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위 체제'에 대한 거부감을 '대안부재론'으로 아전인수 해석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당내외에서 쏟아지는 비판에 직면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대표직 사퇴와는 선을 긋고 독단적으로 광주로 향하는 등 안하무인 격으로 행동하고 있어 그 자신감의 배경이 무엇인지 관심이 쏠린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며 "내일이라도 당장 문재인 대표가 물러난다고 하면 누가 나설 거냐"라고 되물었다.

    새정치연합은 지난해 오랜 혼란기를 겪었다. 3월 김한길 대표의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의 이른바 '새정치' 세력이 통합하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출범했지만, 쌍방 동수로 구성된 최고위원회의 독주였을 뿐 중앙위원회도, 시·도당도, 지역위원회도 구성하지 못한 채 5개월을 끌었다.

    이러한 비정상적 지도 체제는 7·30 재보선 참패로 붕괴됐다. 막상 지도부가 붕괴되자 그 뒤를 누가 계승할 것인지를 두고서도 혼란이 일었다. 민주 정당에서 '선출된 권력'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선출직인 박영선 원내대표(당시)와 이석현 국회부의장 사이에서 논란이 일다가 "비대위원장과 원내대표를 겸직하는 것은 무리"라는 일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박영선 원내대표가 나섰다.

    이는 당과 박영선 원내대표 모두에게 상처만 남기는 결과가 됐다. 평소 '오픈 프라이머리' 전면 도입이 정치적 소신인 박영선 원내대표는 이상돈 중앙대 교수를 당으로 끌어들여 이를 관철하려다 패권주의적 강경파 친노와 486 세력의 반발을 샀다. 한 줌의 대중적 지지도 얻지 못한 채 알량한 당내 패권만을 유일한 무기로 부질없는 정치적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 친노와 486은 격렬하게 박영선 체제를 흔들어 이 역시 무너뜨렸다.

    그 와중에 비대위원장과 원내대표를 겸임하던 박영선 원내대표의 탈당설까지 흘러나오는 '막장' 상황까지 치달았던 것은 덤이다. 만일 박영선 원내대표가 후임자 지명 없이 탈당했다면 당헌·당규상 그 뒤를 이을 수 있는 사람도, 지명할 수 있는 주체도, 선출할 수 있는 기구도 부재해 새정치연합은 식물 상태에 빠졌을 것이었다.


  •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 문재인 대표를 중심으로 오른편에 앉은 주승용·전병헌·유승희 최고위원은 민심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당의 혁신을 주문하는 반면 왼편에 앉은 정청래·오영식 최고위원은 막무가내로 문재인 체제를 감싸고 돌기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 문재인 대표를 중심으로 오른편에 앉은 주승용·전병헌·유승희 최고위원은 민심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당의 혁신을 주문하는 반면 왼편에 앉은 정청래·오영식 최고위원은 막무가내로 문재인 체제를 감싸고 돌기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다행히 박영선 원내대표가 마지막 이성을 발휘해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명함에 따라, 새정치연합은 문희상 체제에 돌입했다. 2년 전에도 비대위를 이끈 적이 있었던 문희상 위원장은 비상대책 전문가였다. 지도 체제 공백 상태가 재연되지 않도록 중앙위원회부터 구성하고, 전국 246개 지역위 구성과 시·도당위원장 선출을 서둘렀다.

    이처럼 당이 체제를 갖춰감에 따라 바닥을 기던 지지율도 소폭 올랐으나, 문희상 체제는 막판에 결정적인 실책을 저질렀다. 2·8 전당대회를 공정하게 관리하는 게 최대 책무였음에도 당권을 경쟁하던 문재인 대표와 박지원 전 원내대표 사이에서 문재인 대표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유권해석을 함에 따라 사실상 한 쪽의 손을 들어줬다는 의혹을 받게 됐다.

    이 의혹으로부터는 문희상 비대위원장 뿐만 아니라 김성곤 전당대회준비위원장과 신기남 중앙당 선거관리위원장, 조정식 사무총장 등도 자유롭지 못하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당시 "당 지도부가 이제는 내 전화도 안 받는다"고 서운해 했었다.

