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기의 대결'이 아니라, 권투를 모독한 '배부른 자들의 타락한 경기'

    다 이룬 뒤에 지킬 것밖에 없으니 권투에 필수적인 '헝그리 정신'이 실종된 시합이었다.
    이기려는 시합이 아니라 '지지 않으려는 시합'이 되어 버렸다.
趙甲濟   

슈가 레이 로빈슨은 "권투는 리듬이다. 리듬은 심장에서 시작된다"란 말을 남겼다. 오늘 경기는 리듬이 없었다.
오페라에서 음악이 사라진 셈이다.
 권투의 리듬은 死生결단의 鬪志에서 생긴다.
메이웨더와 파퀴아오는 가슴이 아닌 머리로 시합을 하다가
가장 지루한 권투를 기록에 남겼다. 
 
 세기의 대결로 선전되었던 매니 파퀴아오(37·필리핀)와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38·미국)의 대결은 재미 없는, 아니 타락한 시합이었다. 3일(한국시각)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WBC(세계권투평의회), WBA(세계권투협회), WBO(세계복싱기구) 웰터급 통합 타이틀戰에서 메이웨더는 12라운드 심판 전원 일치 판정승을 거뒀다. 勝者(승자)에겐 환호가 아니라 야유가 쏟아졌다. 

 메이웨더는 이로써 48연승 무패 행진을 이어갔고 파퀴아오는 6패(57승 2무)를 기록했다. 이날 승리로 메이웨더는 대전료 약 1500억 원을 받게 되었다. 敗者(패자)는 약 1000억 원을 번다. 

 나는 무하마드 알리 세대(해방둥이인 필자보다 세 살 위)이다. 그가 벌인 세계 헤비급 챔피언 시합, 그중 몇 차례의 '세기의 대결'과 비교하면 메이워더-파퀴아오 시합은 拙戰(졸전)이라기보다는 사기극에 가깝다. 알리-리스턴(2회), 알리-프레이저(3회), 알리-포먼戰은 타이틀뿐 아니라 인생의 모든 것을 건 시합이었다. 패배한 리스턴과 포먼은 절대 강자의 자리를 회복하지 못하고 무대에서 영원히 사라졌다(리스턴과 포먼은 알리에게 지기 전엔 각각 역대 최고의 강타자로 평가되었다).  아웃 복서였던 알리는 인 파이터 프레이저와 2승 1무(타이틀戰은 1승1무)를 기록하였다. 1971년의 첫 대결과 1975년의 타이틀 전은 권투 역사상 가장 치열한 경기로 꼽힌다. 1차전에서 도전자 알리는 15회에 다운(챔피언으로서 첫 다운)을 당하였고, 3차전에서 프레이저는 거의 失明(실명)이 되어 14회 TKO敗(15회 시작 전에 기권) 하였다. 마닐라에서 열려 '스릴러 인 마닐라'라고 불리는 이 시합은 YOUTUBE로도 볼 수 있는데, 마지막까지도 승부를 예단할 수 없었던 '死鬪(사투)의 드라머'이다. 나는 이 경기를 권투역사상 최고의 시합으로 꼽는다. 경기 흐름이 인생의 축도판처럼 기복이 심하다.   
 1974년 아프리카 자이레 킨샤사에서 열린 시합에서 알리는 8회에 챔피언 포먼을 케이오시키고 챔피언 자리를 되찾는데, 펀치를 맞고 넘어가는 포먼을 내려다 보면서 오른 쪽 주먹을 뻗다가 필요 없다고 판단하였던지 중간에서 도로 거두어 들이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헤비급 역사상 최고의 역전승이었다.  

 알리는 이슬람으로 개종, 이름을 클레이에서 알리로 바꾼 뒤, 월남전 기간중인데도 징집을 거부, 1967년부터 3년간 헤비급 타이틀이 박탈당하고 출전금지되었다.  이 기간 나는 공군에서 사병으로 근무하면서 언제 알리가 복귀하나 기다렸다. 출전이 금지된 3년간은 알리가 권투선수로서 전성기에 달할 때였다. 지금 생각해도 최고의 알리를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가끔 그 잃어버린 시간대에 알리가 프레이저나 포먼, 또는 타이슨과 싸웠다면 어떠하였을까 상상해본다. 리치가 짧은 타이슨은 알리의 잽에 벌집이 되었을 것이다.  

 알리는 3년간의 공백기를 거치면서 경쾌한 푸트워크와 스피드를 잃었다. 그는 복귀한 뒤 놀랍게도 맷집으로 버티었다. 알리가 빠르기만 할 뿐 아니라 맷집도 좋다는 것은 놀라운 발견이었다. 1960, 70년대, 알리의 모든 타이틀 전(마닐라 스릴러를 제외한)은 TV로 중계되었는데 다방이나 사무실에 사람들이 극장처럼 모여 앉아 흑백 화면을 보면서 환호하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메이웨더를 알리나 슈가 레이 로빈슨에 비교하는 기자들이 있는데, 이보다 더한 모욕이 없다. 권투는 링 안에서 자신의 적나라한 모든 것을 드러내고, 인생을 승부하는 게임이다. 그래서 전설이 되고 영화가 많다. 슈가 레이 로빈슨의 라이벌이었던 제이크 라모타의 파란 많은 인생을 그린 '레이징 불'(로버트 드 니로), 미들급에서 토니 제일과 명승부를 펼쳤던 록키 그라지아노를 主役으로 삼은 '상처뿐인 영광'(폴 뉴먼)  등등. 

