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군 사라지자 자취 감춘 연고대생 600명..“北이 보낸 특수군” 주장
  • 지만원 시스템공학박사가 2일 오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18 광주작전에 참전한 북한특수군 3인조 얼굴]을 공개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지만원 시스템공학박사가 2일 오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18 광주작전에 참전한 북한특수군 3인조 얼굴]을 공개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1980년 5.18 광주사태 당시 무기고를 습격하고, 일사분란한 행동으로 정예 계엄군에 대항한 '600명의 연고대생'이 북한에서 보낸 특수군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를 뒷받침 하는 군 출신 탈북자들의 증언과 함께, 북한에서 공개한 '광주인민봉기 30돌 행사' 사진 속 인물들이 1980년 5월 언론사 사진기자들이 촬영한 일부 시민군의 얼굴과 일치한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대한민국대청소 500만 야전군>(대표 지만원)은 2일 오전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5.18 광주작전에 참전한 북한특수군의 사진을 공개하겠다며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날 지만원 박사는 5.18에 대해, “북한정권에 의해 남파된 600명 정도의 북한특수군이 국가전복을 목표로 광주시민을 선동해 일으킨 게릴라 폭동”이라며, “5.18은 여적사건이라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으며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역사적 진실”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5.18 당시 계엄군으로 광주에 있었던 11공수특전여단 출신 최 모씨(65)와 문 모씨(62)의 증언도 이어졌다.

    당시 특전여단 중대장이었던 최모씨는 “중대원의 1/3 정도가 전라도 출신이었고 광주가 고향인 사람도 몇 명 있었다”며, “당시 광주에서 떠돌던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 씨를 말리려고 한다’는 말은 억지를 넘은 유언비어”라고 증언했다.

    통신 부사관이었던 문 씨는 “부대원들이 광주에 도착한 뒤 M-16 소총의 ‘공이’를 빼서 반납한 기억이 있다”며, “진압장비는 헬멧과 진압봉 뿐이고 소총은 등에 매고 있을 뿐이었다. 고층건물 밑으로 지나가다가 시위대가 던지는 축대 쌓는 돌에 맞아 죽은 동료도 있었다”고 밝혔다.

  • 5.18 진압 증언하는 전 공수부대 요원 문 모씨.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5.18 진압 증언하는 전 공수부대 요원 문 모씨.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문씨는 1980년 5월 21일 시민군이 도청으로 행진하던 상황을 설명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군용 P-77 무전기에서 지휘관이 ‘여기서 밀리면 다 죽는다’고 절박한 목소리로 말했는데 정말 다 죽었다”며, “당시 도청 앞 분수대 주변은 사망한 진압군의 피로 물들었고 살려달라고 절규한 전우들의 목소리는 지금 이 시간에도 귀에 쟁쟁하다”고 말했다. 이어 문씨는 당시 광주에서는 귀를 의심케할만한 연설과 구호가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아수라장이 된 광주시내에서는 각종 선전문구와 함께 "이제 우리의 혁명은 끝났다. 진압군은 투항하라. 인민전선의 시민군은 해방됐다. 인민전선 지원군이 도착했다. 조선인민군만세"라는 내용의 귀를 의심케 하는 연설 구호가 이어졌다.


    지만원 박사는 1995년 7월 18일 서울지방검찰청과 국방부가 공동으로 발간한 ‘5.18관련사건 수사결과’와 1985년 안기부가 작성한 ‘광주사태 상황일지 및 피해현황’, 2006년 5.18기념재단에서 발간한 ‘5.18의 기억과 역사’ 등의 문건을 검토해 18개의 ‘스모킹 건(Smoking gun)’을 찾아냈다고 강조했다.

    ‘스모킹 건’은 어떤 범죄나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데 쓰이는 ‘결정적 증거’를 의미하는 단어다.

    특히 지만원 박사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불과 4시간만에 5,400여정의 총기를 탈취하고 다이너마이트 폭탄 2,100여개를 조립해 전남도청 지하실에 설치하는 등 게릴라 폭동을 주도한 ‘600명의 연고대생’이, 실제로는 북한이 6개월여에 걸쳐 침투시킨 특수군이라고 말했다.

