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이후 한국 근무 미군 350여만 명 대상…전현직 주한미군 사령관도 동참
  • ▲ 기구 강하(일명 코끼리 공수) 훈련을 준비 중인 주한미특수전사령부(SOCKOR) 대원들. 이들 또한 주한미군이다. ⓒ위키피디아 공개사진.
    ▲ 기구 강하(일명 코끼리 공수) 훈련을 준비 중인 주한미특수전사령부(SOCKOR) 대원들. 이들 또한 주한미군이다. ⓒ위키피디아 공개사진.

    ‘전우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체가 ‘해병대 전우회’ ‘특전동지회’ 등이다. 그런데 조만간 한미 양국을 아우르는 ‘국제적인 전우회’가 한국 정부의 지원 아래 출범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 14일부터 美워싱턴 D.C.에서 열렸던 제7차 한미통합국방협의체(KIDD)를 계기로 가칭 ‘주한미군 예비역 장병협회(KODVA, Korean Defensc Veterans Association)’을 창설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 국방부는 ‘주한미군 예비역 장병협회’ 창설을 적극 지원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주한미군 예비역 장병협회’ 정회원 자격은 한국에서 근무했던 예비역 미군 장병과 군무원이어야 한다. 현재 한국에서 근무 중인 미군은 ‘명예회원’ 자격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한다.

    ‘주한미군 예비역 장병협회’ 가입 대상은 최소한 수십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6.25전쟁 이후 지금까지 한국에서 근무했던 미군 숫자는 350여만 명에 이르기 때문이다.

    역대 주한미군 사령관들도 참여에 적극적이라고 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지난 16일(현지시간) 주미 한국대사관 관저에 역대 주한미군 사령관 5명이 ‘주한미군 예비역 장병협회’ 설립을 논의하기 위해 모였다고 한다.

    안호영 주미대사의 초청으로 대사관저를 찾은 역대 주한미군 사령관은 로버트 세네왈드(1982년 6월∼1984년 6월), 존 틸럴리(1996년 7월∼1999년 12월), 리언 러포트(2002년 5월∼2006년 2월), 월터 샤프(2008년 6월∼2011년 7월), 제임스 서먼(2011년 7월∼2013년 10월) 등 한국 현대사에서 역동적인 시기였던 때 주한미군을 이끌었던 예비역 대장들이다.

  • ▲ 서울 용산의 한미연합사(CFC)를 찾은 해군사관학교 생도들. 한국군에게 주한미군은 한 마디로 '전우'다. ⓒ美육군 홈페이지
    ▲ 서울 용산의 한미연합사(CFC)를 찾은 해군사관학교 생도들. 한국군에게 주한미군은 한 마디로 '전우'다. ⓒ美육군 홈페이지

    주한미군 출신 인사들의 제안을 수렴한 뒤 ‘주한미군 예비역 장병협회’ 창설을 공식 제안한 안호영 주미대사는 역대 주한미군 사령관들과 함께 이 ‘전우회’로 한미 동맹을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한다.

    ‘주한미군 예비역 장병협회’는 창설 이후 주한미군 장병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모범 장병들을 선발해 표창하는 사업을 벌일 것이라고 한다. 예비역 주한미군 장병들의 한국 재방문과 각종 친목행사도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국방부에 따르면, ‘주한미군 예비역 장병협회’는 美정부의 지원 아래 주미 한국대사관이 주도하며, 예산 등 구체적인 부분은 한미 관계자들 간의 공조를 통해 이뤄질 계획이라고 한다.

  • ▲ 훈련 전 브리핑을 듣고 있는 카투사. 카투사는 한국군과 미군을 더욱 가깝게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카투사 가운데 美육군 2사단 등에 근무하는 장병들은 한국군보다 더 고된 훈련을 받는다. ⓒ美육군 홈페이지
    ▲ 훈련 전 브리핑을 듣고 있는 카투사. 카투사는 한국군과 미군을 더욱 가깝게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카투사 가운데 美육군 2사단 등에 근무하는 장병들은 한국군보다 더 고된 훈련을 받는다. ⓒ美육군 홈페이지

    한편 ‘주한미군 예비역 장병협회’ 회원 자격에 ‘카투사’ 출신들도 포함할 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

    정식명칭이 ‘주한 美육군 한국군 지원단(KATUSA, Korean Augmentation To the United States Army)’인 ‘카투사’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창설됐다. 실제 소속은 한국군 육군본부 인사사령부 소속이다. 현재는 연간 2,000여 명을 선발한다. 

    ‘카투사’ 출신들은 외부의 많은 오해와 폄하에도 불구하고, 주한미군과 한국 사회를 잇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카투사’에서 군 생활한 사람들의 수는 어림잡아도 10만 명이나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