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원고 실종자 두 유가족의 감동적 용기
     
     단원고 실종 학생 4명 가운데 조은화·허다윤 양 부모는
    23일 오후 2시 안산의 한 병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더 이상 과격한 투쟁의 현장에서 세월호 가족들이 다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부디 유가족들을 포함한 피해자 가족들이 물대포와 캡사이신 최루액을 맞으며
    아들 같은 의경들과 악에 받쳐 싸우게 하는 걸 멈춰 달라.
    (유가족이) 경찰과 싸우지 않고 경찰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말했다.
    (조선 닷컴 4/23)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가?
’집단‘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판단, 논리, 이성, 감성이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행동이다.
이게 말은 쉬워도 행하기는 어렵다.
사람들은 다 편하고 쉽고 안전하게 살려고 하지
굳이 고생을 사서 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난 돌이 정맞는다”는 속담 그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당히 ’대세‘에 맞추며 산다.
자유당 말기에는 '이기붕 끗발‘에,
공화당-유신 때는 '정보정치 서슬‘에,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떼의 대세'에 맞추는 게 살기가 편했다.
 
 여기다 대고 딴 소리를 했다가는 ‘불순분자’ 아니면 ‘반(反)민중’ 소리를 들어야 했다.
자칫 했다가는 일생에 두 번, 한 번은 ‘불순분자’ 또 한 번은 ‘반(反)민중’ 소리를 다 들을 을 수도 있었다. 도대체 뭣이 어떻게 됐기에 이런 낙인이 번갈아가며 찍히곤 했던 것일까?
여러 가지로 따져볼 수 있겠지만 철학적으로는,
우리네 근-현대 사상사에선 자유주의의 지층(地層)이 너무 취약했던 탓이라고 생각해 본다.
 
 자유주의라고 하면 사람에 따라 제각기 해석이 다릏 수 있겠기에,
자유주의보다는 그저 '개인 차원의 자유로운 사유(思惟)'라고 해두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개인’ 그리고 ‘자유로움’ 이 두 가지야말로 근대 지성의 출발점임에도,
우리 근-현대 정신사에서는 ‘개인’과 ‘자유로움’보다는
‘집단주의’와 ‘전체주의적인 것’이 너무 세게 불어 닥쳤다.
‘개인’과 ‘자유로움’은 마치 말 안 듣는 자쯤으로 배척당하고 매도당했다.
우파에도 좌파에도 그런 풍조가 다 있었다.
 
 하긴 피투성이가 돼가지고 죽느냐 사느냐의 큰 패싸움이 붙었는데,
거기서 ‘개인’과 ‘자유로움’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아마 사치였을 것이다.
그렇게 하려던 일부 지식인들은 삼천리 강토에서 발붙일 데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 불가피성을 감안한다 해도 그 폐단은 결코 적지 않았다.
“우~우‘ 하는 집단주의, 그리고 그것이 타락할 경우의 집단폭력의 ’공포분위기‘ 같은 게
우리 사회에 은연중 정착했던 것이다.
 
 집단이 뭐라 그럴까봐, 집단이 린치를 가할까봐, 집단이 따돌림을 할까봐
개인이 다른 생각이 있어도 입을 벙긋하지 못하는 두려움-
이게 우리사회 머리 위에 마치 ’에비‘처럼 군림해왔다.
일부는 이것을 미화하기도 한다.
아시아적 특성이라느니, 동양적 미풍양속이라느니, 하면서.
물론 협동적인 기풍과 건전한 단체정신은 미덕일 수 있다.
 
 그러나 동전엔 양면이 잇듯이, 집단주의는 그 나름의 어두운 측면도 분명히 가지고 있다.
바로, 개인의 양심의 자유, 그것을 당당히 표출하는 용기, 이른바 ’대세‘라는 것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하는 자유지성의 정직성이
집단의 횡포, 집단의 위선, 집단의 권력화, 집단의 익명성 속에
속절없이 매장당하곤 하는 게 그것이다.
 
 광우병 폭란 때 그것에 반대하던 극소수의 용감한 개인들의 ‘양식(良識)의 외침’은
광기서린 군중폭력의 주먹질과 발굽여아래 여지없이 짓밟혔다.
반대하는 신문사 문이 부서지고, 경찰관이 얻어맞고, 공공시설이 파괴되고,
정치인들이 다투어 광풍에 아첨하고, 대통령이 청와대 뒷산에 올라 투항의 ‘아침이슬’을 불렀다.

이러고도 우리가 선진국 문턱? 법치국가? 민주주의? 웃기지 말라.
 
 이런 점에 비추어, 단원고 실종자 두 유가족의 '다른 목소리‘는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그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그것을 참아내는 그 극기(克己)인들 또 얼마나 힘겨웠을까?
국민 모두가 숙연히 옷깃을 여미며 그 부모들의 단심(丹心)에 동참했으면 한다.
 
 ‘권력화 된 집단’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위하여!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