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南時旭 선생의 力著, 韓國戰의 세 主役 이야기

    『6·25전쟁과 미국: 트루먼·애치슨·맥아더의 역할』(청미디어)

    조갑제닷컴   

    북한의 기습 남침을 받아 존망의 기로에 몰린 대한민국이 미국의 도움으로 亡國의 위기에서 벗어나 생존하게 되는 과정을 심층 분석한 본격적인 연구서가 광복 70주년, 6·25전쟁 발발 65주년을 맞아 출간되었다.

  • ▲ 저자 남시욱 교수.
    ▲ 저자 남시욱 교수.
    원로 언론인 南時旭(전 문화일보 사장·현 세종대 석좌교수) 씨가 쓴 이 책은 이와 아울러 유엔군이 왜 북진통일에 실패했는지도 당시 미국의 세 주역인 트루먼 대통령, 애치슨 국무장관 및 맥아더 유엔군사령관 사이의 협력과 갈등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새로운 분석방법을 통해 규명하려고 시도했다.  

이 책은 먼저 미국의 트루먼 행정부가 전략적 가치가 없다 해서 군사력으로 방어할 대상국가에서 제외한 한국에 어떤 이유로 지상군까지 파병하기로 결정했는지 그 경과와 배경을 분석했다.

그리고 당초 38선 이북으로의 북한군 격퇴만을 목적으로 했던 유엔군의 작전목표를 어떤 과정을 거쳐 북진통일로 바꾸었는지, 또한 북한 全지역의 완전점령을 눈앞에 두고 전개된 크리스마스
공세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참패로 끝나 통일의 꿈이 물거품이 된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도 분석했다. 

“한국은 냉전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수혜자이다”라고 결론지은 저자는 이 책에서
피아간 전투원만 300만 명의 인명손실을 낸 6·25전쟁을 트루먼 행정부가 왜 사전에 억제하지
못했으며, 미리 예고되었던 중국의 전쟁개입 역시 왜 차단하지 못했는지도 해부했다. 

이 책은 연구서이기는 하지만 언론인 특유의 박진감 넘치는 서술방식으로 대하드라마처럼
6·25전쟁사를 읽기 쉽도록 묘사했다. 이 때문에 독자들이 한 번 책을 들면 좀처럼 놓지 못할 정도로 그 내용이 흥미진진하다.
본문과 함께 퓰리처 수상작을 비롯한 역사적인 6·25전쟁 사진들을 수록한 32페이지에 달하는 화보 역시 읽는 이들로 하여금 6·25전쟁의 생생한 느낌을 갖게 할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책의 골자> 

저자는 6·25전쟁이 20세기 인류문명사의 일대 사건인 동서냉전이 빚은 특이한 전쟁이라고 규정했다. 이 전쟁은 1948년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가 수립되는 순간부터 무력통일을 꿈꾼 북한 김일성의 계획과 발의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이에 스탈린이 편승해 그의 세계적 냉전전략에 이용함으로써 스탈린과 김일성의 합작품이 되었다.
그러나 이 전쟁은 스탈린이 전쟁 준비와 개시 단계에서부터 휴전협상 단계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전략 전술을 지시한 점, 특히 미 공군의 북한 폭격에 못 견딘 김일성의 애원에 가까운 조기 휴전 건의를 스탈린이 죽는 순간까지 불허한 점에서는 ‘스탈린의 전쟁’이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 ▲ 저자 남시욱 교수.
    저자에 의하면 미국의 트루먼 행정부가 신속하게 한국에 참전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한국 자체의 군사적 가치보다는 미소냉전에서 스탈린에게 밀려 미국의 신뢰와 위신이 손상당하고 스탈린으로 하여금 또 다른 야심을 갖도록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6·25전쟁 발발 1년 전인 1949년 중국 대륙이 적화되자 트루먼 정권이 아시아 정책의 실패로 중국을 상실했다는 공화당 등 보수세력의 거센 공세에 직면해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렸던 국내적 요인도 파병결정에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트루먼과 군부는 공군과 해군을 동원하면서도 지상군 파견에는 주저하다가 현지 사령관인 맥아더의 강력한 건의를 받아들여 북한군 남침 5일 만에 지상군 파견을 결정했다.  

    저자는 이 같은 6·25전쟁의 발발 배경과 미국의 참전과정에 주목해 이 전쟁을 스탈린이 지도한 공산진영의 국제공산주의혁명 운동 대 반공주의자인 트루먼이 이끈 서방진영간의 이념적 십자군전쟁의 성격을 지녔다고 결론지으면서 수정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내전설을 배격했다.

    다만 트루먼 정부는 6·25전쟁 참전에 대해, 특히 지상군 파견에 대해 극히 신중했고 영국 등 미국의 동맹국들도 원천적으로 이 전쟁 참전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에 ‘내키지 않은 십자군 원정’이었다고 평가했다.  