 오늘 메이웨더와 파퀴아오는 '배부른 자들의 타락한 경기'를 보여주었다. 우선 두 사람은 너무 늦게 만났다. 30대 후반으로 전성기를 넘긴 것이다. 다 이룬 뒤에 지킬 것밖에 없으니 권투에 필수적인 '헝그리 정신'이 실종된 시합이었다. 이기려는 시합이 아니라 '지지 않으려는 시합'이 되어 버렸다. 특히 메이웨더는 뒷걸임칠 준비를 한 상태에서 펀치를 뻗으니 영 그림이 좋지 않았다. 

 필리핀 국회의원인 파퀴아오도 넉 다운 당할 것을 각오하고 파고들지 않았다. 그 또한 카운터를 맞고 링 위에 쓰러지는 꼴을 보이는 게 두려웠을 것이다. 파쾨아오가 펀치를 많이 날린 것 같지만 적중률은 메이웨더가 높았다. CompuBox 집계에 의하면 메이웨더는 435개의 펀치를 날려 148개를 적중시켜 34 %, 파퀴아오는 429 개 중 81개를 적중시켜 19 %였다. 

 가장 비싸면서도 가장 재미 없는 시합을 보기 위하여 세 시간을 보낸 것이 억울하다. 돈과 명성을 위하여 파이터의 정신을 쓰레기통에 버린 두 사람은 권투를 모독하였다. 돈벌이를 위하여 재시합을 추진하겠지만 팬들이 심판할 것이다. 오늘 경기장에서 승자에게 쏟아진 것은 환호가 아니라 야유였다.   
 
 메이웨더나 파퀴아오가 多體級(다체급) 석권자(웰터, 미들급)라고 하여 슈가 레이 로빈슨에 비교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망발이다. YOUTUBE에 들어가서, 'POUND FOR POUND'라는 말을 만들게 한 로빈슨의 권투장면을 구경할 것을 권한다.  'POUND FOR POUND'는 권투 전문 기자들이 몸무게 대비로는 로빈슨이 가장 위대한 선수라는 뜻으로 만든 용어이다. 로빈슨과 메이웨더의 가장 큰 차이는 '프로의 승부 정신'이다. 프로는 비싼 입장료와 시청료를 내는 관중들을 즐겁게 만들 의무가 있다. 자신의 실력과 명예를 걸고 모든 것을 쏟아내야 하는 직업적 의무가 있는 것이다. 링에 올라와서도 자신을 걸지 않는 챔피언은 장사꾼이지 파이터가 아니다. 

 권투는 헤비급에서 알리가 은퇴하고, 미들급에서 슈가 레이 레너드가 사라진 이후 美學(미학)을 잃었다. 그 헛점을 언론의 과장보도가 메워보려 하였지만 오늘 '세기의 대결'이 '세기의 졸전'으로 확인됨으로써 파탄났다. 레너드-토미 헌즈, 레너드-로버트 두란, 레너드-마빈 헤걸러의 명승부에 비교하면 오늘의 시합은 권투도 아니다. 토마스 칼라일이 19세기 영국에서 한 말이 권투에도 적용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간은 가난을 이기는 이가 100이라면 풍요를 이기는 이는 한 사람도 안 된다.> 

이미 배가 부른 복서가 더 많은 돈과 허영을 탐하면 두 선수처럼 추해진다. 오늘 시합을 굳이 비교하면 1976년 여름, 알리가 일본 프로 레슬러 이노키와 했던 시합과 닮았다. 이노키는 링에 누워서 경기를 치렀다. 알리는 무승부 직후, 누워서 돈을 버는 사람은 창녀와 이노키뿐이라고 평하였다. 그때처럼 오늘도 펀치다운 펀치가 없었다. 권투가 아니라 팔 길이 재기였다. 

슈가 레이 로빈슨은 '권투는 리듬이다. 리듬은 심장에서 시작된다'란 말을 남겼다. 오늘 경기는 리듬이 없었다. 오페라에서 음악이 사라진 셈이다. 권투의 리듬은 死生결단의 鬪志(투지)에서 생긴다. 메이웨더와 파퀴아오는 가슴이 아닌 머리로 시합을 하다가 가장 지루한 권투를 기록에 남겼다. 서로 229개의 펀치를 적중시켰으나 상처 하나 없는 두 선수의 맨얼굴이 권투를 하지 않고 게임을 하였다는 증거물이다.    [조갑제닷컴=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