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이규태 라인'으로 채워진 영화제 조직위, 결과는 '10억대 빚더미' 지리멸렬
  • 니 ​이게 뭔​지​ 아나? 이게 바로 십억짜리 전화번호부야. 십억짜리.


    검찰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 강도 높은 수사를 펼치면서 궁지에 몰린 '반달' 최익현(최민식 분)과 김판호(조진웅 분). 자칭 대한민국 최고의 인맥을 자랑하는 최익현은 '이러다 우리도 잡혀가는 것 아니냐'는 김판호의 걱정에, "자신 만큼은 검찰이 절대 건들지 못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한다.

    실제로 최익현은 극중에서 수차례 위기 상황에 직면하지만, 그때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인맥으로 금세 자유의 몸이 되는 신공(?)을 발휘한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은 인맥과 주먹으로 똘똘 뭉친 '건달 콤비', 최익현과 최형배의 비열한 동거를 그리고 있다.

    조직폭력배 두목 최형배가 한 집안 사람임을 알아챈 최익현은 형배의 아버지를 이용, 그를 자신의 수하에 두는 기지를 발휘한다. 이후 최익현은 종친회를 통해 인척 관계에 있는 고위직 인사를 알아내고 금품 로비를 통해 인맥을 넓혀가는 모습을 보인다. 이같은 인맥을 바탕으로 최익현과 최형배는 부산 최대 폭력조직의 보스로 거듭나게 된다.

    최씨 집안 어르신 : 여기는 내가 얘기했던 우리 집안 사람 최익현씨다.

    최주동 부장 검사 : 반갑습니다. 최주동 입니다.

    최익현 : 어, 그래 반갑네, 최검사.

    극중 최익현의 무기는 '최씨 가문'이다. 소위 '집안 사람'이라면 불법-탈법도 눈감아 주는 세상이 바로 '범죄와의 전쟁' 속 대한민국의 모습. 이처럼 병들고 찌든 사회적 구조를 십분 활용해 최익현은 무소불위의 지하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물론 영화 속 이야기와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 가상의 인물을 통해 대한민국의 어두운 이면을 풍자한 '범죄와의 전쟁'은 현실을 '다소 과장되게' 비틀어 묘사한 블랙코미디다.

    그러나 이 영화가 전혀 현실과 무관한 이야기를 다룬 것은 아니다. 적어도 특정 시기, 특정 지역, 특정 세력 하에선 분명 이같은 학연-지연이 통용되던 시절이 있었다. 안타까운 점은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한 오늘날에도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는 '낡은 연고주의'가 자꾸만 고개를 들고 있다는 점이다.

    ◆ 부산저축은행 비리 카르텔 핵심은 광주일고 동문

    건국 이래 최대의 권력형 부정 사건으로 손꼽히는 '부산저축은행 비리' 중심에는 광주일고 출신 경영진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2011년 7조원대 금융 비리에 관여해 구속 수감된 부산저축은행그룹의 고위 임원 상당수는 광주일고 출신이었다.

    ▲박연호 그룹 회장 ▲김양 부회장 ▲김민영 부산저축은행 대표 ▲오지열 중앙부산저축은행 대표 등 광주일고 선후배 사이로 뭉친 그룹 핵심 인사들은 불법적 사업 확장을 묵인하고 고교 인맥을 동원해 로비를 펼쳤다는 의혹을 받았다. ▲부산저축은행 측으로부터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된 김광수 금융정보분석원장은 박 회장의 광주일고 후배였고 ▲부산저축은행의 2대 주주인 박형선 해동건설 회장은 김양 부회장과 동기동창이었다.

    이처럼 광주일고 인맥으로 얽힌 부산저축은행 사태를 두고 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과거부터 이어져온 부실의 카르텔"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물론 부산저축은행 사태는 '소수의 광주일고 출신'들이 일으킨 비리로, 대다수의 광주일고 동문들과는 전혀 무관한 사건이다.

    그러나 연루자들의 학연이나 지연이 일종의 '비리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인맥 경영'의 부패한 일면을 드러낸 대표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 ◆ 일광그룹 계열사, '자금 세탁' 용도로 악용

    최근 배우 클라라와 민형사상 송사를 벌이며 주목을 받은 이규태(66) 일광그룹 회장은 지난 14일 500억원대의 방위사업 예산을 가로챈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로 구속 수감돼 또 한 번 세간에 충격을 안겼다.

    검찰에 따르면 이규태 회장은 5,100만 달러(약 570억원) 규모의 공군 전자전훈련장비(EWTS) 사업비를 9,600만 달러(약 1천억원)로 부풀려 연구개발비 명목으로 방위사업청으로부터 4,600만 달러(약 510억원)를 추가로 받아낸 혐의를 받고 있다.

    일단 이규태 회장이 빼돌인 돈은 몇 단계를 거쳐 일광그룹 계열사 쪽으로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채널A>에 따르면 이 회장이 기술 개발비 명목으로 챙긴 돈은 'SK C&C', '일진하이테크'를 거쳐 구속된 조OO씨가 미국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 '넥스드림'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주목할 만한 점은 '넥스드림'으로 건네진 자금 일부가 연예기획사인 일광폴라리스(폴라리스엔터테인먼트)로 건너간 사실이 확인된 것.

