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주요 임원 대해부

'위안부' 전문 [정대협] 이끄는 사람들 알고보니...

정재욱 미래한국 기자 | 최종편집 2015.05.15 19: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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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을 움직이는 사람들

[추적]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주요 임원 대해부


정재욱 미래한국 기자  jujung19@naver.com



2011년 12월 정대협, ‘김 국방위원장 서거라는 급작스러운 비보에
북녘 동포들에게 깊은 애도를 전한다’는 조전(弔電) 북측 전달

● 윤미향 상임대표의 남편, 1994년 남매 간첩단 사건으로 징역 4년을 선고 받은 

   김삼석 씨

● 손미희 대외협력위원장 남편 한충목 씨, 맥아더 동상 철거집회 등 각종 反美

   투쟁 주도하다 실형

● 손미희 대외협력위원장은 40여 차례 訪北, 통진당 해산 결정 반대 시위,

   김정일 조문 주장

● 정대협 간부들 중 일부는 정권 퇴진, “박근혜 여성대통령 자격 없다”는
   대국민 호소문 발표 등 시국활동에 적극 참여

지난 4월 29일(현지 시각)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일본 총리 사상 최초로 미 의회 상하원 합동 연설을 했다. 이에 앞서 4월 27일에는 미·일 양국이 군사협력의 범위를 일본 주변 지역에서 세계적 차원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했다.

미국과 일본의 관계가 ‘신(新)밀월’이라 불릴 정도로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는 반면, 한국은 소외되는 형국이다.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 안보의 핵심인 한미동맹마저 일본과의 소원한 관계 때문에 삐걱거리고 있다.


그런데 이번 아베 총리의 미국 방문의 또 다른 주연도 행사장 주변에 자리하고 있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인솔하여 간 워싱턴 정대협이다.
이들은 하버드대학, 미 의회 등 아베 총리 일행을 따라다니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정대협 즉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한일 관계에선 이번 행사뿐 아니라 줄곧 정부를 대신하여 주인공 역할을 담당해 왔다. 최근 우리 정부의 대일(對日) 외교정책이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이라는 정대협이 만들어놓은 원칙의 틀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 11월 발족한 정대협이 위안부 문제를 의제화하고 국내외적으로 공론화한 성과를 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에 대한 정대협의 ‘무릎 꿇리기’ 식 태도와, 이런 정대협의 대일 운동에 끌려 다니는 우리 정부의 정책은 한일 관계와 한미 동맹의 악화를 초래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386 운동권이 정대협 조직의 실무 주도

그래서 궁금해졌다.
정대협은 과연 과거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인권 개선을 위해 활동하는 순수한 시민단체인가? 아니면 다른 목표가 있는 운동단체인가?
이런 의문은 정대협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문제 해결인지,
아니면 한국과 일본의 ‘결별’인지의 문제로 연결된다.

정대협은 1990년 한 신문에 ‘정신대 원혼의 발자취 취재기’를 연재하며 우리 사회에 위안부 문제를 알린 윤정옥 이화여대 교수와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였던 이효재 이화여대 교수가 공동 대표로 참여, 37개 여성단체를 회원으로 1990년 11월 설립됐다.

이렇게 시작한 정대협은 일본 정부에 대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상 규명과 사죄를 촉구하는 동시에 국제 사회에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데 주력했다. 성과도 잇따라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과 배상을 권고하는 유엔 쿠마라스와미 보고서(1996년), 맥두걸 보고서(1998년), 미 하원 결의(2007년) 등을 이끌어냈다.

학계와 여성계의 주요 인사들이 참여해 출범한 초창기 정대협은 대부분의 단체처럼 조직 운영과 실무는 청년 활동가들이 주로 담당했다. 이때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는 1980년대 초반 학번, 이른바 386 운동권들이 대거 실무 활동가로 정대협 소속 또는 비소속으로 참여하게 된다.