  • ▲지만원 박사가 5.18 북한개입설을 연구하며 쓴 책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지만원 박사가 5.18 북한개입설을 연구하며 쓴 책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그러면서 지만원 박사는 “계엄군이 광주시내에 있었을 때는 이들 600명이 활약했지만 군이 시 외곽으로 철수한 22일부터는 증거를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철칙 때문에 복면을 하고 광주시민들과 어울리지 않았다”며, “당시 광주에는 (시민군이 탈취한) 4대의 장갑차를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장갑차를 운전해 유공자가 된 사람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지만원 박사는 위에서 언급한 각종 보고서를 인용해 “총상으로 사망한 광주시민의 70%가 무기고에서 꺼낸 총에 의해 숨졌다”며, “이는 남남갈등을 조장하기 위한 북한의 술책이었다”고 설명했다.

    지만원 박사는 80년대 서울과 광주에서 발생한 시위 기록을 보면, 북한책에 기술돼 있는 시위 전략·전술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1982년 ‘조국통일사’가 발행한 대남공작 역사책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에는 북한의 대남 시위전략이 나온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주력시위는 시내 중심부에서 벌여야 한다 ▲성토대회와 성명발표, 교내시위, 농성투쟁 등을 통해 공격을 실시한다 ▲모든 시위대는 집중과 통일된 행동을 통해 정치적 효과를 높여야 한다 등이다.

    이 책에는 ‘광주 반파쇼민주화투쟁에 대한 교훈’이라는 5.18 관련 글도 실려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광주인민봉기는 새로운 단계의 반파쇼민주화투쟁을 위해 귀중한 교훈을 남겼다.

    그 교훈은 첫째로 남조선인민의 해방투쟁 승리는 반미투쟁과 결합될 때만 확고한 것으로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청년학생운동과 로동운동과의 결합을 새로운 높은 단계로 심화 발전시켜야만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보다 광범위한 대중적 지반 위에서 반파쇼민주역량을 형성하고 그것을 조직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 ▲지만원 박사는 "5.18 당시 광주에 있었던 북한특수군 3명을 지난 2010년 5월 17일 평양 중앙노동자회관에서 열린 [광주인민종기 30돌 기념행사]에서 찍은 사진에서 찾았다"고 주장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지만원 박사는 "5.18 당시 광주에 있었던 북한특수군 3명을 지난 2010년 5월 17일 평양 중앙노동자회관에서 열린 [광주인민종기 30돌 기념행사]에서 찍은 사진에서 찾았다"고 주장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이에 대해 지만원 박사는 “1980년 5월에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시위들은 그저 산발적으로 발생한 시위가 아니라, 시위전략과 전술에 의한 북한 시위작전사령부의 일사불란한 지휘 하에 이뤄진 작전이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 5.18에 북한 대남전략기구가 개입했다는 탈북자들의 증언

    남한으로 망명한 故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와 김덕홍 전 여광무역사 총사장은 1998년 7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김덕홍: 북한 통일전선부에서는 분기에 한 번씩 강연을 하는데 광주문제를 자기네들이 한 것으로 이야기 합니다.

    황장엽: 북한 내부에서 대남사업을 내용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상식화돼 있다.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생활수준이 높아가는 한국에서 왜 데모나 운동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모두 북에서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남정책의 두 가지가 달라졌습니다. 하나는 남로당때와 같이 조직을 노출시키지 말라는 것. 그래서 지하당을 이중 삼중으로 만들어 누가 지도하는지 모르게 합니다. 둘째, 노동자나 군인보다는 학생들 속으로 들어가라는 겁니다. 

    김덕홍: 김일성종합대학 옆에 3호청사가 있다. 광주운동 이후에 3호청사 사람들이 표창을 많이 받았습니다.

    황장엽: 동생, 그런 얘기 했다가 또 혼이 나려고 그래?

    김덕홍: 형님, 우리가 이런 얘기 하자고 남한에 온 것 아닙니까. 여기 남한에 와서 꼭 하고 싶은 얘기를 해야겠습니다. 3호청사에 소속돼 있던 사람들이 광주민주화운동이 끝난 후 일제히 훈장을 받았습니다.

    내 친구들이 그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들도 광주민주화 운동 후에 훈장을 탔다고 축하술을 함께 마시면서 그들에게 직접 들은 겁니다.


    2006년 여동생, 딸 등과 함께 탈북한 전 북한특수군 출신 김명국(가명)씨의 증언도 5.18 북한 개입설을 뒷받침 하고 있다. 다음은 그의 증언을 요약한 것이다.

    “1980년 5월 19일 전남 광주시로 남파돼 작전을 수행하다가 5월 27일 북한으로 철수하던 도중 북한군 포 사격훈련장을 통과하다가 부상을 당했다. 1국기훈장 1급을 받고 5.18영웅대접을 받으면서 2003년까지 북한군 특전사 교관(중좌)으로 복무했다.