    6·25전쟁은 反轉(반전)에 反轉을 거듭하면서 대한민국에 위기와 희망을 주었다.
    첫째 위기는 1950년 8~9월 부산교두보 방어작전 때였다.
    이 때 워커 8군 사령관은 유엔군이 더 이상 후퇴할 곳이 없다면서 ‘현장 고수냐, 죽음이냐’를 선택하라고 부하장병들에게 명령을 내리면서 전투를 독려해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작전에 성공했다.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과 뒤이은 38선 이북으로의 반격작전이 시작된 뒤 국군과 유엔군이
    38선을 넘어 압록강까지 북진한 10월까지는 대한민국에 통일의 희망이 부풀어 오른 시기였다.  

    그러나 그해 12월 중공군의 개입으로 두 번째 큰 위기가 찾아왔다.
    유엔군이 중공군에게 밀려 서울 북방까지 후퇴하자 미 군부가 유엔군의 안전을 위해 한국으로부터 철수하자고 건의했을 때였다. 트루먼과 애치슨은 이에 단호하게 반대했다.

    애치슨은 2차 대전 때 연합군이 나치 독일군에게 밀려 던커크에서 철수한 것은 재앙이기는 해도 치욕은 아니었다면서 유엔군이 한국에서 철수하면 한국인들은 학살당할 것이며 그것은 미국의 치욕이 된다고 주장해 결국 맥아더에게 버틸 때까지 버티라고 지시함으로써 한국은 국가멸망의 위기를 넘겼다.  

    6·25전쟁을 억제하지 못한 원인은 일차적으로는 준비도 없이 북진통일을 외친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에게 있지만 그 실제적인 책임은 미국에 있다고 저자는 비판했다.
    한반도의 군사전략적 가치를 낮게 평가한 트루먼 행정부는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신생 대한민국이 제대로 일어서기도 전에 8·15해방 때 진주한 미군을 서둘러 철수시켰다.
    미 국무부는 동서냉전의 최전선인 한국의 정치적 중요성을 감안해 조기철군을 반대했으나
    트루먼 행정부의 국방예산 삭감과 병력감축 방침이라는 국내적 요인 때문에 철군은 불가피했다. 그러나 철군방침이 확정된 다음에도 그 일정이 세 차례나 변경되는 등 정책의 표류를 겪었다.  

    한국을 미국의 태평양방어선에 제외함으로써 김일성의 남침 시 미국이 한국을 도우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스탈린에게 주었다 해서 논란거리가 된 1950년 1월 애치슨의 프레스클럽 발언은
    소련과 중국의 이간, 즉 마오쩌둥을 티토화하려는 목적의 연설이었다.
    그러나 한국에 관해서는 신중치 못하고 애매한 발언이었다.
    비록 스탈린은 애치슨 연설 이전에 스파이망을 통해 미국이 한국에 군대를 다시 보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으나 애치슨 발언이 스탈린이 입수한 정보를 확인해 주는 효과를 준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스탈린은 애치슨 발언 중 유엔의 한국 지원 가능성에 관한 완곡한 언급에 주의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트루먼 행정부가 중국의 6·25전쟁 개입을 막지 못한 것은 커다란 외교적 실패였다.
    트루먼과 애치슨은 각각 공식 성명을 통해 미중 양국민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강조하면서 중국이 한국사태에 개입하지 말라고 호소하고 중국의 타이완 침공을 용인할 듯한 유화적 발언까지 했다.
    그러나 소련과 中蘇동맹조약을 체결하고 이미 김일성의 남침 이전에 만약 한국사태에 외국세력이 개입하는 경우에는 김일성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마오쩌둥은 미국을 제국주의 세력으로 보고 불신감과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애치슨은 이런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중국 측의 경고를 단순한 엄포라고 오판했다.
    트루먼 행정부는 맥아더의 지적대로 중국의 참전을 군사력으로 막겠다는 보다 단호한 경고를
    한 번도 하지 않는 안이한 태도를 보여 결국 중국의 파병을 막지 못했다.  

    6·25전쟁은 미국 국내에서는 트루먼 행정부와 맥아더의 대결이기도 했다.
    “전쟁에는 승리이외의 대안이 없다”고 굳게 믿은 맥아더는 신속한 전쟁수행을 위한 워싱턴 당국의 과도한 간섭에 대한 반발을 보이면서 만주폭격, 중국대륙봉쇄, 본국으로부터의 병력증강을
    주장했다. 그는 결국 트루먼 행정부의 외교정책에 정면으로 도전하다가 해임되었다.

    맥아더의 패배는 그의 아시아 중시주의에 대한 트루먼과 애치슨의 유럽중시주의의 승리이며
    군부실력자에 대한 문민통제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렇기는 하나 트루먼 애치슨 맥아더 3자가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었더라면
    맥아더의 해임사태도 없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6·25전쟁도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을지 모른다.  