본지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이들은 학원 운동과 노동 운동에 적극 가담한 운동권 핵심 출신들이었다. 중요한 점은 현재 정대협의 실행이사들 대부분이 이런 경력을 더 심화하여 다른 사회운동단체에도 소속되어 활발한 정치·사회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정대협 주요 임원의 배우자들이 간첩 혐의로 기소되거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 생활을 했던 친북 좌파 성향의 운동가다. 남편은 친북 성향 활동가로, 아내는 여성운동가로 문화운동을 하는 ‘분업 운동’ 형태를 구축한 셈이다. 다시 말하면, 정대협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인권만을 위해 존재하는 순수한 단체는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정대협 홈페이지를 보면 윤미향·한국염·김선실 공동대표를 포함해 손미희 대외협력위원장, 정태효 생존자복지위원장 등 11명의 실행이사가 있다. 먼저 실행이사들의 주변 인물을 살펴보자.

윤미향 상임대표의 남편 김삼석 씨의 행적

한신대 출신의 윤미향 현(現) 상임대표는 1992년 1월 정대협의 첫 정기 수요 집회 때부터 간사로서 실무를 담당한 정대협 역사의 산 증인이자, 최근 정대협의 활동을 실질적으로 주관하고 있는 인물이다. 지난 2007년부터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그런데 윤미향 대표의 주변 인물 가운데 세 명이 간첩 혐의로 재판을 받은 바 있다.

윤미향 대표의 남편은 지난 1994년 남매 간첩단 사건으로 징역 4년에 자격정지 4년을 선고 받은 김삼석 씨다.

한국외국어대 출신인 김 씨는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 동맹 폐기를 주장하는 좌파 단체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의 전신인 ‘반핵평화운동연합’의 정책위원을 하던 지난 1993년 일본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나 금품을 수수하고, 북한 공작원 지시에 따라 국가기밀을 탐지·수집한 혐의 등으로 국가안전기획부에 체포됐다.

이 사건은 주요 가담자였던 백흥용이 독일 베를린에서 “나는 안기부 프락치였고 허위 자백을 했다”라고 발언함으로써 조작설에 휘말렸다. 당시 권영해 안기부장은 1995년 1월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백흥용이 안기부 정보원으로 일한 사실이 있으나, 남매간첩단 사건 전인 1993년 2월 안기부에서 해고당했다”면서 “김삼석 남매는 경중의 차이는 있으나 간첩인 것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백흥용은 이후 본인이 배신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북한으로 탈출함으로써 그의 ‘베를린 양심선언’도 진실성이 의심받는 상황이 됐다.

현재 수원시민신문 대표인 김삼석 씨가 실제 간첩이었는지 여부는 분명치 않다. 다만 1997년 출소 이후 그의 활동을 살펴봄으로써 간접적으로나마 그의 성향을 짐작할 수는 있다.

군사평론가라는 직업으로도 활동하는 김 씨는 지난 2004년 10월 좌파 인터넷 매체 ‘통일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국가보안법이 적대시하는 것은 이남의 통일·진보세력이자 동시에 이남의 동족인 이북인 점이다. …진정한 과거청산의 대상은…국가보안법 철폐와 주한미군 철수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글을 보면 적어도 국가보안법 철폐와 주한미군 철수가 그의 신념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지난 2001년 한 대학신문 홈페이지에 게재한 자신의 저서 ‘반갑다 군대야’의 홍보글에선 이 책을 ‘식민지’ 청년 학생들이 입대 전에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소개하면서 우리나라를 식민지라고 밝히고 있다.

김삼석 씨의 이름은 그와 한국외대 동문이며 내란선동 혐의 등으로 징역 9년을 선고받은 이석기 씨의 재판에서도 등장한다. 김 씨가 ‘미국은 남한에 민족해방과 자주통일을 향한 한반도 민중의 자주적인 진출을 억누르기 위한 탄압도구로 동족 간에 적으로 규정하는 국가보안법 체계를 둠으로써 식민체제를 마음껏 요리해 왔다’고 주장한 글이 이석기 씨 등이 소지한 이적 표현물의 증거로 제시됐다는 사실이 법원 판결문을 통해 드러났다.

