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인천공항과 송도국제도시 계획을 구상하고 추진한 박연수 박사 ⓒ뉴데일리
    ▲ ▲ 인천공항과 송도국제도시 계획을 구상하고 추진한 박연수 박사 ⓒ뉴데일리


     

    송도에 '지식재산 허브' 조성해야


    오늘날 '송도국제도시’는 대단히 성공한 프로젝트로 인정받고 있다. 국제도시도 건설하고, 인천공항도 짓고, 인천대교도 놓았다. 그러나 절반의 목표를 달성해야 할 시점이 됐다. 송도국제도시 프로젝트의 최종목표는 무엇이었는가?

    인천시청에 근무하면서 인천공항과 송도국제도시 계획을 기획하고 추진했던 박연수 박사(62 전 소방방재청장)는 송도국제도시의 목표를 이렇게 말했다.

    “ 국제적인 '지식재산 허브’를 만들어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후세들을 위한 새로운 국가 성장동력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하드웨어는 갖춰졌으니, 소프트웨어를 넣을 때가 됐다." 

    대한민국의 성장동력인 제조업에 날개를 달기 위해서, 젊은이들이 꿈꾸는 일자리를 위해서, 송도국제도시를 지식재산 시대를 이끄는 세계적인 '지식재산 허브 국가'의 중심을 만들어야 한다고 박 박사는 강조했다.

    그런데 아직 그 허브는 둥지를 틀지 못하고 있다. 공항도 완성됐고 신도시도 만들어졌다. 수많은 고속도로와 철도 그리고 세계적인 최첨단 교량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으며, 경제자유구역이라는 새로운 제도도 갖춰졌다. 이렇게 외형은 갖춰졌다. 그러나 지식재산 허브의 기능은 아직 숙제로 남아있다.

      그 지식재산 허브를 기반으로 국제 비즈니스 서비스 산업을 일으키는 것이 전략의 핵심이다. 지식재산 허브가 되면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과 창조기업이 들어와서 기업활동을 하게된다. 국제 비즈니스 서비스 산업은 물류산업, IT BT 같은 첨단산업, 국제관광, 쇼핑, 국제금융 및 국제법률 서비스, 무역, 콜 센터, 마이스(MICE), 디자인, 패션 등이 해당된다. 요즘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하는 ‘지식기반’ 산업이다.

  • ▲ ▲ 우리나라 발전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한 인천공항 전경.ⓒ뉴데일리
    ▲ ▲ 우리나라 발전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한 인천공항 전경.ⓒ뉴데일리


     이런 분야에 대해 비교적 생소하던 1980년대 중반 당시 30대의 박연수 박사는 인천시 도시계획국장 신분으로 이 야심 찬 계획을 세워 오늘날 송도국제도시를 만들었다. 박 박사는 그러나 이 보다는 인천국제공항의 초석을 놓은 사람으로 더 유명하다.

    박 박사는 ‘국제 비즈니스 서비스 허브’를 어떻게 실현하려 했을까? 그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먼저 생각했다. 그린환경을 갖춘 최첨단 국제도시와 이를 세계로 연결하는 국제허브공항 건설이라는 두 가지 중간 과정을 설정했다. 대한민국은 제조업으로 산업을 일으켜 가난을 극복했지만, 1980년대 들어 이미 제조업의 한계, 즉 저임금의 경쟁력에 기댄 발전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호두까기(Nut-cracker)에 갇힌 호두처럼 앞선 제조기술을 가진 일본에 치이고, 인구와 시장을 가진 중국에 따라 잡히는 구도에 갇힌 상황이라, 뜻있는 이들의 걱정이 컸다. 대한민국이 호두까기에 낀 호두 신세를 극복하려면 이 구도를 깨는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했다.


    30대 국장때 인천공항 · 송도 기획


    그를 위한 첫 번째 과제는 ‘이 진퇴양난의 처지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였다. 그 답은 서비스 산업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내수시장이 작기 때문에 국내 서비스 산업은 답이 될 수 없었다. 일본과 거대한 시장을 가진 중국을 대상으로 일자리를 만드는 것, ‘국제 비즈니스 서비스 허브’가 정확한 답이었다. 이것으로 제조업을 보완하고 지속적이고도 신세대가 원하는 일자리를 만들수 있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야 했다.

