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드 배치 못한다면 중국이 北核 막아줄까?
     
한국 정책당국자들과 지식인들 가운데는
미국을 전 같지 않게 과소평가하고,
중국을 과대평가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미국의 힘은 쇠퇴하고 있다,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도 후퇴하고 있다,
반면에 중국이 신흥 대국으로 굴기(屈起)하고 있다,
따라서 중원(中原) 턱 밑에 붙어있는 소국 한국으로선
한미동맹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미국 중국 사이에서
최소한 ‘등거리 외교’라도 해야 한다.” 운운하는 게 그것이다.
 
그러나 아산정책연국원의 연구자들이 최근 내놓은 의견에 의하면 그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유가(油價) 폭락과 낮은 에너지 비용으로 인해 미국의 가계(家計)가 호전되고 미국 경제 전체가
다시 호황으로 돌아서고 있다는 게 그들의 진단이다.
이것은 다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강화시켜 주고 있으며,
세계는 여러 개의 강대국들 시대에서 다시 ‘팍스 아메리카나’로 복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이 맞는다면 “미국에서 반쯤 이탈해 중국 쪽으로 반쯤 가자.”
“중국 때문에 사드(THAAD) 배치 안 된다.”는 우리 일각의 주장은
섣부르고 헛짚는 게 되는 셈이다.
 
대한민국의 생존 환경과 여건은 반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바뀐 게 없다.
그리고 그게 바뀌지 않은 한 우리 생존 전략도 바뀌어야 할 이유가 없다.

우리의 생존 환경이란 ‘대륙세력+북한’의 비우호적 자세를 말하는 것이고,
생존 전략이란 그로부터 우리를 방어하기 위해 '해양세력+대한민국‘의 보루를 쌓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전략을 썼기에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대륙세력+북한‘에 먹히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이런 자명한 생존 전략에 최근 혼선이 빚어진 것일까?
중국에 대한 ‘입증되지 않는’ 낙관적 기대와 환상 탓이다.
“중국이 잘만 하면, 그리고 우리가 하기 따라선,
아주 서서하게나마 북한으로부터 정나미를 떼고
우리와 정분이 날 것”이란 기대가 그것이다.
  • 그럴까?
    한 마디로 꿈도 야무지고, 순진하다 못해 바보스럽기조차 한 소리다.
    거기다, 중국이 워낙 크고 빨리 성장하니까 지레 겁을 집어먹고
    “야 행여 중국 비위 건드렸다간 큰일 나겠다”고 하는 공포심도 아마 작용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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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족(漢族) 패권주의, 중화(中華) 패권주의, 공산당 패권주의의 중국은
    자유주의 문명과는 절대로 울타리를 트고 살 수 없다.
    자유주의 물결을 들였다가는 전체주의, 1당 독재, 언론통제, 정보통제, 사상통제, 문화통제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주의 문명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영향력 확대를 저지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그 동맹국들을 미국으로부터 떼어내 중립화 시켜야 한다.
     
    중국은 이 필요에 부응해 한국에 대해
    “미국과 그만 놀고 예전처럼 우리 품으로 돌아오라.”
    “옛날의 조공(朝貢) 외교 시대가 더 평화롭지 않았느냐?”며
    한 편으론 구슬리고 다른 한 편으론 은근히 공갈치곤 하는 것이다.
    이 작전에 우리 내부의 일부 오피니언 리더들과 정책 당국자들이
    턱없이 홀리고 있다고 하면 지나친 기우(杞憂)일까?
     
    공산당 중국이 북한의 세습왕조를 싫어한다고는 하나,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북한은 우리 중국의 동쪽 완충지대다”라고 생각하는 점에선,
    그리고 “자유주의 ‘해양세력+한국’이 압록강까지 올라오는 것만은 절대 불용(不容)”이라고 생각하는 점에선 반세기 전 그들이 ‘항미원조(抗米援朝)’를 한다며 압록강을 넘어 밀고 내려왔을 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바가 없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물론 다자(多者) 외교, 북방정책, 지정학적-지경학(地經學)적 필요에 따른
    우리의 복합 외교의 당위성을 부인하는 건 아니다.
    우리는 물론 능숙한 기교로 중국과도 착실한 우호관계를 쌓아가야 한다.
    그러나 그럴수록 무엇이 가장 으뜸이고 무엇이 그 다음이냐 하는
    우선순위만은 잊어선 안 된다.
    우리에게 가장 으뜸가는 외교의 대상은?
    그건 역시 한미동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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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도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천명하고
    “우리에겐 한미동맹이 1순위다. 이걸 전제하고서 사귀어보자”고 할 때
    오히려 우리를 더 어렵게 여기고 존중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우리가 만약 호락호락 저들의 꾐과 공갈에 스스로 넘어가주고
    춤을 춰주고 외투를 벗어주면 저들은 우리를 속으론 더 우습게 여길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대중(對中) 외교에서 큰 진전을 이룩한 점은 그것대로 평가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드 배치 문제 등에서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저토록 뭉개고 겁내는 것은 필자가 보기에도 비굴해 보이는데,
    하물며 전통적인 동맹국이 보기엔 얼마나 치사할 것인가?

    얼마 후에는 북한이 핵무기 100개를 거머쥘 것이란 관측도 있다.
    그렇다면 MD는 중국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필수 아닌가?
    중국이 북한 핵으로부터 우리를 막아줄 것인가?
     
    공산당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한미동맹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우리에게 무엇이 더 중요한가?
    어느 게 우리의 진짜 버팀목인가?
    박근혜 정부가 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심각하게 자문자답해 보아야 할 물음이다.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