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 파산(破産), 그리고 군대의 자폭(自爆)
    반역(叛逆)의 무리들만 신바람이 났다!

    이 덕 기 / 자유기고가
  •   “친애하는 애국 동포 여러분! 은인자중(隱忍自重)하던 군부(軍部)는 드디어
    금조(今朝) 미명(微明)을 기해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여 국가의 행정·입법·사법의 3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어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군부가 궐기한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현 정권의 기성 정치인들에게 더 이상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맡겨둘 수 없다고 단정하고 백척간두에서 방황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5시30분 KBS 라디오 방송 중에서』

      작금에 우리는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에서 흔히 “5·16의 성격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이 있었다는 언론 보도를 접한다. 그러나 대개의 청문 대상자들은 “군사혁명” 또는 “군사쿠데타”라는 확실한 대답을 회피한 채 어물어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소위 ‘진보(進步)’ 연(然)하는 구개이언(口開異言)님들은 “군사쿠데타”를 기정사실화(旣定事實化)하면서 다그치곤 한다.
    이에 커다란 감투를 눈앞에 둔 분들은 몸조심 차원에서 ‘그저 수구리’하는 것이 거의 관행(?)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엊그제 여의도 새(鳥)떼들(새무리/새연합)의 수뇌들이 모여 이른바 ‘공무원연금개혁안’이라는 데 합의했다고 한다. 연서명(連署名)을 하고 자축(自祝)의 만세를 불렀다.
    드디어 19대 새(鳥)떼들이 만세(萬歲) 동안 해 먹을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자신했나 보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았다.
    ‘공무원연금개혁’ 내용도 문제려니와 이와 함께 끼워 넣기로 한 선심성(善心性) ‘국민연금 인상’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전문가가 아니니 세세한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하는 짓거리가 서로 간 기득권(旣得權)을 지키고 챙기기 위한 길 닦기에 불과했다는 평가다.
    나랏돈, 결국은 궁민(窮民)들의 고혈(膏血)로 생색내기 하자는 거였다.
    그리고 한다는 말이 “재원(財源)마련 방안은 이제부터 연구하면 된다”고 거듭 배 째라다. 

      ‘국민연금 소득 대체율’ 인상을 위한 막대한 돈은 궁민(窮民)들에게 더 거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빚을 내거나, 다른 부분을 감(減)할 수밖에 없다.
    궁민(窮民)들이 더 낼 수 없다고 할 건 뻔하다.
    결국 나라 빚도 많다고 아우성이니 분명 다른 데를 줄이는 꼼수를 부릴 것이다.
    표(票)에 목숨 거는 체질로 미루어, 그 부족함이 당장 현실의 불편함으로 나타나지 않거나,
    궁민(窮民)들이 직접 피부로 느끼지 못할 곳을 깎으려 할 것이다.

    바로 그 타겟이 국방비, 그 중에서도 전력(戰力) 증강과 국가 재난·안전관리 비용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 국가 안보를 약화시키려는 적(敵)의 노림수에 딱 걸리는 꼴이 되고 만다.

      허기사 새(鳥)연합의 ‘5분의 3 왕초’께서는 그 무슨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운운하며
    남북관계만 잘 풀면 평화를 구축할 수 있다고 하셨으니, 북녘의 어린 ‘최고 돈엄(豚嚴)’에게
    싹싹 빌기만 한다면 국방비야 뭐 크게 필요치 않을 듯도 하다.
  •   여의도 정치에 대한 불신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새(鳥)떼들의 행각이 이제는 도를 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많은 궁민(窮民)들의 고된 삶에서 비롯된 망각증(?)에 기대여 근근이 버텨왔지만,
    드디어 성 아무개의 메모로 불거진 전방위적(全方位的)인 부패 사슬은
    정치의 파산(破産)을 기정사실화(旣定事實化)하고 있다.
    특별수사팀이니 특검(特檢)이니 하고 이것저것 갖다 붙이지 않아도
    궁민(窮民)들은 알 건 다 안다. 

      그리고 반역(叛逆)의 무리에 빌붙어서 정치적 입지를 강화해 보려는 ‘쓸모있는 얼간이’의 속성을 아직도 버리지 못한 미숙아(未熟兒)들이 위아래 할 것 없이 널려 있다.

      1960년 4월 19일 이후 1년 여 간의 정국 상황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결코 ‘5·16’을 ‘군사쿠데타’라고 다그칠 명분도 실재도 없다.
    그 시절처럼 군이 다시 나와야 할 여건이 성숙되고 있다는 ‘일말의 불안감’의 표현이라면 모를까.
  •   그런데 말이다. ‘5·16’을 ‘군사쿠데타’라고 하면, 입을 삐쭉거리는 집단(?)이 있다.
    선배들이 목숨을 걸고 내린 ‘구국(救國)의 결단’에 대해, 감투에 눈이 어두워서 또는 나이 어린
    얼치기 ‘진보’의 정치 공세에 밀려 어물어물하는 또 다른 선배를 보는 비애(?)를 감내(堪耐)하고 있는 이들이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자유민주주의가 창궐(?)한 이 나라가 때로는 한스럽기도,
    그리고 너무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 시절 ‘혁명’을 감행한 선배들이 이해가 가고, “오죽했으면 그랬겠나”하는 의협심(義俠心)이 발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참 서글프다. 웬 놈의 성(性) 폭행·추행 사건은 군대에서만 발생하냐.
    집단 따돌림에 가혹 행위, 그리고 동료들에게 총기 난사(亂射)도 있다.
    고위 지휘관의 추태와 비위는 날이 새기가 무섭게 터지고, 인사(人事) 잡음은 잦을 날이 없다.

     값나가는 군함의 함포는 왜 그 모양인가. 차마 입에 올리기 어려운 일들이 끊임이 없다.
    이 나라에 언론의 자유가 만개(滿開)해서 알려지지 않아도 될 군대 내 일들이 시시콜콜 보도돼
    그런가? 그렇다면 그 엄청난 규모의 방위사업 비리는 어찌된 일인가?
    우리가 만들었다는 전투훈련기가 수출되는 게 신기하다.

      결과적인 이적(利敵)의 행위와 ‘벼르고 벼르다가 당하고 나서 또 벼르기만’하는 버릇이 체질화(?)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국방부 대변인 참 힘들겠다”는 호사가(好事家)의 말이 참으로 서글프게 들린다.
      이미 ‘은인자중(隱忍自重)’은 『4자성어집』에나 나오는 단어가 되었다.
    이러고서야 어떻게 ‘5·16’을 ‘군사혁명’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   명색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곳에서 정치와 군사가 망가지면,
    이후에 벌어질 일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반도(叛徒)들이 주도권을 쥐게 된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게 마련이다.
    요즈음 광화문 네거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난장판은 그 증거(證據)의 하나일 뿐이다.

      과연 ‘5·16’은 무엇일까?
    <더   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