태어났다면? 우리는 뭐, 어휴…. 지금은 '연기파'라는 좋은 말도 생겨났잖아요? 똑같은 얘기를 유해진씨에게도 한 번 해보세요. 하하.

    - 혹시 술자리에선 '그래도 우리 정도는 어디 빠지는 외모는 아니'라는 자위들은 하지는 않으시는지.

    ▲외모 얘기는 절대로 안합니다. 우리는 그냥 신경도 안써요. 그런 거에 신경 쓸 나이도 지났고요. 외모로 인기를 끈 사람들도 아니고. 그래도 어릴 때에는 예뻤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하.



  • - 관객들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으세요?

    ▲히트한 영화 중에서도 불과 1년만 지나면 잊혀지는 영화가 있는가하면, 별로 흥행은 안됐지만 두고두고 회자되는 영화가 있잖아요? 전 지금도 제 나름대로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중인데요. 제가 김중산 도사님과 비슷한 나이가 돼서 스스로를 돌아볼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 그래도 흥행에 대한 고민은 어쩔수 없죠?

    ▲그럼요. 항상 흥행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죠. 새로은 시도를 할때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지만, 저는 안전한 것만 찾아다니는 건 아니라고 봐요.

    - 외화에 비교해 국내 영화의 장르와 소재가 정체돼 있고 위축돼 있다는 지적을 많이 받습니다. 우리나라 영화의 현 주소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신다면?

    ▲헐리우드 물량 공세를 어떻게 이깁니까? 그건 불가능하죠. 대신 우리만의 독특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야해요. 한 우물만 계속 파면 언젠간 마를 수밖에 없죠. 새로운 우물을 계속 찾아내 파야 합니다. 안전하다고 하나만 계속 파면 다 말라 버려요. 그런 의미에서 '극비수사'도 수사극이라는 최근의 패턴과는 많이 벗어나 있는 영화예요. 화려한 편집이나 액션도 없고 흔한 카체이싱도 없잖아요? 오로지 드라마로만 승부하는 작품이죠. 힘이 닿는 데까지 그런 작품들을 하고 싶어요. 

    또 이런 게 있어요. 반드시 투자가 돼야하는 좋은 작품인데, 제가 참여를 안하면 투자받기 힘든 그런 케이스가 있죠. 이런 영화는 꼭 해야한다는 영화가 있으면 주연이든 조연이든 가리지 않고 참여하고 싶어요. '화이'는 솔직이 화이가 주인공이지, 저는 아니잖아요? 하지만 장준환 감독님이 오랜만에 메가폰을 잡은 영화예요. '해무'는 신인 감독이 연출을 한 작품이고.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작품들이라고 생각해요.

    - 혹시 후배들 중에 묻혀 있는 진주 같다고 여겨지는 배우들이 있나요? 
     
    ▲숨어 있는 고수들은 많아요. 저와 함께 작품을 했던 어린 배우들은 다 잘됐죠. 그런데 중요한 건 시나리오예요. 옛 것을 답습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시나리오가 나와야 합니다. 특히 여배우들이 더 많이 활약을 해야 하는데 그런 작품이 부족해요. 더 우물을 파야 합니다. 관객들도 몇몇 배우들만 계속 보다 보면 식상할 수밖에 없거든요.



  • - 아직까지 체력적인 문제는 없으시죠?

    ▲'추격자'같은 영화는 이제 두 번 다시 못해요. 이번 영화도 '황해'같은 영화에 비하면 장난이죠. 차량에 매달리는 장면은 스턴트맨 분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무사히 촬영을 마쳤어요. 영화 '도둑들'을 찍을 때에는 와이어를 타고 직접 액션을 했는데, 임달화씨께서 보시더니, "왜 당신이 하느냐? 안했으면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쪽에선 프로페셔널하게 배우를 보호하는 원칙이 잘 지켜지는 것 같더라고요. 한국 배우들은 정말 용감한 거예요.

    - 편집 과정에서 잘려나간 장면들도 꽤 있죠?

    ▲아쉽진 않아요. 다 이유가 있어 편집된 것이거든요. 은주 엄마가 죽을 놓고 안먹는 장면이 있는데요. 제가 "지금부터 체력전입니다. 드세요"라고 말하는 신이 있어요. 나중에 속도감 때문에 편집됐어요. 은주 엄마 얼굴만 봐도 충분히 상황을 읽을 수가 있다고 본 거죠.

    - 이 영화를 보시는 분들 위해 관전 포인트를 말씀해 주신다면?

    ▲오랜만에 한국 영화다운 영화가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뭔가의 아류도 아니고, 베낀 것도 아닌 새로운 영화예요. 무속인이 등장하는 독특한 소재도 이채롭고, 무엇보다 무거운 마음으로 극장 밖을 나서지 않아도 되는 가족 영화예요. 만족스러운 해피엔딩과 짠한 감동도 느낄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모처럼 가족끼리 함께 영화를 보시면 참 좋은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취재 = 조광형 기자]
    [사진 = 정재훈 기자]
    [장소 제공 = 삼청동 '파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