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방지법, 사이버위기관리법 몇 년 째 통과 안돼…비밀보호관리법 아예 ‘실종’
  • ▲ 이병기 국정원장의 후임으로 내정된 이병호 前안기부 2차장.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보다 7년 선배다. ⓒ뉴데일리 DB
    ▲ 이병기 국정원장의 후임으로 내정된 이병호 前안기부 2차장.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보다 7년 선배다. ⓒ뉴데일리 DB

    이병기 국정원장의 후임으로 이병호 前안전기획부 2차장이 내정됐다.

    이병호 국정원장 내정자는 1940년생으로 올해 76세다. 1963년 2월 육사 19기로 졸업, 육군 소위로 임관한 뒤 1970년 중령으로 예편했다. 이후 중앙정보부 공채로 정보요원의 길을 걸었다.

    국내 정보 전문가들은 이병호 내정자에 대해 “이번 정부에서 가장 잘 된 인사”라며 극찬했다. 정보 전문가들이 알고 있는 최고의 요원 가운데 한 명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1980년대 다른 나라로부터 세계 10대 정보기관으로 평가받던 안전기획부에서 해외정보요원으로 활동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병호 국정원장 내정자의 앞길이 평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국정원이 2012년 대선에 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개입했다”는 주장을 버리지 않고 있는 일부 야권인사나 ‘자칭 진보진영’의 흠집잡기가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다 이병호 국정원장 내정자가 정보요원으로 활동하던 시기와는 전혀 다른 ‘국정원’은 그가 생각한 대로 활동하는 것을 상당 부분 제약할 것으로 보인다.


    10년 넘게 이빨 빠지고 족쇄 묶인 채 활동하는 국정원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정보기관은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으로 알려져 있었다. 냉전이 한창일 때인데다 북한 김일성 정권의 도발도 빈번한 탓에 ‘국가안보’라는 명분은 전가의 보도처럼 쓰였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정부 부처는 물론 군, 언론조차 ‘국가안보’ 문제에서는 늘 한 발 물러섰다. 덕분에 중앙정보부는 국내에서는 못하는 게 없는 ‘전지전능한 국가기관’처럼 보였다.

    1981년 전두환 정권에서 보안사(現기무사)의 위세가 커지고 중앙정보부를 국가안전기획부로 바꾸면서 그 위세는 잠깐 주춤했다. 하지만 전두환 대통령의 최측근인 장세동 씨가 책임자가 되면서 안기부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눈부신 활동을 펼쳤다.

    1980년대 중반 레이건 당시 美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 간의 화해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전 세계 정보기관들은 다른 나라의 산업기밀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한국 안기부도 경쟁에 합류했다. 성과는 상당했다.

    반면 한국에게 산입기밀이 노출된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의 입맛은 썻다. 실제 美연방수사국(FBI)은 미국 내에서 첩보 수집을 하는 해외 정보기관 가운데 가장 위험한 5대 정보기관으로 이스라엘 모사드, 중국 국가안전부(MSS), 프랑스 대외정보총국(DGSE) 등과 함께 한국 안기부(ANSP)를 꼽을 정도였다.

  • ▲ 1998년 5월 12일 이전한 국정원 청사를 찾은 김대중 당시 대통령. 몇 달 뒤 '대숙청'이 시작됐다. ⓒ정부 e영상역사관 캡쳐
    ▲ 1998년 5월 12일 이전한 국정원 청사를 찾은 김대중 당시 대통령. 몇 달 뒤 '대숙청'이 시작됐다. ⓒ정부 e영상역사관 캡쳐

    이처럼 ‘잘 나가던’ 안기부는 1997년 말 소위 ‘북풍 사건’으로 정치권의 공격대상이 되면서부터 만신창이가 된다. 1997년 대선에서 승리한 김대중 정권은 1999년 안기부를 해체하고 국가정보원으로 바꾸면서 대대적인 ‘개혁’을 실시했다.

