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변당한 비노 인사들 곁에서 반대 계파 절멸 의도 드러내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추도식에 참석해 새누리당 문재인 대표최고위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뒤에는 김한길 전 대표가 앉아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추도식에 참석해 새누리당 문재인 대표최고위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뒤에는 김한길 전 대표가 앉아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타계 6주기를 맞이한 봉하마을에 '통합과 단결의 정신'은 간데 없고 문재인의 친노패권주의만 남았다.

    열렬 지지자들의 환호에 둘러싸인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상기된 표정으로 "친노, 비노라는 이야기가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내질렀다. 반면 문재인 대표와 각을 세우고 있는 새정치연합의 김한길·박지원·안철수 의원과 무소속 천정배 의원은 수모를 겪어야 했다.

    문재인 대표는 23일 봉하마을에서 쏟아지는 지지와 환호성에 휩싸였다. 열성 친노 지지자들은 헌화와 분향을 마치고 권양숙 여사의 사저로 이동하는 문재인 대표와 손 한 번이라도 맞잡기 위해 난리였다. 문재인 대표를 향해 서로 다투어 팔을 뻗고 옷깃을 움켜쥐느라 안전사고가 우려될 정도였다.

    4·29 재보선 참패 이후 당내에서는 '책임론'을, 당밖에서는 싸늘한 민심을 마주해야 했던 문재인 대표로서는 간만의 잔칫날 분위기였다. 지난 4일 광주공항에서 시위대를 피해 귀빈 통로로 달아나고, 17~18일에도 광주에서 성난 민심을 마주했으며, 당사 앞에서는 '대표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대가 진을 치고 있는 것과는 영 딴판이었다.

    문재인 대표도 간만에 만난 열렬 지지자들의 연호에 상기된 듯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권양숙 여사의 사저에 들어서기에 앞서 취재진을 상대로 메시지를 발표했다.

    문재인 대표는 "정권 교체를 하지 못한 것만으로도 통탄스러운 일인데 다시 친노 비노, 노무현의 이름을 앞에 두고 분열하고 갈등하는 모습이 부끄럽다"며 "(노무현) 대통령께서 어떤 심정일까 싶다"라고 '유체 이탈 화법'을 펼쳤다.

    지난 대선에서 패배해서 정권 교체에 실패한 당사자도 문재인 대표 본인이고, 친노~비노 간의 분열을 극한 양상으로 끌고 가고 있는 것도 당권과 공천권 등 기득권에 집착하는 본인 때문인데, 무언가 다른 탓이 있는 양 고인의 이름을 앞세워 "부끄럽다"고 평한 것이다.

    이어 "앞으로 내가 당대표를 하면서 당내에서 친노 비노 이런 계파 이야기가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며 "친노패권주의라는 말이 당내에서 사라지도록 하겠다고 다짐한다"고 강조했다.


  •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전 대표, 전병헌 최고위원, 김한길 전 대표, 유승희 최고위원, 문재인 대표, 이종걸 원내대표(사진 왼쪽부터) 등이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추도식에 참석한 뒤 묘역으로 이동해 헌화하고 있다. 이후 비노 계열 인사들은 퇴장하는 과정에서 봉변을 당했다. ⓒ연합뉴스 사진DB
    ▲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전 대표, 전병헌 최고위원, 김한길 전 대표, 유승희 최고위원, 문재인 대표, 이종걸 원내대표(사진 왼쪽부터) 등이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추도식에 참석한 뒤 묘역으로 이동해 헌화하고 있다. 이후 비노 계열 인사들은 퇴장하는 과정에서 봉변을 당했다. ⓒ연합뉴스 사진DB

    '당대표를 하면서'라는데 방점을 찍음으로써 당내 일각에서 제기하는 '책임론'과 사퇴 주장에 선을 긋는 것은 물론 본격적으로 비노 세력을 절멸(絕滅)시키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비노(非盧, 비노무현)를 완전히 없애버림으로써 친노(親盧, 친노무현) 일색으로 당을 통일해, 더 이상 패권주의라는 비판이 나오지조차 않게 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날 지지자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둘러싸이면서 역시 민심은 자신의 편에 있다는 오판과 독선이 심해진 것은 아닌가 하는 분석이다.

    반면 당의 혁신과 친노패권주의 철폐를 주장하며 문재인 대표와 각을 세우고 있는 비노 인사들은 이날 묘역에서 수모를 면치 못했다.

    내빈 소개 과정에서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호명되자 일부 추도식 참석자들이 거친 고성을 쏟아냈다. 이에 사회를 맡은 김은경 전 청와대 행사기획비서관은 "소리를 질러 당황스럽다"며 "추도식인만큼 분위기에 맞게 손님을 맞아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인사들이 헌화를 마치고 묘역에 나설 때, 친노 성향 참석자들은 이들을 향해 물을 끼얹고 흙을 던지며 욕설과 야유 세례를 하는 등의 행동을 했다. 김한길 전 대표는 물을 맞고 어깨에 흙이 끼얹어졌으며, 천정배 의원도 물벼락을 뒤집어썼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를 향해서는 "뒷담화를 하지 말라"며 거센 욕설이 가해졌으며, 안철수 전 대표에게도 야유가 쏟아졌다.

    김한길 전 대표는 지난 20일 발표한 '당원 동지들께 드리는 글'에서 적개심과 공격성, 편가르기야말로 친노패권주의의 전형이라고 예시한 바 있다. 이날 친노 성향 참석자들이 보여준 이런 행태야말로 전형적인 친노패권주의라는 지적이다.

    말로는 통합과 단결을 외치면서, 다른 생각·다른 목소리를 가진 세력을 용납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6주기를 맞이한 5·23 노무현 추도식은 문재인 친노패권주의의 철옹성으로 변질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봉변을 당한 김한길 전 대표는 이날 김포국제공항 청사에서 취재진을 만나 "그렇게 더웠는데 물 좀 뿌려줬으면 좋지"라고 농을 던지면서도 "솔직히 별로 시원한 것은 못 느끼겠더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날 전남 여수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주승용 최고위원이 분당(分党) 가능성을 우려한 것에 대해 "그러면 안 된다"면서도 "그러니 (문재인 대표가) 잘해야 한다. 당을 이끌고 있는 사람이 친노든 비노든 다 우리 편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