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폭침 후 국정원 직원 보내 남북 물밑접촉…中 계속 남북정상회담 권유”
  • 퇴임 이후에도 각종 외부활동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명박 前대통령. ⓒ뉴데일리 DB
    ▲ 퇴임 이후에도 각종 외부활동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명박 前대통령. ⓒ뉴데일리 DB

    이명박 정부 시절 남북정상회담을 원했던 것은 한국이 아니라 오히려 북한 쪽이었다는 것을 아는지. 김정일-김정은 부자는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하면서 뻔뻔스러운 ‘양아치 근성’을 노골적으로 보였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명박 前대통령이 오는 2월 2일 출간할 예정인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 있는 내용 일부가 공개됐다.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부분은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북한 측의 태도와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이후 청와대의 움직임, 그리고 김정일-김정은 부자의 태도였다.

    언론을 통해 공개된 이명박 前대통령의 회고록 내용에 따르면, 이명박 前대통령은 취임 직후 한 목사로부터 이런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북한이 이명박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할 용의가 있다고 한다. 어떻게 하겠나.”


    여기에 대한 이명박 前대통령의 답변은 “안 와도 된다”는 것. 김정일 집단이 뭔가 숨은 정치적 목적을 띤 것 같아 거절했다고 한다.

    몇 달 뒤 김정일 집단을 중국을 통해 또 다시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다고 한다.

    2009년 10월 10일 中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의 오찬 당시 원자바오 총리가 “내가 김정일을 만났는데 남북정상회담을 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말을 슬쩍 꺼내기도 했다고 한다.

    원자바오 총리는 같은 달 24일 태국 후아힌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또 남북정상회담을 권유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명박 前대통령은 “북한이 요구하는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 나는 조건없는 남북정상회담을 바라는데 김정일은 대체 왜 그런 식인지 알 수 없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이 일이 있은 뒤 2009년 11월 개성에서 열린 통일부와 北통일전선부 간 실무접촉 때 가서야 김정일이 무엇을 원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한다.

    남북실무접촉 당시 北통일전선부 관계자는 “싱가포르에서 작성한 남북합의서”라는 3장짜리 문서를 우리 측에 내밀었다고 한다.

    이 ‘남북합의서’에는 “남북정상회담의 조건으로 한국 정부는 현금 100억 달러(한화 약 11조 원)와 옥수수 10만 톤, 비료 30만 톤, 아스팔트 건설용 피치 1억 달러 어치를 제공한다”고 돼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주기로 했다는 100억 달러는 당시 김정일 정권이 만들려던 ‘국가개발은행’의 자본금이었다고 한다.

    北통일전선부는 “이 합의서는 싱가포르에서 임태희 남조선 노동부 장관과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만나 합의한 내용”이라는 주장을 폈다고 한다.

    이명박 前대통령이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에게 따져묻자 임 장관은 “김양건 부장이 제시한 회담 내용을 수정해서 제가 서명을 했다. 논의한 내용에 대한 것일 뿐”이라며 “합의한 사실은 없다”고 답했다 한다.

  • "봤냐? 남조선 애들한테서는 이렇게 돈을 뜯는거야." "헤헤…네, 아빠" 김정일이 살아 생전에 정은이에게 가르친 것이라고는 '양아치' 같은 짓 밖에 없다. ⓒ北선전매체 보도화면 캡쳐
    ▲ "봤냐? 남조선 애들한테서는 이렇게 돈을 뜯는거야." "헤헤…네, 아빠" 김정일이 살아 생전에 정은이에게 가르친 것이라고는 '양아치' 같은 짓 밖에 없다. ⓒ北선전매체 보도화면 캡쳐

    그런데 이 같은 북한 측의 요구 조건이 2009년 8월 당시 김대중 前대통령 사망 당시 조문단으로 서울에 온 김기남 北노동당 비서가 정상회담을 제안할 때 들이밀었던 요구와 똑같았다고 한다.

