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대화에 매달리면 “날로 먹힌다”
“대화 통해 북한 변화시키겠다던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북한에 의해 농락당했음을 벌써 잊었는지...”

정용석(코나스)   

 우리 정부가 2010년 5.24 제재조치 이 후 처음 대북 비료 지원을 승인하는 등 대북 유화책으로 돌아서고 있어 우려된다. 비료는 화학처리하면 미사일 연료로 쓸 수 있기 때문에 5.24 제재 품목에 들어가 있다.
 정부는 지난 4월27일 재단법인 에이스경암의 북한내 온실조성사업을 위해 직원들의 방북과 15t 분량의 소규모 비료지원을 승인했다. 2억원 상당의 비닐‧파이프 반출도 승인했다. 5.24조치는 북한이 천안함 폭침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해야 만이 우리 국민의 방북 불허, 남북교역 중단, 대북지원사업의 보류 등을 해제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통일부 당국자는 비료 외에 다른 지원 품목에 대해서도 “긍정적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쌀을 비롯한 식량 지원도 고려중인 것으로 추측된다. 그밖에도 4월22일 통일부는 남북교류 활성화를 위해 대북 지원 실적이 없는 단체도 인도적 지원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대북지원 사업자 요건’도 완화했다고 한다.

 5.24 조치 후 처음 승인된 대북 비료 지원은 홍용표 통일부장관이 3월 중순 취임한 후 한 달 여 만에 단행되었다는 데서 주목된다. 홍 장관은 연구소와 대학 교수를 거치면서 교류와 협력을 통해 북한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연계(連繫)이론(인게이쥐먼트:Engagement)’을 폈었다.

 국제관계에서의 인게이쥐먼트란 한 마디로 ‘적과 대화한다’는 뜻이다. 실상 그는 3월11일 국회 장관후보 청문회에서 천안함 폭침과 관련, “5.24조치는 긍정적으로 해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로부터 한 달여 만인 4월 중순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남북관계 돌파구 마련을 위해 장관이 직접 방북할 용의도 있다.”고 했다. 이 당국자는 또 “기본적으로는 정상회담을 포함해 모든 ‘대화’가 가능하고 어떤 식으로든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라고 첨언했다. 5.24조치에 대해서도 “정부가 풀 생각이 있으니까 ‘대화’하자 하는 것”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홍 장관 휘하의 통일부는 대화하면 모든 게 풀릴 수 있다는 인게이쥐먼트 환상에 흠뻑 젖어 “대화”를 거듭 강조한다.

 하지만 홍 장관은 대화를 통해 북한을 변화시키겠다던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북한에 의해 농락당했음을 벌써 잊었는지 묻고 싶다. 아직 남북관계는 대화를 위해 북한에 서둘러 비료를 퍼주고 5.24조치를 사문화할 정도로 진전되지 않았다. 지금 북한을 대화를 통해 화해협력의 길로 끌어낼 수 있다는 생각은 마치 스폰지로 깡통을 열수 있다는 어리석음과 같다.

 천안함 폭침 이 후 이명박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도 5년간 ‘북한의 선(先) 5.24 조치 수용 – 후 남북관계정화 원칙’을 고수해 왔다. 홍 장관 자신도 3월 후보자 청문회에서 북한이 “납득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해야 5.24조치를 해제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 그는 말로는 “납득할 수 있는 조치” 운운했으면서도 북한이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데도 규모는 작지만 대북 비료지원에 나섰다. 남북대화 또는 정상회담을 위해 5.24조치를 사문화하면서 대북 퍼주기로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의심케 한다.

 이명박과 박근혜 대통령은 야당과 종북 세력의 끊임없는 5.24조치 해제 요구를 거부했다. 이 시점에서 대화를 위해 5.24조치를 사문화 한다면 지난 5년의 대북압박은 아니함만 못했다. 김정은 북한 로동당 제1서기는 자신의 대남 군사도발 협박에 남조선이 굴복, 5.24조치를 사문화하기 시작했다고 착각 할 수 있다. 김은 더욱 한국을 녹록히 보고 다시금 제2의 천안함과 연평도 도발을 거리낌 없이 자행할 수 있다.

 김정은은 북한 체제를 개혁하고 개방할 의지를 아직 보이지 않는다. 김은 5월9일로 예정했던 모스크바 전승기념일 행사 참석도 “내부 문제 때문에” 취소했다. 올 들어 고위 간부 15명을 잇따라 처형하는 등 권력 다지기에 여념이 없다. 북한을 개혁하고 개방할 심리적 여유도 없고 관심도 없는 그에게 대화하자고 매달리면 남한을 더욱 얕잡아보게 할 따름이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도 개혁‧개방에 관심이 없는 김정일에게 5억달러의 뇌물를 찔러주었고 십수조원에 달하는 사회간접자본시설(SOC) 건설을 약속해 주고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그러나 김정일은 주는 것만 받아 챙기면서 제2연평해전 도발, 핵무기 폭발실험 강행, 대남적화혁명 교란책동 등을 거침없이 강행했다. 대화에 매달리게 될 때 재앙을 자초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홍 장관은 51세의 소장학자 출신으로 청와대통일비서관에서 갑자기 몇 단계 뛰어 장관으로 발탁되었다. 그는 통일부 장관인데 아직 상아탑 시절의 사고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1월2일 청와대 신년인사회에서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에게 털어놓은 말을 기억하기 바란다. 문 위원장이 남북관계 개선을 서둘러 달라고 촉구하자, 박 대통령은 “북한이 날로 먹으려 하자나요”라고 에둘러 반박했다.

 홍 장관은 대화를 서둘다가 북한에 의해 날로 먹히고 만다는 박 대통령의 지적을 되씹어주기 바란다. 업적 쌓기에 매몰되어서는 아니 되며 서둘지 말고 보다 신중해 주기 바란다.(Konas)

정용석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 前 남북적십자회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