    두번째 과제는 ‘대한민국이 어떻게 국제 비즈니스 서비스 산업의 허브가 될 수 있을까?’ 였다. 그 답은 기업이 성공하고 인재가 오고 싶어하는 ‘좋은 둥지’를 만드는 것이었다. 국제적인 서비스 산업을 유치하려면 좋은 둥지를 만들어서 좋은 새를 불러들이면 가능하다. 그 둥지로서 송도정보화신도시와 영종신공항 프로젝트가 탄생했다. 그 모델로 삼은 도시가 홍콩과 암스테르담 그리고 뉴욕이었다.  

    한국이 국제허브가 될 수 있는 조건은 우선 지정학적인 위치이다. 양쪽에 중국과 일본을 끼고 해양과 대륙을 잇고 있다. 국제경제적 위상도, 국제정치적 입지도 중국과 일본의 중간이다. 한국이 이 같은 지리적 경제적 정치적인 중간이자 중심이라는 것을 이점으로 활용하여 동북아 국제비즈니스 허브의 둥지를 만들자는 것이다.

    1980년대에 이미 한중일의 동북아시아가 세계 경제의 3분의 1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동북아시아가 이런 경제규모가 되면 송도국제도시가 동북아의 비즈니스 허브가 될 수 있다. 제조업 일자리에 만족할 수 없는 젊은 세대를 위한 서비스업 그것도 국제 비즈니스 서비스업 일자리가 충분하게 지속적으로 확보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박연수 박사의 전략이자 최초 구상이었다.
     
    이 같은 구상을 세운 1986년에 박연수 박사가 가장 염려했던 부분은 ‘중국이 과연 문을 열 것인가?’였다. 문이야 열겠지만 언제 열 것인가? 10년 뒤가 될 지, 20년 뒤가 될 지 확실히 알 수 없었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그는 사람들을 설득했다.

    “중국이 문을 열면 반드시 허브 수요는 생긴다. 그러나 그저 기다린다고 되지 않는다. 우리가 스스로 허브를 만들어야 한다.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좋은 둥지를 만들어서 허브를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득했다.

    그의 꿈은 현실이 되었다.  송도국제도시는 환경과 첨단기술 도시로 우뚝 섰고, 세계적인 허브공항인 인천공항 건설은 물론이고, 미흡하기는 하지만 경제자유구역을 만드는 것도 성공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인 차별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한 전략적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집념과 접근방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제 이곳에 둥지를 틀 국제적인 기업을 데려오는 과제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여기에 올 이유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국제 기업과 국제 인재의 흡인력이 되는 도시 컨텐츠로서 세계 지식재산 허브를 구축하고 그린 환경의 첨단기술도시로 차별성을 극대화 시키는 방안이다. 여기에 국제적인 커뮤니티를 조성하고, 이런 환경을 찾는 글로벌 기업들과 연계시키는 타겟 마케팅을 펼치면 국제비즈니스 허브는 멀지 않을 것이다. 

    박연수 박사가 인천과 인연을 맺은 것은 시대적인 상황과 맞아 떨어졌다. 당시 안찬회 인천시장은 도시계획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전문가를 찾았다.

    그때 박 박사는 경남도청에 근무하고 있었다. 공무원 중에 도시계획 전문가가 별로 없는 시절이었다. 기술고시 출신의 도시계획 전문가는 더욱 그랬다. 그는 경남도청 사무관일 때 창조적인 개발프로젝트를 거의 도맡아 했다. 경남 통영시 도남지구 개발을 비롯해서 여러 도시계획을 재정비했다.

    안찬회 시장 역시 도시행정 전문가였다. 그는 박 박사를 경남에서 인천으로 스카우트하고, 박 박사에게 "인천도시계획을 바로잡아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인천은 중앙정부 입장에서 보면 거의 버려진 도시였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수도권 억제정책이 가장 피크에 달했던 시기, 수도권 집중을 해소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인천은 성장을 중지시켜야 할 대상이었다.

