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중국을 半半으로 친 윤병세 語法

      미국 중국이 동시에 러브콜을 하는 상황은 축복?


  • 윤병세 외무장관이 한 말이다.

    최근 사드 배치와 AIIB 가입과 관련해 미국 중국 사이에서
    박근혜 외교안보 팀은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걸 두고 정부는 스스로 ‘전략적 모호성’ 어쩌고 하는,
    그럴듯하지만 공허한 말로 얼버무렸다.

     그러자 여론이 “그게 무슨 ‘전략적 모호성’이냐,
    무능무책(無能無策), 무소신(無所信)이지 하며 일제히 비난했다.
    ‘축복’ 운운한 윤병세 장관의 자화자찬은 그런 여론에 대한 반론이었던 셈이다.
    그는 물론 얼마든지 자신의 견해를 밝힐 수 있고 반론할 수 있다. 그것 자체는 존중한다.
    그러나 그가 한 말의 내용에 대해서는 재반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입장에서 미국과 중국은 윤병세 어법(語法)이 그러듯,
    50 대 50으로 칠 수도 없고 쳐서도 안 된다.
    그리고 우리가 마치 미국, 중국 사이에서 딱 중간에 서서
    ‘절대중립’이라도 지켜야 하는 것처럼 시늉해선 안 된다.
    우리에겐 뭐니 뭐니 해도, 특히 안보 측면에선
    한미동맹이 주축(主軸)이고 한중 친선은 그 다음이다.
    거기엔 엄연한 차등(差等)이 있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이래 이룩한 한중 친선은 물론 평가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는 과정에서 이 정부는
    “무엇이 최상위 개념 이고 무엇은 그 다음인지...?”의 분별을
    의식(意識)속에서 흐린 점은 없었는지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한중친선은 중요하다.
    그러나 한미 동맹은 그보다 더 막중하다.
    그래서 한중친선이 한미동맹을 50% 정도 대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이렇게 말하면 정부의 외교안보 팀은 펄쩍 뛰며
    “우리가 언제 한미 동맹을 경시했다고 그러느냐?”고 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러브콜을 동시에 받았다”고 한 어법 자체가
    한미 동맹과 한중친선을 반반(半半)으로 치는 어법이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특히 외무장관의 입을 통해 그런 말을 툭 발설했다는 것은 더욱 부적절했다.
    대통령이 되기 직전의 노무현 정치인은 일찍이
    “반미(反美)면 어떠냐?”고 말한 적이 있다.
    윤병세 장관은 혹시 “미국 중국 중간에 있으면 어떠냐?”고라도 말할 작정인가?

     정세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한국이, 한국을 현재 이끄는 현 박근혜 정부가
    어째 친중(親中) 집중으로 기울고 있는 것 같다.
    중국이란 나라가 지난 수천 년 동안 한반도 국가들에 대해
    그렇게 좋은 나라이했던가?
    일본만 적(敵)이고 중국은 산타클로즈였던가?
    대한민국 67년사는 대륙에 붙어서 번영했는가, 해양과 동맹해서 발전했는가?

     이럴 수는 없다. 이렇게만 마냥 놓아둘 수는 없다.

    박근혜 정부의 친중 모노레일 달리기에 견제구를 던져야 한다.
    그렇다고 무슨 반중(反中)이라도 하자는 건 아니다.
    안보 문제에서일수록 한미 동맹을 최우선으로 치고
    한중친선을 그 다음으로 치는
    우리의 전통적 국가유지 전략의 우선순위를 재확인하자는 것뿐이다.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