    저자는 이 책에서 트루먼 애치슨 맥아더 3자에게 초점을 맞추어
    트루먼 행정부의 전쟁 수행과정을 분석하는 방식, 즉 이른바 ‘행위자 특정 접근법’(Actor-Specific Approach)을 원용해 6·25전쟁을 분석했다. 이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런 접근법은 냉전시기의 주류이론이었던 신현실주의 이론이 국제구조의 변화 없이 소련권의
    붕괴가 일어난 사태를 예측 못한 이론적 한계를 드러낸 후 새로 각광을 받고 있는 구성주의이론과 연계되는 외교정책분석 방법이다. 외교정책 분석을 추상적인 국가나 정부의 수준이 아닌, 인간 정책결정자로 끌어 내릴 때 얻을 수 있는 성과는 국제관계에 있어서 변화, 창의성, 설득, 그리고 책임 문제를 규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런 분석 방식은 현대외교의 한 특징이라 할 정상외교의 예에서 우리가 자주 본다.
    이 같은 접근법은 국제정치가 궁극적으로 외교라는 체스게임을 하는 개별적 인간 행위자에 의해 좌우된다는 경험적 사실과 부합하는 현실적 분석 방법이다.  

    저자는 이런 시각에서 세 主役들의 협력 및 성취와 함께 유엔군 북진작전 이후 생긴 그들의 갈등관계-특히 그들의 세계관과 국제정세판단의 차이-가 한반도 통일이라는 목표 달성을 실패하게
    만든 원인의 일부가 되었다고 진단했다.

    유엔군의 38선 돌파 北進작전으로 한국의 통일을 이룩하려 했던 트루먼 행정부는
    맥아더의 크리스마스 공세 참패에 심리적 충격을 받아 통일 목표를 사실상 폐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천상륙작전의 빛나는 승리로 수십만 명의 인명 손실을 막은 맥아더였지만
    그의 크리스마스 공세 실패는 산악지대에 30만 명 이상의 중공군이 숨어있는 사실을 미리 알지
    못한 그의 정보실패에 최대의 원인이 있었다.

    맥아더의 아시아중시주의에 대해 유럽중시주의 노선이었던 트루먼과 애치슨은
    한국에서 중국과 대결하는 것을 원하지 않음으로써 맥아더의 擴戰(확전)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한반도의 현상유지선에서 휴전을 모색하게 되었다. 서유럽 방어에 정책적 우선순위를 둔 트루먼과 애치슨은 한반도를 소련과의 결전장으로 삼지 않으려 했다.  

    나중에 애치슨과 미국 군부는 중국에게 개입의 구실을 주지 않고 또한 방어하기도 가장 쉬운,
    한반도의 목 또는 허리로 불리는 평양-원산 지역에서 유엔군이 진격을 멈추지 못한 점이 트루먼 행정부의 결정적 실책임을 자인했다.

    만약 유엔군이 평양-원산 선에서 진격을 멈추었더라면 중공군이 전투에 나서지 않았을 뿐 아니라 비록 그 때 유엔군이 완전한 통일은 이루지 못했을지라도 대한민국이 한반도 인구의 90%가 살고 있는 지역에 관할권을 미치게 됨으로써 한반도의 세력판도가 완전히 달라져 그 후 한국주도의
    통일에도 결정적으로 유리하게 전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6·25전쟁은 3년을 끌면서 실제 본격적 전투를 한 기간은 1년에 지나지 않았다.
    나머지 2년간은 휴전협상을 유리하게 하게 위해 전투를 간혈적으로 계속하는 기형적인 전쟁이었다. 이로 인해 막대한 인명피해가 휴전협상 기간에 일어났으며 특히 국군, 특히 중공군을 상대로 高地 공방전에 나선 육군이 입은 인명손실이 컸다.

    스탈린은 포로송환 문제를 빌미로 6·25전쟁을 장기간 끌었다.
    그 이유는 미국을 6·25전쟁에 묶어두려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강대국간의 권력정치에 약소국이 희생된 전형적인 예이다.
    6·25전쟁은 미소, 그리고 미중간에는 동서냉전 과정의 제한전쟁이었으나
    남북한 간에는 국가의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건 총력전이어서 한민족의 피해는 막심했다.
     6·25전쟁은 평화통일의 당위성을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값비싼 교훈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6·25전쟁은 불완전한 형태로나마 유엔의 집단안보체제가 실험된 최초의 예이다.
    애치슨은 당시 집단안보의 비효율성이 증명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유보적으로 말했지만, 한반도에서의 집단안보문제는 앞으로도 동북아의 평화체제 수립과정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를 준다.
    더 이상 고전적인 세력균형 이론만으로는 민족의 활로가 트이기 어려울 것이다. 
    도서명 : 『6·25전쟁과 미국: 트루먼·애치슨·맥아더의 역할』
    저 자 : 남시욱(전 문화일보 사장·현 세종대 석좌교수)
    출판사 : 도서출판 청미디어
    서울 강동구 진황도로 23, 101호 02-496-0155 
    발행일 : 2015년 6월 5일
    사 양 : 신국판 528쪽(화보32쪽 포함)/ 양장제책/ 2도인쇄/ 정가 25,000 원
    ISBN : 978-89-92166-8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