    당시 김기남 北노동당 비서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도 ‘남북정상회담’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저희 장군님께서는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이 잘 실천되면 앞으로 북남 수뇌들이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이 같은 요구에 이명박 前대통령은 “김정일에게 전하라”며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동안 북한이 ‘북핵 문제는 북·미 사이 문제이니 남한은 빠져라, 남한은 경제 협력이나 하면 된다’고 주장해 왔는데 나는 그에 대해 달리 생각하고 있다.”


    이명박 前대통령은 2009년 남북 간의 접촉이 김정일의 터무니없는 요구로 더 이상의 진전을 보지 못한 뒤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이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천안함 폭침’이 터진지 넉 달 뒤인 2010년 7월 청와대는 북한의 요구에 따라 국가정보원 고위급 인사를 비밀리에 북한으로 보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국정원 인사는 김정일 측에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싶다면, 우리가 제시한 원칙을 지키는 것은 물론 ‘천안함 폭침’에 대한 공식사과와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에 돌아온 김정일 집단의 대답은 “쌀 50만 톤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고. 이처럼 ‘양아치 근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김정일 때문에 남북 간의 대화는 진전되기 어려웠다는 게 이명박 前대통령의 설명이었다.

  • 김정일과 후진타오. 中공산당은 기본적으로 북한 체제를 지키고자 한다. ⓒ中관영 CCTV 보도화면 캡쳐
    ▲ 김정일과 후진타오. 中공산당은 기본적으로 북한 체제를 지키고자 한다. ⓒ中관영 CCTV 보도화면 캡쳐

    이명박 前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중국의 속내가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기도 했다. 천안함 폭침이 일어난 뒤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계속 “나는 모르는 일”이라는 식으로, 분명한 태도를 보이기를 꺼렸다고 한다.

    ‘천안함 폭침’ 이후인 2010년 5월 이명박 前대통령은 中상하이 엑스포 개막식에 참석해 후진타오 中공산당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이 前대통령은 “천안함 폭침에 대한 국제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가 나오면 중국도 공정한 입장을 취해달라”고 당부했다고.

    얼마 뒤인 5월 20일 천안함 폭침 국제합동조사단이 “천안함은 북한 어뢰에 의한 외부 수중폭발로 침몰했다”는 결론을 내놨다. 이 前대통령은 이 결과를 당시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 원자바오 총리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원자바오 총리의 태도는 “우리는 누구도 비호하지 않을 것”이라는 정도의 응답뿐이었다.

    이에 이 前대통령은 “중국의 소극적인 태도가 북한을 오판(誤判)하게 만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꾸준히 중국 공산당 측에 ‘천안함 폭침’ 문제를 제기했다고 한다.

    이 前대통령은 결국 2010년 6월 G20 정상회의에서 ‘폭발’했다. 당시 정상회담에서 만난 후진타오 中공산당 주석에게 “이 문제로 한국과 중국이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강한 어조로 말해, 중국 측 관계자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 前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계속 요구하던 김정일 집단에 대해 설명하면서 “전임 정부 시절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모두 한국 청와대의 요청으로 이뤄진 것인데, 북한이 먼저 남북정상회담을 하자고 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남북 관계에서 이 前대통령이 이처럼 원칙을 지켜나간 덕에 한국 국민의 혈세가 김정일 집단의 입으로 들어가는 일은 사라지게 됐다.

  • 이명박 前대통령. ⓒ인터넷 커뮤니티 캡쳐
    ▲ 이명박 前대통령. ⓒ인터넷 커뮤니티 캡쳐

    이 같은 이 前대통령의 회고록 내용을 보면, 남북 대화 문제에 있어서 조급한 쪽은 김씨 일가라는 점, 그리고 중국은 한국의 동맹이 되기 어렵다는 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남북 관계가 이런 상황이었음에도, 현재 박근혜 정부는 통일부와 통일준비위원회를 앞장세워, 계속 먼저 김정은 집단에게 ‘대화’를 제의하는 것은 물론, 중국 공산당 정권을 향해서도 계속 ‘러브콜’을 띠우고 있다.

    가능성은 적지만, 만약 박근혜 정부가 ‘反이명박 감정’에 기인해 ‘남북대화 올인’과 ‘친중반일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라면, 이는 "몇몇 개인의 감정 때문에 국가전략을 망가뜨렸다"는 후대의 평가도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