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파문'은 19일 12차례 비난, '취업 청탁'은 4일 만에 첫 직접 사과
  •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을 소리높여 비난하다가 정작 자신의 '처남 취업 청탁 의혹'이 불거지며 난관에 봉착하게 된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을 소리높여 비난하다가 정작 자신의 '처남 취업 청탁 의혹'이 불거지며 난관에 봉착하게 된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한겨울의 찬 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옛 비서실장이 옛 주군(主君)의 능묘 앞에 섰다.

    헌화와 분향을 한 뒤 채 말을 꺼내지 못하고 탄식한 그는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즉생의 각오로 이 자리에 섰다"고 다짐했다.

    지난해 1월 16일, 노무현 묘소를 참배하던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당시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모습이다.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 지금은 차디찬 땅 속에 누워 있는 그의 옛 주군이 입만 열면 강조하던 내용이다.

    2004년 3월, 그의 옛 주군은 "청탁 문화는 걸리면 패가망신시켜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독설을 내뱉어 D건설 남모 사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참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35부의 판결에 따르면, 문희상 위원장이 처남의 취업을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에게 청탁하던 때는 바로 그 무렵이었다.

    "청탁 문화는 걸리면 패가망신"을 부르짖는 주군의 등잔 밑에서 과감하게도 청탁이 이뤄졌던 셈이다.

    문희상 위원장의 배우자는 동생(문 위원장의 처남)과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던 건물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는데 이를 갚지 못해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게 됐다. 처남에게 빚을 진 셈이 된 문 위원장은 경복고 후배인 조양호 회장에게 처남의 취업을 간접적으로 청탁했다는 의혹이다.

    조양호 회장은 미국의 브리지웨어하우스 INC에 취업을 재청탁했다. 이에 따라 이후 2012년까지 문희상 위원장의 처남에게 지급된 급여는 74만7000달러.

    판결문은 "급여를 지급받았으나 회사에서 일을 하지 않은 사실이 인정된다"며 청탁에 따라 지급된 급여를 문희상 위원장 내외가 처남에게 진 빚의 이자를 지급한 성격으로 규정했다.

    외형상으로만 업체로부터 문 위원장의 처남에게 금전이 직접 지급됐을 뿐, 그 성격은 업체가 문 위원장을 대신하여 제3자인 처남에게 금전을 지급하는, 이른바 제3자뇌물공여죄의 형태가 된다. 다만 제3자뇌물공여죄가 성립하려면 업체와 문 위원장 사이에 '부정한 청탁'이 있고 그 대신 업체가 제3자(처남)에게 금전을 지급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그러한 정황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법적으로 제3자뇌물공여죄가 성립하느냐 여부에 관계없이,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을 '사즉생의 각오'로 실천하겠다던 문희상 위원장은 입이 열 개라도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됐다.

    지난달 28일 〈세계일보〉의 단독보도로 이른바 '정윤회 문건'이 세상에 알려진 뒤, 문희상 위원장은 청와대를 향해 연일 강공을 펼쳐왔다.

    당일로 지역구인 대전에 내려가 있던 박범계 의원을 불러들여 '비선실세 국정농단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게 하는 등 이 사건을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으로 규정짓고 화력을 집중했다.

    비상대책위원회의·확대간부회의 등 비대위원장이 직접 참석하는 회의 때마다 모두발언을 통해 청와대를 향한 비난을 아낌없이 퍼부었다.

  •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19일 열린 비대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 말미에 사과를 마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19일 열린 비대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 말미에 사과를 마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이달 1일 비대위원회의에서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은 역대 정부를 볼 때 정권 말기에서나 볼법한 해괴한 일"이라고 첫 포문을 연 데 이어, 3일에는 이미 특검과 국정조사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19일까지 비상대책위원회의·의원총회·결의대회·확대간부회의 등 형태를 가리지 않고 12차례의 공개적인 모두발언을 통해 이른바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을 맹비난했다.

    특히 16일에 자신의 '처남 취업 청탁' 의혹이 흘러나왔음에도, 이튿날 열린 비대위원회의와 의원총회에서 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오로지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사태는 낱낱이 파헤쳐 반드시 발본색원해야 할 중대 범죄"라며 "개인적 일탈로 얼렁뚱땅 사건을 종결하려고 한다면 국정조사와 청문회, 특검 실시를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데만 골몰했다.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끌만 나무라는 모양새다.

    마침내 처남의 취업 청탁 의혹이 주요 매체에 전부 보도돼 해명을 피해갈 수 없게 된 19일. 그럼에도 문희상 위원장은 이날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먼저 국정농단 비선실세 의혹을 비난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검찰이 수사 결과를 내놓는다 해도 어느 국민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일지 의문"이라며 "국민은 진실만을 원한다"고 성난 목소리로 호통을 치던 문희상 위원장은, 그 기세 그대로 사과에 돌입했다.

    "처남 취업과 관련해 결과적으로 나 때문에 처남이 특혜를 입었다면 이 또한 내 부덕의 소치"라며 "국민과 당원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서 대단히 송구스럽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실체도 불분명한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을 19일 동안 12차례에 걸쳐 공박한 당사자가, 법원 판결문을 통해 확인된 자신의 취업 청탁 의혹에 대해 4일 간의 침묵 끝에 내놓은 사과였다. 

    문희상 위원장에게 청와대를 비판할 자격이 남아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 다가올 2·8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경선에 출사표를 던진 같은 당의 조경태 전 최고위원은 문희상 위원장의 사과와 사퇴를 주장했다.

    조경태 전 최고위원은 18일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정부·여당의 잘못에 대해 야당이 여러가지를 주장했었다"며 "따라서 야당 지도층이 모범을 보였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서 상당히 아쉽고 안타깝다"고 문희상 위원장의 '처남 취업 청탁' 의혹으로 촉발된 자승자박(自繩自縛)을 꼬집었다.

    나아가 조경태 전 최고위원은 "국민적 비판의 목소리가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빠른 시일 내에 거취를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