    …(중략)…광주봉기에의 북한군 침투총화(결산)가 6월 15일 김일성과 김정일의 직접적인 참석 하에 평양에서 열렸다. 남한에 침투됐다가 살아서 귀환한 군인, 전사한 군인 모두에게 공화국 영웅 칭호가 수여됐고 분견대 대장 2명은 조선인민군 교도지도국(특수전사령부) 작전부에 승급 배치됐다. 김일성은 소좌급민 분견대장들에게 대좌의 군사칭호를 수여했다.”

     

    ◆ 북한서 열린 광주인민봉기 30돌 행사,
    여기에 등장한 8명의 ‘광수(광주 침투 북한특수군)’

  • ▲지만원 박사가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공개한 사진자료.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지만원 박사가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공개한 사진자료.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지만원 박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2010년 5월 17일 광주인민봉기 30돌 행사가 평양 중앙노동자회관에서 열렸는데, 이날 행사장 로얄석에 앉은 3명과 1980년 5월 광주에서 사진기자들에게 찍힌 3인조가 동인 인물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지만원 박사는 이어 “김정은이 지난해 4월 15일 태양절 때, 군 간부들과 함께 김일성과 김정일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방문해 참배한 사진에서도 5명의 ‘광수’가 추가로 발견됐다”며, 5.18의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을 주도한 지만원 박사는 5.18에 북한 특수군 수백 명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주장을 거듭해왔다.

    지만원 박사는 이런 주장을 입증하기 위한 증거자료를 모으는데 상당한 공을 들였다. 최근에는 광주사태 당시 침투한 북한 특수군을 뜻하는 이른바 ‘광수’를 찾기 위해, 1980년 당시 광주 시민군들을 촬영한 사진과 북한이 공개한 각종 자료 등을 비교 분석하기도 했다.

    그 결과 지만원 박사는, 모두 8명에 이르는 ‘광수’를 찾았다고 밝혔다. 지만원 박사가 밝힌 ‘광수’의 정체에 관한 사진 자료는, 시스템클럽(http://www.systemclub.co.kr/)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다.

  • 시스템클럽(http://www.systemclub.co.kr/)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광수’(광주사태 당시 침투한 북한 특수군) 관련 자료. ⓒ 시스템클럽 홈페이지 캡처
    ▲ 시스템클럽(http://www.systemclub.co.kr/)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광수’(광주사태 당시 침투한 북한 특수군) 관련 자료. ⓒ 시스템클럽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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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기사]

    북한인권운동가 김주호 박사 “5.18 당시 북한 특수군 490명 침투했다”

    헉! 5.18 북한군 개입설 증거사진! 최초 공개

    北, 5.18 뒤 8월 함북 청진에 추모비 설치..비석 뒷면엔 158명의 이름이!


    기사 게재일자 2012년 10월 6일, 양원석 기자


  • ▲ 2012년 9월 27일 북한인권운동가인 김주호 박사가 공개한 함경북도 청진시 낙양동에 있는 '인민군영웅들의 렬사 묘' 사진.ⓒ


    5.18 광주사태 당시 1개 대대 병력의 북한군 특수부대가 김일성 전 주석의 지령을 받고 개입했다는 증거가 공개됐다.

    그 동안 5.18 사태 당시 남한 내 혼란과 적전분열을 목적으로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설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1990년대 들어서는 한국에 들어온 북한군 장교 출신 탈북자들이 같은 내용을 증언하면서 ‘5.18 북한군 개입설’에 대한 실체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왔다. 일부 탈북자들은 이같은 내용을 책으로 펴내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직접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아,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정동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김주호 박사(57, 북한난민보호협회 대변인)의 기자회견은 ‘5.18 북한군 개입설’에 대한 최초의 증거 공개라는 측면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김 박사는 이날 회견을 통해 두 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공개된 사진은 북한에 있는 ‘인민군영웅들의 렬사 묘’를 촬영한 것으로, 이날 기자회견을 주관한 행사 관계자는 북측 인사가 전해 준 것이라고 밝혔다.

    김 박사는 "이 사진이 5.18 사태 당시 남한에 침투했다가 사망한 북한군 정찰국 소속 특수부대원들을 위한 ‘가묘’"라고 설명했다.

