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달 28일 충무아트홀에서 뮤지컬 <팬텀>이 초연을 시작했다. 뮤지컬 <팬텀>은 <오페라의 유령>으로 이미 우리에게도 익숙한 소설가 가스통 르루의 추리 소설인 <오페라의 유령>(1910)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1986년에 런던에서 <오페라의 유령>을 발표한 이래 해당 뮤지컬은 세계 4대 뮤지컬로 손꼽히며 히트를 기록한 바 있다.

    뮤지컬 <팬텀>은 오페라의 유령보다 1년 먼저 기획 됐지만 발표가 늦어지면서 <오페라의 유령>만큼 명성을 누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1991년 미국 월드 프리미어 발표 당시 '상상할수 없던 신작'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미국 전역에서 600회 이상 공연되며 꾸준한 인기를 누렸다. 이후 독일, 캐나다, 호주, 일본을 거쳐 2015년 역사적인 한국 초연을 맞이하게 된다.

    <오페라의 유령>과 원작이 동일하기 때문에 <팬텀>의 주인공 또한 동일 인물이다.

  •  

    <팬텀>은 타고난 천상의 목소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오페라 하우스의 지하 유령이라 불리며 많은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는 주인공 '에릭'과 다듬어지지 않은 보석 같은 여인 '크리스틴 다에'. 그리고 오페라 하우스를 지배하며 오페라의 여주인공역을 독차지하는 악랄한 '마담 카를로타'가 주요 등장인물이다.

    <오페라의 유령>이 에릭과 크리스틴, 라울의 삼각관계에 초점을 맞췄다면 뮤지컬 <팬텀>은 에릭이 팬텀이 되기까지 그의 과거를 돌아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원작이 같은 탓에 어쩔 수 없이 <오페라의 유령>과 비교를 당하지만 무엇이 더 나은지 못한 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뮤지컬 <팬텀>은 또 다른 매력을 가진 작품이기 때문이다.

    뮤지컬 <팬텀> 관람 포인트 셋.

     

    하나. 웅장한 무대와 화려한 의상

    뮤지컬 <팬텀>의 무대는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공연된 뮤지컬 작품들 중 단연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의 모습과 실제 오페라 하우스의 구조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3층 구조의 세트는 특수 효과와 첨단 무대 기술을 동원하여 더욱 생생하게 보여주고, 오페라 하우스의 상징인 거대한 샹들리에는 400여개의 전구로 장식해 실제 파리의 한 오페라 하우스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의상도 뒤지지 않는다. 여주인공인 크리스틴의 로맨틱한 드레스뿐만 아니라 마담 카를로타의 허영끼를 반영한 화려한 드레스들은 <겨울왕국>에서 의상을 담당했던 그레고릴 포플릭의 작품이다. 특히, 극 중에서 공연되는 리골레토(Rigoletto), 아이다(Aida),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 등 실제 오페라의 무대 의상까지 선보이며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 <팬텀>의 따뜻한 인간미

    가면 속에 가려진 일그러진 얼굴을 가진 남자인 에릭은 오페라 하우스 지하에 숨어 살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든다. 은둔형 외톨이인 에릭은 자신의 흉한 얼굴을 가리기 위해 화려한 가면을 만들어 모으고 기분에 따라 바꿔 쓰기도 한다. 10여 가지의 가면이 등장하기 때문에 집중하지 않으면 가면을 놓치기 십상이다.

    에릭에겐 아픈 과거가 있다. 에릭의 어머니는 촉망받는 무용가이자 오페라 가수였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인해 독초를 먹고 죽기로 결심한다. 독초의 부작용으로 일그러진 얼굴의 아이를 낳지만 그 누구보다도 아들을 사랑한다. 어머니의 사랑으로 자라온 에릭은 어느 날 물가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되고 어머니가 죽자 지하에 숨어 외롭게 살아가게 된다.

  •  

    팬텀의 어린 시절 숨겨진 이야기는 국내 최고의 발레리나인 김주원 등에 의해 발레로 표현되는데 이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한다. 발레가 등장하는 것이 뮤지컬 역사 상 전에 없던 독특한 연출법이라 신선함에 더해 극을 더욱 몰입하게 만드는 효과를 주고 있다.