    투자도 이뤄지지 않았고 제약도 심했다. 정부투자는 물론이고 민간투자도 제약을 받아 인천은 숨통이 막혀 죽어가는 실정이었다. 인천과는 아무런 연고가 없었던 그는 인천의 중요성을 새로운 각도에서 찾을 수 있는 적임자였다.

    그는 ‘인천이 어떻게 해야 이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를 헤치고 살아 날수 있을까?’ 고민했다. 결코 정치적으로는 풀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수도권 억제정책은 국가의 최상위 정책이었으며 또한 큰 흐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국가정책을 변경할 수 있는 길은 정치적 접근으로는 불가능했다. 해서, 인천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판을 바꾸는 구상을 시작했다. 국가 전체에 닥친 위기를 예지하고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인천이 그 역할의 중심이 되게 하는 길을 고민했다.

    우리나라에 닥쳐오는 위기는 무엇이며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 것인가? 거기에 인천이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찾았다. 박 박사는 “인천만을 위한 정책으로는 국가지도자를 설득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도시계획 전문가가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이자 발상의 전환이었다.

    대한민국은 어떤 위기에 처할 것인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제조업 중심의 성장동력의 한계였다. 이 위기가 곧 닥치리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제조업의 한계를 무엇으로 깰 것인가? 새로운 국가성장동력이 필요했다. 바로 국제 비즈니스 서비스 산업을 일으키는 전환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국가목표를 이루는데 인천이 기여할 공간이 나왔다. 

  • ▲ ▲ 인천경제자유구역 경계도ⓒ뉴데일리
    ▲ ▲ 인천경제자유구역 경계도ⓒ뉴데일리

    1980년대 초에 이런 구상은 결코 쉽지 않았다. 송도신도시와 인천공항 프로젝트를 세우면서 도박처럼 걸었던 미래예측의 관건은 중국이 문을 열 것이냐 말 것이냐 이것이었다. 중국이 문을 안 열면 이 프로젝트는 성공할 수 없었다. 분위기는 서서히 무르익었다. 그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구상할 때가 1985년이고 이듬해 기획서를 완성했다. 

    박연수 박사는 1988년 국제학술회의 발표차 중국을 방문했다. 국교가 없을 때여서 중국을 방문하려면 일본에 가서 쪽지비자를 받아서 나올 때는 찢어버리고 나오는 시절이었다. 중국의 상해 북경 서안 3각 꼭지점을 돌았다. 그는 자신의 예측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때만 해도 안내원 없이는 중국의 일반 마을을 들어갈 수 없는 시절이었다. 그는 현지에서 중국이 문을 열 것이라는 예측을 확신하게 되었다.

    특히 중국이 거대한 국토 전체를 골고루 활용하고 있는데 놀랐다. 그 방대한 국토를 다 활용해서 경지로 이용하고 있었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 내재된 사람들의 활력에 놀랐다. 도시계획 전문가로서 도시의 활력에 누구보다 관심을 가지고 있던 결과였다. 그는 거대하게 꿈틀거리는 중국의 활력은 머지않아 동북아의 판도를 바꿀 것을, 또한 대한민국의 값싼 제조업의 장점을 사라지게 할 것이라고 느꼈다.
     
    이 국가적인 위기를 극복하는데 인천이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 새로운 지평, 새로운 비전이 필요했다. 그것은 바로 국제 비즈니스 서비스 산업이라는 새로운 성장동력이었다. 
     
    박 박사는 미래의 경쟁은 국가의 경쟁이 아니라 도시의 경쟁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도시경쟁에서 승리하려면 큰 도시, 다양한 도시 같은 도시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수도권이라고 제한할 것이 아니라 수도권 자체를 하나의 커다란 도시로 발전시켜야 한다.

    과거에는 인천은 서울의 그늘이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에서는 수도권이 인천의 든든한 배후가 되는 것이다. 암스테르담, 홍콩, 뉴욕, 런던, 상해 등 세계적으로 국제 비즈니스 허브 역할을 하는 도시는 모두 해변을 끼고 있다.

    그러나 항구와 도시만 있다고 다 허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와 연결하는 항공 허브가 필수적이다. 그래서 기획된 것이 인천국제공항과 송도국제도시다.
     
