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신환~정태호~정동영이 주연이라면, '주연급 조연'은…
  • 4·29 재·보궐선거 지역 중에서도 특히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던 서울 관악을 보궐선거의 선거 운동이 28일 자정을 기해 막을 내렸다. 공식선거운동기간은 29일까지이지만, 투표일에는 투표 독려 외에는 모든 선거운동이 금지된다.

    마지막 순간까지 치열한 삼파전을 벌인 새누리당 오신환·새정치민주연합 정태호·국민모임 정동영 후보가 무대 위의 세 주인공이라면, 그들만큼이나 판세에 큰 영향을 미친 또다른 세 인물이 있었다. 〈뉴데일리〉가 관악을 보궐선거 판세를 요동치게 한 '주연급 조연'을 중심으로 지금까지의 흐름을 짚어본다.


  • 지난달 14일 새정치민주연합 정태호 후보와의 당내 후보 경선에서 분패했던 새정치연합 김희철 전 의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지난달 14일 새정치민주연합 정태호 후보와의 당내 후보 경선에서 분패했던 새정치연합 김희철 전 의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3월 14일 김희철, 정태호에게 분패하며 관악을의 민심을 흔들다

    선거전 초반, 초박빙의 물꼬를 튼 것은 김희철 전 의원이었다.

    새정치연합 정태호 후보와 김희철 전 의원의 당내 경선이 열렸던 지난달 14일 관악문화원. 김희철 전 의원의 표정은 어딘가 어두운 반면, 정태호 후보는 "(후보) 수락 연설을 준비해야겠다"고 할 정도로 자신만만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김희철 전 의원 측에 우호적인 것으로 알려진 권리당원 1000여 명이 선거인 명부에서 삭제됐기 때문이다. 당비를 규정된 횟수만큼 납부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김희철 전 의원 측은 중앙당에 내역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먼저 발표된 여론조사조차 정태호 후보가 앞선 결과로 나오자, 좌석을 채우고 있던 친노(親盧, 친노무현) 성향 청중들은 흥분에 휩싸였다. 문화관 안에 함성 소리가 진동했다.

    그런데 의외의 반전이 뒤따랐다. 우호적인 선거인 1000여 명이 제외됐는데도 권리당원 투표에서 김희철 전 의원이 승리한 것이다. 정적에 휩싸였던 청중들은 정태호 후보가 0.6%p 차로 이겼다는 결과 발표가 나오자 비로소 자리에서 뛰어 일어나며 "정태호"를 연호했다. 수락 연설을 듣지도 않은 채 자리를 뜬 김희철 전 의원은 안중에도 없었다.

    친노 세력의 포용력 부족은 선거운동기간 내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김희철 전 의원은 △여론조사 조작 의혹 규명 △권리당원 당비 납부 내역 공개 △불공정 경선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하며 "이것이 받아들여지기 전까지는 정태호 후보를 지지하지 않겠다"는 입장으로 일관했다.

    추미애 최고위원이 전화를 해도,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나서도, 심지어 문재인 대표가 한 번 만나자고 해도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김희철 전 의원을 지지하던 조직과 사람들은 일부가 국민모임 정동영 후보 측으로 이동했다.

    김희철 전 의원은 28일 "향후 (관악을의) 정치 지형에 어떻게 변화하든 간에 내년 총선에는 반드시 출마한다"고 밝혀 다시금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7년간 현 야권 후보만을 지속적으로 당선시켜 온 '야당 독주' 관악을에서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가 지속적으로 여론조사 선두를 달릴 수 있게 된 것에는 김희철 전 의원의 포지셔닝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지역 정치권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 지난 20일 새정치민주연합의 친노패권주의와 여론조사 조작 의혹을 비판하며 새정치연합을 탈당하고 국민모임 정동영 후보 지지를 선언한 이행자 서울시의원.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지난 20일 새정치민주연합의 친노패권주의와 여론조사 조작 의혹을 비판하며 새정치연합을 탈당하고 국민모임 정동영 후보 지지를 선언한 이행자 서울시의원.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4월 20일 이행자, 새정치연합을 탈당하며 관악을 선거 구도의 새 판을 짜다

    선거전 중반, 삼국정립(三国鼎立)의 구도를 확립한 것은 이행자 서울시의원이었다.

    새정치연합 정태호 후보가 선거 출정식을 연 17일 관악세이브마트 앞, 이행자 시의원은 새정치연합을 상징하는 파란 잠바를 걸치고 정태호 후보와 문재인 대표 등을 청중들 앞에 소개했다.

