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강규형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 뉴데일리DB
    ▲ 강규형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 뉴데일리DB

    참여정부에서 국가기록관리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한 국사학자는 방송인터뷰에서 “많은 대통령기록물들이 비밀로 지정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비밀취급 인가를 받은 사람이어야”하고, 요번에 이명박 전 대통령 기록물을 열람한 대리인이 “현직에 있지 않으면 비밀취급 인가를 갖고 있다고 확언하기는 어려울 것”이기에, 그 사람이 비밀취급 인가가 있는지 없는지를 따져야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더 나아가 일각에서는 대리인이 누구인지 밝혀서 열람의 위법성을 밝혀야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이런 당치않은 주장이 의외로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비밀취급 인가는 전직 대통령도 갖지 못하는 것이고, 그 대리인도 물론 그런 권한이 없다. 그러나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18조는 전직 대통령에게 (본인 또는 대리인을 통해서) 자신의 기록에 대한 접근 권한이 보장돼 있다.

    언뜻 봐서는 모순된 내용 같지만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은 특별법이기에 다른 법규의 구속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전직대통령과 그 대리인의 비밀취급 인가 자격은 자신의 기록물 열람에 전혀 상관이 없는 사안이다.

    열람을 놓고 벌어지는 한심한 문제제기는 이제 중지돼야 한다. 열람신청을 안하려면 자기 집에 통째로 가져가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옳은 방식이 아니었다.

    두 번째 논란은 비밀로 지정된 기록물을 통해 국가기밀을 누설했는가의 문제이다. 필자가 다른 매체에서도 설명했듯이 전직 국가지도자들의 회고록은 대개 본인과 측근들의 집단기억에 의존해서 작성된다.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도 그렇게 집필됐다.

    그런데 논의 중에 날짜 등의 팩트에서 엇갈리는 기억들이 생길 때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기록물을 통해 검증작업을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한다. 이명박 측은 두어 차례 이런 재확인을 위해 기록을 열람했다.

    사실은 더 정확하고 좋은 회고록 집필을 위해선 더 여러 번 열람을 했어야 할 일이다. 다시 말해 이 회고록은 “국가안전보장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기록물”에 의거해 작성된 책이 아니다.

    물론 기억에 의한 회고록이라 할지라도 얘기해선 안 될 부분들이 있다.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본인들의 몫이다. 그 부분에선 이명박 회고록도 논쟁에서 비켜갈 수는 없다.

    그런데 이번에 출간된 회고록은 국내외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들을 거의 다 빼고 서술된 매우 밋밋한 책이다. 그래서 기대에 못 미치는 부분들이 있고 전체적으로 봐서도 만족스런 회고록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해외의 지도자들의 경우처럼 회고록은 연이어 출간되는 것이 관례다. 이 전 대통령 측도 앞으로 각 시기마다 적절한 공개범위와 수위조절을 놓고 고심하면서 후속 작을 내놓을 것이다.

    이번 회고록은 물론이고 후속 회고록들의 내용들도 많은 논쟁을 낳을 것이며, 그것은 오히려 일부 환영할 일이고 전적으로 자연스런 일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역사적 데이터베이스는 더 넓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번에 공개된 내용 중에 관심을 모으는 것은 “남북정삼회담”을 위한 협상 건이다. 상당부분은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진 내용이기도 하다. 그런데 당시 “왜 이명박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하지 않냐?”는 비판이 많았고, 이명박 측에서는 여기에 대한 대답을 내놔야하는 사안이기도 하다. 일시적인 인기나 흥행을 위해 굴종적이고 무리한 뒷거래를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지 않은 것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될 부분이다.

    사실관계가 전혀 틀린 얘기와 논리로 국민을 호도하는 것은 올바른 비평의 자세가 아니다. 또한 외국의 유명 회고록들을 일단 많이 읽어보시라. 그 회고록들에서 얼마나 민감하고 격한 얘기들이 서술됐는지를 읽고 나면 이명박 회고록은 싱겁게 느껴질 것이다.

    우리처럼 비생산적인 논점을 가지고 회고록 논쟁이 일어나는 나라는 없으며, 결국 이런 분위기는 회고록 쓰기를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현재 일어나는 논란의 상당 부분은 정쟁(政爭)수준이기에 지금보단 훨씬 더 높은 수준으로 진화돼야 생산적인 회고록 문화가 정착될 것이다.

    ※ 위 칼럼은 2월25일자 중앙일보 전재 기사를 필자 본인이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강규형 (명지대 기록대학원 교수, 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