    이 혼란을 겪으며 2·8 전당대회에서 가까스로 문재인 대표가 선출됐고, 당이 비로소 정상화됐다. 3개월 만에 당이 다시 지도부 총사퇴와 비대위 체제로 돌입하는 것에 대한 의원들의 거부감이 심한 이유다.

    30일 오후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당 지도부가) 총사퇴하게 되면 또다시 비대위를 꾸려야 하는데, 그것은 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발언한 강창일 제주도당위원장은 당내에서 몇 안 되는 계파색이 옅은 인물이다. 계파를 막론하고 일단 '비대위 체제'로 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광범위에서 존재한다는 뜻이다.

    다만 친노 세력이 의원들의 '비대위 체제'에 대한 거부감을 '문재인 외 대안부재론'으로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있어 문제다. 친노 특유의 '나 아니면 안 된다' 식의 사고 방식이 또 터져나왔다는 지적도 있다.


  • '난 너만 믿어'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 도중 문재인 대표가 발언하는 정청래 최고위원을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다. 최근 정청래 최고위원은 민심의 겸허한 수용과 당의 혁신을 주문하는 목소리를 향해 무차별적인 포격을 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난 너만 믿어'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 도중 문재인 대표가 발언하는 정청래 최고위원을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다. 최근 정청래 최고위원은 민심의 겸허한 수용과 당의 혁신을 주문하는 목소리를 향해 무차별적인 포격을 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문재인 체제를 결사옹위하는 친노 친위대들은 극성스러울 정도의 응집력을 가지고 있는 반면 이에 맞서는 이른바 비노(非盧, 비노무현) 세력은 전투력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재인 대표가 안하무인 격으로 행동할 수 있는 배경이 되고 있다.

    4·29 광주 서구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무소속 천정배 의원은 이를 가리켜 "비노라는 계파는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르겠다)"며 "지리멸렬한 사람들을 뭉뚱그려 비노라고 부르는 것 같다"고 절묘하게 표현한 바 있다.

    최고위원회 내에서도 4·29 재·보궐선거에서 광주 서구을을 맡아 호남 민심 이반의 심각성을 몸소 체험한 주승용 최고위원 등 비노계 최고위원들은 구당(求黨)의 일념으로 절박한 반면, 정청래 최고위원 등 범친노계 최고위원들은 이를 문재인 체제를 흔들려는 수작 정도로만 여기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현재 구도를 보면 주승용·전병헌 최고위원이 4·29 재보선 결과로 나타난 민심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당을 혁신해야 한다는 입장이며 유승희 최고위원도 여기에 어느 정도 동조하고 있다"며 "(반면) 정청래·오영식 최고위원은 오로지 문재인 체제 결사옹위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정청래 최고위원은 주승용 최고위원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절절히 당 혁신을 주문한 4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주(승용) 최고(위원)는 광주 (서구을 보궐선거) 책임자 아닌가"라며 "뭐 뀌고 성내는 꼴"이라는 저속한 비유로 이를 조롱했다.

    이 관계자는 "오영식 최고위원은 지난 전대 과정에서 문재인 대표와 연대했기 때문에 문 대표를 지킬 수 있을 때까지는 지켜보겠지만,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인물이라 함께 죽지는 않을 것"이라며 "차례대로 다 사퇴하고 문재인 대표와 정청래 최고위원만 남는다면 당이 내년 총선에서 80석 내외로 쪼그라드는 것도 시간 문제"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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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기사>

    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246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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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광주로 향한 4일, 20여 명의 광주시민이 광주공항 승강장에 모여 문재인 대표를 규탄하는 현수막을 펼친 채 항의를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광주로 향한 4일, 20여 명의 광주시민이 광주공항 승강장에 모여 문재인 대표를 규탄하는 현수막을 펼친 채 항의를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낙선사례' 광주행을 했다가 체면을 구겼다.

    문재인 대표는 4일 김현미 대표비서실장과 김영록 수석대변인 등을 대동하고 광주를 찾았다. 명목상의 이유는 '낙선 사례'. 지난 4·29 보궐선거에서 조영택 후보를 지지해준 유권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광주시민들의 회초리를 겸허히 받겠다"는 취지도 있었다.

