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은 짬뽕과 어린 돼지 생삼겹살
    통일 준비... “of the pig, by the pig, for the young pig”?

    이 덕 기 / 자유기고가

    @ 사람마다 식성은 다릅니다. 그런데 제 입맛만을 고집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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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으로부터 십수년 전 이솝 우화의 ‘나그네 외투 벗기기’가
    세간에 본격적으로 오르내리던 무렵이다.
    민·군·관의 전문가와 실무자들이 대북·통일정책에 대해 토의를 한 적이 있다.
    많은 분들이 ‘햇볕정책’의 당위성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읊어댔다.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은 역사적인 사례와 외국의 경우까지 들이대며 토의를 이어갔다.

    드디어 차례가 돌아왔다.
    일어서자 마자 “햇볕정책이 성공하면 전쟁 나는 거 아닌가요?”라고 한마디 했다.
    좌중이 다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햇볕정책이 성공하면 북한이 개혁·개방될 텐데...
    그리하여 김정일 정권이 무너질 지경이 되면 결국
    김정일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전쟁이 뻔하지 않은가요?”
    그 후 그 자리가 어떻게 됐는지는 상상에 맡긴다.
    물론 본인은 완전 왕따 취급을 당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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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악(北岳)산장’ 여 주인님께서 ‘대박’을 노리고 식당을 차리셨다.
    이름하여 『통준 맛집』이다.
    지배인은 당신 수하 사람으로 앉히고,
    가오(얼굴)마담에는 나이 지긋한 유학파 주방장을 스카웃했다.

    그런데 지배인과 가오마담 간에 식당 운영에 대해 의견이 다른 듯했다.
    지배인은 사람들, 즉 궁민(窮民)들만 출입하게 하자는데 반해,
    가오마담은 동물들도 함께 먹고 마시는게 어떠냐고 했다.
    특히 식당이 북적거려야 보기도 좋을 거라면서,
    그래서 이웃 동네 돼지들에게는 당분간 음식을 거저 주자는 거다.

    그렇다고 둘이서 이 문제로 크게 다투지는 않는 모양새이고,
    지배인도 가오마담이 나이 지긋하고 유학도 하신데다가 스카웃한 분이니
    그냥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지내겠다고 하여 그렇게 넘어 가기로 했다.

    드디어 영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메뉴도 점검할 겸 지배인과 가오마담에게 브리핑을 받고,
    시식(試食)도 하기로 했다. 공개적으로 맛집 광고도 겸해서 방송국 카메라도 부르고... 


  • “메뉴는 짬뽕이 대세입니다. 과거부터 갖고 있던 재료도 넉넉합니다.
    이웃 동네 돼지에게 인기 좀 끌려고 새우젓처럼 자극적인 양념은 빼버렸습니다.
    이거면 대박이 틀림없습니다”

    드디어 시식에 들어갔다.
    여러 가지 식재료가 풍성하게 들어가긴 했는데 왠지 짬뽕이 따땃하지가 않다.
    냉동창고에 있던 각종 식재료들을 꺼내 급히 만들다 보니
    재료가 해동(解凍)이 덜 돼서 식은 짬뽕이 된 것이다.

    여 주인님이 물었다. “이것으로 대박이 가능하겠어요?”
    당황한 가오마담과 지배인이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에
    맛집 문 밖에서 방송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이웃 동네 어린 돼지가 화를 벌컥내며,
    “야! 식은 짬뽕을 누가 먹네? 우린 불은 면발 안 먹는다!”고 문에다가 발길질을 해댔다.
    그리고 그 후에 “알곡을 주면 밥은 우리가 하고 반찬은 우리 맘에 드는 걸로 해 먹을 테니,
    알곡하고 기름값과 반찬 재료 값이나 현찰로 두둑히 내놓으라우!”
    이렇게 생떼를 쓰며 찡얼대고 있다.

      한편, 시식회에 참석했던 몇몇 사람들은 식은 짬뽕을 먹어 보고 나서는
    이렇게 쑥덕거리고 있단다.
    “묵은 재료로 만든 식은 짬뽕으로 대박이 나겠나?
    메뉴판에야 올릴 수 없지만, 오히려 이웃 동네 어린 돼지 생삼겹살이 낫겠다”

    그래도 『통준 맛집』은 계속 영업을 하고 있다. 손님은? 글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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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하려는 통일은 어디까지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즉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가 구현되는 통일 한반도이다...
    북한을 자극하기 때문에 그것을 지향한다고 명시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통일부 장관, 2014. 3.11. 한국국방연구원 포럼)

    “북한이라는 상대가 있기에 ‘통일 헌장’은 애매할 수밖에 없다.
    사실 통준위 안에도 다양한 목소리가 있다....”
    [분명한 것은 ‘자유민주 체제’로 통일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통일을 ‘1국가 1체제’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한 국가 안에서 자치적인 지방정부들이 운영되는 것처럼,
    통일 개념과 형태도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열린 통일’이라고 명시했다”
    (통일준비위원회 민간 부위원장, 2015. 1. 5. 조선일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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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어떤 통일이어야 한다는 것인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민간 부위원장’님의 말씀이시다.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다.
    평화·공존 통일을 추구한다면 북한을 코너로 너무 모는 것은 옳지 않다.
    숨 쉴 구멍을 터줘야 한다”

    그렇게 숨 쉴 구멍을 터줘서 핵 무기를 손에 쥐게 된 거 아닌가?
    숨통을 조여야만 숨을 쉬기 위해서라도 살려달라 꽥꽥거릴거다.
    즉, 대화라는 데에 나올 것이 아닌가베.

