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회부' 막고 본회의 통과시킨 원동력은 '국민 여론의 힘'
  • ▲ 김영란법 심사를 위한 법사위 전체회의가 열린 3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새누리당 홍일표 의원이 이상민 법사위원장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김영란법 심사를 위한 법사위 전체회의가 열린 3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새누리당 홍일표 의원이 이상민 법사위원장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2월 임시국회의 마지막 본회의가 열린 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는 새정치민주연합 이상민·박지원·전해철 의원 등과 새누리당 노철래·이병석·김진태 의원 등이 참석해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열띤 격론을 벌였다.

    쟁점은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금품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의 적용 대상에 사립학교재단 이사진을 포함하느냐의 여부였다. 전날 여야 원내지도부가 합의한 안대로 제외하자는 측과 사립학교재단 이사진은 정무위 논의 과정에서 누락된 부분이므로 이를 포함해야 한다는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새정치연합 박지원 의원은 "실수로 적용 대상에서 국회의원이 빠지고 보좌관만 들어간다면 국민이 납득하겠느냐"며 "몰랐다고 하면 이해되지만 알고서도 이러면 안 된다"고 법안 수정을 강하게 요구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의원들은 "그러잖아도 민간 영역에 대한 과도한 적용이 문제인데, 적용 범위를 더욱 확대하는 것은 안 된다", "법사위에서 법안의 자구나 형식 심사가 아닌, 내용 자체를 수정하는 것은 정무위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 등 다양한 논거를 들어 대항했다.

    여야 의원들 간의 날선 공방에, 출석해 있던 이성보 국민권익위원장은 이 쟁점에 관한 질의에 대해 "내가 답변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며 한 발 빼는 모양새를 취하기도 했다.

    이날 오전 10시에 개회한 법사위는 오후 회의를 속개한 뒤에만 김영란법과 관련해 몇 차례의 정회를 거듭하며 2시간 여의 토의를 진행했다. 숨막히는 설전이 오고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날 법사위에는 △국민건강증진법(담뱃갑 흡연경고사진 표시 의무화 조항)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에 관한 특별법(아문법) 등 다른 관심법안들도 함께 심사됐다. 하지만 이날 법사위는 마치 '김영란법' 하나의 법안만을 위해 마련된 무대 같았다.

    다른 법안들은 이상민 법사위원장의 "(아문법은) 원안대로 가결됐음을 선포한다", "(국민건강증진법은) 심도 있는 검토를 위해 법안심사 2소위에 회부한다" 등 한 마디 외침으로 신세(?)가 결론났다. 몇 초 사이에 법안의 운명이 결정난 것이다.

    반면 김영란법은 몇 차례의 정회와 수 시간의 토의를 거듭하며 법안 처리에 난항을 겪었다. 그러나 의원들은 심사를 보류하고 다음 전체회의에서 다시 하자거나, 소위원회에 회부해버리는 등 쉬운 해결책을 찾지 않았다.

  • ▲ 김영란법 심사를 위한 법사위 전체회의가 열린 3일, 전날 있었던 여야 원내지도부 합의의 당사자이기도 한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에게 새누리당 이병석 의원이 다가와 무언가를 묻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김영란법 심사를 위한 법사위 전체회의가 열린 3일, 전날 있었던 여야 원내지도부 합의의 당사자이기도 한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에게 새누리당 이병석 의원이 다가와 무언가를 묻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다른 법안과 달리 김영란법만 특별 대우(?)를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새정치연합 박지원 의원의 말에서 나왔다.

    박지원 의원은 "여러가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만연한 부패 척결이 국민의 요구"라며 "무리해서라도 통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법안 통과를 위해 아무 말도 않고 있던 박지원 의원이 이날 법사위에서의 내뱉은 첫 마디였다.

    결국 국민의 여론이 '특별 대우'의 원동력이었던 셈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부패를 척결해야 한다는 국민의 목소리, '그들만의 관행'을 청산해야 한다는 국민의 분노가 국회의원들로 하여금 눈치를 보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법안심사소위에 회부한다"는 그 한 마디가 법사위에서 나오지 못하게끔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국민의 번뜩이는 눈초리였다.

    사실 법사위까지 올라온 김영란법 법안에는 하자가 적지 않았다. 이날 법사위 논의 과정에서만도 △적용 대상에 사립학교재단 이사장 등 임직원 누락 △구체적인 세칙의 부재 등 다수의 하자가 발견됐다.

    법사위 여당 간사인 새누리당 홍일표 의원은 "(이 법안이) 문제가 많다는 걸 알면서 꼭 이렇게 서둘러야 하나"라며 "한 달 연기하면 국민들이 몰라주는가? 꼼수를 쓴다는 비판이 모면하려고 제대로된 절차를 밟을 수 없는 것 아닌가"라고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일표 의원조차 김영란법을 법안심사소위에 회부하자던지, 다음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자는 제안은 감히 하지 못했다.

    그들 스스로가 국민 앞에서 한 약속에 의원들도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그렇게 올해 2월 임시국회의 마지막날, 법사위 회의실에 모인 국회의원들은 김영란법을 처리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지키는 길로 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