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수목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 sbs월화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 안방 극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실장님이 출연하는 신데렐라 스토리도 아니고, 출생의 비밀이 얽혀 있는 막장 스토리도 아닌 두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를 기록하는 데는 어떤 요소가 숨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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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요소는 입체적인 캐릭터.

    '착하지 않은 여자들'3대에 걸친 착하지 않은여자들의 사랑과 성공을 그린 드라마다. '안국동 김선생'으로 유명한 요리 강사인 강순옥(김혜자)는 남편에 대한 상처가 깊다. 자신은 남편을 지극히 사랑했지만, 남편은 고향 동생인 장모란(장미희)를 사랑해 집을 나가 죽음을 맞이했다.

    큰 딸인 김현정(도지원)은 방송국 간판 아나운서였지만, 더 이상 찾는 프로그램이 없어 뒷방 늙은이로 전락한 골드 미스다. 둘째 딸 김현숙(채시라)는 고등학교 때 내한 가수를 보러갔던 일을 계기로 퇴학까지 맞고 과외 선생인 정구민(박혁권)을 만나 20살에 정마리(이하나)를 낳는다.

    강순옥의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 도박을 하다 경찰에 쫓기게 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지만, 아버지(이순재)의 옛 여인인 장모란이 구해주게 된다. 장모란은 따로 사랑하는 남자가 있어 약혼까지 하려했지만, 첩의 딸이라는 이유로 파혼당하고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강순옥은 장모란을 자신의 집에서 함께 지내자고 제안하게 되고 다섯 여자의 뜻하지 않은 동거가 시작된다. 제각기 상처와 여자로써 제약이 있지만 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이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풍문으로 들었소'도 예기치 못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바로 한정호(유준상)이다. 4회까지만 해도 기존의 코믹한 이미지가 있어서인지 근엄하게 무게 잡는 역할이 어색하다는 평도 있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재벌들의 갑질을 보기 좋게 포장한 드라마가 아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없이 우아한 1%들의 삶을 한 꺼풀씩 벗겨낸다.

    법무법인 <한송>의 대표로 정치권도 좌지우지 할 만큼 엄청난 권력을 가진 인물이지만, 자식과 탈모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대한민국 중년이다. 한정호는 회사에서 보여주는 권위적이고 명석한 모습과 집안일을 처리하는데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허당스러운 면모를 동시에 보여줘야 하는 캐릭터이다. 의자에 앉아 사인만하고, 뒷목 잡고 쓰러지는 회장님이 아닌 인간 한정호를 보여주며 철저히 상류 사회를 비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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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로 꼽을 수 있는 요소는 '배우들'이다. 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는 국민 어머니 김혜자와 국민 할배 이순재, 국민 언니 채시라가 등장한다.

    김혜자가 그리는 강순옥은 더 이상 '전원일기'등에서 보여준 자애로운 어머니 김혜자가 아니다. 영화 '마더'에서 광기로운 어머니의 모습에 코믹한 요소가 추가된 느낌이다.

    유명한 요리 선생으로 명성을 날리긴 하지만, 가슴 깊숙이 남편이 딴 여자에게 눈이 팔려 집을 나가 죽은 것에 대한 원망과, 살아있었다면 조강지처인 자신에게 분명히 돌아왔을 거라는 기대감이 자리 잡고 있다. 남편이 사랑했던 장모란을 데려오긴 했지만, 잘해주다가도 갑자기 남편이 원망스러울 땐 화풀이 대상이 되기도 한다.

    끊임없이 장모란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기를 합리화 하면서 남편을 그리워한다. 배우 김혜자에게 이렇게 다양하고 익살스러운 표정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여러 가지 살아있는 표정 보여준다.

    강순옥은 20년을 혼자서 딸 둘을 키우며 내공을 쌓았다. 요리 수업에서 그것을 풀어내기도 하고, 특히 장모란에게 한번 씩 날리는 강력한 독설은 시청자로 하여금 절로 웃음이 나오게 한다.

    자신의 요리 수업에 나오고 싶어하는 장모란이 사촌 동생이라고 하고 참여하고 싶다고 하자 단박에 "싫은데!"라고 대답하는가 하면, 자신의 사위에게 당당히 '장인 어른 세컨드 장모란 여사'라고 소개하기도 하고, '불륜'이라는 제목의 책을 선물하기도 한다.

    쌩얼이라는 장모란의 말에 집안에서 누가 본다고 비비크림을 바르냐는 둥, 산에 오면서 비비크림을 떡칠하고 왔다고 타박하기도 하지만, 장모란의 먹고싶다는 말에 최고급 한우를 갈아 함박스테이크를 만들어주고, 자신이 쓰던 침대를 내어주고, 한약을 달여주는 등 정성을 보이기고 한다. 남편도 없는 집에서 본처와 후처가 함께 살며 보여주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시청자들은 '워맨스(woman-romance)'라고 칭하며 재미를 찾고 있다.

    둘째 딸 채시라는 영락없는 아줌마다. 자신이 이렇게 사는것이 모두 고등학교 시절 자신을 미워해 퇴학까지 시킨 담임 선생인 나말년(서이숙)때문이라고 생각해 그녀를 찾아가 사과를 요구하지만 여전히 무시만 당한다.

    흔히 아침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남편과의 이혼 후 찾아오는 연하의 남자는 이 드라마에는 없다. 김현숙은 20살 정구민과 결혼했지만,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보다 자신의 한참 무식하고 못났다는 생각에 남편을 멀리하기만하고, 정구민은 다시 잘해보고 싶지만, 뜻대로 되 않는다. 당당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남편 또한 드러나지 않게 돕는다.

    아줌마의 상징인 뽀글이 파마 뿐만 아니라 어수룩한 말투와 맹한 표정은 아무 생각 없이 사고만 치고 다니는 열등감 덩어리 김현숙을 더 잘 표현 하고있다. 채시라가 그동안 쌓아왔던 가진 도시적이고 당당한 이미지를 벗고, 조금 부족하지만 순수한 김현숙을 잘 그려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일명 글빨이라고 하는 작가의 집필력도 인기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김인영 작가는 이미 '태양의 여자', '결혼하고 싶은 여자'등의 일명 여자 시리즈로 기존의 여성상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그린 바 있어, 이번 작품이 이 시리즈의 완결편이라고 할 정도로 작품의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고다.

    '풍문으로 들었소'의 정성주 작가 역시 '아내의자격' '밀회' 등에서 이어지는 상류 사회 풍자 시리즈 3부작격인 이번 작품에서 지식층의 속물 근성을 날카롭게 꼬집으며, 갑도,을도 비꼬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24부작인 '착하지 않은 여자들'30부작인 '풍문으로 들었소'가 이제 전반전을 마치고 중,후반부에 들어선다. 앞으로 그려질 이야기에는 또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끝까지 작품성과 시청률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앞으로도 눈과 귀가 즐거울 예정이다.

     

    [사진=KBS '착하지 않은 여자들', SBS '풍문으로 들었소' 홈페이지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