    이와 관련 <채널A>는 "'넥스드림'은 일광폴라리스와 미국 공연을 허위로 기획한 뒤 출연료와 공연 준비 비용 등으로 수십억 원을 지불했다"면서 "결국 여러 회사를 거친 돈의 최종 목적지는 일광폴라리스의 대표를 겸하고 있는 일광그룹 이규태 회장이었다"고 주장했다.

    "해외로 빼돌린 돈을 세탁해 국내로 다시 들여오는데 일광폴라리스가 이용됐다"는 <채널A>의 주장은 창립 이래 줄곧 무기중개업무만 맡아온 일광공영이 2000년대부터 방위산업과 전혀 무관한 '타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시켜온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 ◆ 무기중개상이 영화판 '기웃 기웃'..왜?

    지난 1985년 설립된 일광공영은 2001년부터 조금씩 다른 분야로 외연을 넓히기 시작했다. 모 사립초등학교를 인수, 일광학원을 세운 일광공영은 2005년에는 일광복지재단을 만들더니 이듬해에는 연예기획사 일광폴라리스(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이때부터 일광공영은 '일광그룹'이라는 이름 하에 ▲M아카데미 ▲대종상영화제 ▲일광폴라리스 ▲일광학원 ▲일광공영 ▲일광복지재단 ▲일진하이테크 등 다양한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사로 성장했다.

    흥미로운 점은 연예기획사를 거느린 일광그룹이 대종상영화제에도 깊숙이 관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삭제돼 찾아볼 수 없지만 대종상영화제의 '이전 소개글'을 보면 일광그룹 혹은 이규태 회장과 관련이 있는 인사들이 대종상영화제 조직위원회에 대거 포함된 사실을 알 수 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연예기획사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의 대표를 맡았던 김영한 전 기무사령관과 ▲일광그룹 계열인 청소년상담센터 '포사랑'의 이사장인 이희원 전 예비역 대장, ▲일광복지재단 이사장을 역임한 김만복 통일전략연구원장 등 영화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전현직 고위 공직자들이 포진돼 있었다.

    김만복 통일전략연구원장과 이희원 (사)포사랑 이사장의 다른 직함은 전직 국정원장과 전직 청와대 안보특보다. 이들 모두 국가 안보 분야에서 최고위직에 몸 담았던 인사들이다. 이들은 <대종상영화제 조직 운영을 도와주신 분들>이라는 항목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국방-안보 인사들이 대체 영화제 운영에 무슨 도움을 줬다고 조직위원회 명단에까지 등재된 걸까? 참으로 미스터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해당 명단에는 정계-방송계-경찰 고위 관계자 등 각 분야 최고 실권자들이 '영화제를 빛낸 인사'들로 기록돼 있었다. 이는 이규태 회장의 인맥이 국방은 물론 방송이나 금융계까지 뻗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종상영화제를 자문해주신 분들>

    ▲이경재(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이남기(前 SBS사장) ▲신학용(국회의원/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 ▲김정훈(국회의원/정무위원회 위원장) ▲김대기(前 대통령실 정책실장/前 문화부차관) ▲신계륜(국회의원/환경노동위원회) ▲유승희(국회의원/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간사) ▲이해성(前 대통령 홍보수석비서관) ▲한진희(경찰위원회 상임위원) ▲홍영기(前 서울경찰청장)

    <대종상영화제 조직운영을 도와주신 분들>

    ▲남경필(국회의원/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위원) ▲오영호(코트라 사장) ▲김만복(통일전략연구원장) ▲이희원(前 청와대 안보특보) ▲김영한(前 기무사령관)


    대종상영화제에 '10대 후원사' 중 하나로 참여하고 있는 하나금융그룹과 코트라 인사가 조직위원회 명단에 포함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전직 국정원장과 전직 청와대 안보특보, 전직 기무사령관이 영화제 자문단에 속해 있는 것은 참으로 의아스럽다. 경찰위원회 상임위원과 전직 서울경찰청장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

    영화계와 아무런 접점도 없던 고위직 인사들이 대거 대종상영화제 조직위원회에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본지는 해당 인사들의 학력-프로필을 조사하던 중,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문단이나 조직위원회에 포함된 인물 가운데 부산고를 졸업한 인사가 6명이나 된다는 사실이었다.



  • ◆ 이규태 회장 포함 6명이 부산고 출신

    일광복지재단 이사장을 역임한 김만복 통일전략연구원장은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고(18회)와 서울대 법대를 거쳐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에 입사했다. 개원 45년 만에 처음으로 공채 출신 국정원장으로 임명돼 화제를 모았던 김만복 통일전략연구원장은 2008년 '대화록 유출 사건'의 책임을 지고 공직에서 물러났다.

    경북 상주 출신으로, 부산고(20회)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27기로 임관해 화려한 군 시절을 보낸 이희원 전 청와대 안보특보는 2006년 11월까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및 지상구성군사령관을 역임하다 2010년 신설된 청와대 안보특별보좌관에 임명돼 화제를 모았다. 공직을 내려놓은 뒤엔 일광그룹 산하 청소년 복지상담센터인 '포사랑'의 이사장으로 임명돼 활동 중이다.