    하지만 문재인 대표는 엉뚱하게도 자신을 향해 날아든 첫 번째 회초리부터 피했다. 문재인 대표 일행이 광주공항에 도착할 무렵, 공항 도착 승강장에는 20여 명의 광주 시민이 현수막까지 준비한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재인은 더 이상 호남 민심을 우롱하지 말라'라는 현수막을 펼쳐들고 '호남을 더 이상 우습게 보지 말라'라는 피켓을 든 이들은 "문재인은 사퇴하라" "새정치연합은 정신 차려라"라는 구호를 간간이 외치며 문재인 대표에게 '회초리를 내리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문재인 대표를 만날 수 없었다. 항의 시위대가 대기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문재인 대표 일행이 귀빈실을 통해 별도의 통로로 공항을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광주로 향한 4일, 20여 명의 광주시민이 광주공항 승강장에 모여 문재인 대표를 규탄하는 현수막을 펼친 채 항의를 준비하고 있던 중 문재인 대표 측 지지자들인 친노 세력들과 충돌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광주로 향한 4일, 20여 명의 광주시민이 광주공항 승강장에 모여 문재인 대표를 규탄하는 현수막을 펼친 채 항의를 준비하고 있던 중 문재인 대표 측 지지자들인 친노 세력들과 충돌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이들 항의 시위대가 누군지, 어떤 단체에 소속된 인물들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문재인 대표의 광주행이 전날 갑작스레 결정된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공항에 20여 명이 모여 성토와 규탄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친노에 대한 분노와 격앙된 감정이 임계점을 넘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공항에서 회초리를 피한 문재인 대표는 광주 서구에 위치한 서창동 발산마을회관을 찾아 새삼 회초리를 구했다.

    문재인 대표는 "지난 번 찾아뵈었을 때 격려를 많이 해주시고 도와도 주셨는데, 선거 결과가 참 면목 없게 됐다"며 "오늘 회초리를 한 번 더 맞는 심정으로 왔다"고 말했다.

    아울러 "광주 시민들이 자기 자식을 더 호되게 혼내는 심정으로 따가운 질책을 줬다고 생각한다"며 "오늘도 좋은 말씀들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마을회관의 한 주민은 "우리 서구을에는 주인다운 국회의원이 없었다"며 "몇십 년간 뜨내기들이 (민주당) 이름 걸고 당선됐고, 그 다음에는 또 다른 분이 들어오고, 또 통진당에서 저기 (야권 연대)해서 (후보) 내버리고, 그러니까 사실상 주체성을 잃어간다"고 작심 발언을 했다.

    이 주민은 "대표께서 공천하시면서도 심사숙고해서 주위분들 (이야기)도 듣겠지만, 울타리(친노) 밖의 말을 많이 좀 들으시라"며 "서구을의 주인을 확실히 찾아달라"고 쓴소리를 이어갔다.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4일 광주로 향해, 서창동 발산마을회관에서 회초리를 때려 달라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4일 광주로 향해, 서창동 발산마을회관에서 회초리를 때려 달라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문재인 대표는 풍암 부영2차아파트 경로당을 찾은 자리에서도 '회초리'론을 늘어놓았다.

    문 대표는 "광주 민심이 새정치민주연합을 버린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정신 차리라고 회초리를 아주 아프게 쳐주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자기 자식을 더 호되게 혼내시는 그런 심정으로 꾸짖어주셨다"면서도 "저희를 버리지는 마시고, 따뜻하게 격려도 주시면서 보듬어주시면 저희가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표의 이날 광주행은 이런 저런 일이 얽히면서 이렇다할 성과 없이 끝났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유일한 호남 지역 최고위원인 주승용 최고위원이 경고했던 그대로라는 분석이다.

    주승용 최고위원은 앞서 "너무나 갑작스럽게 최고위원들과의 협의도 없이 (광주 방문이) 결정돼 유감"이라며 "(문재인 대표가) 광주시민들의 성난 민심을 추슬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면, 충분한 해법을 가지고 가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