    김 박사에 따르면 함경북도 청진시 낙양동에 있는 ‘렬사 추모비’는 광주사태 직후인 1980년 8월 세워졌으며 1998년 2월 8일 새로 단장됐다. 현재 ‘인민군영웅들의 렬사 묘’는 일반 북한 주민 누구나 출입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비석의 뒷면을 찍은 사진에는 ‘홍성표’, ‘리진혁’ 등 모두 158명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홍성표 리진혁 등 외 332명의 인민군 영웅 렬사들이 잠들고 있다”
     - '렬사 추모비' 뒷면


  • ▲ '인민군영웅들의 렬사 묘' 뒷면 사진.ⓒ


공개된 사진과 김 박사의 설명을 종합하면 80년 광주사태 당시 남한에 침투한 북한군은 이름이 밝혀진 158명을 비롯 모두 490명이다.

“비석에 이름이 새겨진 158명이 ‘남조선혁명투쟁에서 희생된 인민군 영웅들’이라는 사실을 각기 다른 문건에서 중복 확인했다”

“사망자의 ‘죽은 날’로 기록된 1980년 6월 19일은 소속부대의 광주남파작전 종결일로, 사망일을 이 날짜에 맞췄다”
  - 김주호 박사


김 박사는 이번에 공개한 사진이 ‘5.18북한군 개입설’을 증명하는 증거의 일부라며 광주시민의 억울한 희생을 강요한 가해자에 대한 실체규명을 거듭 강조했다.

“북한군 개입 증거발표로 우리의 공적(公敵)이 북한임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

“북한이 펼친 대남공작의 진실을 밝혀 광주시민에게 2중 3중의 고통과 억울한 희생을 강요한 가해자의 정체를 가려내야 한다”


김 박사는 이날 증거 공개가 "사건의 실체규명을 위한 것으로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돼서는 안 된다"며 정치적 해석을 경계하기도 했다.

“이번 발표는 국민대화합과 국민대통합을 위한 것. 우리 내부의 새로운 갈등과 대립, 불화와 반목의 불씨가 돼서는 안 된다”


이날 발표에 대해 회견 참석자 중 일부는 사망자의 숫자가 너무 많다며 의구심을 표하기도 했으나, 김 박사는 확실한 자료와 근거에 따른 숫자라며 사진의 신뢰도에 문제가 없다고 답변했다.

“확실한 자료와 근거에 입각한 숫자이기 때문에 많다 적다 단정하기는 곤란하다”

“광주 인근 야산에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신 수백여구가 암매장됐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오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사망자 명단이 늘어 날 가능성도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서석구 변호사 역시 공개된 사진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 평가했다.

“공개 사진과 증거자료를 살펴 본 결과 이 정도면 법적인 증거력을 갖는데 하자가 없을 것으로 본다”

“일반국민이 쉽게 납득할 수 있도록 추가 증거와 자료를 보강해 누구도 부정하거나 반론을 펴지 못 하게 되길 바란다”
 
- 서석구 변호사


회견 후 김 박사는 추가 자료공개와 관련해 일부 자료에 대한 보강이 필요하다며 조만간 2차 공개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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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심재율 칼럼] 박용진 대변인, 예민한 반발 이유는?

5.18에 진짜 [북한특수군] 6백명 개입했다면?

"북한군 개입했다고 5.18 의미 퇴색도 민주당 피해보는 것도 아니다!"


기사 게재일자 2013년 5월15일, 심재율 기자 




  • 며칠 지나지 않아 5.18 광주민주화 운동 기념일이 다가온다.

    정치인들은 광주로 달려갈 것이고, 안철수도 호남의 사위임네 하고 기웃거릴 예정이다.
    수많은 기념식이 열리고 애도를 표시하는 행사가 마련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아픔을 당하면서 고통을 겪은 우리시대의 비극이니 당연하다.

    그런데, 아직도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벌어진 무력충돌의 원인이 북한 특수군 개입이란 주장이 식지 않고 있다.

    어떻게 시민군이 4시간만에 전라남도 전역에 있는 30여곳의 무기고를 털 수 있는지, 시민들은 무장하지 않았다는 증언이 나오는데, 그렇다면 무장전투를 벌인 사람들은 누구인지, 아직도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 시신 66명의 정체는 무엇인지 하는 것이다.

    지난 13일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에서 다시 이 문제를 제기했다. 
    5.18때 북한특수군 600명이 동해, 서해 및 땅굴로 3차례에 걸쳐 침투해서 5.18때 무장책동을 벌였다는 것이다. 

    북한특수부대 장교 출신 탈북자 임천용(자유북한국인연합대표)씨와 이주천 원광대사학과 교수가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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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들은 탈북자들의 잇단 증언 및 시민군 증언, 북한 정권이 5.18을 기념하는 이유 등을 북한군 개입의 근거로 들었다.

    북한특수군이 개입했다는 주장은 그저 유언비어라고 묵살하기에는 근거들이 적지 않다. 