    대종상영화제 조직위원장을 맡은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은 부산고(22회)를 나와 간부후보생( 29기)으로 경찰에 입문해 5년간 한 경찰서에서 근무한 경력을 갖고 있다. 같은 부산고 출신으로 외무고시 특채로 경찰에 입문한 조현오 전 경찰청장과는 다른 길로 경찰직에 입문한 케이스다. 본인의 주장과는 달리 중앙정보부 요원으로 근무한 경력은 없다. 서울에서 경사까지 재직하다 85년 일광그룹의 모체인 일광공영을 창업했다.

    지난해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직에 오른 오영호 코트라 전 사장은 부산고(24회)와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버지니아주립대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행정고시(23회)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한 오영호 전 사장은 대통령비서실 산업정책비서관,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등 화려한 공식 생활을 거쳤다.

    부산 태생인 이해성 전 대통령 홍보수석은 부산고(25회)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MBC에 입사, 오랜 기간 방송 기자로 활동했다. 사내에서 경제부장, 통일외교부장, 북경특파원 등을 거친 이해성 전 수석은 노무현 정권 시절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내고, 한국조폐공사사장, 중국북경심걸유한공사 사장, 제주 스위트 호텔 사장 등을 두루 역임했다. 17대(열린우리당), 19대(민주당) 부산중동구 국회의원으로 출마했다 연거푸 고배를 마신 이 전 수석은 현재 '산만디사람들' 이사장을 맡고 있다.

    부산고(29회)와 한양대 법학과를 나와 31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김정훈 새누리당 의원은 부산광역시 고문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 등으로 활동하다 제17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현재까지 정무위원회 위원으로 의정 활동을 펴고 있다. 2013년부터는 한-중동 금융투자협력포럼 회장과 한-아랍에미리트의원 친선협회 회장도 맡고 있다.



  • ◆ 일광공영이 접수한 대종상영화제..현실은?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규태 회장이 '접수'한 대종상영화제 조직위는 일광그룹과 관련이 있거나, 이 회장과 개인적인 친분으로 맺어진 인사들로 채워져 있었다. 특히 부산고 인맥이 대거 포함된 점은 놀랍다. 영화제 조직위원회라는 지극히 전문적인 집단에, 학연-지연으로 얽힌 '비전문가'들이 버젓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은 대종상영화제가 여전히 구태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직위가 '親이규태 라인'으로 채워진 작금의 현실은 어떤가? 재정적으로 나아지기는 커녕, 영화제 사무국은 10억대의 빚더미에 오르며 총체적인 난국에 빠진 모습이다.

    남궁원 전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회장에 따르면 대종상영화제를 진행하는데에는 최소한 6억원 정도가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규태 대종상영화제 조직위원장으로부터 받기로 한 '복지 기금' 3억원이 미뤄지면서 당장 올해 대종상영화제 개최 여부조차 불투명해졌다는 게 남궁원 전 회장의 주장이다.

    본지는 '대종상영화제 조직위원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대종상영화제 사무국과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인총연합회 등에 문의를 했으나, 사무국은 '영화인총연합회'에, 영화인총연합회는 '사무국'에, 영화진흥위원회는 '영화인총연합회' 측에 물어보라며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수준 이하'의 모습을 보였다.


    √ 이규태 회장, 부산고 동문회서도 중추적 역할

    경남고와 함께 '부산의 양대산맥'으로 꼽히는 부산고는 오랜 명성답게 수많은 동문들이 사회 각계각층에 퍼져 있다.

    김진영(육사 17기), 윤용남(육사 19기), 박흥렬(육사 28기) 대장 등 육군 참모총장 세 명과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희원 전 청와대 안보특보·육사 27기)을 배출한 부산고는 법조계(임채진 전 검찰총장, 김신 대법관)와 경제계(구자영 SK이노베이션 사장, 정경득 태광실업 부회장), 관계(최병렬 전 서울시장,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장)까지 폭넓은 인맥을 자랑한다.

    한때 대권에 도전했던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무소속 정의화 국회의장도 이 학교 출신이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의료계 출신 의원 중 재산 순위에서 1,2위를 마크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된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과 조현오 전 서울지방경찰청장도 부산고가 자랑하는 동문들이다.

    부산고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고답게 <청조인>이라는 동창회가 조직돼 있다. 부산중고재경동창회인 <청조인>은 부산중학교를 졸업한 OB들도 같은 동문으로 대우하고 있다. 실제로 경기고를 나온 이철 전 코레일 사장이나, 동래고를 나온 박관용 전 국회의장도 <청조인> 명부에 등록 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청조인>에는 청조경제인회가 주관하는 '청조포럼'과, 사회인야구팀인 '청조야구단', 1백여회 정기산행을 돌파한 '청조산악회' 등 다양한 종류의 사모임들이 운영되고 있다. 이중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은 야구후원회장을 맡아 억대의 운영기금을 내는 등 동창회에서도 두드러지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