    그렇다면 이렇게 건설한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 인천국제공항과 송도국제도시는 바로 이 물음에 답할 시점이다. 지금 한국의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일자리가 없어 우리사회는 희망을 잃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미래세대는 소득이 없기 때문에, 과거세대는 미래가 불투명해서 소비를 하지 못한다.

    격차문제는 우리사회에 증오를 키워가고 있다. 고용없는 성장, 청년실업이 문제다. 이 문제를 풀려면 서비스산업을 육성해야한다는 것은 이미 나와있는 답이다. 그러나 작은 내수시장의 한계 때문에 그것도 여의치 않다. 이 악순환은 내부적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다. 외부의 힘, 즉 국제서비스산업으로 악순환의 고리를 깨야한다.

    "대한민국은 이런 위기를 예측하고 국제서비스시장을 앞마당에 열기 위해 마련한 송도국제도시와 인천공항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바로 효과를 볼 수 있도록 준비가 갖춰지지 않았는가?"

    박 박사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투자하고 만들어온 이곳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으로  “이 둥지에 지식기반 비즈니스를 집중 유치하고 시장을 육성해서 '지식재산 허브’로 국제비즈니스의 교두보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도를 국제비즈니스 허브도시로 키우겠다고 해서 국제적인 기업유치에 나서지만 로드쇼 방식으로는 안 된다. 송도국제도시와 인천국제공항에 "혹시 들어올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이런 방식의 기업 유치는 이미 효과가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IT, BT, 환경 등 융.복합 사업을 추구하는 글로벌 기업을 정확하게 짚어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송도신도시는 동북아 시장 전체를 보는 지역본사나 생산공장, 또는 동북아 전체와 연결된 국제기관 유치를 목표로 해왔다. 

    앞으로 미래는 산업제품이 아니라 기술생산 시대로 접어 들었다. 지식재산 시대로 넘어가면서 창조와 융복합을 통한 지식재산의 생산기지와 거래시장, 그리고 지식재산권으로 인한 기업과 각국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분쟁조정재판소(특허소송법원)이 필요하다. 송도국제도시가 지향하는 동북아 ‘지식재산 허브’의 내용이다.

    동북아의 지식재산 허브를 위한 송도국제도시의 가장 기본이 되는 과제는 명실상부한  차별화된 국제도시로 키워나가는 일이다. 현재까지의 진행상황을 보면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지는 못한 것 같다.

  • ▲ ▲ 송도국제도시 바닷가에서 열린 딩기요트대회 ⓒ뉴데일리
    ▲ ▲ 송도국제도시 바닷가에서 열린 딩기요트대회 ⓒ뉴데일리


    송도국제도시가 이름과는 달리 '국제도시'에 맞는 국제화를 치밀하게 추진해야 한다. 우리 풍토 속에서 국제화된 커뮤니티를 만드는 방법은 기존도시를 변화 시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새 도시를 만들어 최초 입주자부터 적극적이고 치밀한 방법으로 국제화 동기를 인식하게 하고, 그 바탕위에 훈련과 참여를 통해 국제도시로 전환시키는 방안을 구상했다.

    "처음 입주하는 5천명을 국제화시키는 작업을 진행한 뒤,  추가 입주하는 5천명을 국제화하는 방안으로  우선 1만명을 먼저 국제화시켰으면, 송도국제도시는 스스로 국제화되는 기반이 마련됐을텐데 아쉽다."

    현재 인구 8만여명에 이르기까지 본격적인 주민 국제화는 안 했지만, 박 박사는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말했다.

    IMF위기 때 또 나서 127억달러 유치


    우리나라의 전략적 개발사업에서 다소 아쉬운 점은 일관성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를 보면 20여년이 걸린 ‘남 프랑스 개발 프로젝트’는 처음 기획자가 끝날 때까지 맡아서 추진했다.

     ‘랑그독 루시옹(Languedoc Roussillon) 프로젝트’는 세계적인 영화제로 유명한 칸느(Cannes)를 시작해서 마르세이유 등 프랑스 남쪽 지방을 개발하는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정권에 관계없이 한 사람이 일생을 통해서 일관된 목표를 가지고 완성하도록 했다. 

