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北 1월에는 '스터디 그룹'이 생긴다

    신준식  /뉴포커스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사는 모두 893자, 200자 원고지 5매가 되지 않는 짧은 내용이다.
    2015년 화두는 경제 살리기와 통일 준비다.
    반면 북한에서는 김정은 자신의 독자적인 색을 강조하면서, 신년사에서 무려
    1만 694자를 뱉어냈다. 200자 원고지 54매에 달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비교하면 11배가 넘는다.
  • 새해가 밝아오면 북한 주민들이 가장 크게 걱정하는 것이 '신년사 암기'다.
    신년사는 최고 지도자의 최상의 지침으로 간주하고 반드시 외워야 하는 과제다.
    박근혜 대통령의 약 900자의 원고가 반가워 보일 정도다.

    한 탈북자는 이에 대해 "글자만 외운다고 존경심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새해부터 너무 부담을 준다. '안 외우면 그만 아니냐'라고 묻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당의 지시를 어기는 것으로 간주되어 심하게는 교화소까지 보내진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북한 주민들은 1만 7천자에 달하는 글자를 어떻게 외우고 있을까?
    북한 대학생들은 '통달모임'이라는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신년사 암기를 한다.
    北 대학생 출신 탈북자는 "서로 막히는 부분을 지적해주고, 전부 외울때까지 반복해서
    학습한다"고 증언했다.

    북한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탈북자는 "일이 끝난 후 퇴근시간까지 남아 '이왕 외울거 최대한 빨리 외워버리자'하는 식으로 모임을 만들어 외운다. 솔직히 속으로는 신년사를 외운다고 달라질 게
    뭐가 있겠는가라는 의문을 품지만, 절대 입 밖에 내는 일은 없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사실 엄청나게 어려운 것 같지만, 매년 내용이 비슷비슷해서 한 해만 잘 외워두면
    그 이후의 해부터는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다만 웃긴 것은 신년사에 김정은이 인민생활을 개선하고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내용이 있는데, 외우면서도 콧방귀를 뀐다. 올해는 그런 경향이 더 심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편, 북한의 신년사는 심지어 어린 아이까지 반드시 외워야 하는 숙제다.
    학교에서는 신년사의 기본 내용을 시험을 통해 검사하는 방식도 생기고 있다.
    이 때문에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불만이 가중되고 있는 상태다.

    신년사 암기는 일상 생활에도 상당한 지장을 준다.
    한 탈북자는 "시장에 나가 장사를 하고 있는 시간에도 신년사를 암기하고 있어야 하니
    생활에 불편함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경제 발전을 말했는데, 솔직히 따지고보면
    장마당에서 장사하는 주민들이 경제를 발전시키고 있는 것 아닌가.
    그 마저도 막고 있는데, 신년사는 형식적인 얘기일 뿐 공감이 전혀 되지 않아
    외우기가 더 짜증난다"고 밝혔다.

    탈북자들은 입을 모아 "신년사가 끝나면 바로 국가에 바쳐야 하는 물품들이 정해지는데,
    북한은 사람이 살기에 너무 고통스러운 곳"이라고 말한다.
    암기를 하면서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국가에 내야 하는 물건들을 수집하면서 육체적으로
    힘들다는 것이다. 심신이 힘든 때가 바로 1월이다.
    벌써 1월의 반이 지났다는 것을 반가워해야 하는지, 안타까워 해야 하는지.
    신년사를 통해 북한 사회의 단면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뉴포커스=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