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北주민, '선군 발전소는 애물 발전소'
     
    박주희 기자  /뉴포커스
         

  • ▲ 북한 선군발전소 공사장 / (자료사진)
    ▲ 북한 선군발전소 공사장 / (자료사진)

    20일 북한 김정은이 '백두산 선군발전소' 공사장을 현지에서 시찰했다. 선군발전소는 1990년대 중반 착공됐다. 김일성 사망 직후다. 하지만 김정일 정권을 넘어 김정은 집권기인 지금까지 여전히 공사가 진행중이다.

    '백두산 선군발전소' 위치는 백두산이 아닌 양강도 백암 지방이다. 처음에는 백암군 당의 주체로 군 자체 힘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워낙 방대한 규모로 설계된 탓에 암석이 많은 자연환경에 굴을 뚫는 작업부터 지연되기 시작했다. 착공 후 10년이 흘러 북한은 정권 차원의 조치로 2004년 '사회주의 청년동맹원'들로 꾸려진 돌격대(사회 청년들로 꾸려져 건설장에 파견되는 인원)를 발전소 건설에 투입시켰다. 이 후 발전소 이름이 '백두산 선군청년 발전소'로 바뀌었다.

    발전소 건설이 청년동맹의 과제로 수행되면서 전국에서 수많은 청장년이 모여들었다. 각 도의 여단이 지휘하고, 대대와 중대, 소대 편성으로 구성된 돌격대가 공사를 맡았다. 그들은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북방의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며 건설을 시작했다.

    2013년 남한에 정착한 탈북민 장 씨는 "대대적인 공사가 시작되면서 조용하던 골짜기가 발파소리와 윤전기재의 소음으로 한동안 북적였다. 공사 당시 돌격대원들은 열약한 경제난으로 인해 하루 세끼 식사조차도 배부르게 먹을 수 없었다. 돌격대원들은 배고픔을 견디다 못 해 인근 농장 마을로 도적질을 하러 다녔다. 농장에서는 돌격대 지휘부 여단 간부들을 찾아가 항의했고, 여단 간부들은 농민에게 적발된 돌격대원들을 처벌했다. 징계로 연장 작업을 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도적행위는 끊이지 않았고 밭으로 가야할 농민은 낮에도 집을 비우지 않고 농장을 지켰다"고 증언했다.

    "북한 주민들은 공사 속도에 전혀 진척이 없는 선군발전소를 가리켜 '행방 없는 건설' 혹은 '타이어 없는 중고버스'라고 비꽜다. 왜? 북한에는 지방마다 주민들의 교통편의를 위해 종사하는 여객사업소가 있다. 여기서 운행되는 버스는 대체로 70~80년도에 생산된 구형버스다. 90년대 중반부터 열약한 연유사정으로 운행을 멈춘 상황이고, 현재는 녹슬어버린 고철이나 마찬지다. 거기에 '고난의 행군' 시기 도적들이 타이어까지 훔쳐가면서 버스 원체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그때부터 주민들은 가망없고 승산 없는 일을 말할 때 '타이어 없는 중고버스'에 비유한다. 그만큼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청년동맹은 2006년 10월 10일까지 발전소 건설을 완성하겠다고 충성의 결의모임까지 다졌다. 하지만 발전소 건설은 착공 시작으로부터 2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미완성이다. 왜 아직도 선군발전소는 완공단계에 이르지 못했을까.

    북한의 지하 핵실험장인 풍계리가 선군발전소 건설장(양강도 백암군과 함경북도 길주군의 경계점인 만학산 부근)과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이것이 공사가 지연될 수 밖에 없는 주요인이다.

    선군발전소 공사 구간에는 암석으로 둘러쌓인 산들이 많다. 여기서 가장 어려운 과제가 굴을 뚫는 작업인데 작업도구나 윤전기재가 원만하지 않아 곡괭이나 쇠로 만든 지렛대를 가지고 작업에 착수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더불어 풍계리 지하핵실험이 진행될 때마다 요란한 폭음으로 인해 완성 단계에 이른 갱도 공사장에는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발생하기도 한다.

    풍계리에서 지하핵실험이 진행되면 공사장 갱도작업장에는 지진이 일어난 것 처럼 여기저기 균열이 생긴다. 처음에는 미세하게 나타나지만 점차 눈에 뜨일 정도로 벽체에 금이 간다. 그러다가 고정시킨 철근들도 움직이게 된다. 결국 핵실험 강행으로 오랜 노력을 들여 완성하던 공사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난관에 부딪힌다. 자재도 종전 것보다 훨씬 강도 높은 것을 사용한다. 하지만 유통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탓에 좋은 자재 또한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한다. 이 때문에 공사속도가 더욱 늦어진다.

    또 다른 탈북자 혜산출신 최 씨는 북한에 살 당시 혜산시 대대에 배속되어 발전소 건설에 참여했다. 그는 "공사를 하면서도 우리끼리 늘 이런 말을 했다. 이 공사가 우리 대에 끝날까? 측량도 제대로 못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물줄기가 터져 반년동안 품들인 공사가 물거품이 됐다. 거기에 대대 간부들은 자재나 식량을 빼돌리고, 운전 기재에 들어가는 기름은 자신들의 사적인 일에 이용했다. 정권은 주민들에게 선군발전소 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부담금을 거두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건설장에 강제적으로 도시락을 바치도록 강요했다. 오죽 했으면 주민들은 선군발전소를 가리켜 살아가는데 전혀 도움이 안되는 '애물 발전소'라 부른다."고 부연했다.

    그는 "이번에 김정은이 선군발전소를 시찰하고 만족했다고 하는데 발전소 건설에 참여했던 경험자로서 답답한 생각만 앞선다. 건설을 빨리 끝내려면 가까운 위치에 있는 핵 실험장부터 없애야 하는데 해마다 핵실험을 진행하니 그 때마다 공사 속도가 늦어질 수 밖에 없다"며 긴 한숨을 쉬었다.  [뉴포커스=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