    TV조선은 지난달 22일에도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한국망명을 취재했던 김용삼 전 월간조선 기자를 출연시켜 북한 개입설을 보도했다. 
    김씨는 황장엽 메모를 근거로 역시 북한특수군이 개입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황장엽 메모 중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내용은 두가지이다.

    [조선노동당 대남부서에 소속된 상당수가 
    광주민주화운동 끝난 후에 일제히 훈장을 받았다.] 

    [광주 문제도 그들을 뒤에서 사주한 북의 공명주의자들이 책임전가한 일이다.]


    이 외에도 지금 공개된 상태로 떠돌아다니는 북한개입 주장은 너무나 많다. 
    그리고 그들이 제기하는 의문점들도 상당한 근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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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쯤되면 정부나 좀 더 객관적이고 공식적인 창구가 진짜 원인을 규명하도록 나서야 하지 않을까.


    만약, 북한특수군이 개입해서 비극적인 참사가 일어난 것이 사실이이라면, 무엇이 달라질까?

    1. 원인제공자가 대한민국 국내에서 북한 김일성 정권으로 바뀐다. 
       당연히 전두환 전 대통령과 당시 계엄사령부에게 씌워졌던 1차 책임도 상당부분 희석된다. 
       물론 전두환 당시 계엄사령관이 계엄을 선포했기 때문에 그 긴장관계를 비집고 북한 특수군이 
       공작을 벌였다는 주장이 나올 수는 있다. 

    2.계엄군으로 참가한 군대는 시민을 상대로 발포했다는 치명적인 오명에서  벗어나 명예
      회복의 길이 열릴 것이다. 


    3. 일부 정치인들은 입장이 곤란해질 지 모른다. 
       광주민주화 운동을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강화하는 데 활용했다면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TV조선의 13일 보도에 대해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은 14일 즉각 반발했다. 
    TV조선이 유언비어를 계속 확대재생산 한다며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박용진 대변인이 성명서까지 민주당 웹사이트에 올려놓고 이렇게 적극 반발하는 것은 옳지 않다. 
    북한군 개입설은 한두사람이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요컨대, 제대로 조사만 해보면, 진짜 북한 특수군이 개입했는지 아닌지는 의지만 있으면 빠른 시일안에 밝혀낼 수 있다.

    북한 특수군이 개입했다고 해서 5.18민주화운동의 정신과 희생의 가치는 달라지지 않는다. 
    희생자들은 이 나라의 민주화탄생에 피를 흘렸으며, 그 사건으로 대한민국의 민주화가 빨라졌다는 점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특수군 개입이 사실로 드러난다고 해서 민주당이 피해보는 것도 아닌데, 박용진 대변인은 왜 저리 나선단 말인가?

    임천용씨의 발언에 귀를 기울여보자.

    "북한은 5.18에 북한 특수군을 보내 대한민국을 이간질시켰다. 
    그리고 그것이 먹혔다. 

    국가를 정상적으로 바로 세워야 하지 않는가?"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 성명서

     5.18 진실 왜곡하는 유언비어 유포한 TV조선에 강력 항의한다
      
    어제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이 탈북인사 등을 출연시켜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왜곡하는 충격적인 유언비어를 유포한데 대해서 강력 규탄한다.
     
    탈북인사인 임천용씨는 “북한군 1개 대대가 들어왔다”, “광주시청을 점령한 것은 시민군이 아니고 북한에서 내려온 게릴라다”는 등 참을 수 없는 유언비어를 쏟아냈다. 
     
    광주민주화운동은 1980년 계엄군의 유혈진압에 맞선 광주시민들이 전개한 민주항쟁으로 계엄군의 유혈진압에 사망 218명, 행방불명자 363명 등 총 7,200여명의 피해를 낳았다. 
     
    그러나 1998년 국회 청문회를 통해 진상이 밝혀지기 시작했고 1990년과 1995년 관련법이 제정되어 피해자 명예회복과 보상·기념사업,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 가해자에 대한 법적 처벌이 이루어졌다.
      
    또한 민주주의의 소중한 역사이자 과거사 청산의 훌륭한 선례로 1997년 이후 국가기념일로 추모되고 있다.
     
    그런데 과거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에 정권에 의해 유포됐던 유언비어들이 21세기에 탈북인사의 입을 통해서 되살아나고 있다는 점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TV조선이 이 같은 역사 날조의 유언비어를 방송한데 대해서 강력항의하며, 이 같은 발언이 TV조선의 공식입장인지 묻는다. 또한 TV조선에 공식적인 사과를 할 것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