    다음은 통일·외교부 신년 업무 보고와 관련한 언론 보도의 제목들이다.
    이것을 보도한 신문이 찌라시는 아니지 싶다. 믿을 만 하다는 얘기다.
    “北 자극 완화 - ‘안보리 제재’라는 표현은 ‘유엔의 단합된 대처’로”
    “인도적 지원 강조 - ‘통일박람회 2015’ 등 교류사업 내용도 구체화”
    “나진·하산 물류협력 확대, 두만강 다국적 도시와 DMZ세계평화공원 개발,
    산림·하천 공동관리도 추진”
    그리고, 이 보도는 “2015년 통일준비 업무보고에는 각종 대북 협력사업이 
    다양하게 포함됐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각고의 노력(?) 때문인지, 드디어 반응이 나오고 있나 보다.
    “남조선 당국이 진실로 대화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의 길로 나온다면
    중단된 고위급 접촉도 재개하고 부문별 회담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좃선 중앙통신은 1월 20일 좃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부·정당·단체들이
    ‘최고 돈엄(豚嚴)’ 쉰년사 관철 연합회의에서 밝혔다고 보도 했다)

    그런데 “진실로 대화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의 길로 나온다면” 이건 또 무슨 얘기?
    “무릎을 꿇던가, 아니면 그럴 준비가 확실히 되어있으면” 뭐 이런 거다.
    수십년 내려 온 전통(?)있는 표현이다.

    이대로 잘만 하면, 가오 마담 말대로만 하면, 『
    통준 맛집』에 돼지 손님 좀 끓겠다, 머지 않아.
     
    대한민국의 북한학자·통일전문가·(우이기)통일운동가들 가운데
    내로라하는 분들도 종종 북녘의 ‘최고 돈엄(豚嚴)’과 똘마니들이 입에 달고 사는
    ‘인민민주주의’의 의미가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에 나오는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과 다를 바가 없다고 평가한다.
    그 ‘최고 돈엄(豚嚴)’과 똘마니들이 ‘인민들을 배불리 먹이고 잘 살게 하려고
    항상 노력하고 있는데, 여러 어려움이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허긴 그래야만 효율적(?)인 통일정책이 나오나 보다.

    과연 그럴까?
    좃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of the pig, by the pig, for the young pig”인 곳이다.
    현자(賢者)들은 이렇게 말한다.
    “가난하면 적(敵)을 선택할 수가 없다. 우선은 가난에 지배 당하고,
    결국에는 운명에 지배 당하게 된다” 이것이 대대로 이어 내려오는
    ‘최고 돈엄(豚嚴)’의 통치 묘수(妙手)이다. 


  • “사회가 빈곤하면 빈곤할수록 정권을 바꿀 에너지가 사회 내부에서 생성되지 못한다.
    반면 정권은 일정한 무력으로 어떤 반란도 진압할 수 있다”
    그래서 ‘최고 돈엄(豚嚴)’과 똘마니들의 입장에서는 북녘의 인민은 늘 배가 고파야 한다.

    결국 교류·협력·인도적 지원은 ‘최고 돈엄(豚嚴)’과 똘마니들의 영도력(永盜力)을
    다른 말로 정당화시켜 주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는 더러 알고도 마지 못해 한다. 그게 숙명이라면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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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민간 부위원장’님을 비롯한 ‘통일준비위원’님들이야 말로
    박사학위는 물론이거니와 외국 유수대학에서 유학까지 마치신 분들이 대부분일 텐데,
    위에 두서 없이 주절댄 넋두리를 왜 이해 못 하시겠는가.
    그러니 기우(杞憂)에 지나지 않을 듯하다.

    분명코 찌라시와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하는 언론사 기자들도 있는 공개 석상이었던 만큼,
    그렇게 발표하고 얘기했으리라 믿는다.

    승리를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전략·전술을 그대로 노출시킬 수 없다.
    때로는 상대 뿐 아니라 우리 편을 속여야 할 때도 있다.
    아마 진지한 비공개 회의에서는 이런 말들이 오갔을 것이라 확신(?)한다.

      “업무보고는 업무보고고, 말이 그렇다는 거고,
    실은 북녘을 확 때려 엎어버리는 게 맞다”
    <더   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