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해남의 소금 명인 김막동은 클레이 아티스트!"
  • ▲ 뽀미에르 오너셰프 이동송. ⓒ이동송
    ▲ 뽀미에르 오너셰프 이동송. ⓒ이동송

    서울에서 400km.
    가도 가도 전남 해남은 나타나지 않는다.

    대학선배 김씨 형은 어릴 적 고향이 전남 담양이다.
    지난 10여 년간 나의 전라남도 거래처로 꼬박꼬박 데려다 준 오랜 시간 속 인물이다.
    거시기 가는 길을 절대로 사양하는 법이 없다.
    게다가 희한한 '발 100km'의 소유자다.
    어찌 그렇게 정속도를 유지하는지 신기하다.
    엄청난 인내와 테크닉이다. 오른발에 쥐가 날법도 한데….
    그에게 나를 맡기고 편하게 한잠 자고 나면 순식간에 공간이동된 듯 칼칼한 전라남도의 공기가 차 안으로 들어온다.
    반 정신에 목을 못 가누는 상황에서도 해남 가까이 왔다는 걸 알 수 있다.
    뻘 사이로 난 길 마지막 구간들을 지나 새로 건설한 목포대교와 영암호 방조제를 지나면, 어느새 적막하고 고요한 땅에 들어와 있다.
    이 길의 가장 남쪽 끝 우수영에 도착한다.

    따로 흑백모드를 설정할 필요가 없다.
    흐린 하늘과 아직 바닷물을 들여놓지 않은 염전은 같은 색이다.
    갑갑하다.
    간간히 부는 바람도 프레시하지 않다.

    길 못찾는다고 언성 높이던 분이 2층 현관문을 열고 마당으로 내려오시는데….
    아! 기억난다.
    반갑다.
    이 땅의 레지던트 김막동 명인이다.
    3년 반 전에 왔던 나를 당연히 기억 못하시지만, 갸우뚱 반기신다.
    어디선가 나타나신 사모님도 내 얼굴을 곁눈으로 관찰하신다.

    2011년 처음 왔던 이곳은, 여전히 엄청난 에너지가 있는 땅이다.
    그 사이 정말 오고 싶었지만, 어디 돌아다닐 여력이 없었다.
    장사도 안되었고….

    벌써 1시다.
    오늘은 시간이 빠듯하다.
    서울로 올라가는 길 오후 4시쯤, 함평 <자희향> 탁주 노영희 대표와도 약속을 잡았기에 마음이 급했다.
    일단 염전부터 가 보자고 재촉을 했다.
    뭐 멀리 갈 것도 없이 집앞에서 100m 거리가 토판염전이다.

  • ▲ 전남 해남의 김막동 토판염전. ⓒ이동송
    ▲ 전남 해남의 김막동 토판염전. ⓒ이동송



    "지금 갯토를 다지는 일을 하고 있어요.
    4월 20일쯤부터는 시작해야 하겠지만, 날씨가 따라줘야 하지요."


    김막동 장인은 마침 인부들이 손으로 끌고 당기는 롤러작업을 하고 있는 토판염전에 훌쩍 들어가신다.
    조심스럽게 나도 따라 들어간다.
    작업하시는 분들한테 알아들을 수 없는 지시사항을 내린 후 두발로 토판 가장자리를 밟는다.
    나도 따라 한다.

  • ▲ 김막동 토판염전은 갯벌 위에 장판을 까는 대신 갯토를 다져만든 토판을 조성한다. 롤러로 토판을 다지는 작업을 하는 모습. 토판염전 바닥을 살펴보는 맨 오른쪽 사람이 김막동 장인, 그 옆이 이동송 셰프.ⓒ이동송
    ▲ 김막동 토판염전은 갯벌 위에 장판을 까는 대신 갯토를 다져만든 토판을 조성한다. 롤러로 토판을 다지는 작업을 하는 모습. 토판염전 바닥을 살펴보는 맨 오른쪽 사람이 김막동 장인, 그 옆이 이동송 셰프.ⓒ이동송



    "토판이 아주 판판해야 해요.
    고르게 다지지 않으면 좋은 소금을 생산할 수가 없어요.
    이건 기계로 할 수가 없으니, 모두 사람이 해야해요.
    그러니 누가 이 일을 한다고 하겠어요?"


    내가 김막동 토판염을 처음 접한 것은 2005년.
    Guérande(게랑드) 소금이 최고인 줄 알던 때였다.

    필자 주 :
    게랑드는 프랑스 Bretagne(브르타뉴) 해안을 따라 길게 뻗어있는 염전 지역.
    예로부터 보존된 갯뻘에서 대서양의 깨끗한 바닷물과 철새들의 배설물이 만들어내는 자연 명품 소금의 대명사로 통한다.


    김막동 토판염 원염의 크리스탈은 아주 굵고 딱딱했다.
    게랑드 소금이 회색이라면, 김막동 토판염은 밝은 미색이다.
    흙위에서 만들어졌다고 보기에는 너무 순수했다.
    게랑드 소금 맛이 어땠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 ▲ 3년 묵힌 토판염과 5년 이상된 토판염 비교. 오른손에 담긴 소금이 5년산인데 단맛이 압도적이다. ⓒ이동송
    ▲ 3년 묵힌 토판염과 5년 이상된 토판염 비교. 오른손에 담긴 소금이 5년산인데 단맛이 압도적이다. ⓒ이동송

    당시 한참 안심스테이크 메뉴를 했었다.
    아무 것도 마리네이드를 하지 않은 4cm짜리 두툼한 안심을 시뻘겋게 달군 주물 그릴에서 단시간 구워내고 불에서 꺼내자 마자 지글거리는 스테이크의 표면 위에 김막동 굵은 토판 원염을 정성으로 토핑한다.
    뜨거운 열기에 소금 밑부분이 약간 녹아 자리를 잡고 고정된다.
    이전까지 밤새워 끓이고 졸여 만든 Demi-glace(드미 글라스) 소스가 한방에 깨졌다.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이다.

