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월드컵 스타, 설기현(36)이 15년간의 축구선수 생활을 정리했다. 

    설기현은 4일 오전 서울 신문로 대한축구협회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가지고 "지도자로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고 말했다. 

    다음은 10살에 축구를 시작한 설기현이 26년간 정든 그라운드를 떠나며 직접 작성한 글이다.

    정든 그라운드를 떠나며

    우선, 태극마크를 내려놓은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저를 위해 은퇴 기자회견을 마련해주신 정몽규 회장님 이하 축구협회 관계자 여러분과 아직도 설기현이라는 이름을 잊지 않고 이 자리를 찾아주신 언론인 여러분, 그리고 축구팬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특히 갑작스런 은퇴 결정으로 황망한 가운데서도 저의 결정을 존중해주시고 용기를 복돋워 주신 인천 유나이티드 김도훈 감독님과 구단 프런트 여러분께 송구스럽고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저의 갑작스런 은퇴 결정과 연이은 대학축구팀 감독직 수행을 둘러싸고 곱지 않은 시각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정이야 어찌됐든 매끄럽지 못한 모습으로 비쳐졌다면 그러한 지적도 달게 받아들이고 앞으로 배전의 노력으로 모든 분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지도자 설기현이 될 것을 약속드립니다. 다만 예상치 못한 시기에 갑작스런 조기 은퇴가 제게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음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누구나 꿈꾸는 '아름다운 퇴장'이 제게는 불가피하게, 부지불식간에 찾아왔다고 이해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막상 은퇴를 선언한다고 하니 지난 15년 간의 파란만장한 프로 생활이 뇌리를 스쳐갑니다. 10살 때 갑작스레 아버님을 여의고 강릉으로 나와 처음으로 축구공을 잡았던 기억, 아직 무명이었던 고등학교 1학년때 16세 대표팀에 깜짝 발탁되었을 당시의 환희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대학 재학 중이던 2000년 대한축구협회 유망주 육성 프로젝트 1호로서 당시에는 꿈만 같았던 유럽 프로팀(벨기에 엔트워프)에 입단한 이후 안더레흐트(벨기에), 울버햄튼, 레딩, 풀럼(이상 잉글랜드)을 거치는 동안 언어와 피부색, 사고방식이 다른 그들과 부대끼면서 '축구의 힘'을 실감했고, 거친 유럽리그에서 한국선수로서 살아남는 법을 온몸으로 느끼며 배웠습니다. 

    한국축구사에 영원히 회자될 2002년 월드컵의 주역이었다는 사실은 제가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이고, 얼마나 큰 사랑을 팬들에게 받아왔는지를  자자손손 일깨워주게 될 것 입니다. 

    포항, 울산, 인천에서 함께한 K리그는 비록 제 프로인생의 1/3 남짓한 시간들이었지만 제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더없이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10여년을 해외무대서 이방인으로만 활동하다가 같은 핏줄인 선후배 동료들과 함께 했던 경험은 참으로 특별했고 감사했습니다. 

    짧지 않은 세월동안 축구를 해오면서 고마웠던 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모든 분들을 일일이 거명할 수는 없는 점을 양해해 주시기 바라고, 언제 어디서나 제게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신 사랑하는 어머니와 어쩌면 저보다 더 힘든 시기를 보낸 와이프와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대학 시절부터 바로 이 순간까지 변함없는 성원을 아끼지 않은 팬클럽 '케노퍼스'를 비롯한 모든 축구팬 여러분께 감사했고, 또 미안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이제 축구선수 설기현은 다시 볼 수 없겠지만, 지도자로서 또 다른 설기현의 모습으로 팬들의 기대에 보답해 드릴 것을 약속드리며 이만 고별 인사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2015년 3월4일 설기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