    인천국제공항이 세계적인 공항으로 건설될 수 있었던 것은 강동석이라는 큰 역량과 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에게 최초 10년간 일관되게 프로젝트를 맡긴 것이 성공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송도국제도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시장이 바뀌면서 최초 프로젝트의 취지나 방향을 잘 모르거나 아니면 본래의 취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많이 흐트러지는 시행착오를 겪어왔다. 사업초기에는 과연 저렇게 뜬구름 잡는 것 같이 보이는 거대 프로젝트가 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던 사람들이 막상 프로젝트가 시작해서 잘 진행되자, 바뀐 시장을 들쑤셔서 처음 시작한 사람을 내 보낸다. 새로 들어온 사람은 내용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원래 하던 일을 다 뒤집어버리곤 한다.

    박연수 박사의 경우도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그는 인천시에서 내무부로 옮기게되면서 해외근무 발령을 받자,  최기선 당시 인천시장과 별도로 만나 충심으로 송도신도시 프로젝트가 왜 만들어졌는지, 무엇이 문제인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호소한 끝에 4년만에 제 궤도로 돌려놓았다.

    이렇게 그가 청춘을 바치면서 열성을 다한 동북아 국제비즈니스 서비스 중심도시 프로젝트는 그의 손에서 떠나는 것처럼 보였는데, 난세는 영웅을 부른다고 했던가? 1998년 우리나라의 경제가 IMF 관리체제로 들어가는 위기가 닥치면서, 도시를 개발해서 기업에 분양해 그 수익금으로 비용을 충당하려는 계획은 모두 어그러졌다.

    대기업에 땅을 공짜로 줄 테니 개발에 참여해달라고 해도 응하는 곳이 없었다.  IMF 여파로 인천은 파산위기에 몰렸다.

    최기선 시장은 박연수를 불렀다. 그는 내무부에서 인천시 기획관리실장으로 돌아와 난국을 타개하는 임무를 다시 맡았다. 과연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국내에서는 방법이 없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 해외로 눈을 돌렸다. 국제적으로 투자자를 구하는 발상은 일석이조의 효과를 냈다. 당시 IMF 사태에서 국제적으로도 도시개발 투자자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미국의 부동산 개발회사인 게일사를 유치했다. 게일은 포스코 ENC와 합작해서 엄청나게 큰 결단을 했다. 게일은 무려 127억 달러가 소요되는 162만평에 달하는 송도국제도시의 중심 국제비즈니스센터지구(IBD) 개발계획에 투자했다. IMF관리체제에 들어간 대한민국에 큰 위험을 감수하고 들어왔다. 가장 어려울때 송도 프로젝트를 구해준 은인이었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은 송도국제도시는 이제 대한민국의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서 뿌리를 내리도록 하는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아직은 미약한 우리나라의 새로운 지식서비스 산업이 송도에 뿌리를 내리게 하려면, 마중물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 ▲ ▲ 지식재산허브 조성 방안을 토론하는 박연수 박사(왼쪽)과 박진하 건국산업 대표 ⓒ뉴데일리
    ▲ ▲ 지식재산허브 조성 방안을 토론하는 박연수 박사(왼쪽)과 박진하 건국산업 대표 ⓒ뉴데일리


    가장 유력하고 앞날이 기대되는 앵커 프로그램은 앞으로 갈수록 치열해지고 시장규모가 커지는 국제특허 관련 분쟁을 조정하거나 소송하는 동북아 지식재산 허브를 건설하는 전략이다. 동북아 지식재산 허브가 되려면 국제특허법원, 지식재산데이터센터, 지식재산융합센터, 지식재산거래소, 지식재산 투자펀드, 등이 유기적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한중일러의 국제적인 지식재산권 시장 통합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박 박사는 “송도에 지식재산 허브 생태계가 조성되면 국제인재들이 모이고 돈되는 지식재산을 찾아 국제적인 기업이 일자리를 가지고 따라 와 국제도시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제적으로 중요한 지식재산 분쟁이 생겼을 때 각국 기업들은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찾아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