    이 ‘개혁’은 국정원의 대공수사, 대북정보, 해외정보 역량을 대폭 약화시킨 것이었다. 명분은 ‘문민 우위 원칙을 지키는 정보기관으로의 개혁’과 ‘해외정보, 산업정보 역량 강화’, 그리고 ‘투명하고 합리적인 예산 사용’이었다. 하지만 당시 국정원을 그만 두고 나온 요원들에 따르면 김대중 정권의 국정원 개혁은 사실상 ‘국정원 거세’나 다름없었다고 평한다.

    국정원 1급 간부 출신인 송영인 ‘국가를 사랑하는 모임’ 대표는 “1998년 4월 안기부 직원 581명, 대공경찰(보안수사대) 2,500여 명, 기무사 요원 600여 명이 쫓겨났다”고 주장했고, 김유송 前인민군 상좌(중령과 대령 사이 계급)는 1998년 10월 북한 인민군 주요 보직에 있던 장성들이 “남측 정부에서 제공한 대북 휴민트(HUMINT) 정보로 숙청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들의 주장은 10여 년 뒤 모두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 ▲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뉴데일리 DB
    ▲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뉴데일리 DB

    김대중 정권의 국정원 개혁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 및 공동선언이 선포된 뒤 국정원은 대북공작이나 대북정보수집 파트를 대폭 축소했다. 2003년 들어선 노무현 정권은 국정원의 ‘투명성 강화’를 이유로 정보요원들에게 ‘신용카드 사용’을 권장하기 시작했다.

    정보요원들의 신용카드 사용은 세계 정보요원들이 기피하는 행동이다. 게다가 당시 국내 금융기관의 보안망이 워낙 허술해 정보요원이 소지한 카드 번호만 알면 그가 어디서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먹었는지 등 모든 동선(動線)을 파악할 수 있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국민들은 국정원이 제 자리를 찾아갈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수뇌부에 정보기관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적었던 탓에 국정원의 역량을 키우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국정원 수뇌부는 시간이 갈수록 ‘反이명박 세력 때려잡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면서 정보 전문가들의 우려를 샀다. 

    2012년 대선 이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섰지만, 시행착오는 계속되었다. 군 출신 국정원장이 임명됐지만 국정원의 손발을 묶은 족쇄를 풀지 못해 별 다른 발전이 없었다. 


    신임 국정원장의 과제: 국정원 관련법 제정


    국정원의 손발을 묶은 족쇄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 국정원의 활동 근거였다. 이를 풀기 위한 노력은 2008년 10월 말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국정원 관련법 개정안은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당시 여당이 국회에서 발의한 법안은 ‘국정원법 개정안’, ‘국정원 직원법 개정안’, ‘비밀보호관리법’, ‘국가대테러활동기본법’, ‘국가사이버위기관리법’, ‘통신비밀보호법’ 등 6개였다.

    이 가운데 이명박 정부와 여당은 ‘비밀보호관리법’과 ‘국가대테러활동기본법’, ‘국가사이버위기관리법’,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에 큰 관심을 가졌다.

    ‘비밀보호관리법’은 1962년 7월부터 50년 넘게 준용해 온 대법원 규칙 제103호 ‘비밀보호규칙’을 현실에 맞게 법률로 제정해 국가기밀을 제대로 관리하자는 취지의 법안이었다. 과거에는 ‘장소’와 ‘인원’만 관리하면 기밀유출을 막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관리 방식이 현실성이 없다는 점을 반영하려는 시도였다. 

    특히 정부 부처와 관료들이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멋대로 기밀로 분류, 지정해 ‘쓸모없는 기밀’이 수십만 건에 달하는 비효율성과 악습을 없애려 한 시도도 있었다.

    ‘국가대테러활동기본법’은 한국도 더 이상 테러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현실에 맞게 대테러 활동을 펼치기 위한 법안이었다.

    현재 우리나라는 1981년 88 올림픽에 맞춰 공포한 대통령 훈련 제47호 ‘국가대테러활동지침’에 따라 테러에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테러조직이나 테러 가담자에 대한 처벌규정도 없고, 테러 용의자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도 규정돼 있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이를 해결하려 만든 법안이었다.

