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太祖 이성계 父親의 여진계(女眞系) 이름은 '울르스불카'

    祖父 이춘(李椿)의 이름은 '바얀 티무르(Bayan timur)'

    김필재   

    여진족(女眞族)은 중국의 요령성·길림성·흑룡강省과 러시아 연해주·하바로프스크·아무르州, 그리고 한반도 북부(함경도) 지방에 거주했던 퉁구스 계통의 북방민족이다. 사실상 부여·고구려·발해·신라의 후예라 할 수 있는 이들 여진족은 淸 황제의 명에 따라 훗날 만주족이 된다.

  • 태조 이성계
    ▲ 태조 이성계
    여진족의 ‘여진(女眞)’ 또는 ‘숙신(肅愼)’은 ‘주센(주셴, jusen)’을 한자로 음차 표기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 학계에서 합의된 것은 아니다. 
    서구에서는 여진족을 jurchen이라하는데, 이는 몽골어에서 여진족을 부를 때 사용했던 ‘주르첸(jurchen)'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朝鮮이라는 국호도 사실 ‘쥬신’, ‘여진’, ‘숙신’을 한자로 표기(예: 징기스칸→성길사한·成吉思汗)하는 과정에서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女眞族들은 朝鮮 건국 후 대거 한반도 북부에 들어와 살았다.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하면 ‘帖木兒’(첩목아=‘티무르’)가 들어가는 여진족 이름이 총 343건이 검색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성계(李成桂)의 할아버지 李椿의 원래 이름(Bayan timur)이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원문: 度祖諱椿, 小字善來, 蒙古諱孛顔帖木兒, 受宣命襲職。(해석: 도조(度祖)의 휘(諱)는 이춘(李椿)인데, 어렸을 적의 이름은 선래(善來)요, 몽고(蒙古) 이름은 발안첩목아(孛顔帖木兒)이다. 선명(宣命)을 받아 아버지의 관직을 이어받았다.)》
    재미삼아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李子春) 이름을 찾아 보았다.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었다.
    《원문: 桓祖諱子春, 蒙古諱吾魯思不花。 齠齕異凡兒, 稍長善騎射, 及其襲職, 士卒樂附。 咬住稍長, 桓祖欲以職事歸之, 咬住讓而不受。 咬住後從桓祖, 來見恭愍王, 王屬之亏多赤, 官至中順軍器尹。(해석: 환조(桓祖)의 휘(諱)는 이자춘(李子春)이니, 몽고 이름은 오로사불화(吾魯思不花)이다. 7, 8세부터 보통 아이들과 다른 점이 있었으며, 점점 장성해지자 말타고 활쏘기를 잘 했는데, 관직을 이어받으매 사졸(士卒)들이 즐거이 붙좇았다. 교주(咬住)가 점점 장성하매, 환조가 직사(職事)를 그에게 돌려주고자 하니, 교주가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교주가 뒤에 환조를 따라 공민왕(恭愍王)을 뵈오니, 왕이 우다치(亐多赤) 에 소속시켰다. 벼슬이 중순군기윤(中順軍器尹)에 이르렀다.)》
    李成桂의 조상이 모두 북방 민족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祖父의 이름에는 역시 ‘티무르’가 들어가 있었으며, 父親의 이름은 ‘오로사불화’(吾魯思不花)였다. 중국 홈페이지에서 吾魯思不花의 영어발음을 검색해 보니 ‘Ulus-Buqa’로 원래 발음은 ‘울르스불카’였음을 알 수 있다.
    투르크語 ‘티무르-테무르’는 ‘쇠’(鐵: 철)를 의미
    ‘티무르’는 매우 흔한 북방민족의 이름이다. 중앙아시아 몽골 투르크계 군사 지도자였던 <티무르 제국>의 창시자 이름이 바로 ‘티무르’(재위기간: 1370~1405년)였다. 북방 민족들은 고대로부터 철을 잘 다뤘는데, 투르크語 ‘티무르’ 또는 ‘테무르’가 바로 '쇠'(鐵: 철)라는 의미로 지금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다.
    ‘보르지기다이 에르데니 바타르’ 내몽골대학 교수는, 1392년 朝鮮을 건국한 이성계는 몇 대에 걸쳐 성장한 고려계 몽골 군벌 가문 출신으로 원(元)나라의 직할 통치기구인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에서 거의 100년간 몽골 관직을 맡아 세력을 쌓았다고 한다.
    실제로 이성계의 휘하 장수들은 주로 여진족 세력가들이었다. 세종 19년 8월 7일자(1437년 9월 6일) 《세종실록》에 따르면, 이성계의 최측근인 여진족 이지란(퉁두란, 쿠란투란 티무르)은 최소 500호 이상의 여진족 가구를 거느린 세력가였다. 이 외에도 주매·금고시첩목아·허난두·최야오내 등을 비롯한 10여 명 이상의 여진족 세력가들이 이성계를 보필했다. 
    바타르 교수는 이성계 가문은 직계 4대조까지 모두 북방 민족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성계 자신도 북방민족 계통의 원래 이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필재(金泌材, 조갑제닷컴) spooner1@hanmail.net