이런 식으로 대한민국을 미국의 식민지로 간주하고, 국가보안법 철폐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김 씨는 4년간 복역한 뒤 출소 직후인 1999년 2월 김대중 대통령 취임 1주년 특사로 사면·복권됐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 5월 2기 의문사위(委) 출범 때 조사관으로 들어갔다. 그는 군 관련 사건을 다루는 조사3과에 근무하며 군(軍) 사령관, 국방부 장관을 지낸 예비역 장성을 조사하고, 현직 기무사령관에게 다섯 차례나 출석요구서를 발부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김 씨는 또 “국가안전기획부의 공작으로 간첩사건에 연루된 자신을 간첩으로 표현해 명예를 훼손당했다”면서 2004년 8월 10일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김대중 조선일보 이사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고, 박 대표와 김대중 이사, 조선일보를 상대로 총 9000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김삼석 씨와 함께 남매 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를 받았던 여동생 김은주 씨, 그리고 김은주 씨의 남편, 즉 김삼석 씨의 매제이자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의 시매부인 최기영 통합진보당 진보정책연구원 정책기획실장은 일심회 사건으로 체포돼 2007년 12월 징역 3년6월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일심회 사건은 2006년 10월 서울지검 공안1부가 일심회라는 단체를 북한 공작원과 접촉한 혐의로 적발했던 사건이다. 법원은 일심회가 단체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적단체 결성죄는 무죄를 선고했으나, 관련자들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는 인정했다.


손미희 위원장 남편 한충목 씨의 행적

윤미향 대표와 함께 정대협 초기부터 수요 집회 등 실무에 적극 참여한 손미희 정대협 대외협력위원장의 남편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역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차례 구속된 바 있다. 특히 한 대표는 지난 2004년 인천 맥아더 동상 철거집회 등 각종 반미(反美)투쟁을 주도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9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

한 대표는 ‘2004년 12월부터 2007년 11월까지 중국과 북한 개성에서 북한통일전선부 소속 공작원 등을 만나 주한미군 철수 투쟁의 전면화와 탈북 귀순한 황장엽 전(前) 북한 노동당 비서에 대한 응징 지령 등을 받고 이를 실행에 옮긴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법원은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북한 공작원을 만나 지령을 받은 혐의(회합·통신) 등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2007년 창립하여 한충목 씨가 공동대표로 있는 한국진보연대는 강령에 한미동맹 청산과 주한미군 철수가 포함돼 있는 데다, 2010년 6월 무단 방북해 북한을 찬양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던 한상렬 목사가 상임고문으로 있다.

이 단체는 최근에는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 결정된 옛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반대하는 운동을 주도했다. 다른 좌파단체들과 연합해 지난 2013년 11월 ‘민주수호 통합진보당 강제해산반대 범국민운동본부’를 발족하고 기자회견과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이 통합진보당 강제해산반대 국민운동본부에는 손미희 위원장이 상임대표로 있는 전국여성연대도 참여하고 있고, 손 위원장 본인도 한때 한국진보연대의 공동대표를 맡기도 했다.

한국민주청년단체협의회 등에서 부인인 손미희 정대협 대외협력위원장과 학생 운동을 함께 해온 한충목 씨는 국가보안법 철폐·주한미군 철수·남북연방제를 주장하는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의 집행위원장,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공동운영위원장, 미군 장갑차 여중생 고(故) 신효순 심미선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 등을 맡으며 반미 좌파운동의 최일선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했다.