    그로부터 사흘 후인 20일, 이행자 시의원은 서울시의회에서 비장한 모습으로 새정치연합 탈당과 국민모임 정동영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이행자 시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에는 새정치도, 민주도, 포용과 배려도 없었다"며 친노패권주의와 여론조사 조작 의혹 등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때까지 각종 여론조사에서 관악을 보궐선거의 판세는 2강 1중이었다. '1중'에 해당하는 국민모임 정동영 후보가 무리수를 던졌다며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내심 정동영 후보를 지지하는 지역 주민들은 정태호 후보 지지자들의 큰 목소리에 내심을 숨겨야 했다.

    하지만 이행자 시의원이 합류하면서부터 정동영 후보 측은 괄목상대(刮目相對)할 무서운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지난해 실시된 6·4 지방선거 관악3 선거구에서 60.9%라는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될 정도로 탄탄한 바닥 장악력을 보유한 이행자 시의원은 정동영 후보의 전통시장·상가 방문 때 한 명 한 명을 정동영 후보에게 소개했다.

    왜 관악에 나왔는지, 관악을 위해 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명쾌히 설명하지 못한 채 "삼겹살 불판이 더러워지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중앙정치 차원의 말밖에 할 수 없었던 정동영 후보는, 이행자 시의원이 가세하면서 지역맞춤형 공약들도 줄줄이 내놓을 수 있었다.

    24일 관악청소년회관에서 열린 국회의원 후보자 초청 공청회에서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이런 지역 이슈 관련 공청회는 아무래도 DY(정동영 후보)가 불리하지 않겠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제는 이행자 시의원이 있으니 준비를 잘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선거전 중반, 2강 1중 구도를 깨고 정동영 후보의 지지율을 끌어올려 삼파전 구도로 만든 힘. 국민모임 정동영 후보의 23일 신원시장 유세에서 개그맨 김용이 이행자 시의원을 가리켜 "관악을을 재는 정확한 자, 이행자"라고 소개한 것은 과언이 아니었다.


  • 지난 24일 사전투표를 하고 있는 새누리당 오신환(사진 가운데)·새정치민주연합 정태호(왼쪽)·국민모임 정동영(오른쪽) 후보 부부. 사전투표가 이뤄진 뒤 리서치뷰 여론조사에 대한 위법 소지 결정과 인용·공표·보도 금지 결정이 떨어져 거대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지난 24일 사전투표를 하고 있는 새누리당 오신환(사진 가운데)·새정치민주연합 정태호(왼쪽)·국민모임 정동영(오른쪽) 후보 부부. 사전투표가 이뤄진 뒤 리서치뷰 여론조사에 대한 위법 소지 결정과 인용·공표·보도 금지 결정이 떨어져 거대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4월 26일 안원일, 여론조사 관련 의혹으로 관악을의 판세를 흔들다

    선거전 막판, 다시 한 번 판세를 요동치게 만든 것은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였다.

    리서치뷰는 17~20일 나흘간 관악을에서 여론조사를 실시해 정태호 후보가 1위로 나타난 결과를 공표했다. 관악을에서 정태호 후보가 1위로 나타난 여론조사는 이 리서치뷰 조사 결과가 유일하다.

    정태호 후보는 이 조사 결과를 담은 현수막을 선거구 전역에 게시했다. 그 상태에서 24~25일 사전투표가 실시됐다.

    문제는 해당 여론조사의 신빙성이었다. 30대 유권자에서 정태호 후보의 지지율은 무려 61.9%였던 반면, 정동영 후보의 지지율은 0.9%에 불과했다. 특정 연령층 유권자에서 두 후보 간의 지지율 격차가 무려 61.0%에 달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쉽게 믿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정동영 후보 측은 해당 여론조사에 대해 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공심위)에 이의를 신청했고, 이것이 26일 인용 결정되면서 거대한 파문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사전투표까지 이미 다 진행된 상황에서, 특정 후보의 홍보 자료로 활용된 여론조사 결과가 위법할 소지가 있는 것으로 뒤늦게 결론난 것이다. 정동영 후보 측은 "해당 여론조사 결과를 믿고 사표방지심리에 따라 해당 여론조사 기간 정태호 후보에게 찍은 표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 정동영 후보 측은 안원일 리서치뷰 대표를 금천경찰서에 고발 조치했다. 지역 사회 일각에서는 안원일 대표가 정태호 후보와 2003년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했다는 점을 근거로, 의혹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반면 정태호 후보 측은 "선관위와 여론조사기관 사이의 문제로, 우리와는 무관하다"며 정동영 후보를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선관위에 고발 조치한 상황이다.

    초박빙으로 진행되는 관악을 보궐선거전의 막판에, 돌발 변수로 등장한 '리서치뷰 여론조사 조작 의혹'. 후보들 간의 고소·고발전까지 유발한 이상, 정태호 후보와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했던 안원일 리서치뷰 대표가 막판 판세를 뒤흔든 것은 부인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