    [관련 글] 女眞의 영웅 新羅 출신 김함보(金函普)
  • 건륭황제, 이름은 애신각라홍력(愛新覺羅弘曆), 즉 김홍력(金弘曆)이다. / Puyi's younger brother changed his name from Aisin-Gioro Puren (愛新覺羅溥任) to Jin Youzhi (金友之) and his children in turn are surnamed Jin. /푸이(金溥儀) 황제의 동생은 훗날 이름이 김우지(金友之)가 됐다는 의미.
    ▲ 건륭황제, 이름은 애신각라홍력(愛新覺羅弘曆), 즉 김홍력(金弘曆)이다. / Puyi's younger brother changed his name from Aisin-Gioro Puren (愛新覺羅溥任) to Jin Youzhi (金友之) and his children in turn are surnamed Jin. /푸이(金溥儀) 황제의 동생은 훗날 이름이 김우지(金友之)가 됐다는 의미.
    金의 조상이 신라 출신이라 해서 거창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적지않은 한국의 識者층은 이런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주> 
    만주지역에 거주했던 민족들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역사에서 이들은 숙신, 읍루, 물길, 말갈, 여진(Jurchen, 쥬신), 그리고 만주로 불렸다. 만주족이 이처럼 다양한 이름으로 기록된 이유는 이들의 역사를 漢族이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들 민족은 현재 북한과 만주지역에서 살고 있다. 이들은 한민족의 고대왕조인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후손이기도 하다. 한국인과 만주족은 모두 백두산을 자신들의 기원으로 여기고 있으며, 백두산은 이들 민족의 성지이다.
    고대 삼국시대 신라 출신 김함보가 북방으로 진출해 이 지역의 여진족들을 규합해 金나라(愛新, 아이신)의 시조가 됐다. 金의 후손들은 이후 後金을 세워 스스로를 '만추'(Manchu)라고 칭했다. 이후 이들은 국호를 대청제국(大淸帝國)으로 바꾸었다. 金과 淸을 건국한 여진족은 자신들의 기원을 '신라'에서 찾았고, 朝鮮族은 자신들의 기원을 '고려'에서 찾았다.
    1777년 淸제국은 건륭황제(Qianlong Emperor)의 명을 받들어 만주원류고(滿州原流考)를 편찬했는데, 만주족의 기원을 밝힌 이 史書는 고대 한반도 국가인 고구려를 만주의 일원으로 보았다. 만주원류고는 자신들의 기원을 新羅라고 밝히고 있다. 
    김필재(조갑제닷컴) spooner1@hanmail.net
    Korean connection to Manchus
    출처: ‘알타이 위키’ 영문페이지
    Peoples living in Manchuria were called in many different names: Suksin (Sushen), Eupru (Yilou), Mulgil (Wuji), Malgal (Mohe), Jurchen (Yeojin/Nyeojin, Nuzhen/Ruzhen, Jusin/Jushen/Juchen), and Manchu (Manju) in history.
    They were the peoples living in current North Korea and Manchuria. They were also the peoples of ancient Korean kingdoms: Go Joseon (2333 BC - 108 BC), Goguryeo (37 BC - 668), and Balhae (698 - 925). Both Korean and Manchus explained their origins from Baekdu Mountain (Chanbai, Golmin Šanggiyan Alin), and regarded the mountain as a sacred place.
