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기'로 쟁취할 '민주화'란 더 이상 없다.

      한국 안에서는 물론 미국 주요도시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일부 세력의 길거리 ‘하야(下野) 투쟁’이 일제히 재연(再演)되고 있다.
    이상한 일이다.


  • 어떻게 이렇게 ‘일제히’인가?
    필유곡절(必有曲折)이다.
    무엇이 컴컴한 구석에서 쑥덕쑥덕 함이 없이는
    이런 ‘일제히’가 연출될 리 만무하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선 물론 시시비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원세훈 유죄=이명박 책임=정권차원 부정선거=박근혜 당선 무효=박근혜 물러나야”
    어쩌고 하는 식은, 정당한 시비를 넘어서는 억지이자 생트집이다.
    그리고 이런 생트집을 부리는 저의(底意)는 분명하다.
    정권의 정당성을 걸고넘어져서 그것을 체제타파 투쟁으로까지 연장시키려는 것이다.

     그 동안 대선 패배, 통진당 해산 등을 거치면서
    극좌 및 좌파일반의 위상은 극도로 위축되었다.
    그리고 민심도 그들을 외면했다.
    한 동안 ‘북한=진보/자주’인 양 인식하던 미신(迷信)도 빛이 많이 바랬다.
    강경야당에 대한 여론지지 역시 오래 동안 20%대에 머물렀었다.
    세월호 참사 때 박근혜 정부와 집권여당에 대한 신뢰가 상당히 식었지만,
    그것도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오만불손 때문에 일시에 역전되었다.
    이래서 야당 강경파와 좌파일반 및 극좌파로서는
    좀처럼 밑바닥에서 회생하기가 힘들었다.

     이러던 차에 항소심 재판부가 “대통령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국정원 댓글이 부쩍 늘었다.
    이게 원세훈 유죄의 증거다”라고 판시했다.
    이것은 야당 강경파에는 물론 좌파일반과 극좌세력에도
    “이것을 계기로 다시 공세로 전환하자”는 절호의 명분을 주었다.
    야당이 큰 소리 치는 것이야 그럴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체제타파 세력이 이걸 구실로
    국내외에서 일제히 박근혜 하야 선동을 하는 것은
    단순한 선의(善意)의 ‘야당적 비판’으로만 봐줄 수 없다.

    일부는 자신들의 언동을 언필칭 ‘민주화운동’이라고 부를 것이다.
    웃기는 소리다.
    ‘원세훈 유죄’는 아직 확정판결이 아니다. 설령 그렇게 확정된다 해도 그것을
    “원세훈 단독행위가 아니라 이명박이 시킨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지난 대통령 선거가 ‘이명박이 시킨 원세훈 댓글’ 때문에 원천무효라고
    몰고 가는 건 무리다. 그리고
    “그것이 원천무효이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은 물러나야”한다고 말하는 것은 더더욱 무리다.

     1987년 6월 이후에 한국에서는 ‘혁명적 봉기’로 쟁취해야 할 민주화란 더 이상 있을 수 없다.
    정권이 싫으면 헌법과 선거법에 따라 종료시키면 된다.
    그렇게 안 돼도 그만이고 그 뿐이다.
    그것도 국민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선거를 통한 국민의 선택을 ‘작위적인 봉기’로 무효화시키려는 작태가
    오히려 반(反)헌법적이고, 따라서 당연히 반(反)민주적이다.

     박근혜 정부가 잘못하는 사례에 임해서는
    누구든지 정당한 비판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잘못하는 사례가 부분적으로 있다고 하더라도,
    정당한 비판을 넘어 합헌(合憲), 합법적으로 탄생한 대통령을
    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임기 전에 물러나라고 강박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