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나는 너다’서 안중근-안준생 부자 1인2역..세 번째 무대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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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조국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오. 대한독립의 함성이 천국까지 들려오면 나는 기꺼이 춤을 추면서 만세를 부를 것이오.


    중국에서 한국의 독립과 함께 ‘동양 평화론’을 주창했던 안중근.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하얼빈 역에 안중근 기념관을 세울 정도로, 안중근은 오늘날에도 한중일 3국에서 칭송 받고 있는 불세출의 영웅이다. 그러나 친일파로 훼절된 삶을 살아야만 했던 안중근의 막내 아들, 안준생에 대해선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 이토 히로부미 아들에게 사죄한 안중근의 아들

    1907년 안중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안준생은 중국 현지에서 사업가로 활동하다 1939년 10월 7일 ‘만선시찰단’의 일원으로 고국에 돌아왔다. 그런데 그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위패를 봉안한 박문사(博文寺)에서 ‘사죄’를 하는 친일행위를 저질러 주위를 경악시켰다. 친일신문 경성일보에 따르면 당시 안준생은 이토의 영전에 향을 피우고 “죽은 아버지의 죄를 내가 속죄하고 전력으로 보국의 정성을 다하고 싶다”는 망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것도 모자라 안준생은 이튿날 이토 히로부미의 둘째 아들 이토 분키치(伊藤文吉)와 반갑게 악수를 나누며 화해의 제스처를 취했다. 당시 매일신보는 ‘극적인 대면ㆍ여형약제(如兄若弟. 형 같고 동생 같고), 오월(吳越) 30년 영석(永釋.영원히 풀다)’이라는 제목으로 두 사람의 만남을 대서특필해 한일 양국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는 왜 아버지가 죽인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과 악수를 나누고 사죄의 뜻을 표했을까?

    하얼빈 의거 후 뤼순 감옥에 수감된 안중근 의사는 1910년 2월 14일 사형선고를 받고 3월 26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에 안 의사의 유가족은 일제의 감시망을 피해 러시아 연해주로 거처를 옮겼다.


  • “초연 때 ‘아이 낳게 해 달라’ 빌었더니 ‘삼둥이’ 덜컥”
    “아내도 ‘딸이라는 확신만 서면 또 낳겠다’ 화답”


    그러나 집요한 일제는 러시아 현지까지 찾아가 맏아들 안분도를 독살했다. 충격적인 사실은 당시 안분도에게 독이 든 과자를 건넨 사람이 바로 동생 안준생이었던 것. 어린 안준생은 누군가 건네준 과자를 무심코 형에게 줬다, 일평생 ‘자신의 손으로 친형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야만했다.

    안준생이 처음부터 자기가 원해서 친일 행위를 했다고 보진 않아요. 오히려 일제에게 이용당한 거죠. 당시 일제는 그가 ‘안중근의 아들’이라는 점 때문에, 그를 감시하고 내선일체(內鮮一體)에 이용하려고 애썼을 거예요. 게다가 안준생은 일제로부터 ‘어머니와 가족을 죽이겠다’는 협박을 받고, 모진 고문까지 당했다고 해요. 안중근의 혈육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견디기 힘든 고통을 당하게 된 거죠.


    연극 ‘나는 너다’에서 안중근과 그의 아들 안준생으로 분한 송일국은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을 했다’며 일평생 ‘친일파’란 딱지를 달고 살아온 안준생은 어찌보면 요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면서 “살기 위해 서로를 이용하고 음해하는 지금의 비정한 현실을 반추하게 하는 인물”이라고 분석했다.

    만일 누군가 가족을 죽이겠다는 협박을 받는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당시 안준생을 일제의 손에서 지켜내지 못한 것도 결국 우리의 잘못이 아닌가 싶어요.

  •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가운데에도 ‘의거’의 의미를 지키기 위해 항소 한 번 하지 않고 죽음을 택한 아버지와, 가족을 위협하는 일제의 강압에 굴복, 국적(國賊)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아들의 모습은 ‘호부견자(虎父犬子, 범 같은 아버지에 개 같은 아들)’의 전형과도 같은 사례다. 그러나 송일국은 “역설적으로 ‘견자’같은 아들을 통해 당시 독립운동이 얼마나 힘들었고 그 가족이 얼마나 고통을 당했는지 짐작케 해준다”며 그의 삶을 그린 이 작품에 의미를 부여했다.

