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中비판받던 외교부 “사드는 안보, AIIB는 경제 문제”라며 AIIB 가입 의향 드러내
  • 지난 17일 오후,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미국의 ‘사드’ 미사일 한국 배치와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AIIB)’ 가입은 사안의 성격과 본질이 다르다”고 밝혔다.

    이튿날인 18일, 외교부는 ‘사드’ 미사일 배치 문제는 뒤로 미루고, AIIB 가입 문제를 먼저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과연 이런 대응이 바람직한 걸까.

    지난 17일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사드 미사일, AIIB 문제에 대해 “사드 문제는 기본적으로 안보 문제이고, AIIB는 경제, 금융 문제로 본다”면서 “정부는 사안의 성격, 본질에 따라 우리 국익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주도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해 나갈 생각”이라고 답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이에 덧붙여 “사드 미사일 배치는 한미 간 공식적 협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AIIB는 협의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고 설명, AIIB 가입 문제부터 먼저 처리할 뜻을 내비쳤다.

    18일 ‘중앙일보’는 중국 소식통을 인용해 “한국 정부가 중국 주도의 AIIB 가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中베이징 정보 소식통을 인용, “韓정부는 AIIB 설입을 맡고 있는 中공산당 재무부와 협의 중이며 가입시한인 3월 말까지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앙일보’는 “영국, 독일, 프랑스까지 가입하겠다고 밝혔고, 중국 정부도 은행 지분 50% 소유를 고집하지 않고 있는데 우리가 국익 차원에서 AIIB에 가입 못할 이유가 없다”는 韓정부 관계자의 주장도 전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英파이낸셜 타임스가 “영국에 이어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호주도 AIIB에 가입하기로 했다”고 보도하자 국내 언론들은 전문가들을 인용, “국제금융질서에서 미국의 주도권이 타격을 입을 것 같다”는 주장을 쏟아내고 있다.

    親中성향의 한국 정부가 이미 美정부에 AIIB에 가입하기로 했다고 통보한 뒤 공식발표만을 남겨두고 있다는 언론보도도 18일부터 나오고 있다.

  • 시민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가 2014년 7월에 열었던 세미나 모습. AIIB 가입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가 뭘까? ⓒ바른사회시민회의 홈페이지 캡쳐
    ▲ 시민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가 2014년 7월에 열었던 세미나 모습. AIIB 가입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가 뭘까? ⓒ바른사회시민회의 홈페이지 캡쳐

    이에 親中성향의 국내 언론들은 “중국이 주도하는 AIIB에 가입하는 것이 한국의 국익에 유리하다”는 분석과 함께 AIIB를 미국과 중국 간의 금융패권 쟁탈전으로 해설하고 있다. 일부 親中성향 매체는 “이제 미국이 주도하던 세계질서는 끝났다”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과연 그럴까.

    中공산당이 AIIB를 설립하겠다고 나선 때는 2013년 10월이다. 시진핑 中공산당 총서기(국가주석)가 “아시아 역내 개발을 위한 자본기구를 설립하자”고 말한 것이 시작이다. 이후 中공산당은 자본금 500억 달러를 시작으로 1,000억 달러까지 덩치를 키워 동아시아 개발에 투입한다는 거창한 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2014년 이후 中공산당이 내놓은 세부 계획 때문에 AIIB 설립은 지지부진 해졌다. 21개국이 창립 회원국으로 참여한 AIIB에 대해 中공산당이 지분율 50%를 차지하겠다고 명시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중국의 외화가 필요한 저개발국 입장에서는 잃을 것 보다는 얻을 것이 더 많지만, 한국 또는 그 이상의 수준이 되는 국가들 입장에서는 中공산당이 아시아 저개발국을 휘젓고 다니는 기구에 돈만 내놓은 뒤 ‘들러리’나 ‘거수기’ 역할을 하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

    미국은 AIIB의 이 같은 지배구조 문제를 지적하는 한편, 中공산당의 행태로 미루어 의사결정구조 또한 불투명할 것 같다는 주장을 내세워 서방 국가들의 가입을 말려왔다.

