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거사를 ‘극단적 민족주의자의 개인적 돌출행동’으로 재빠르게 표현한데 대해 약간의 서운함이 남는다.
  • “미제(米帝) 총독의 목에 비수를 꽂다!”
    어느 외롭지 않은 테러리스트의 묵시록(黙示錄)


    이 덕 기 / 자유기고가 
  •   # 이 글은 허구(虛構)에 기초하고 있으나, 쬐끔 그것도 아주 쬐끔은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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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 나는 테러리스트다!
      미제국주의(米帝國主義)의 식민지인 이 땅에 부임한 지 얼마 안 되는 새파란 총독(總督)의 모가지에 ‘정의의 비수(匕首)’을 꽂은 테러리스트다. 안중근·이봉창·윤봉길 등도 제국주의 일본으로부터는 테러리스트라고 불리지 않았나. 내 자신이 자랑스럽고 기특하다. 
      
      비록 이번 거사(擧事)가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고는 하나, 나보다는 연하(年下)지만 내가 평소에 가장 존경하는 석기시대의 주연배우도 말로만 했던 일을 직접 몸소 감행한데 대해 충분히 평가 받을 만하다고 자부하고 있다.
  우선 나의 거사에 대해 숨을 죽이고 지켜봐 줬고, 지금도 성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을, 식민지의 고된 삶을 살아가는 이 땅의 동지들에게 전투적으로 감사의 인사를 보내야겠다.

  미제의 앞잡이들이 미국과 남조선 동맹, 즉 식민지배체제에 대한 공격이라고 주절거리는 것만 봐도 큰 전과(戰果)라는데 이견(異見)이 없을 듯하다. 단 배후세력 운운하며 나의 공(功)을 가로채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계속 단호히 맞설 것이다. 허기사 이 땅의 미제 앞잡이 공안(空眼)기관이 나를 도운 여러 동지들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지만...

  이번 거사와 관련하여 아주 커다란 행운이 따랐다는 점을 먼저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정권에 줄을 대고 싶어 하는 기회주의 우파(右派)와 6·15나 연방제를 가슴에 안고 사는 우리 동지들이 뒤섞인 ‘회색빛 통일전선’ 단체가 주최하는 행사에, 감히 미제의 총독이 참석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는데, 뜻 밖에도 기회가 주어졌다. 더구나 총독이 강연하는 자리인데도 방심(放心)해 준 식민지 공안(空眼)기관이 고마울 따름이다.
  한편으로는 미제의 식민지일지언정 ‘민족’과 ‘통일’만 외치면 힘들게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는 이 땅에 항상 연민의 정을 갖고 있다.

  •   지난 시절 나는 북녘의 진정한 조국을 여덟 차례나 방문하면서 민족해방의 승리에 대한 강한 신념과 함께, 언젠가는 닥칠 거사에 대한 영적(靈的)인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존경하옵는 우리 젊은 ‘최고 돈엄(豚嚴)’과 맺은 영혼(靈魂)의 끈은 나의 든든한 빽이 되었다. 이러한 숭고한 연결은 나의 이번 거사에 대한 주체의 북녘 조국이 내보낸 논평이 웅변해 주고 있다. 한마디만 들어봐도 역시 기가 차다. “전쟁광 미국에 가해진 응당한 징벌이며, ‘정의의 칼 세례’를 안겼다”

      그런데 나와 동지관계인 걸로 믿고 있고, 실제로 때로는 그래왔던 이들이 이번 거사를 보고 비겁하게 발뺌을 하는 데는 솔직히 실망스럽다.  
      “정치적 테러로 보이는데 정치적 목적의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대권 재수생이나 국회의원 등등이 되어, 이 땅에서 누릴 건 다 누리면서 ‘외곽을 때리는 노련한 수법’으로 미제국주의에 적절히 눈치나 보며 투쟁 같지 않은 투쟁을 하는 것은 괜찮고, 과감하게 식민지 총독의 목을 노리는 거사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이중성과 투항주의에 기가 찰뿐이다. 하지만 결코 실망하지는 않는다. 그들도 머지않아 우리의 대열에 합류할 거니까. 북녘 조국의 ‘최고 돈엄(豚嚴)’ 위력 앞에 스스로 무릎 꿇을 날이 머지않았지 싶다. 핵무기는 장식용이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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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과는 대조적으로 그래도 든든한 우리 남녘 동지들은 이렇게 힘차게 외쳐주었단다.
    “면도날 테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억만 배 심각한 핵전쟁 후과(後果)를 낳을 수 있는
    키리졸브·독수리 미-남 합동군사연습, 대북 선제 핵 타격 전쟁연습은 무조건 중단돼야 하고
     다시는 재개되지 말아야 한다.
    사건을 공안 탄압의 계기로 악용하지 말라” 허나 뭐 ‘탄압’이 되겠나? 공안(空眼)인데...
    혁명적 낙관주의란 이런 건가 보다.

      나야 뭐 당분간 갇혀 있을 몸이지만, 조만간 닥칠 민족해방의 그 날을 확신하며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허나 아주 작은 소망이 하나 있다. 물론 간절히 원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질 거라고 믿지만, 간첩도 무죄(無罪)로 만드는 ‘그 무슨 변(便)’의 변호인(便好人) 동지들이 나의 인권을 위해 조속히 달려와 주길 바랄 뿐이다.

  •   끝으로 뜻을 같이 했던 동지들이 자신들은 제도정치권에 있다는 이유에서 인지 나의 거사를 ‘극단적 민족주의자의 개인적 돌출행동’으로 재빠르게 표현한데 대해 약간의 서운함이 남는다.
    좀 더 진중하게 정확하고 명쾌히 남녘 인민(人民)들에게 알렸어야 했는데... 
      나는 민족주의자가 맞다. 그렇다, ‘위대한 김일성·김정일민족주의자’이다. 그러하니 나의 거사는 ‘위대한 김일성·김정일민족주의자의 미제 축출을 위한 장거(壯擧)’라고 표현해야 옳았다. 

      다시 한 번 나의 장거를 성원해 준 모든 이들에게 마음속으로 감사드려 본다. 혹시 만날 기회가 되면 우리가 자주 불렀던 노래의 한 구절을 꼭 상기시키겠다고 마음먹는다.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그리고는 아랫배에 힘을 주어 나지막하게, 그러나 결연하게 외쳐본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더   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