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 담당하는 수석부총장에 김경협 임명 강행
  •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25일 최고위원회의의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문재인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수석사무부총장에 친노 김경협 의원을 임명하는 안을 강행 처리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25일 최고위원회의의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문재인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수석사무부총장에 친노 김경협 의원을 임명하는 안을 강행 처리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조선시대에 이조정랑(吏曹正郞)이라는 관직이 있었다. 지금의 행정자치부의 실무자급에 해당하는 관직으로, 품계는 정5품이었다. 위로는 장관급인 이조판서와 차관급인 이조참판, 그리고 이조참의가 있어 명목상으로는 높은 관직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이조정랑직 때문에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은 분당(分黨)됐다. 이후 200여 년간 계속된 붕당정치와 당쟁의 원인이 오롯이 이조정랑 때문이었다. 실무직 한 자리에 왜 조정 사대부들이 두 조각이 난 것일까.

    이조정랑이 문관의 인사권을 담당하는 실무직이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조정랑은 정승·판서를 탄핵할 수 있는 사헌부·사간원에 대한 임명동의권(통청권)과 자기 자신의 후임을 직접 추천할 수 있는 자천권이 있었다.

    이조정랑에 자천권을 준 이유는 총리급·장관급인 정승·판서의 눈치를 보지 말고 인사를 소신대로 하라는 의도였다. 하지만 당쟁이 격화되면서 이는 자기 세력을 요소요소에 심고, 다시 자기 세력을 후임으로 삼아 자리를 물려주는 극심한 폐단을 낳았다. 특정 붕당의 패권주의를 유지하는 핵심 기능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25일 수석사무부총장에 친노(親盧) 김경협 의원을 임명했다. 세 차례에 걸친 최고위원회의 끝에 자신의 뜻을 결국 관철한 것이다.

    친노 일각에서는 "지명직 최고위원과 사무총장 등 훨씬 높은 자리를 다 탕평(蕩平)했는데 실무 한 자리를 친노에게 주지 못하느냐"고 항변한다. 하지만 그 한 자리가 하필이면 공천 실무를 담당하는 자리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수석사무부총장은 당의 조직 관리는 물론 각종 선거에 있어서의 공천 실무를 담당하는 핵심 요직이다. 새정치연합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 격인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이 되자마자 자신의 핵심 측근인 강래구 전 부대변인을 이 자리에 임명한 것도, 또 문희상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그 뒤를 이어 비대위원장이 되자마자 이를 경질한 것도 이 자리가 그만큼 당 조직을 장악하는 키(Key)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표는 탕평을 지명직 최고위원이나 사무총장을 다른 계파에 던져주는 것으로 오해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내년 총선에서 친노와 비노(非盧) 사이에 공정한 공천을 하는 것이 진정한 탕평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가뜩이나 4·29 보궐선거를 앞두고 서울 관악을 등 친노와 비노가 경쟁하는 지역구에서 공정한 공천이 이뤄질지 의구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공천 실무를 담당하는 수석사무부총장에 친노 세력을 심고야 말았다. 내년 총선 공천은 보나마나 친노 세력이 전횡을 휘둘렀던 19대 총선의 재판이 될 것이라는 한숨이 벌써부터 들린다.

    실제로 비노 김한길계인 주승용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 도중 먼저 회의장을 나섰다. 주승용 최고위원은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김경협 의원의 수석사무부총장직 임명에 대한) 나의 원론적 반대 입장만 말하고 나왔다"며 "끝까지 반대했지만,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로써 문재인 대표의 탕평 의지는 예상보다도 훨씬 빨리 빛이 바래게 됐다. 패권주의로 똘똘 뭉친 친노 계파의 속성상 언제까지 '위장된 탕평'이 계속될리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지만, 이렇게 빨리 속내를 드러낼 줄은 몰랐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지명직 최고위원 등 명목상의 높은 자리 몇을 탕평하는 척 다른 계파에 나눠주면서, 공천권을 휘두르고 자기 세력을 심고 계속해서 물려줄 수 있는 수석사무부총장만큼은 절대 내놓지 않고 고집을 관철하는 모양새다. 이를 바라보면서 조선시대에 이조정랑을 고집하다 분당(分黨)이 된 사대부들의 모습이 떠오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