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래(傳來) 처방... “狂犬之藥 角口木也”
    궁민(窮民)들은 광견병(狂犬病) 예방주사를 맞자!

    이 덕 기 / 자유기고가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 반도(半島)에 한 나라가 있었다.
    고래(古來)로 보신탕을 좋아하는 궁민(窮民)들이 정겹게 살아 왔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이 나라에도 사람과 동물들이 살고 있으며,
    조폭(組暴)도 있고 사기꾼도 있다. 
  이 나라 수도에 큰 강을 끼고 육지와 연결된 섬이 있다. 이름하여 ‘너의도’.
이 섬에 들어서면 대부분의 사람과 동물들이 자기만 챙기는 못된 습성이 생긴다하여
예로부터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이 섬에서는 이 나라 궁민(窮民)들이 4년 계약직으로 새(鳥)를 키운다.
들판의 메뚜기, 산의 송충이 등등 해로운 벌레들을 잡으라고...
그리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어 궁민(窮民)들에게 희망과 즐거움을 주라고.

  헌데 이 ‘너의도’의 새(鳥)들은 언제부터인지 메뚜기·송충이 등 벌레는 외면하고,
주인인 궁민(窮民)들의 곳간만 털어 먹는 습관이 생겼다.
 더군다나 애써 주인이 기른 알곡은 물론이거니와 고기까지 처 먹는다. 

  그리고는 하는 짓이라고는 편을 갈라 목청껏 싸움질이다.
너는 매파니 나는 비둘기 파니, 나는 왼쪽 날개뿐인데 왜 너는 오른쪽 날개도 퍼덕이냐면서.
말 싸움이야 잦을 날이 없고, 때로는 멱살잡이도 잘 한다.
또 “우리 편은 새(鳥)무리고 너희는 새(鳥)연합”이라며 끼리끼리 모이는 건 좋은데,
자기 편끼리도 수시로 티격태격이다. 
  •   그래도 먹이 앞에서는 항상 사이좋게 토닥토닥이며, 목숨은 엄청 질기다.
    그 추운 겨울의 조류독감(鳥類毒感)에도 무사하다. 계약기간이 만료되기 전까지 여간해서는
    ‘살(殺) 처분’도 안 당한다. 재수 좋은 놈은 ‘너의도’에 붙밖이 둥지를 틀고 계약기간을 늘려가며
    알곡과 고기로 배를 불린다. 거기다가 대부분의 새(鳥)들이 먹성 좋고 위(胃)도 튼튼해서
    잘 체하지도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궁민(窮民)들이 화가 참을 수 없을 만큼 많이 났다.
    잡으라는 벌레는 잡지 않으면서, 계속해서 시끄럽게 쌈박질만 해대자,
     계약기간과 상관없이 모조리 ‘살(殺) 처분’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하는 꼬라지를 봐 주는 것도 한 두 번이지, 도저히 못 참겠다는 거다. 

      그러자 이 새(鳥)떼 중에 우두머리 격인 몇몇이 머리를 맞대고 수근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제 됐다는 듯이 새(鳥)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새(鳥)들이 모이자, “궁민(窮民)들의 시선도 있고 하니, 우리가 참신하게 변신을 합시다. 앞으로는 싸우더라도 시끄럽게 지저귀지 말고, 우렁차게 짖어 봅시다”하는 것이 아닌가. 

      지켜보던 궁민(窮民)들이 무슨 꿍꿍이 속인가 하고 의아해 하고 있는 찰라,
    갑자기 ‘다 낡아빠진 개가죽(개革)’을 꺼내 뒤집어 쓰는 것이 아닌가.
    드디어 ‘너의도’의 새(鳥)떼가 개(犬)떼가 되는 순간이다.
  •  이어서 내 뱉는 말이 “우리는 나라(國)의 개다. 앞으로는 ‘나라 개’(國개)가 다 한다.
    싸움을 하면 개(犬)싸움이고, 판을 벌려도 개(犬)판이다. 우리가 하는 일에 간섭하지 마라”며
    주인을 물어 뜯을 듯이 달려드는 거다. 

  •   이를 본 궁민(窮民)들은 한편 놀라고, 한편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쑥덕이기 시작했다.
     “이게 왠 돌연변이? 아니 원래 유전자가 그런 족속들이었나?”라며, 쓴 웃음과 함께
    “갑자기 때 이른 더위가 와서 미쳤나 봐”... 하지만, 계약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잠시 잊고 있었다. 새(鳥)가 개(犬)된들 계약기간이야 어디 가겠는가?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 와중에, 정신을 차린 여러 궁민(窮民)들이
     미친 개(犬)가 된 새(鳥)떼들을 어찌 다룰 것인가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론이 잘 나질 않는다.
    한편에서는 계약기간 만료까지 기다렸다가 개가죽(개革)을 벗겨 모조리 ‘살(殺) 처분’을 하자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날도 더워지고 복(伏)날도 다가오니 이 참에 지금 개(犬) 상태로 삶아 보신탕을 해 먹자고 우긴다.
  •   물론 두 방법 모두 실행 가능성은 제로였지만, 갑론을박(甲論乙駁) 끝에 보신탕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자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친다. “미친 개(犬)로도 보신탕을 해 먹을 수가 있나요?”
    모두들 아차 싶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바다. 그래서 전문기관에 묻기로 했다. 

      『질병관리본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두 곳에 전화를 걸었다.
    “미친 개(犬)로 보신탕을 끓여도 인체에 해(害)가 안될까요?”
    그런데 담당자들 하는 말이 “요즘 저희가 ‘메르스(MERS)’라는 고약한 ‘낙타 독감’ 때문에
    ‘개(犬)’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거든요. 그리고 여러 실험이 필요해서 당장 답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휴대폰 문자로 답을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곳에서 짧지 않은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미친 개(犬)로 보신탕을 끓여 먹었다는 보고는 받아 본 적이 없지만,
    만약 그렇게 해 드시더라도 사전에 광견병(狂犬病) 예방접종은 해야 할 거라는 게 전문가의 의견입니다”[식품의약품안전처]

      “미친 개(犬) 보신탕으로 인한 인체 유해 여부는 잘 모릅니다.
    단 ‘미친 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다’(狂犬之藥 角口木也)는 처방이
    동의보감(東醫寶鑑) 시절부터 전해 오고 있답니다”[질병관리본부]
    <더   끼>

    # 후기(後記) : ‘너의도’ 새(鳥)떼 중에는 해로운 버러지도 잘 잡을 뿐 아니라,
    아름답고 바른 소리를 내는 새(鳥)들도 있단다. 많지는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