또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수차례 방북한 바도 있다.
최근에는 지난해 6·4 지방선거에서 옛 통합진보당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신미숙 정대협 실행이사(이미경 새정치민주연합 보좌관)의 남편 최동진 씨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 신 이사의 남편은 최동진 전(前)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편집위원장으로, 지난 2013년 2월 법원에서 북한을 찬양하는 서적 등 이적표현물 500여 점을 소지·배포한 혐의 등으로 징역 2년 자격정지 2년을 선고 받았다.

최 씨는 그 이전인 2012년 6월 범민련 전현직 간부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선고공판에서 재판부가 실형을 선고하고 보석 청구를 기각하자 방청석에서 재판장에게 “개XX, 너 죽을 줄 알라”며 욕설과 함께 “법관이 아니라 민족의 반역자”라고 외치며 재판부를 향해 돌진하는 소동을 벌였다.

정리하면 정대협 실행이사 11명 가운데 상임대표를 포함한 3명의 주요 임원의 배우자가 간첩 혐의로 기소되거나 국가보안법 위반 행위로 실형을 선고 받았다. 정대협 실행이사 본인들의 좌파 활동가적 전력과 운동 역량도 배우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 대부분은 다른 좌파 단체의 주요 임원을 겸직하며 정치·사회 운동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손미희 대외협력위원장 40여 차례 방북, 김정일 조문 주장

손미희 정대협 대외협력위원장은 전국여성연대 상임대표를 겸임하고 있다. 전국여성연대는 지난 2013년 11월 정부가 옛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청구하자 ‘민주수호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반대 범국민운동본부’에 참여하여 옛 통진당의 해산을 반대했고, 2014년 12월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을 앞두고 손미희 대표가 해산 결정 반대 1인 시위를 했다.

2013년 3월에는 ‘한미연합 키 리졸브 군사연습 중단 및 평화협상 촉구 여성 기자회견’을 했고, 2011년 12월에는 “전국여성연대는 12월 17일 북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작스러운 서거를 접하여 애도의 뜻을 표한다”며 조문 방북을 불허한 정부에 대해 ‘민간조문단 방북불허, 남북관계 파탄 이명박 정부 규탄 전국여성연대 기자회견’을 했다. 이날 기자회견문을 낭독한 사람이 전국여성연대 상임대표인 손미희 정대협 대외협력위원장이었다. 손 위원장의 남편이 상임대표로 있는 한국진보연대도 김정일의 죽음을 애도하는 성명을 냈다.

부산여대 83학번으로 총학생회장 출신인 손미희 위원장은 부산민주청년회 회장, 한국민주청년단체협의회 부의장, 반미여성회 집행위원장 등을 거쳐 최근에는 통진당 지지 활동을 활발히 했다. 지난해 6·4 지방선거에서는 남편인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대표와 통진당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고, 2012년 총선에도 통진당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또 2012년 대선 때는 이정희 옛 통합진보당 대통령 후보 공동 선대 위원장도 맡았다.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 공동위원장이었던 손 위원장은 지난 2010년 2월 개성에서 개최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남북 여성대회 실무협의’에 참가를 위해 방북 신청을 했으나 정부 당국으로부터 불허된 바 있다. 손 위원장은 1998년부터 2007년까지 40여 차례 이상 방북했다.

정권 퇴진 시국활동 적극 참여한 정대협 위원장들

배외숙 정대협 문화홍보위원장은 이화여대 84학번으로 이화민주동우회 사무처장·참교육 전국학부모회 안양지회 부회장을 겸임하고 있다. 배 위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내가 만든 화염병에서 기름이 새는 바람에 그 화염병을 들었던 친구가 양 팔에 큰 화상을 입었다”고 회상할 정도로 학생 운동에 적극 가담했다.

