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통죄 위헌 결정, 2008년 10월30일 이후 처벌받은 사람만 구제
  • ▲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사진 연합뉴스
    ▲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사진 연합뉴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간통죄가 결국 폐지됐다.

    1953년 제정된 된 62년만이며, 유부녀와 그 상간자만을 처벌한 1905년 대한제국 형법대전을 기준으로 하면, 무려 90년만이다.

    헌법재판소는 26일 오후, 17건의 간통죄 위헌 심판 사건에 대해, 재판관 7대2 의견으로 위헌결정을 내렸다. 앞서 헌재는 1990년부터 2008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간통죄의 위헌성을 심리했으나 모두 합헌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결정문을 통해, “성에 대한 국민의 법감정이 변했고, 처벌의 실효성이 의심된다”며 위헌결정의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관들이 밝힌 의견을 나눠보면, 박한철(헌법재판소장), 이진성, 김창종, 서기석, 조용호 재판관 등 5명은, 간통죄 처벌규정이 헌법이 정하고 있는 과잉금지원칙에 반하고, 해당 처벌조항이 ‘성적(性的)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봤다.

    김이수 재판관은, 이들과 달리 “간통죄 처벌이 일반적으로 과도한 것은 아니”라고 밝히면서도, 미혼자까지(상간자) 간통죄로 처벌하는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어긋난다며, 위헌의견을 냈다.

    강일원 재판관 역시 간통죄 자체의 위헌성은 부정하면서, “다만 다양한 간통 유형에 대한 처벌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명확성 원칙에 반하고, 징역형만을 규정해 비례원칙에 어긋난다”고 위헌 의견을 밝혔다.

    이들과 달리 이정미, 안창호 재판관은 ‘간통죄 합헌’ 의견을 냈다. 두 재판관은 “간통죄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볼 수 없다”면서, 간통죄 폐지로 인한 성도덕 문란, 가족의 해체 등 역기능을 고려할 때, 간통죄는 유지돼야 한다고 밝혔다.

    간통죄는 1990년 처음 헌재의 심판대에 놓였다.

    당시 헌재는 “간통죄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며 합헌결정을 내렸고, 재판관 6명이 간통죄 유지에 찬성 입장을 나타냈다.

    헌재는 ▲선량한 성도덕 ▲일부일처주의 ▲혼인제도의 유지와 가족의 생활보장 ▲부부간 성적(性的) 성실의무 보호 등을 이유로 들면서, 간통죄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헌재가 간통죄의 위헌성을 두 번째 심리한 1993년에는 “1990년 결정과 달라진 것이 없다”며, 신청을 기각했다.

    헌재는 2001년에도 “간통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여전하다”는 이유로 합헌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2008년 헌재는 간통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에서, 재판관 5(위헌)대4(합헌)로 합헌결정을 내리면서도, 처음으로 위헌의견을 낸 재판관이 합헌의견을 낸 수보다 많아지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당시 헌재가 합헌결정을 내리긴 했지만, 한 명만 더 위헌의견을 냈다면 결과는 뒤집힐 수 있었다. 헌재의 위헌결정은 재판과 6명 이상이 찬성의견을 내야만 성립한다.

    특히 헌재는 2008년 결정문을 통해, 간통죄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한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위헌성을 선언할 정도는 아니라는 모호한 입장을 밝혀, 간통죄에 대한 법인식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이날 위헌결정은 소급 적용된다. 다만 소급의 효력은 헌법재판소법 개정으로 헌재의 마지막 합헌 결정이 있었던 날의 다음날까지만 적용된다.

    헌재가 간통죄에 대해 마지막 합헌결정을 내린 시기는 2008년 10월 30일이기 때문에, 이날 이후 간통죄로 기소돼 유죄가 확정된 사람들만 재심을 통해 구제를 받을 수 있다. 간통죄로 기소돼 재판을 받는 피고인들은 검찰이 공소취소를 하거나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다. 수사 중인 피의자의 경우에는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