    "양평에서 스님이 오셨어요.
    제대로 된 소금을 만들어 줄 사람을 찾아 전국을 다니셨대요.
    토판으로 만들 수 있겠느냐고 하셨어요.
    그런데 그 힘든 일을 누가 한다고 했겠어요?

    저 역시 그것이 엄청나게 고된 일 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이렇게 얘기했지요.
    일반 천일염 가격의 10배를 쳐달라고, 그리고 최소 3년치를 사달라고….
    그러면 내가 한번 해보겄다고 했더니, 스님이 조건을 받아들이셨어요.
    벌써 20년 전 일이지요.

    30년 전에 토판은 이미 다 사라졌지요.
    옹기 타일, 일반 타일, 그 다음엔 장판을 염전 바닥에 다 깔았지요.
    나도 장판염을 하지만, 장판 아래 갯토는 다 썩어서 토판으로 다시 복원할 수가 없어요.
    제대로 된 토판을 만들 수가 없어 오염되지 않은 집 옆 갈대밭을 밀어 냈지요.
    그래서 시간과 돈이 엄청 들어갔어요.
    12개 토판과 1차 2차 3차 증발지들을 합쳐 만팔천평이에요.
    그 당시 5년간 만든 토판염은 스님이 신도들하고 평생 쓰신다 하고 몽땅 가져가셨지요.

    10배를 받아야허는 이유는 토판염이 장판염 생산양의 10분지 1도 안되기 때문이에요.
    게다가 일은 몇배로 더 힘들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시작을 하는 것이 아니었지요.
    그때는 젊었으니까 제대로 된 것 한 번 해보자고 했는데, 금방 20년이 되어 버렸네요.
    계속 하자니 너무 힘들고 돈도 안되고….
    그만 하자니 여태까지 해 온 거시기가 있어, 아쉽기도 하고.
    이 힘든 일을 뭐 좋다고 어디 물려줄 수도 없고…."


  • ▲ 4년전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 촬영한 김막동 토판염 소금창고 모습. ⓒ이동송
    ▲ 4년전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 촬영한 김막동 토판염 소금창고 모습. ⓒ이동송
     
  • ▲ 최근 다시 찾은 김막동 토판염전의 소금창고 모습. ⓒ이동송
    ▲ 최근 다시 찾은 김막동 토판염전의 소금창고 모습. ⓒ이동송

    4년 전 왔을 때도 똑같은 얘기를 늘어 놓으셨는데, 나를 기억 못하시니….

    "가장 궁금한게, 비가 오면 어떻게 하나요?
    간물이야(1차 2차 3차 증발지에서 단계별로 농축한 아주 짠 바닷물. 간물이 태양을 만나면 바로 소금 결정이 될 수 있다) 해주(간물을 저장하는 공간)에 보관하면 되겠지만, 토판이 빗물에 망가지지 않나요?"

    "비가 와야 판이 더 단단해져요.
    이른 봄이 돼야 인력을 동원해서 모래같은 이물질이 섞여있지 않은 고운 갯뻘 흙을 퍼날라오지요.
    사람의 발로 다지고 롤러를 끊임 없이 굴려줘야, 마치 하나의 거대한 진회색 대리석 판처럼 만들어져요.

    토판 위에서 바닷물이 마른 뒤 결정된 소금의 윗부분만 일정한 두께로 살살 밀어서 채취하지요.
    흙이 안들어가게 하는 작업이 토판염 생산의 핵심이에요.
    막 밀어서 많이 만들자고 하면 뭣하러 이짓 한답니까?

    기껏 생산해 놓고도 품질이 안 좋으면, 그냥 장판염하고 섞어버리기도 하지요.
    그런데 한 번 소금을 생산하고 나면, 그냥 그 판에서 다시 안해요.
    남아있는 소금과 함께 다시 또 판을 다져줘야 하거든요.
    간물을 다시 채우려면, 판을 딱딱하고 판판하게 다시 다져야 하지요.
    지금 하고 있는 롤러작업이 매번 다지는 작업을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여기서 한 해 생산이 결정나는 거구요"


    도예가들만 흙을 다루는 줄 알았는데, 김막동 장인은 전혀 다른 방식의 독창적 흙작업을 하는 또 다른 clay artist였다.

  • ▲ 필자의 집 베란다에 보관중인 김막동 토판염. ⓒ이동송
    ▲ 필자의 집 베란다에 보관중인 김막동 토판염. ⓒ이동송
     
  • ▲ 매일밤 토판염을 종류별로 쓸만큼만 손절구로 분쇄해 놓는다. ⓒ이동송
    ▲ 매일밤 토판염을 종류별로 쓸만큼만 손절구로 분쇄해 놓는다. ⓒ이동송

    매일 밤 손절구에 김막동 토판염을 빻는다.
    빈티지별 김막동 토판염 컬렉션이 있다.
    그날 그날 요리에 따라, 년식과 분쇄 정도가 달라진다.
    소스에는 아주 곱게 간 것을, 샐러드에는 정제한 토판염을. 그리고 나의 간판 메뉴 Rib-eye Steak(립아이 스테이크)에는 10년 된 토판 원염을 아끼지 않는다.

  • ▲ 아무런 양념이나 밑간 없이 김막동 토판염만을 올린 처녀(미경산) 한우 립아이 스테이크. ⓒ이동송
    ▲ 아무런 양념이나 밑간 없이 김막동 토판염만을 올린 처녀(미경산) 한우 립아이 스테이크. ⓒ이동송

    아름다운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김막동 토판염을 소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