이대 운동권 출신들의 모임인 이화민주동우회는 각종 시국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왔는데, 특히 배 위원장은 이화민주동우회 사무국장 직책으로 이명박 정권 퇴진을 주장한 2009년 6·10 범국민대회에 참여했고, 2012년 12월 대선 직전 여성계 인사 130여 명이 “박근혜, 여성대통령 자격 없다”는 대국민 호소문 발표에도 참여하는 등 정치적 소신을 밝혔다. 이 호소문에는 손미희 정대협 대외협력위원장이 전국여성연대 공동대표로,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는 여성운동가라는 직책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밖에도 정태효 정대협 복지위원장은 교계의 대표적인 진보 목회자 모임인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상임의장 및 우리학교와 우리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 모임 공동대표를 겸하고 있다.

1980년대 초반부터 노동운동에 몸 담았던 정태효 위원장은 지난 2013년 11월 국정원 선거개입 부정선거 의혹을 규탄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시국 활동에 나서고 있다. 지난 2014년 11월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반대 민주수호 여성시국선언’에도 손미희 대외협력위원장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한국염 정대협 공동대표는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 김선실 정대협 공동대표는 새세상을 여는 천주교 여성공동체 대표를 겸임하며 시국 현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2008년 시민사회인사 ‘114명의 정부 내각 총사퇴’ 시국선언과 2012년 ‘박근혜 여성 대통령 자격 없다’는 선언 등이 대표적이다.

또 강혜정 정대협 국제협력위원장은 아시아 평화와 역사교육연대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이고, 최소영 교육위원장은 교회여성연합회 총무를 역임했다.

이번에는 정기 수요 집회를 공동 주관하고 있는 정대협의 회원단체들의 성격을 알아보기로 한다. 현재 정대협 홈페이지에 회원단체로 명시돼 있는 단체는 19개다. 이 가운데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연대에 참가한 단체는 기독여민회, 새세상을 여는 천주교 여성공동체,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한국교회여성연합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 여성의 전화, 한국여신학자협의회, 한국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등 11개 단체다.

정대협의 윤미향 대표를 포함한 주요 임원의 측근들이 과거 간첩 혹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다는 것, 그리고 여러 정대협 임원들이 종북(從北)을 이유로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 당한 옛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반대하는 식의 좌파 이념 편향적 활동을 했다는 것 자체가 무엇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정대협이라는 단체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상징적 의미는 충분하다.

정대협, 위안부 할머니 내세워 

정부의 對日 정책에 심각한 영향력 행사

정대협 임원들이 북한을 수차례 방문하며 남북 연대를 끈질기게 추진하는 것도 위안부 할머니들의 인권이나 복지보다는 ‘통일’이라는 정대협 활동가들의 운동 방향성이 투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20년사’에 따르면 정대협은 위안부 문제를 남북한이 공동으로 논의 협력함으로써 시민사회 차원에서 남북통일을 이뤘다고 자평하고 있다. 지난 2011년 12월에는 정대협 이름으로 ‘김 국방위원장 서거라는 급작스러운 비보에 북녘 동포들에게 깊은 애도를 전한다’는 조전(弔電)을 북측에 전달했다.

문제는 위안부 할머니와 정대협이 동일시되는 현실이다. 좌파 운동의 활동가들이 참여하는 정대협이라는 운동단체와 위안부 할머니들은 별개로 인식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대협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름을 내걸고 우리 정부의 대일 정책에 심각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대협 임원들과 직간접으로 관련이 있는 좌파단체들의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등의 신념이 은연중에라도 정대협의 활동 방향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생각해볼 일이다”고 말한다.

위안부 문제를 연구하는 한 전문가는  “정대협이 주장하는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이라는 운동단체로서의 원칙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정부의 외교정책이 여기에만 얽매이는 현실이 과연 바람직한가라는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전문가는 “청소년을 포함한 우리 국민들이 막연한 식민지 피해자 의식을 가진 채 무작정 일본을 가해자로서 저주하는 분위기도 문제”라면서 “그런 의미에서 현재 결과로 나타난 한일관계의 파탄과 반일 감정의 원류와 단초를 다시 생각해 볼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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