    ‘국가사이버위기관리법’은 국가나 대기업의 인프라 시스템에 사용하는 스카다(SCADA) 망 등에 대한 해킹을 막고, 정부 차원에서 사이버 공격을 예방하고 대응하기 위한 법률이었다. 또한 정부 주도로 해커들의 공격을 막는 것은 물론 반격할 수 있는 근거도 갖추려던 법이었다.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은 노무현 정권 시절 드러난 ‘미림팀’과 같은, 국정원의 불법감청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고, 검찰, 경찰 등 사법기관이 그때그때 편의에 따라 하던 감청도 대상범죄와 수준을 법률로 정해 불법적인 부분을 최소화하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2012년 12월, 소위 ‘국정원 여직원 사건’이 터지면서 국정원법과 국정원 직원법은 활동범위의 확대가 아니라 ‘정치적 중립’을 철저히 지키는 편으로 수정됐다. 다른 법안들은 정치권의 관심 밖으로 사라졌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 관련법 실태


    새정치민주연합이 2012년 12월 대선 당시의 ‘국정원 여직원 사건’을 시작으로 2014년 4월의 세월호 사고 때는 ‘국정원 세월호 소유 음모론’까지 국정원을 물고 늘어지면서 국정원 관련법은 지금까지도 처리가 안 되고 있다.

  • ▲ 사이버테러방지법 제정을 호소하는 여당에 대해 "믿고 맡길 수 없다"며 반대의견을 내는 이석현 새민련 비대위원. ⓒ국민TV뉴스 보도화면 캡쳐
    ▲ 사이버테러방지법 제정을 호소하는 여당에 대해 "믿고 맡길 수 없다"며 반대의견을 내는 이석현 새민련 비대위원. ⓒ국민TV뉴스 보도화면 캡쳐

    2008년 11월 발의됐던 모든 국정원 관련 법안은 회기 내 처리를 못해 자동폐기 됐다. 대신에 나온 법률들을 보면 대부분 ‘국정원의 정치중립’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그나마 나은 법률은 2015년 2월 16일 이병석 의원, 강창희 의원 등이 공동발의 한 ‘테러방지법’ 정도. ‘테러방지법’은 정부 부처의 대테러 활동에 대한 부분은 물론 테러조직의 수사, 정보수집, 처벌에 대해서도 상당 부분 고려를 해 현실적이었다.

    반면 2014년 12월 30일 발의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등은 “정보기관이나 사법기관의 무차별적 감청”을 문제점으로 지적하며, 수사기관의 감청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지금 당장 필요한 ‘사이버 테러 대응법’ 또한 2013년 4월 9일 발의된 이후 지금까지 2년 동안 잠자고 있다. 국가기밀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데 필요한 ‘비밀보호관리법’은 아예 사라져 버렸다. 

    테러조직 ISIS에 한국인이 가담하는가 하면, 필리핀 등에서 한국인이 납치되고, 한국 곳곳에 해외에서 들어온 조직폭력배와 마약조직, 인신매매조직, 산업스파이, 해외 정보기관 요원들이 설치는 현실임에도 박근혜 정부와 여당 의원들은 이런 문제의 심각성을 무시하고 있다.

  • ▲ 자칭 '진보진영'은 테러방지법, 사이버공격대응법 등에 격렬히 반대한다. 이유가 뭘까. ⓒ천주교 인권위원회 홈페이지 화면 캡쳐
    ▲ 자칭 '진보진영'은 테러방지법, 사이버공격대응법 등에 격렬히 반대한다. 이유가 뭘까. ⓒ천주교 인권위원회 홈페이지 화면 캡쳐

    차기 국정원장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족쇄부터 끊어라”


    1998년 당시 안기부, 기무사, 경찰, 검찰 등에서 해직된 대공요원들을 만나보면, 국가 정보역량이 약화된 현실에 대해 분노를 터뜨린다. 하지만 이들이 주장하는 대안은 대북 분야를 제외하고는 현실적으로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은 21세기이기 때문이다.