    안준생은 평생 ‘친일파’ ‘반역자’란 소리를 듣고 사는데요. 만약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 누구라도 그런 행동을 했을지 모릅니다. 연약한 인간이니까요. 그런 면에서 안중근 의사가 더욱 위대하고 지금까지 추앙을 받고 있는 거죠.


    하지만 송일국이 처음부터 이 작품을 하겠다고 나선 건 아니었다. 그는 “‘나는 너다’의 대본을 처음 받고 아들 안준생의 친일행위를 접한 순간, (연극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을 했었다”고 밝혔다.

    1인 2역을 연기하는 것도 부담이 됐지만, 이 작품을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안중근 의사 유족 분들에게 누를 끼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오히려 이 연극을 통해 관객들에게 해드릴 얘기가 많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 이토 히로부미 아들에게 사죄한 ‘안중근의 아들’
    ‘내 손으로 친형 죽였다’는 죄책감에 평생 고통


    ◆ “‘안중근의 아들’을 지키지 못한 것도 우리의 책임”

    아이러니하게도 안준생 때문에 이 연극을 하기로 결심했다는 송일국. 그는 2010년 초연 당시 “극중 마지막 대사인 준생의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라는 질문에 안중근 의사가 ‘너를 위해서’라고 대답한 한마디에 꽂혀서 이 작품에 도전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2011년 재연에 이어 세 번째 막을 올린 ‘나는 너다’에 출연한 송일국은 “이 연극은 저를 다시 태어나게 해준 작품”이라며 “이 시대에 이 연극이 다시 필요하지 않나 싶어 캐스팅에 응하게 됐다”고 밝혔다.

    연극을 하기 전에 겉멋이 잔뜩 든 시절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작품이 흥행에 실패하고 방황을 좀 했죠. 그때 윤석화 대표님을 만나게 됐고, 대표님 덕분에 이 연극에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너다’는 제게 터닝포인트가 된 작품이고, 많은 것을 내려놓게 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송일국은 “뿐만 아니라 ‘나는 너다’는 대한, 민국, 만세 삼둥이를 갖게 해준 작품”이라며 작품과의 끈끈한 인연을 소개했다.

    초연 당시 공연할 때마다 무대에서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이 원형으로 서서 기도를 했는데요. 주로 ‘작품 잘 되게 해 달라’, ‘다치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렸는데 여기에 ‘아이를 갖게 해 달라’는 기도까지 했어요. 그런데 정말 지방공연을 마친 후 하나도 둘도 아닌 셋을 갖게 돼 너무 기뻤죠.


    때문에 이번엔 보답하는 마음으로 공연에 임했다는 송일국은 “또 연극을 한다고 하니, 매니저가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고 밝혀 웃음을 자아냈다.

  • 하지만 송일국이 세 번째 도전에 나선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딸 욕심’ 때문. “프레스콜 전날 연습을 하면서 ‘딸 좀 갖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는 송일국은 “만일 딸을 낳게 되면 ‘우리’와 ‘나라’로 이름을 짓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아내도 딸이라는 확신만 서면 또 낳겠다고 하더군요. 열심히 연극을 하다보면 또 선물을 주시지 않을까요? 하하.


    아이가 생기니 연기할 때 느끼는 감정이 달라 ‘새로운 마음으로 연기에 임하고 있다’고 밝힌 송일국은 “안중근 의사의 ‘통일된 고향 땅에 나를 묻어달라’는 유언은 못 지키더라도 ‘동양평화론’만은 지켜야 하지 않겠냐”며 세 번째 무대에 오르는 각오를 밝혔다.

    일본에서 오신 한 팬 분이 저에게 이토 히로부미가 그려진 천엔 짜리 지폐를 선물로 주셨어요. 그 지폐에는 한국어로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처럼 한·중·일 3국이 하나가 되는 그날까지’라는 말이 적혀 있었어요.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전 이 연극에 남다른 사명감을 느껴요. 그 분의 뜻을 이어받자는 마음으로 연기에 임하고 있어요.


    윤석화가 연출하는 연극 ‘나는 너다’는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 1인 2역을 맡은 송일국은 시대의 영웅 안중근과 매국노로 간주돼 철저히 왜곡된 삶을 살아야 했던 막내아들 안준생의 상반된 모습을 연기한다. 12월 31일까지 서울 광림아트센터에서 열린다.



  • 조광형 기자 ckh@newdaily.co.kr
    사진 = 정상윤 기자 jsy@newdaily.co.kr