    발레리나의 몸짓 하나하나에 담겨진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불운한 어린 시절을 보낸 에릭이 왜 크리스틴에게 집착하는지 이해가 되기도 해 팬텀의 사랑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사랑하는 여인 크리스틴을 위해 그동안 오페라 공연이 끝나면 틈틈이 몰래 주워두었던 소품들을 이용해 숲을 만들어 주는 아이 같은 순수한 모습을 보이는 팬텀. 부엉이, 너구리의 등장에 웃음을 주기도 하지만 그동안 혼자 외로웠을 소년 에릭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관객들은 연민의 감정에 빠져들기도 한다.

    뮤지컬 <팬텀>의 팬텀은 흉측한 얼굴로 태어났지만 크리스틴을 만나 기뻐하고 사소한 것에 감사하는 따뜻한 유령이다.

     

  •  
    . 배우의 재발견
     

    뮤지컬 <팬텀>에 주인공인 팬텀으로 출연하는 가수 박효신은 3년차 뮤지컬 배우다. 2013년 뮤지컬 <엘리자벳>죽음역으로 데뷔해 <모차르트!>를 거쳐 이번이 세 번째 작품이다.

    죽음이나 모차르트는 이미 다른 배우들이 초연에서 만들어 놓은 캐릭터가 있었고 박효신은 변함없는 가창력을 보여주며 뮤지컬 배우로써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번 <팬텀>은 국내 초연작이기 때문에 박효신이 해석한 자신만의 에릭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지만 박효신은 자신만의 팬텀을 잘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아 마땅할 듯 하다.

    박효신이 그려낸 팬텀은 강하지만 사랑 앞에서는 한없이 여린 남자이다. 자신을 표현하는 데는 서툴지만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는 세상 그 누구보다 강한 모습이다.

    박효신이 가진 강렬한 중저음과 파워풀한 보이스는 극이 진행되는 내내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대사를 할 때 어색한 말투나 연기력 등 더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아 보이지만 뮤지컬 배우로써 박효신은 몇 단계 더 성장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크리스틴 다에 역을 맡은 뮤지컬 배우 임혜영도 주목해 볼만하다.

    크리스틴 다에는 몇 옥타브를 넘나드는 고음의 넘버들과 다양한 기교를 보여 주어야 하는 역할이다. 이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국내 최고의 성악가인 임선혜와 김순영이 크리스틴 다에 역을 맡은 이유이기도 하다.

    임혜영은 성악을 전공하기는 했지만 워낙 어려운 배역이다 보니 다른 성악가에 비해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그동안 꾸준히 쌓아온 연기력에 피나는 노력까지 더해지면서 현재 가장 설득력있는 크리스틴 다에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임혜영의 공연을 본 관객들은 이렇게 노래를 잘하는 배우인지 몰랐다는 반응이다.


  • 마지막으로 마담 카를로타 역의 신영숙의 엄청난 연기 변신이다
    .

    마담 카를로타는 실력은 형편없지만 돈 많은 남편 덕에 주인공만 척척 맡는 밉살스러운 역할로 배우 신영숙은 신스틸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가성과 진성을 자유롭게 오가며 뻔뻔하면서도 허당끼있는 연기를 자연스럽게 해내며 관객들의 웃음을 담당하고 있다. 신영숙 만의 흐트러짐없는 노래와 연기는 성공적으로 1막을 이끌어 가고 있으며 역시 믿고 보는 배우 신영숙이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을 정도다.

    뮤지컬 <팬텀>에는 아쉬운 점 또한 존재한다.

    출생의 비밀에 대한 반전은 관객들이 예측하기에 충분하고 스토리의 짜임새도 엉성하다. 샹동 백작이나 극장장 등의 캐릭터는 관객들이 공감하기에는 일관성이 부족해 보인다.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다 보니 계속적으로 바뀌는 무대는 산만함을 주어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넘버들이 고음의 연속 이다보니 듣고 있다 보면 귀가 피곤해진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딱히 기억에 남는 노래가 없다는 것도 단점으로 꼽히고 있다.

    팬텀과 크리스틴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아는 유령이 아닌 전혀 다른 인간적인 <팬텀>을 만날 수 있다.

    뮤지컬 <팬텀>726일까지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사진=EMK 뮤지컬 컴퍼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