    After the Later Three Kingdoms period (892 - 936) of Korea, a people led by Hambo moved from Silla to northern Korean peninsular, and founded Jin (Aisin) dynasty (1115 - 1234) unifying Jurchen tribes. When their descendants restored Jin dynasty in 1616, they coined the term Manchu referring to themselves. (It's said that the term Manchu originated from Manjusri in Buddhism.) They changed the name of their dynasty from Jin to Qing in 1636.
    [원문] 金史: 本紀第一, 世紀
    金之先,出靺鞨氏。靺鞨本號勿吉。勿吉,古肅慎地也。元魏時,勿吉有七部:曰粟末部、曰伯咄部、曰安車骨部、曰拂涅部、曰號室部、曰黑水部、曰白山部。隋稱靺鞨,而七部並同。唐初,有黑水靺鞨、栗末靺鞨,其五部無聞。粟末靺鞨始附高麗,姓大氏。李績破高麗,粟末靺鞨保東牟山。後為渤海,稱王,傳十余世。有文字、禮樂、官府、制度。有五京、十五府、六十二州。黑水靺鞨居肅慎地,東瀕海,南接高麗,亦附於高麗。嘗以兵十五萬眾助高麗拒唐太宗,敗於安市。開元中,來朝,置黑水府,以部長為都督、刺史,置長史監之。賜都督姓李氏,名獻誠,領黑水經略使。其後渤海盛強,黑水役屬之,朝貢遂絕。五代時,契丹盡取渤海地,而黑水靺鞨附屬於契丹。其在南者籍契丹,號熟女直;其在北者不在契丹籍,號生女直。生女直地有混同江、長白山,混同江亦號黑龍江,所謂「白山黑水」是也。 
    金之始祖諱函普,初從高麗來,年已六十余矣。兄阿古乃好佛,留高麗不肯從,曰:「後世子孫必有能相聚者,吾不能去也。」獨與弟保活裡俱。始祖居完顏部僕干水之涯,保活裡居耶懶。其後胡十門以曷蘇館歸太祖,自言其祖兄弟三人相別而去,蓋自謂阿古乃之後。石土門、迪古乃,保活裡之裔也。及太祖敗遼兵於境上,獲耶律謝十,乃使梁福、斡荅刺招諭渤海人曰:「女直、渤海本同一家。」蓋其初皆勿吉之七部也。始祖至完顏部,居久之,其部人嘗殺它族之人,由是兩族交惡,哄斗不能解。完顏部人謂始祖曰:「若能為部人解此怨,使兩族不相殺,部有賢女,年六十而未嫁,當以相配,仍為同部。」始祖曰:「諾。」乃自往諭之曰:「殺一人而斗不解,損傷益多。曷若止誅首亂者一人,部內以物納償汝,可以無'717,而且獲利焉。」怨家從之。乃為約曰:「凡有殺傷人者,征其家人口一、馬十偶、牸牛十、黃金六兩,與所殺傷之家,即兩解,不得私'717。」曰:「謹如約。」女直之俗,殺人償馬牛三十,自此始。既備償如約,部眾信服之,謝以青牛一,並許歸六十之婦。始祖乃以青牛為聘禮而納之,並得其貲產。後生二男,長曰烏魯,次曰斡魯,一女曰注思板,遂為完顏部人。天會十四年,追謚景元皇帝,廟號始祖。皇統四年,號其藏曰光陵。五年,增謚始祖懿憲景元皇帝。
    Jurchen people (especially who founded Jin and Qing) claimed the successor to Silla, while Joseon people claimed the successor to Goryeo.
     Qing government published the history book called Researches on Manchu Origins (滿州原流考) under the supervision of Qianlong Emperor in 1777. It's about their origin to define Manchu tribes, and included ancient Korean kingdoms except Goguryeo as members of Manchu. In this book, Manchus explained their origin from Silla.

    [조갑제닷컴=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