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기 실장, 본회의 직전까지 국회법 개정안 반대했지만 원내지도부가 무시
  • ▲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 ⓒ뉴데일리 DB
    ▲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 ⓒ뉴데일리 DB

     

    여야가 국회법 개정안을 처리하기 직전까지 청와대가 반대의 뜻을 누차 전달했지만,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이를 무시하고 처리를 강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청와대 관계자는 3일 오전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본회의에 앞서) 이병기 비서실장이 국회법 개정은 안된다는 뜻을 분명히 전했고, 설령 공무원 연금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더라도 국회법 개정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입장도 전달한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거듭된 반대에도 유승민 원내대표가 국회법 개정안 처리를 강행했다는 것이다.

    지난 29일 새벽 3시 57분, 심야에 졸속 처리된 국회법 개정안.

    여권 안팎에 따르면, 본회의가 열리기 몇 시간 전부터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공무원연금 개혁과 위헌 소지가 있는 국회법 개정안을 왜 연계시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새누리당 원내지도부에 직접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병기 실장은 여당 내 일부 율사(律士) 출신 의원들에게도 전화를 걸어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유승민 원내대표를 비롯한 원내지도부는 청와대의 반대 입장을 공유하지 않고 야당과 협상을 계속 진행했다.

    김무성 대표 측은 "본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된 뒤 이병기 실장의 항의 전화를 받고 나서야 청와대 입장을 제대로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김진태 의원을 비롯한 일부 율사 출신 의원들은 국회법 개정안의 위헌 문제를 피력하기도 했으나 찬반이 갈린 탓에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새벽까지 상황 파악을 위해 잠자리에 들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법 개정안이 처리된 후 여야는 "합의 정신을 이뤄낸 의미있는 성과"라며 또 다시 자화자찬을 늘어놨다. 성과주의에 눈이 먼 유승민 원내대표의 한계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 ▲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 협상을 위해 회동을 갖고 있다. ⓒ뉴데일리 DB
    ▲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 협상을 위해 회동을 갖고 있다. ⓒ뉴데일리 DB

     

    뒤늦게 국회법 개정안 처리 소식이 공개되자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국회법 개정안 처리로 인해 행정부 기능 마비 사태가 올 수 있다는 지적이 쇄도하자 친박(親朴)계 의원들은 "당청 조정할 원내대표가 갈등 부채질 하고 있다"고 유승민 원내대표를 정면 겨냥하고 있다. 엄중한 시기에 당청(黨靑)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유승민 원내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사이의 관계도 수상하다.

    여권 내부에서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엄호에 나섰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 처리에 대해 우려를 쏟아낸 데 대해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호들갑 떨지 않아도 된다"고 했고, 이춘석 원내수석부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삼권분립을 논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주장했다.

    유승민 원내대표도 '당청협의 회의론'를 언급한 청와대를 겨냥해 "어른스럽지 못하다"며 적반하장식 주장을 폈다.

    유승민 원내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이 사실상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여당 원내대표라는 사람이 문재인 대표를 비롯한 새정치민주연합의 거수기(擧手機) 노릇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기만 하다"고 꼬집었다.

    새누리당 이장우 의원은 "유승민 원내대표의 개인욕심과 개인정치에 매몰돼 있다는 게 문제다. 당청 갈등에 실질적인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할 원내대표가 도리어 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