    21세기 한국에서 국정원을 포함해 정보기관들이 다시금 세계적으로 우수한 역량을 갖도록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정보기관의 임무, 활동 등이 제대로 보호받고 간섭받지 않도록 관련 법률을 정비하는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정원장을 포함해 수뇌부가 모두 물갈이되고, 무슨 정치적 사건만 일어나면 직원들이 집단으로 ‘회사’를 떠나야 하는 현실에서 국정원 요원들이 국가안보만을 위해 목숨을 걸기는 너무도 어렵다.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법률로 국정원을 보호해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의 경우 한국 상황과는 너무도 다르다. 2007년 美국가정보장(DNI) 사무소에서 내놓은 미국 정보기관 관련 법령자료는 무려 680페이지. CIA 설치 근거인 ‘국가안보법(NSA)’를 포함해 악명높은 애국법, 국토안보부법, 방첩활동강화법, 해외첩보활동법, 연방 정보보호관리법, 사생활보호법, 비밀보호절차법, 군사조치법 등 다양한 법률과 이를 현실에 맞게 해석해 시행하는 시행령, 시행규칙들이 포함돼 있다.

    이런 법률은 때로는 정보기관이 활동하는 데 불편을 주기도 하지만, 정치적 사건이 터졌을 때 정보기관과 요원들을 보호하고, 정보요원이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만드는 가이드가 된다.

    “미국은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니까 그런 많은 법이 필요하지 한국은 안 그렇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내보내야 한다. 솔직하게 ‘예산’ 핑계를 대는 게 더 현실적이다.

    한국의 재외교포 수는 700만 명으로 세계 4위다. 한국 재외국민은 세계 220개국에서 활동 중이다. 이들을 지키려면 한국 정보기관도 세계 5위권에는 꼽힐 정도로 역량을 키워야 한다. 

    중앙정보부 공채 ○기 출신인 이병호 국정원장 내정자가 1998년 이후 ‘거세’ 수준으로 활동범위와 권한, 예산이 줄어든 국정원의 실상을 보면, 아마도 상당한 격세지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지금 한국 정보기관에는 수십억 달러짜리 첩보위성도, 수억 달러짜리 첩보 장비도, 김정은 주변이나 시진핑 옆에서 활동하는 휴민트도, 마음대로 공작금을 쓸 수 있는 능력도 예산도 없다. 1990년대 초반까지 갖고 있던 ‘조정능력’도 지금은 거의 없다. 정보요원들은 개인 신용카드를 쓴 뒤에 그 영수증을 제출해야 겨우 활동비를 받는, ‘사실상 감시상태’에 놓여 있다.

    이런 국정원이 제대로 제 할 일을 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국정원 관련법을 제정하고 정비하는 것이다.

    이때 국정원의 역량 강화 목표를 ▲해외정보역량(금융 포함) ▲국내 방첩기능(사이버, 금융 포함) ▲대북-대중-대러 정보기능 ▲과학정보 기관의 분리 및 강화 ▲과학, 자금, 인원모집 등의 지원역량 체계화 등으로 잡고, 20년 후 세계 5대 정보기관을 목표로, 역량 강화를 추진한다면 정보요원들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 ▲ 국정원 신청사. 공교롭게도 남산과 이문동에서 이곳으로 옮겨간 직후부터 정치권에 의해 손발이 묶였다. ⓒ정부 e 영상역사관 화면 캡쳐
    ▲ 국정원 신청사. 공교롭게도 남산과 이문동에서 이곳으로 옮겨간 직후부터 정치권에 의해 손발이 묶였다. ⓒ정부 e 영상역사관 화면 캡쳐

    이병호 내정자가 국정원장으로 가서 처음 해야 할 일은 지난 17년 동안 땅바닥을 뚫고 ‘지하실’까지 내려간 국정원 요원들의 사기를 되살리고, 국정원 요원들이 선거와 정치적 사건에 휘둘리는 일이 없도록 법률을 제정, 요원들이 제대로 활동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이다. 

    1998년 국정원 대숙청, 2004년 미림팀 파일 폭로, 2008년 국정원 관련법 정비 실패, 2012년 국정원 여직원 사건, 2014년 세월호 음모론 파문 등에 시달려 온 국정원이 바로 서게만 만들어도 이병호 국정원장 내정자는 역사 속에서 성공한 국정원장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