    中공산당은 처음에는 미국의 지적에 반발했다. 하지만 중국이 AIIB 지분율을 절반 이상 갖고 있는 것에도 “모든 실패의 책임을 중국 혼자 지는” 단점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국 中공산당은 자신들이 AIIB 지분 50% 이상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철회했다. 이에 영국을 시작으로 프랑스, 독일, 호주까지 가입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하게 봐야 할 점이 있다. 바로 미국의 ‘속내’, 즉 숨은 전략이다. 이는 美싱크탱크들의 리포트와 연설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프레드 버그스텐 명예소장은 英파이낸셜 타임스에 기고한 글을 통해 “미국은 밖에서 투덜대지 말고 들어가 바꾸라”고 주장했다.

    즉 AIIB의 불투명한 의사결정방식과 ‘독재적인 지배구조’에 대해 불평만 하지 말고, 이를 바꾸기 위해 일단 동맹국들과 함께 가입을 선언한 뒤 中공산당에 더 많은 지분율을 요구해 그 성격을 아예 바꿔버리라는 주장이었다.

    지난 16일(현지시간)에는 美외교협의회(CFR)의 엘리자베스 이코노미 선임 연구원이 “미국이 AIIB에 참여할 경우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하고 내부 비판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엘리자베스 이코노미 선임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미국의 체면유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 일본, 호주 등 아시아 동맹국들과 공동원칙을 세워 AIIB를 개선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날 美경제지 포브스 또한 기사를 통해 이 같은 주장들을 옹호했다.

    美정부가 몇몇 싱크탱크 연구원들의 리포트를 보고 하루만에 국가전략을 바꾸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동맹국들이 갑자기 너도나도 AIIB에 참여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국내 親中매체들이 ‘중국의 승리’라고 설명하는 것과는 달라 보인다.

    오히려 美정부가 겉으로는 동맹국의 AIIB 가입에 반대하면서 속으로는 동맹국들을 통해 AIIB를 ‘돈만 中공산당이 제공한, 제2의 IMF’로 만들려는 전략이 아닌가 생각된다.

    親中매체들과 일부 ‘자칭 전문가’들이 “국익을 위해 ‘사드’ 미사일과 AIIB를 등가교환하자”는 주장도 이런 시각에서 보면 오히려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협상정책이 된다.

  • "한국은 결국 박쥐인 겁니까?" 한일문화교류재단 자유게시판에 일본인이 올린 글에 있는 대목이다. 19세기 말 조선왕조는 국제정세를 보지 못하고, 힘 센 자만 따라다니는 '박쥐'를 따라하다 나라와 국민을 잃었다. ⓒ한일문화교류재단 자유게시판 캡쳐
    ▲ "한국은 결국 박쥐인 겁니까?" 한일문화교류재단 자유게시판에 일본인이 올린 글에 있는 대목이다. 19세기 말 조선왕조는 국제정세를 보지 못하고, 힘 센 자만 따라다니는 '박쥐'를 따라하다 나라와 국민을 잃었다. ⓒ한일문화교류재단 자유게시판 캡쳐

    차라리 사드 미사일 배치는 "중국이 내정간섭을 할 수 없는 기정사실"이라고 밝히는 한편, AIIB 가입과 관련래서는 中공산당과 연결된 ‘다른 문제’나 AIIB 내부에서의 ‘투자 결정권’을 더 달라고 협상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투자 결정권도 없는 국제기구에 가입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현재 국내 親中매체들은 사드 미사일과 AIIB 가입 문제를 놓고 ‘韓정부의 진퇴양난’이니 ‘국익우선’이니 하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韓정부에 가장 시급한 문제는 ‘거시적인 전략’을 바탕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태도로 보인다. 

    ‘거시적인 전략’ 없이 그때그때 임기응변과 짧은 시선으로 국가정책을 판단한다면, 19세기 말 나라를 말아먹은 조선왕조의 ‘박쥐 외교전략’과 비슷한 결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