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정부, 원형보존 요청‥중국정부 측 최종 결정
  • ▲ 중국 충칭시 소재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건물.ⓒ보훈처
    ▲ 중국 충칭시 소재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건물.ⓒ보훈처

    중국 충칭시 소재 한국 광복군 총사령부 건물이 원형 그대로 보존된다.

    국사보훈처는 지난 18일 중국 정부는 우리 주중대사관 관계자를 초치해 “한국측의 요청과 한‧중 관계를 고려해 (광복군 총사령부)건물을 현장에 원형 보존키로 충칭시가 결정하고 중앙 정부가 이를 승인했음”을 통보해 왔다고 20일 밝혔다.

    중국측은 “이 사업은 중국측이 주체적으로 추진 하는만큼, 비용은 중국측이 부담하겠다”고 했으며, 고증 문제 관련해서도 초기 단계부터 우리측과 상의하겠다"고 덧붙였다.

    광복군 총사령부 건물 원형 보존 문제와 관련해 그간 중국 외교부 및 충칭시는 도시개발 필요성 및 비용 문제 등을 이유로 현장 원형 보존 방안에 대해 비교적 소극적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국가보훈처 및 외교부는 다양한 외교 경로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중국측의 적극적 검토를 요청해왔다.

    광복군총사령부는 한국독립운동사에서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항일무장투쟁 역사다.

    항일무장투쟁은 의병→ 독립군 → 광복군으로 이어지면서 봉오동· 청산리대첩을 비롯해1930년대 조선혁명군과 한국독립군의 대일항전 등 빛나는 성과를 거두었음. 광복군은 이러한 전통을 이은 항일무장투쟁의 상징적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1940년 9월 창설된 광복군은 그해 11월 섬서성 서안으로 총사령부를 이전했다가, 1942년 10월 다시 중경으로 옮겨왔다. 이후 해방을 맞아 환국할 때까지 현재 중경에 있는 광복군총사령부 건물을 사용했다.

    이번 광복군총사령부 건물 복원 의미는 봉오동· 청산리대첩이나 1930년대 독립군의 대일항전 유적은 남아 있지 않으나, 광복군총사령부 건물은 1942년부터 해방 때까지 광복군총사령부가 직접 사용했던 건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항일무장투쟁 유적이다. 

    중국에는 상해, 항주, 진강, 장사, 유주, 중경 등에 임시정부 청사가 복원되어 있으며, 광복군총사령부 건물은 임시정부 청사 못지않게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정부는 광복군총사령부 건물을 이미 복원되어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와 더불어 한국독립운동의 상징적 기념물로, 그리고 항일무장투쟁의 전시관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 ▲ 중국 충칭시 소재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건물.ⓒ보훈처
    ▲ 중국 충칭시 소재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건물.ⓒ보훈처

    광복군 총사령부 

    1940년 9월 17일 중국 충칭(重慶)에서 창설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군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수립 초기부터 군대를 편성해 독립전쟁을 수행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1919년 12월 ▶대한민국육군임시군제, 대한민국육군임시군구제, 육군무관학교조례 등 군대의 편성과 독립전쟁을 위한 군사정책을 수립한 계획이었다.

    이같은 군사계획은 임정의 활동침체와 피난기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실현되지 못했지만, 정책 자체는 변함이 없었다. 임정이 이러한 군사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한 것은 ▶중․일전쟁 발발 직후였다.

    1937년 7월 15일 유동열(柳東說)․이청천(李靑天)․이복원(李復源)․현익철(玄益哲)․김학규(金學奎)․안공근(安恭根) 등을 중심으로 군사위원회(軍事委員會)를 발족시켰다. 이들은 모두 만주에서 독립군을 조직해 대일항전을 전개하였던 군사인재들로서, 이들로 하여금 전시체제(戰時體制)에 대처하는 군사정책과 활동을 전담토록 했다.

    임정은 1939년 스추안성(四川省) 치장(綦江)에 도착한 이래, 군사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하고 실행에 옮기기 시작하였다. 이해 11월 국무회의에서는 「독립운동방략(獨立運動方略)」이 결정됐다.

    이는 임정이 추진해나갈 독립운동에 대한 총체적인 계획으로, 핵심은 군사양성과 독립전쟁 수행에 있었다. 

    “임시정부의 활동능력과 전투력은 반드시 조직적으로 훈련받은 무장독립군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 또 “일제와 직접적 독립전쟁을 개시해 광복을 완성한다”고 해, 무장독립군 편성과 독립전쟁 수행을 군사활동의 목표로 설정했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한국광복군 창설이 추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