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젤리나 졸리에게 창피하지도 않은가? 
      
    안젤리나 졸리가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글이 너무 인상적이다.
    한국의 어느 당국자, 어느 여당의원, 어느 야당 정치인의 말보다 격이 높다.
    시리아 등 중동 일대의 난민 캠프에서 IS 등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피해자들을 만나보고 그녀는 이렇게 적고 있다.

    “미국 안에서만 우리의 가치를 수호해선 안 될 것 같다.”

    그녀의 글에는 극단 광신주의 집단의 살육과 소녀 성폭행에 대한 인간적인 아픔과 비탄이 묻어나고 있다.


  • 바로 이거다.
    문제는 인간의 비극인 것이다.
    우리의 통일논의와 남북대화 담론에는 도무지 인간적 고통과 비극과 처참함에 대한 분노와 연민과 눈물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오로지 남북철도와 대륙횡단 철도를 잇자는 둥, 거창한(그러나 좀처럼 될성부르지 않은) 말들만 있다.
    이런 것도 물론 나쁘다는 건 아니다.
    정부라면 그런 이야기도 하긴 해야겠지...
    그러나 그런 것보다 더 절실한 문제는 인간의 고통의 문제다.
 
분단된 한반도에선 지금 어떤 인간적 고통이 진행되고 있는가?
대답은 나라 안이 아니라 나라 밖에서 나왔다.
꼭 1년 전에 발간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북한인권보고서가 그것이다.
이에 따르면 김정은 폭정 하에서 우리 동포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일상적인 공포, 감시, 폭압, 정치범수용소의 처형, 고문, 강제노동, 기아, 국군포로와 그 가족들의 고통, 탈북 기도자들에 대한 학대, ‘말 반동’에 대한 처벌,..

한반도에 현존하는 아우슈비츠의 현실이다. 
 
통일부라면, 통일준비위원회라면, 통일문제 전문가라면, 정치하는 사람들이라면 마땅히 유엔보다 먼저 그런 보고서를 내고 북한주민들의 인간적 통증에 대한 분노로 몸을 떨며 모세가 부르짖었듯이 “내 백성을 놓아주라(Let my people go)!"라고 외쳤어야 말이 된다.

그런 다음에 남북철도도 잇자고 하고 그것을 대륙철도와도 잇자고 해야 순서다.
지금 사람들이 얻어맞고, 굶어죽고, 잡혀가고, 고문당하고, 죽어나가고 있는 마당에...
뭐, 북한인권법은 10년씩 깔아뭉개면서 웬 철도연결부터 하자?
참 태평스런 연설이다.
누구 염장 지르는 건가? 
 
북한주민들의 실존적 고통에 대한 진지한 감정이입(感情移入)은 고사하고 이 정권의 통일부와 통일준비위원회는 김정은을 만나보기 위해선 행여 그의 비위를 상할세라, 이것도 하지 말아야, 저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 기색이다.
김대중 시대, 노무현 시대 ‘햇볕 관료’들이 꺼이꺼이 울고 갈 지경일 것이다.
“왜 우리 전매특허품을 허락도 없이 갖다 써?” 하고...
 
대북정책을 포함해서 무릇 정치란 무엇인가?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것은 인간적 고통에 대해 안젤리나 졸리처럼 “아, 아프고 슬프고 통탄을 불금하노라!” 하고 외치는 것이다.
그런 건 못하거나 안 하면서 유라시아 이니티브가 어쩌고 하며 거창한 고담준론(?)이나 내세우는 걸 한 마디로 뭐라고 하는지 아는가?  
‘위선’이라고 한다.
 
  • 온갖 당근으로 만나자고 조른다 해서 김정은이 “아, 그래 만납시다” 하고 나올 것 같으면 또 모를 일이다.
    “합시다”는 고사하고 그는 지금 황병서를 시켜 ‘장갑차 공격’ 퍼포먼스를 연출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자칭 통일정책 전담자들, 정신 차렷 이 사람들아. 삶은 호박에 도래송곳 안 들어간다는 식의 헛소리 작작하고...
    저러니까 밤낮 김정은 패거리한테 속이나 보이고 만만하게 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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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