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을 납치 공포와 위폐 유통의 불안감에 떨게 한 '제과점 여주인 납치 사건'이 도피중이던 피의자 정승희(32)씨가 지난달 28일 검거되면서 18일 만에 막을 내렸다. 

    이번 사건은 피해자가 피랍 19시간 만에 무사히 풀려났음에도, 범인 유인을 위해 경찰이 사용한 수사용 모조지폐에 대한 논란과 실제 정씨가 위폐를 사용하면서 불거진 위폐 유통에 대한 우려가 맞물리면서 파장은 일파만파 확산됐다. 

    교도소에서 함께 생활하며 알게 된 정씨와 공범 심모(28.구속)씨가 강서구 내발산동의 제과점 여주인 A씨를 납치한 것은 지난달 10일 밤 11시40분께. 

    사전에 역할 분담을 하는 등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한 이들은 A씨를 폭행하고 현금 80만원을 빼앗은 뒤 A씨를 이전에 훔친 체어맨 승용차로 납치했다. 

    다음 날인 11일 A씨의 신용카드로 현금인출기에서 120만원을 더 인출한 뒤 경찰이 A씨 남편을 통해 건넨 수사용 모조지폐 7천만원을 챙겨 도주했고 A씨는 그날 오후 6시30분께 경기도 광명의 한 도로변에서 풀려났다.

    그 후 불과 이틀 뒤인 13일 밤 심씨가 검거되면서 사건이 의외로 쉽게 해결되는 듯했다. 

    그러나 경찰의 추적을 따돌린 정씨는 여기저기 휘저으며 위폐를 쓰고 돌아다녔고 경찰은 수사력 부재에 대한 비난뿐만 아니라 '뜻하지 않게' 위폐 사용에 대한 책임까지 떠맡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예상밖으로 치밀하면서도 대담하게 위폐를 거리에 뿌리고 다니는 정씨의 꽁무니를 경찰이 허둥거리며 뒤쫓는 상황이 계속됐다.

    심씨가 잡히자 경찰 추적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 정씨는 14일 위폐 30만원을 택배기사에게 주고 대포폰 1대를 구입했다. 이것이 경찰이 지금까지 확인한 추가 위폐 유통이다.

    정씨는 이어 17일 오후 6시께 강남구 삼성동에서 인터넷 직거래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박모(31)씨에게 위폐 700만원을 주고 250㏄ 오토바이를 구입한 뒤 18일 현금 400만원을 받고 되파는 고도의 '돈세탁' 기술을 발휘했다.

    그는 박씨가 위폐를 손쉽게 알아볼 수 없도록 어스름녁에 모조지폐를 건네는 치밀한 면도 보여줬다.
    경찰은 결국 18일 비공개 수사를 접고 정씨를 공개수배하면서 현상금 500만원을 내거는 굴욕적인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럼에도 종로 포장마차와 혜화동 복권가게, 망우동 상점에서 잇따라 낱장의 위폐가 발견되면서 경찰은 '공황'상태에 빠졌고 위폐가 광범위하게 유통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점차 커졌다. 

    그러나 공개수배로 얼굴이 알려져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없게 된데다 수사망까지 좁혀오자 정씨는 18일부터 경기 부천시 고강동의 주택가에 쪽방을 얻어 칩거생활에 들어갔다.
     
    정씨는 견인차 기사로 함께 일한 동료 명의로 쪽방을 계약한 뒤 이웃은 물론 주인의 눈에 띄지 않도록 철저히 신분을 숨긴 채 은신 생활을 했다. 

    그러나 경찰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등 정보에 목이 말랐던 것일까. 1천만원으로 `몸값'이 올라간 자신에 대한 네티즌 반응이 궁금했던 것일까. 아니면 쪽방 생활이 무료했던 것일까.

    정씨는 동료 명의로 케이블 TV를 설치한 뒤 인터넷까지 연결하려다 결국 은신 열흘 만에 덜미를 잡혔다. 정씨 일당의 납치 사건이 18일 만에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